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하나의 판결문을 읽었다. 이 판결문은 나에게 오래 전 어느 사건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였다.

 

최근 읽은 판결은 서울행정법원 2016. 10. 7. 선고 2015구합77530 판결이다.

 

이 판결은 근로기준법상 사용자가 아닌 주체도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상 부당노동행위의 책임을 질 수 있으며, 이러한 부당노동행위에 의해 이루어진 해고는 부당해고라는 판결이다.

 

사안의 사실관계는 다음과 같다.

 

교회는 청소 경비 용역 등 교회 시설의 여러 업무를 처리하는 일을 도급을 줬다.

 

그런데 그 도급을 받은 B업체의 노동자 둘이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노동조합 활동을 하였다. 교회의 관리인사는 이것은 노동조합을 허용치 아니하는 신의 섭리를 위배하였다고 발언하였고, 이에 호응하여 B업체는 스스로 계약을 해지하는 이례적인 행보를 보였다.

 

물론 청소 경비 용역은 누군가에게는 맡겨야 한다. 그리하여 B업체가 사라진 자리에는 C업체가 들어왔다. 교회는 C업체에 청소 용역을 준 것이다.

 

물론 B업체와 C업체로 바뀔 때 노동자들이 모두 다 싹 바뀐 것은 아니다. 중간착취를 전문으로 하는 이 업체들은, 노동자들을 배구공 토스하듯이 토스한다.

 

현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 대부분은 소속만이 B업체에 C업체로 바뀌어 일하게 되었다.

 

그러나 C업체로 갈아타지 못한 노동자들이 있다. 바로 신의 섭리를 위배하였다고 지목당한, 노동조합 활동을 한 노동자들이었다.

 

이 사건에서는 교회는 부당노동행위를 저질렀다고 인정되었다. 그리고 부당노동행위로 인해, C업체 소속으로 일하지 못하게 된 이들은 실질상 부당해고에 의해 일하지 못하게 된 것이어서, 이들을 일하도록 구제하라는 구제명령을 내린 중앙노동위원회 재심판정은 적법한 것으로 인정되었다.

 

이 사건은 기본적으로는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 제81조 제4호의 부당노동행위를 할 주체로, 근로기준법상 사용자뿐만 아니라 "사업주로서의 권한과 책임을 일정 부분 담당하고 있다고 볼 정도로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가, 노동조합을 조직 또는 운영하는 것을 지배하거나 이에 개입하는 등으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81조 제4호 소정의 행위를 하였다면, 그 시정을 명하는 구제명령을 이행하여야 할 사용자에 해당한다(대법원 2010. 3. 25. 선고 2007두8881 판결 참조)"는 법리에 기초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판결을 읽으며 나의 눈에 띈 것은 교회가 하수급 업체에게 "지배개입을 할 지위"에 있는 실질적인 사용자로서의 권한을 행사하였는가의 쟁점에 관해서, 그 하수급 업체의 현장대리인인 한 노동자가 말을 왔다갔다 바꾼 우여곡절이었다

 

(1) 이 하수급 업체의 현장대리인은 처음에는 교회의 주장에 맞는 진술을 하였다. (고용노동부강남지청 진술) 

 

(2) 그러다가, 위 (1)의 진술은 거짓이며, 이는 원고 소속 K 사무처장, B사 소속 J 상무가 함께 입회하여 해고에 대한 두려움 등 심리적 부담과 압박감 때문이었다는 취지의 양심선언서를 작성하였다. (1차 양심선언서)

 

(3) 그러나 마지막으로 이 현장대리인은 위 양심선언서의 내용을 번복하는 양심선언서를 재차 작성하였다. 그 내용은 1차 양심선언서는 밤 시간이라서 추위에 얼떨결에 쓰는 바람에 내용을 제대로 작성하지 못하였다는 취지였다. (2차 양심선언서)

 

물론 첫 양심선언서를 추위에 얼떨결에 작성하는 바람에 내용을 엉터리로 작성했다는 노동자의 이와 같은 해명은 납득하기 어려우므로 2015. 2. 4.자 양심선언서의 기재 내용에만 신빙성이 있다고 보인다고 법원은 판시하였다.

 

그러니까 처음에는 사용자의 주장취지에 부합하는 P라고 주장했다가, 다시 사건 당사자인 노동자의 주장에 맞는 ~P라고 주장했다가, 또다시 사용자의 주장에 부합하는 P로 말을 바꾼 것이었다.

