우리 모두는 각자의 고통을 안고 간다.

 

그리고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은 각자의 고통은 각자의 것이지 실제로 그것을 현실적으로 나눌 방도는 별로 없다는 것이다.

 

이 점을 깨닫지 못할 때 우리는 우리의 고통 속에 매몰되게 된다.

아니면 우리는 다른 이처럼 잘 해나가지 못하는 우리 자신을 탓하게 된다.

그리고 한 없이 외로운 세계 속에서 고독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실제로 주위를 둘러보았을 때, 우리에게 진지한 위로를 해주고 관심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이들은 상투적인 말로 위로를 하기 보다는 이야기를 들어주고, 힘들었겠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약간은, 들어맞지 않기는 하겠지만, 어쩔 때는 유용한 조언을 해줄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은 필요할 때는 함께 있어주려고 하기도 한다.

 

이러한 사람들을 가진다는 것은 행운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삶에 지나치게 매몰되지 않을 때, 우리는 이러한 관계들을 누리는 행운을 가질 수도 있다.

 

사회가 점점 각박해지고 스스로 스스로의 고통에만 골몰할 수록, 그리고 우리가 실제적으로 분담할 수 없다는 이유로 타인의 고통에 무감해질 수록, 사람들의 정신적 문제들은 심화되어 갈지도 모른다.

 

한국 사회의 자살률은 계속해서 높아지고 있고, 자살과 연관된 정신질환의 유병률도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을 모두 개인의 문제로 돌릴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나 사회는 오히려 거꾸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

 

사회가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인정과 배려를 받을 수 있는 권리의 기초가 확립되어야 한다. 우리가 조직의 부속품으로서 쓰이는 도구로서만 대우받을 때, 그 도구의 정상적 기능을 수행할 수 없는 순간 우리는 낙인찍히고 배척당하게 된다. 이것은 비인간적인 시스템의 세계이다.

 

시스템은 필요하다. 그것은 복잡한 사회가 굴러가기 위한 틀이다. 그러나 그 시스템은 결국 인간을 위한 것이다. 인간을 위한 시스템이 인간을 짓밟을 때, 그것은 도치된 세계를 구성한다.

 

도치된 세계에서 우리는 도처에 고통의 아우성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 아우성은 약한 사람들, 비정상적인 사람들의 외침이라고 하고 무음화되어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게 된다. 아니면 가끔 보는 통계의 숫자로 둔갑하여 그 모든 실질적인 의미가 삭제된다.

 

이러한 사례는 단지 임상적으로 대처할 것은 아니다. 우리는 우리 사회의 시스템이 고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문제가 어떻게 해서 이러한 문제들을 만들어내는지를 진지하게 생각해보아야만 한다.

 

우리가 타인의 고통을 직접 겪는 타인 자체가 될 수는 없지만, 그 타인의 고통이 우리 각자의 삶과 무관한 것이 아님을 깨닫고, 일정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함은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고통을 겪고 있는 타인을 본다면, 비난하거나 질책하거나, 타박할 것이 아니라, 공감하고 곁에 있어주고, 만약에 가능하다면 실질적인 조력을 해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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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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