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과 연계하여 자격 없이 국정에 개입하고 공무상 비밀누설을 공모하고 사익을 위해 권리행사를 방해하고 횡령했다는 등의 커다란 범죄 혐의를 받고 있는 피의자는 그에 응당한 커다란 사회적 지탄을 받고 있다.

 

그런데 근래에는 이러한 피의자에 대하여 변호사로 변호하는 활동 자체에 대한 지탄이 아무런 제약 없이 전개되고 있는 현상도 감지되고 있다.  

 

그러한 비난은 해당 변호활동을 하고 있는 변호사 자체를 인격적으로 공격하거나, 더 나아가 사무실에 항의전화를 계속 하여 사무실의 전화를 불통으로 하는 등의 형태로 전개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형태의, 변호 활동 자체에 대한 비난은 정당하지 아니하다.

 

변호 활동 자체에 대한 비난이 그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것을 보편적 원리로 정식화해보자.

 

"적정절차(due process)를 앞에 두고 있는 당사자에 대한 사회적 지탄의 정도가 크다면 변호인 선임과 같은 적정절차의 요소는 누락되어야 한다."

 

이렇게 정식화된 원리에 의하면 적정절차의 구현 정도는 사회적 지탄의 함수가 된다. 사회적 지탄의 정도가 크다면 변호인 선임권은 박탈된다. 사회적 지탄의 정도가 낮을수록 변호인 선임권의 자격은 강해진다. 그러나 적정절차는 공정한 과정에 의해 사안이 결정되는 틀로서, 사회적 지탄의 정도가 높은 곳에서 그 필요성이 가장 큰 것이다. 이는 표현의 자유가 그 표현 내용이 사회적 지탄을 받는 곳에서 그 구현의 필요성이 가장 큰 것과 마찬가지다.

 

적정절차가 사회적 지탄의 함수가 아니라면, 사회적 지탄의 정도와 무관하게 변호인 선임권과 같은 적정절차의 요소는 구비되어야 한다.

 

톰 행크스가 주연한 <스파이 버릿지>는 냉전의 최전성기에 소련 스파이 활동으로 체포되어 재판받는 자를 변호하는 변호사의 집에 총을 쏘고, 변호사를 인신공격하는 당시 시대상을 보여준다. 소련 스파이는 국가 안보에 직접 위협을 주는 거대한 적으로서, 그러한 적에 대하여 변호를 하는 행위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변호사의 집에 총을 쏘거나 변호사를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려는 노력이 그 목적을 달성하여, 소련 스파이로 지목된 자가 변호인 없이 재판을 받게 될 경우 그 사회 구성원들의 자유는 '소련 스파이로 지목되는 경우 적정절차 없이 형을 선고받는다'는 지위로 축소된다.

 

사법질서는 적과 아군을 나누고 적에 대해서는 적용중지를 명할 수 있는 질서가 아니다. 그것은 바로 심판받는 당사자가 그 결과를 정당성이 있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필수 조건으로, 기본질서에 속하는 것이다.

 

변호 활동 자체에 대한 부당한 비난이나 간섭은, 그러한 기본질서를 자의적으로 일그러뜨리려는 시도를 대표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입헌 민주주의 시민의 자유롭고 평등한 지위를 강화하는 제도를 통한 해결책이 아니라, 매번 사안마다 인격적 압력으로 그나마 있던 적정절차를 구부림으로써 자기 진영이 지지하는 결과를 관철하려는 시도가 만연해 있다.

 

예를 들어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면서 약자의 사회적 권리를 제도로서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약자의 사회적 권리는 제도화하지 못하면서 이와 관련된 표현만을 광범위하게 금지하려는 해결책을 기도한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매우 제약적이라는 것을 드러낸다. 즉 시민들은 제도에 논증대화를 통해 정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통로가 제약되어 있어 정치적 무력감을 느낀지 오래되었다. 그리하여 이 정치적 무력감에 따른 분노는 시민들이 즉각적으로 효과를 낼 수 있는 것, 즉 인적으로 비난하고 낙인찍고 매장하여 그 타겟이 된 사람의 활동 자체에 위협을 가함으로써 원하는 결과를 관철시킬 수 있는 것을 지향하도록 분출되곤 한다.