 

P----------> ~P ---------> P

  (1차 번복)     (2차 번복)

 

 

 

나는 위 판결문의 이 대목을 읽으며, 내가 피고보조참가인을 소송대리했던 서울행정법원 2012. 6. 22. 선고 2012구합2337 판결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당사자인 노동자의 사직서 제출이, 사용자가 그 중요부분 착오를 유발한 상태로 이루어졌느냐' 하는 점이었다.

 

노동자의 주장은 다음과 같았다: 사용자는 구조조정이 불가피해서 사직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부득이 정리해고를 여러명 할 수밖에 없으니, 사직서를 제출하라고 하였다. 그러나 실제로 사직서를 제출하고 나니 정리해고는 단행되지 않았고, 오로지 자기자신의 사직서만이 수리되어 직장을 잃게 되었다.

 

사용자의 주장은 다음과 같았다: 사용자는 정리해고를 이야기한 적이 없다. 그냥 노동자가 일하기 싫다고 해서 불쑥 사직서를 제출한 것이다.

 

결국 사용자의 정리해고 위협을 하여 여러 명에게 사직서를 제출받았느냐(사실 ~P)가 쟁점이 되었다.

 

물론 사용자 소속 노무차장은 그런 사실이 없다(P)고 주장했다.

 

관건은 다른 노동자들의 진술이었다.

 

문제는 지방노동위원회, 중앙노동위원회의 구제심판과정을 거치면서 이 노동자들 넷의 진술이 두 번 번복된 것이었다.

 

처음에는 사용자(P)의 주장에 부합하는 진술서를 제출했다.

그러다가 다음에는 직장을 잃은 노동자의 주장에 부합하는 확인서(~P)를 제출했다.

마지막으로 다시, 노동자의 주장에 부합하는 확인서는 멋도 모르고 작성해준 것에 불과하며 사실은 사용자의 말이 맞다(P)는 확인서를 제출했다.

 

P----------> ~P ---------> P

  (1차 번복)     (2차 번복)

 

두 번의 번복이 이루어진 것이었다.

 

쟁점은 과연 P가 맞느냐 ~P가 맞느냐 하는 것이니, 직접 정리해고의 압박을 받고 사직서를 제출했다가 사직서가 수리되지는 않은 이 노동자들의 진술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사용자의 압박을 받아 법정에서 의뢰인을 위해 증언해줄 가능성이 없었다.

 

의뢰인은 말했다.

"그들이 처음에 같이 술을 먹고 제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어떻게 회사가 그럴 수 있냐고 이야기를 했던게 생생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지방노동위원회에는 사용자의 말대로 받아 쓴 진술서를 제출한 것이었다. 의뢰인은 그들을 직접 찾아갔다.

 

"너희들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사실대로만, 사실대로만 써다오."

"형님, 그거는 회사가 그냥 사인하라고 해서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고 사인했다요. 여기 내가 사실대로 써주겠수다."

 

그리하여 의뢰인은 그렇게 받은 확인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회사는 가만있지 않았다. 아마도 다음과 같은 과정이 있지 않았을까.

"이렇게 마음대로 확인서를 써줘? 이딴 걸 써주고도 회사생활 계속 잘 할 수 있을 것 같애? 처음 써낸 진술서가 맞다고, 그 자식에게 써준 확인서는 엉터리라고 다시 써내!"

 

그리하여 회사는 이들의 세 번째 확인서를 모아 제출했다. 발빠른 대응이었다.

 

이제 이러한 상태에서 법원에 가게 되었으니, 변호사로서는 마음이 답답했다.

 

"어쨌든 법정에서 증언해줄 분은 없다는 군요."

"네, 모두들 회사 말이라면 껌뻑 죽습니다. 특히나 이 버스 운전 바닥에서는 다른 회사에 취직하려면, 이전 회사에 전화를 걸어서 어땠냐고 물어보거는 수가 있거든요. 그때 대답을 좋게 안해주면 취직이 힘듭니다."

