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an-Jacques Rousseau, Emile ou De l’Education. 김중현 옮김, 『에밀』, 한길사, 2003, 344면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각자 열 가지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열 명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 필요물을 얻기 위해 각자는 열 가지 일을 해야 한다. 하지만 재능과 소질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그들 각자는 다른 사람 보다 더 잘 만드는 것이 있다. 모두가 같은 물건을 만들 수야 있겠지만, 각자에게 적합한 것이 있는 법이어서 일의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할 것이다. 그 열 사람으로 이루어진 한 사회를 만들어서 각자가 자신과 나머지 아홉을 위해 자기에게 가장 적합한 일을 하면 각자는 마치 혼자서 모든 재능을 다 가지고 있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의 재능을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각자는 지속적인 훈련으로 그의 재능을 훨씬 더 증진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의 필요물을 완벽하게 공급받는 그 열 사람 모두는, 그들이 받는 그러한 완벽한 공급 외에 다른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여분의 물건을 가지게 될 것이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모든 사회 제도의 명확한 원리이다."

여기서 루소는 분업적 협동체로서 사회의 조직 원리를 다루고 있다. 즉, 모든 사람들이 분업해서 각자의 일을 함으로써 각자는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뒤이어 루소는, 어떠한 재능을 지니고 태어난 사람이라 할지라도 고립되어서는 자신의 필요를 제대로 충족시킬 수 없음을 지적한다.

"이 원칙 위에서, 누구와도 관계를 맺지 않고 자급자족하면서 고립된 존재로 살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비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는 생(345)존하는 것조차 불가능할지 모른다. 토지가 모두 남의 재산이어서 자기 땅이라고는 하나도 없을 때, 그는 어디에서 필요한 것을 얻을까? 자연의 상태로부터 벗어남으로써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자연의 상태로부터 벗어나도록 강요하는 것이다. 타인의 의사를 무시하고 아무도 자연의 상태에서 머무를 수는 없다. 그 상태에서 사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인데도 그곳에 머물러 있고자 하는 것은 사실상 그 상태에서 벗어나는 일일 것이다. 자연의 제1법칙은 자기 보존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루소는 여기서 로크가 주의깊게 살펴보지 않은 것을 지적하고 있다. 이 논변을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다.

(1) 사람들은 시민적 질서를 조직함으로써 권리와 의무를 설정한다. 예를 들어 소유권을 설정하면 그 소유권에 대한 방해를 하지 않을 의무가 할당된다.

(2) 사람들이 시민적 질서를 조직함으로써 분업이 가능해지고, 그로 인해 각자 고립되어 생산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생산할 수 있다.

(3) 그리고 시민적 질서를 조직함으로써 권리를 설정하면 의무가 같이 할당되기 때문에, 그 질서는 누구에게나 강제되고, 자연상태에 남아 있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그 소망을 실현시켜줄 기회는 남지 않는다.

(4) 따라서 시민의 질서는 협동의 공정한 조건을 만족시켜야 하며, 그 조건의 최소한으로써, 자기 보존이 불가능한 조건을 강제해서는 정당성을 갖지 않는다.

(5) 즉, 누구나 분업의 체계에서 적정한 노동조건 하의 할 일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6) 누군가 원치 않는 절대적 실업상태에 빠지거나, 아니면 인간답지 못한 노동조건을 받아들임으로써만 실업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그것은 시민적 질서가 잘못 조직되어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7) 따라서 소유권을 수반하는 시장경제가, 일부 사람들의 고용을 박탈한다면, 그러한 박탈로부터 그 사람들은 구제를 구할 권리가 있다. 즉, 그 사회의 나머지 사람들은 그 일부 사람들의 자기 보존을 위한 비용을 분담해야 한다.

(8) 그러한 분담의 제1차적인 방법은 그 사회가 책임지는 차원에서 인간다운 노동조건 하의 일할 기회를 구체적으로 주는 것이다.

(9) 그리고 그러한 기회를 구체적으로 주지 못할 때, 그 사회는 인간다운 생존을 위한 생계비를 지원해야 한다.

(10) 이러한 원리는 시민적 권리와 의무를 할당하는 모든 질서의 정당성의 근저가 되는 것이다. 즉, 사회의 경제의 전개 양상이 일부가 분업에 참가할 수 없도록 진행되는데도, 그 일부에 대하여 구제절차를 마련해두고 있지 않다면, 그 사회의 전체 질서는 정당성을 잃는다.

(11) 그렇다면 우리 헌법이 근로할 권리를 규정하고 있는 것은 결코 프로그램적 권리라고 볼 수 없다. 프로그램적 권리로 본다는 것은, 헌법상 규정된 권리로부터 국가에 대하여 청구할 수 있는 아무런 구체적 권리가 도출될 수 없고 단지 국가운영의 방향과 노력의무만을 규정한 수사에 불과하다는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그러나 재산권을 인정하면서 근로할 권리를 프로그램적 권리로 보는 것은, 생산수단에 결합하지 못하여 인간다운 생존을 유지할 수 없게 되는 사람들을 구성원으로 보지 않아야 정당성을 가지는 해석이다.

(12) 그것은 최저임금법, 근로기준법, 산업안전보건법 등 관련 노동법을 준수하며 자기보존과 자기발전이 가능한 일자리를 국가가 제공해줄 것을 요구하는 구체적인 권리를 규정한 것이다.

(13) 만약 그러한 구체적인 권리를 규정하고 있지 않다고 본다면, 그래서 일을 할 능력이 있으나 최소한의 적정한 일자리를 찾지 못한 사람에게 자기보존을 가족이나 친구에게 맡긴다면, 그 헌법은 불의한 헌법이 되며, 헌법의 최고법으로서의 정당성은 사라진다.

(14) 따라서 근로할 권리가 프로그램적 권리라고 보는 것은 정당성을 탈각시키는 해석이다.

(15) 근로할 권리의 내용에는 따라서 국가의 최후고용자로서의 의무가 포함되어 있다고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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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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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10.31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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