 

그러나 이것은 그 취지가 어떻든 적정절차를 구부리는 사적 린치의 지배이며, 타당하지 아니하다.

 

근래 우리 사회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공적 권위의 사유화'(privatization of public authority)이다. 공적 권위는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들의 지위를 더 강화하기 위하여 특별히 부여된 내용의 권한으로 창출된다. 그런데 이 공적 권위가 그러한 권한을 인적으로 부여받는 사람들의 사사로운 이득이나 권력감을 위해 활용될 때, 전체 시민들의 지위는 굴곡되고, 통치구조는 부패한다.

 

대표적인 것이 검찰의 권력에 대한 종속이다. 오늘날 양식 있는 시민들은 행정부의 통제를 받는 검찰이 행정부 수반이 연루된 범죄 행위에 대하여 제대로 수사를 할 수 있을 것인지 우려하고 있다. 행정부 수반이 행정권력을 사사로운 친소관계와 이득을 위하여 광범위하게 함부로 활용하였다면, 자신의 인사권 하에 있는 검찰권력 역시 사사로운 이득과 친소관계를 위하여 구부릴 수도 있지 않은가 염려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이해대립의 당사자가 스스로 지휘하는 수사기관이라는 제도적 지위를 그대로 두고, 그 수사기관에서 수사받는 사람의 변호인 선임권을 부인하는 방식으로 해결될 수 없다. 즉 이미 있는 적정절차의 요소를 탈각시키는 인적 비난에 의해 해결될 수 없다.

 

오히려 그것은 우리 사회 전반에, 수사를 비롯하여 모든 행정기능 전반에 적정절차를 광범위하게 수립함으로써 해결되어야 한다.

 

지난 10년간 검찰은 행정권력에 칼날을 들이대기는 커녕, 행정권력에 휘둘리는 모습을 아주 많이 보여왔다. 이러한 행태가 행정권력의 인적 담지자가 변할 때마다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대통령이 고위 공직자, 대기업 총수, 자신의 정치적 반대파를 포함한 의원들에 대한 수사를 완전히 공정하게 실현할 수 있다는 비현실적인 제도적 기대를 버리고, 제도를 새로 짜야 한다.

 

즉, 직무수행이 대통령의 권한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되고, 그 조직 구성에서도 지배 권력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특별한 수사기관의 설립이 그 대안이다.

 

근래에 그나마 언론을 통하여 현 행정권력의 커다란 문제들이 속속들이 밝혀지고 있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이 문제들을 살펴봄에 있어 우리는 두 가지 선택지에 직면한다.

 

첫째, 이 문제는 오로지 소수의 특정한 인물들의 극악한 인적 속성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이 인물들만 인적으로 갈아치우면 다시는 이러한 문제는 생기지 않을 것이므로, 이들을 인적으로 갈아치우는 데 집중하면 된다.

 

둘째, 이 문제는 소수가 어떻게 권위를 사유화하여 오랜 기간동안 사익을 위해 전횡을 하면서도 오히려 광범위한 구성원들로부터 복종과 협조를 얻어낼 수 있는지 우리 제도의 불완전한 점을 보여주므로, 사회 전반에 적정절차의 통제 구조를 마련함으로써, 제도적 방비책을 세워야 한다.

 

적정절차의 결여에 대한 대책은 적정절차의 더 많은 결여가 아니다. 적정절차의 결여에 대한 대책은 적정절차의 수립이다.

 

정치적 무력감에서 비롯된 분노는 합법적인 범위 내에서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는 개인개인들에 대한 인적 비난으로 분출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정치적 무력감에 대한 분노는, 정치적 효능감을 다시 찾을 수 있는 민주적인 제도의 발전을 향해 분출되어야 한다.

 

거대한 스캔들에 대한 진실규명은 인적 속성만이 바뀐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안이한 자세가 아니라, 오히려 어떻게 하면 다시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 수 있으며, 벌어졌을 때는 적시에 수사하고 처벌할 수 있는가를 살펴보고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제도를 수립하는 대안의 모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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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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