 

회사의 권력은 그 회사를 넘어서 다른 회사의 취직에까지 이르고 있었다. 근로기준법은 이런 행태를 금지하는 조항을 제40조에서 두고 있기는 하다. 근로기준법 40(취업 방해의 금지)는 "누구든지 근로자의 취업을 방해할 목적으로 비밀 기호 또는 명부를 작성사용하거나 통신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하고 있다. 그러나 누가 취업을 방해할 목적의 통신을 하였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하겠는가. 실효적으로 방지할 장치가 없다면 이 조문은 죽은 조문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꼭 이런 사정 때문만은 아니다. 명확하게 불이익을 목전에 두고 있기 때문에 회사의 종용에 수긍하는 것이 아니다. 노동자들은 불확실한 불이익에도, 그 내용이 정해져 있지 않은 불명확한 불이익에도 반응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 자식이 딸려 있으며, 정기적으로 나오는 월급이 없다면 언제든 삶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나는 의뢰인에게 진술을 두 번이나 번복했던 노동자 4명과 각각 통화를 해서 이런저런 생활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나누면서, 이 분쟁 사안에 대한 사실도 함께 자연스레 이야기를 나누도록 했다. 그리고 통화가 시작되기 전 통화녹음버튼을 미리 누르라고 이야기해주었다. 

 

다행히 노동자 중 2명이 사적인 통화에서 다시금 제약 없이 대화를 나눴다. 새로 산 비싼 자전거 자랑도 했고, 어떻게 사는지 이야기도 나누다가, 결국 정리해고의 예고를 받고 사직서를 썼다는 이야기도 스스로의 입으로 했다.

 

이 녹음파일은 핸드폰에서 절대 지우지 말고 보관하되, 파일 복사본은 메일로 쏘아 달라고 하였다. (당시는 폴더폰이었기 때문에 상당히 절차가 복잡하였다. 스마트폰 시대가 되어 이제 문제가 많이 완화되었다. 상대가 아예 녹음된 통화내용을 부인하면 감정을 해야 하기 때문에 원본을 핸드폰에서 지우면 안 된다.)

 

그러나 이 녹음파일을 보조참가인의 답변서나 변론준비서면에서는 제출하지 않았다.

 

이런 중대한 증거를 미리 제출해버리면 김이 빠지고, 상대는 어거지 이야기로 그 증거력을 깎아내리는 수를 쓰게 마련이다.

 

그리하여, 민사나 행정사건에서는 드물게, 상대방이 제출한 모든 진술서와 확인서의 증거능력에 부동의를 하였다.

 

이렇게 진술서에 부동의를 하게 되면, 상대방은 주신문을 통해 같은 내용을 확인하고 그 진술서가 자신이 쓴 것이 맞다는 점을 말하도록 하기 위해, 작성자를 부를 수밖에 없다.

 

우리는 기다렸다. 

 

사용자는 다행히 통화녹음이 된 2명 중 한 명을 증인신청을 하였다.

 

증인신문 날, 먼저 노무차장이 증언대에서 거짓말을 했다. 관리자인 그는 정리해고 위협을 가하면서 사직서를 받아낸 장본인이었다. 그에게는 거짓말 이외의 다른 것을 기대할 수 없었다.

 

그 다음으로, 마침내, 두 번이나 번복된 내용의 진술서를 제출한 동료 노동자가 증언대에 올랐다.

 

그는 회사에서 철저한 교육을 받았는지, '예', '예'라고 연신 주신문에 대답하였다.

 

반대신문이 시작되었고, 나는 그에게 의뢰인(보조참가인)과 네 달 전에 통화한 일이 있냐고 물었다.

 

증인은 통화를 했다는 사실 자체를 부인했다.

 

새 비싼 자전거를 마누라의 욕을 먹으면서 샀는데 기분이 좋다는 자랑을 한 일이 있는지도 물었다. 

 

그것 또한 부인했다.

 

그 통화에서 구조조정과 정리해고 이야기를 노무차장에게 들었고, 자신도 사직서를 낸 일이 있지 않느냐고 물었다

 

증인은 그것도 부인했다.

 

증인신문이 끝나기 전, 대리인은 법대에 다가가 증거자료를 제출했다.

 

"갑 제32호증의 1로 통화내용 녹음파일 CD와, 갑제32호증의 2로 그 녹음파일을 풀어 녹취한 녹취록을 제출합니다."

 

그리고 나서 녹취록의 핵심 부분을 읽어나갔다.

 

"자전거를 새로 샀는데, 이게 진짜 좋아. 마누라에게는 욕을 먹었지만, 형도 한 번 보면 이 자전거가 대단하다는 걸 알거야"

"그래, 나도 사직서를 썼지. 노무차장이 감차해서 최소 네 명은 나가야 된다고 하니까. 그렇게 사직서를 써가지고, 그런데 나는 사직이 안되고, 형만 사직이 되어버린 거지."

"나도 그 확인서는 써주고 싶지 않아서. 그런데 회사에서 못살게 구는데 어떡해. 형한테 미안하지 그건. 회사에서 지금도 그것 같고 날 괴롭히고 있어."

 

재판장을 위시한 판사들의 얼굴이 일그러졌고, 급기야 원고(사용자)의 대리인인 변호사가 증언대에 아직 남아 있는 노동자에게 위증을 한 것이 있으면 철회하라고 조언하였다. (증인신문이 끝나기 전에 위증진술을 철회하면 위증으로 처벌받지 않는다.)

 

그러나 이 노동자는 증언이 끝나기 전 위증진술을 철회하면 위증이 되지 않는다는 법리도 몰랐고, 또 위증이 얼마나 중대한 죄인지도 몰랐다.

 

오히려 그는 방금 자신이 진술한 내용이 명명백백히 녹음파일에 의해 탄핵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래 자신이 증언한 내용을 계속 고집했다.

 

증인신문은 그렇게 끝났고, 추가 증거로 의뢰인(보조참가인)과 증인 사이의 통화내역 기록을 통신사에서 발급받아 제출했다.

 

이 통화내역 기록은 녹취파일의 길이와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었으며, 녹취된 때와 날짜와 시각이 일치했다.

 

판결이 선고되었다.

 

원고 패, 청구기각 판결!

 

즉, 피고보조참가인인 우리가 이겼다.  

 

판결문에는 이러한 우여곡절이 상당히 드라이한 문체로 기록되었다.

 

"K 노동자는 이 법정에서 참가인으로부터 계속 사인만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내용도 모르는 상태에서 확인서에 사인해준 것이고, 자신은 따로 원고에게 사직서를 제출한 바 없다고 증언하였으나, 2012. 3. 19. 참가인과의 통화내용을 기록한 녹취록에는 K도 면담 당시 노무차장이 사직서를 쓰라고 하여 어쩔 수 없이 사직서를 제출하였는데 그 후 사직처리가 되지 않고 그냥 일하라고 하여 계속 근무하게 되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되어 있음에 비추어 K의 증언을 그대로 믿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오히려 참가인과 K 노동자는 면담 과정에서 노무차장으로부터 사직서 제출을 요구받았을 것이라는 강한 의심이 드는 점, K등 노동자 4명은 2011. 7.경 참가인에게 '원고가 감차를 위하여 입사일이 제일 늦은 순으로 구조조정을 하기로 하여 참가인 등에게 사직을 권고하였는데, 참가인의 사직서만 수리되었다'는 취지의 확인서를 작성해 주었던 점(원고는 참가인이 제출한 확인서의 내용과 배치되는 K 명의의 각 진술서를 제출하였으나, 참가인과  K 사이의 통화내용 및 위 각 경위서와 진술서의 작성자들과 원고(사용자)와의 관계(고용관계)에 비추어 이를 그대로 믿기 어렵다.)"

 

결론적으로 "참가인의 주장대로 원고의 노무차장은 면담과정에서 배치전환 제의는 하지 않은 채 참가인에게 회사 사정상 감차에 따른 감원이 필요하니 사직서를 제출하라고 요구하였고, 참가인은 노무차장의 요구에 응하지 아니하더라도 결국에는 해고당하게 될 것이고, 자신뿐만 아니라 동료근로자들도 몇몇은 사직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생각한 나머지 노무차장의 사직서 제출 요구에 응하게 된 것으로 봄이 상당한 바, 그 과정에서 배치전환에 의하여 사직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음을 참가인이 알았더라면 굳이 사직서를 제출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의하면 참가인은 사직의 의사표시를 함에 있어서 그 동기에 착오가 있었고, 그 착오는 원고 측에 의하여 제공되거나 유발된 경우에 해당하며, 참가인에게 위와 같은 동기의 착오가 없었더라면 원고 측의 사직서 제출 요구에 응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는바, 참가인의 사직의 의사표시는 법률행위 내용의 중요 부분에 착오가 있는 때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한편 참가인은 2011. 7. 25. 경기지방노동위원회에 원고에 대한 사직의 의사표시 취소의 뜻이 담긴 부당해고 구제신청서를 제출하여 원고에게 송달되도록 하였는바, 이로써 그 의사표시는 취소되었다 할 것이다
 위와 같이 참가인이 사직의 의사표시를 착오를 이유로 취소하였으므로 참가인이 한 사직의 의사표시는 그 효력이 없는바, 그럼에도 원고가 참가인의 사직의 의사표시를 수리하여 근로계약관계를 종료시킨 것은 사실상 해고에 해당하므로, 근로기준법 제23조 제1항 소정의 정당한 이유가 있어야 할 것이나, 원고가 제출한 증거자료들만으로는 참가인과의 근로관계를 종료시킬만한 정당한 사유를 인정할 수 없다."

 

나는 법률가로서 이러한 위증을 보면 참을 수 없다. 특히나 친했던 동료 노동자가 어려움에 처한 자신의 친구, 형, 아우에게 등을 돌리는 위증을 하는 모습을 보면, 인간에 대한 경멸을 감추기 힘들다.

 

그러나 현실은 그보다는 복잡하다. 의뢰인은 노무차장과 노동자K를 위증으로 고소하지 않겠다고 하였다.

 

첫째로는 의뢰인이 그 회사에 다시 돌아가 일해야 한다는 점이 그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형사고소를 당한 사람과 고소를 한 사람이 같이 일하기는 껄끄럽지 않은가.

 

둘째로는, 의뢰인은 자신에게 그래도 한 번은 유리한 확인서를 써준 노동자K에게 징역형을 받게 하는 것, 그리고 징역형 뒤에 이은 취업규칙에 따른 자동면직을 안기는 것이 못내 내키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의뢰인에게도 딸린 자식이 있듯이 노동자K에게도 딸린 자식이 있다. 의뢰인은 인생의 절벽까지 갔다가 이 소송에 승리함으로써 가까스로 살아났다. 의뢰인은 그래도 형 아우 하면서 지내고, 결국 번복하기는 했지만 확인서를 한 번 써줬던 동료에게 그런 절벽을 안기기는 싫었을 것이다.

 

그러나 백면서생이자, 현실의 복잡함에 무감한 나로서는, 이런 사유는 노무차장과 노동자K를 위증죄에서 벗어나게 하는 이유로는 불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의뢰인이 싫다는 일을 부러 하는 변호사는 없다.

 

나는 감사차 인사를 온 의뢰인에게 회사가 조금이라도 괴롭힌다면, 나는 특히 노무차장을, 위증죄로 고발할 것이니, 그리고 위증죄의 공소시효는 충분히 기니, 언제든지 연락을 하라는 말을 끝으로 의뢰인과 헤어졌다.

 

이것은 하나의 비극이 아닌가.

 

차라리 처음부터 끝까지 사용자의 입장에 맞춰서 진술을 해준 노동자들에게는 비극성은 덜 두드러진다.

 

그러나 방금 읽은 판례와, 내가 수행했던 사건의 노동자들은 양심과 보신 사이에 마음이 왔다 갔다 했다.

 

그래서 양심선언서를 작성했다가, 다시 그것을 부인하는 양심선언서를 작성하고, 확인서를 작성했다가 그걸 부인하는 진술서를 작성하였다.

 

법정에 와서 증언할 때는 위증의 법리를 몰라, 처음부터 끝까지 거짓말로 일관하면서도, 전혀 미안한 기색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다시 의뢰인과 통화했을 때는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그런 노동자의 현실을, 어찌 비극적이라 하지 않을 수 있는가.

 

이 비극은 고용관계가 대등한 시민들의 계약관계가 아니라, 일종의 인격적 지배관계로 변질된 현실을 보여준다. 즉, 이러한 비극이 도처에 만연하다는 사실로부터 우리는, 시민들의 지위가 부분적 노예상태에 있다는 결론을 내릴수 밖에 없다.

 

전통적으로 이러한 부분적 노예상태로부터 초래되는 비극에 대한 대응은, 단지 그 사람에게 윤리적 비난을 퍼붓는 것이었다.

 

그러나 윤리적 비난이 얼마나 효과가 있었는가. 거의 모든 노동자-사용자 분쟁에서는, 사용자들이 동원한, 동료 노동자들의 거짓말이 등장한다. 이렇게 번복이라도 한 두 번 한 사례는 그나마 드문 편이다.

 

'착하게 삽시다'의 캠페인은 현실 앞에서는 너무나 무력하다.

 

사람들은 자신이 그러한 입장이 되어보지 않았을 때는 올바른 선택을 하는 것이, 치즈케이크를 세 입에 먹어치우는 것만큼이나 간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판사들은 노동사건을 오직 법정에서만 다룬다. 그러한 법정에서 당사자인 노동자의 주장과, 사용자의 종용 하에 작성된 동료 노동자의 진술은 매우 대등한 신빙성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인격적 지배의 현실을 알고 있으며, 노동사건을 진지한 마음으로 많이 다루어본 판사라면, 고용주가 자신의 지배관리 하에 있는 피고용자들의 진술서이나 증언의 신빙성은 결코 형식적으로 제3자의 진술로 인정하는 것은 타당치 않은 태도이다. 내가 소송을 수행한 그 판례에서도 이 점은 고려되었고 판결문에도 명시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기계적인 법리로 확립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즉, 사용자가 내는 그 지배 하의 노동자의 진술을 거짓으로 추정하라는 법리는 증거법칙으로 수립될 수는 없다. 여기에도 이유가 있다. 어떤 사건에서는 노동자1이 노동자2에게 어떤 침해행위를 하였고 이에 대한 대응으로 사용자가 노동자1에게 징계를 가하는 사실관계가 나타난다. 그럴 경우 징계를 받고 소송을 하는 주체가 노동자1이고 그에게 해고 등 징계처분을 한 상대방이 사용자라는 이유로 노동자2의 피해사실 진술의 신빙성을 기계적으로 감쇄한다면 이는 부당한 결론에 이른다. 이는 노동자1의 행위가 다른 노동자에 대한 것이 아니라 회사 자체에 대한 잘못이었을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이는 전체 사정을 감안하여 일반적인 신빙성 평가 방식에 의해 그때그때 주의깊게 할 수밖에 없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런 일반적인 평가 방식에 의해서는 이와 같은 현실에서 비극은 계속 번성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옳은 일을 하자는 사적 캠페인이 가진 명백한 한계를 직시해야 한다. 

 

칸트적 이의제기는, 아이들이 딸린 상태에서 먹고 살기 위해서는 그릇된 일을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한국사회 노동자들의 실존적 결단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하지 않다.

 

이 비극에 대해서는 공적 대응이 필요한 것이다. 

 

 

 

시민의 공적 지위는 권리와 의무의 복합체로 구성된다.

 

시민이 헌법에서 정해진 권리와 의무를 행사하는 것을 부당한 지배권력으로 그릇되게 저지할 때, 시민의 공적 지위는 침해된다.

 

즉 시민은 자신의 이익을 직접 보호하는 권리가 침해되었을 때뿐만 아니라, 타인의 이익과 관련된 일에서도 그릇된 일을 종용받지 아니할 동등하고 자유로운 지위를 보유한다.

 

이 지위는, 고용주와 피고용자의 관계에서처럼, 지배관계로 변질될 수 있는 관계에서, 전자가 후자에게 그릇된 일을 종용할 때 침해된다.

 

즉 그것은 고용주의 그릇된 기획에 그릇된 방식으로 가담할 것을 부당하게 종용받는 시민의 입장에서도 공적 지위가 침해된다.

 

대표적인 공적 지위 침해 행위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1) 피고용자와의 법률분쟁에서 증거를 인멸, 은닉, 위조 또는 변조하거나 위조 또는 변조한 증거를 사용할 것을 교사하거나, 위증을 교사하는 것 (여기에는 허위의 진술을 담은 진술서를 작성하도록 하거나, 주관적 기억과 다르게 진술내용을 바꿀 것을 재차 요구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멸실된 과거 문서를 소급적으로 현재 작성 시점으로 작성하도록 교사하는 일도 포함된다. 또한 명시적인 금전의 대가를 제시하는 교사 행위도 여기에 포함된다.)

 

(2) 피고용자들의 법적 지위를 침해하도록 교사하는 것.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행위들이 대표적으로 포함된다.

  (i) 노동3권을 행사하는 이들을 징계, 계약해지, 재채용 거부하는 것을 교사하는 것

  (ii) 노동3권을 행사하는 이들의 다른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을 교사하는 것. 예를 들어 미행, 몰래 촬영, 감시, 기록 등등의 행위로 사찰을 하여 사생활의 권리 및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것

  (iii) 블랙리스트를 작성하는 등 노동3권을 행사하는 이들이 다른 고용주에게 고용되지 못하도록 정보를 작성하고 전달하는 일을 교사하는 것

 (iv) 피고용자에 대한 감금, 폭행, 상해, 살해 등 인신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를 교사하는 것.

 

 

(3)

(i) 시킨대로 (1), (2)의 행위를 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줄 것을 명시적으로 또는 암묵적으로 제시하는 것

(ii) 시킨대로 (1), (2)의 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주는 것

 

 

물론 이러한 그릇된 저지는 이미 현행법에서 금지된 행위다.

 

그러나 이 금지는 실효적이지 못하다.

 

부분적 노예상태에 있는 한국사회의 많은 노동자들을 이것을 비용-편익의 계산 문제로 본다.

 

(A): 현행법에 의해 사용자의 공적 지위 침해에 부응해서 행위하였을 때 처벌받고 제재를 받을 확률을 곱하여 계산된 비용

(B): 현행법에 의해 구제받지도 못한 채 사용자에게 핍박받아서 일자리를 잃거나 좌천당하거나 승진을 못하거나 하여 입는 불이익의 비용

 

비극 공리(tragedy axiom) : 만일 A<B라면, 그릇된 일에 가담한다.  

 

따라서 A>B가 되도록 만들어야 하는데, 이것은 현행의 법질서 틀로는 쉽게 유도할 수 없다.

 

많은 이들은 처벌의 형량을 높이면 될 것이 아니냐고 하지만, 실제 문제되는 것은 범법행위가 적발될 확률이지, 범법행위가 적발되었을 때 처벌받는 수위가 아니다.

 

실제로 필자가 본 수많은 사건에서, 노동자들이 실형을 선고받을 수도 있는 중죄인 위증죄나 증거위조죄를 두려워하는 경우를 본 적은 없다. 

 

그 이유는, 애초에 위증죄나 증거위조죄를 결정하게 되는 절차에 제출되는 사실관계를, 지배권력이 부패시키기 때문이다.

 

그 절차에 사실들이 공정한 경기장에서 제출된다는 전제 하에서 이루어지는 사실조사는, A>B를 달성할 수 없다.

 

즉, 공적 지위 침해로 인해 공적 절차의 기초가 부패되는데, 그 부패가 이미 이루어지는 상태에서, "만일 부패가 드러난다면 더 강하게 처벌하겠다"는 신호는 아무 소용이 없다.

 

오히려 그 신호는 다음과 같이 변질된다.

 

"만에 하나라도 공적 지위 침해라는 부패행위가 드러나게 되면 가담자들은 재수없게 걸려서 매우 큰 처벌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모두가 힘을 합치고 입을 맞추어서 어떠한 경우에라도 부패행위가 드러나지 않게 더 철저하게 증거를 인멸하고, 사찰을 하고, 불법적으로 불이익을 주고,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더 철저하게 절차를 부패시키자."

 

손쉽게 처벌 수위를 높이려는 노력은 따라서 오히려 부패를 심화시키는 반작용을 불러일으키면서 좌초한다.

 

즉, 지배권력에 가담하고 동워되는 것은 그대로 벌어지되, 이 가담과 동원이 발각되지 않도록 꽁꽁 뭉치는 효과만이 더 강화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실효적 방지의 단초는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플라톤의 <국가>에서 소크라테스는 부덕한 사람들은 서로를 신뢰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비극의 편재성은, 부덕한 일을 저지른 사람들일수록 똘똘 잘 뭉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실효적 방지의 열쇠(key)는 이 부덕한 사람들 사이에 불신 상태를 창출하는 것에 있다.

 

공적 지위 침해 행위에 가담하는 이들 사이에 만인에 대한 만인의 불신 상태를 어떻게 창출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토머스 홉스의 리바이어던의 논리를 공적 지위 침해 활동에 가담하는 자들 사이에 뿌리박게 할 것인가?

 

그 답은 절차에 투입되는 사실을 창출하는 초장부터 A>B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공적 지위 침해의 중심적 행위태양인 '교사'나 '교사한 것을 듣지 않으면 불이익을 주겠다는 암시'는 모두 언어적 상호작용을 통해 발생한다.

 

이 언어적 상호작용의 토대를 붕괴시키는 법이라면, A>B를 이끌어낼 수 있다.

 

언어적 상호작용은 기록을 남긴다. 직접 말로 했다면 스마트폰에 장착되거나 아니면 다른 형태의 보이스 레코더로 녹음이 된다. 전화통화를 했다면 스마트폰이나 전화기에 장착된 녹음 기능으로 녹음이 된다. 메일로 지시했다면 메일이 남는다. 문서로 지시했다면 문서가 남는다.

 

교사자인 지배권력자를 D, 범죄 행위를 하도록 종용받는 상황의 사람을 R이라고 해보자.

 

D-------------------> R

  (증거 E)

 

타인의 권리나 의무를 그릇되게 왜곡하는 행위를 종용받은 R은 D의 그러한 언어적 활동을 기록한다. (증거 E의 수집)

 

증거 E와 함께, R이 D의 공적침해행위를 고발하고, 그 증거가 진실된 것임이 판명되면, R은 D에 대하여 자신의 공적 지위를 침해하였다는 원인을 근거로 하여 1억원의 배상청구권을 자동적으로 획득한다.

 

고발을 접수하는 기관은 따로 설립한다. 그 기관의 이름은 '권력부패수사처'라고 이름을 붙이면 적절한다.

 

이 기관에서 고발내용이 증거에 비추어 진실되다고 판정하면, 그 판정서를 고발자R에게 교부한다. 이 판정서는 고발자D에게 배상청구권의 근거가 된다. 즉 고발자R은 이를 근거로 피고발자 D에 대하여 간주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진행하고, 법률에 의해 간주되는 손해배상액 1억원 지급을 선고하는 판결을 받아, 강제집행을 실시할 수 있다. 피고발자 D는 손해배상 소송에서 피고로서그 판정이 잘못된 판정임을 다툴 수는 있다. 그러나 이 다툼은 오로지 고발자R이 제출한 증거가 위조되거나 변조된 것임을 입증할 때에만 D가 이길 수 있다.

 

D는 한 명이 아닐 수 있다.

 

D1(최고 지배권력자) ---> D2(차 지배권력자) --> D3(차차 지배권력자) --> R(범죄행위) ---> V (타겟 피해자)

 

그러면 이것만으로는 D3와 R 사이의 언어적 상호작용의 토대만 붕괴시킨다.

 

그 윗선의 언어적 상호작용도 붕괴시켜야 한다. 따라서 D3가 D2의 공적 침해행위의 증거E2를, (1) 권력부패수사처에 제시함과 아울러 D2를 고발하고 (2) 이 증거가 진실된 것임이 판명될 경우에, D3의 간주 손해배상책임은 90%가 면제된다.

 

즉 R은 D3에 대하여 1천만원의, D2에 대하여 9천만원의 손해배상청구권을 획득한다.

 

이것은 R에게도 좋은 일이다. D2가 자력이 있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D2도 일부 빠져나갈 구멍이 있다. D2는 D1의 언어적 지시에 대한 기록을 증거 E3의 형태로 남긴다면(D2의 육성지시, 문서지시, 통화지시), 그리고 E3를 권력부패수사처에 제시함과 아울러 D1을 고발하고 이 증거가 진실된 것임이 판명되는 경우, D2의 간주손해배상책임은 80%가 면제된다.

 

즉, R은 D3에 대하여 1천만원의, D2에 대하여 1천8백만원의, D1에 대하여는 7천2백만원의 손해배상청구권을 획득한다.

 

D1은 더 이상 떠넘길 사람이 없으므로 7천2백만원의 손해배상지급의무를 진다.

 

이것은 건당 계산된다.

 

만일 사안1, 2, 3, 4, ...., 10이 있다면, 사안당 모두 이러한 계산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같은 사안이라 할지라도 지시하는 사회적 행위가 범죄의 행위론에서 별개의 행위일 경우에, 예를 들어 같은 사안 X에 대하여 증거1을 위조하라는 교사와 함께, 진술2를 위증하라는 교사가 이루어지고, 또 진술2를 위증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불이익이 가해질 경우, 이것은 모두 3건의 공적지위침해행위가 된다.

 

따라서 이러한 공적지위침해행위를 받은 R은 모두 3억원의, 법률에 의해 간주되는 손해배상청구권을 획득하게 된다.

 

그리고 만일 D3가 R에게 지시하는 일에 나아가지 아니하고, 스스로의 선에서 끊었다면, D3가 R의 지위를 차지하게 된다.

 

또 D1 이상의 D0가 있다면, 손해배상책임 면제비율은 D3에서 90%면제, D2에서 80%면제, D1에서 70%면제 식으로 올라가게 된다. 그리고 아무리 지시 연쇄가 길어도 10번은 되지 않을 것이므로, 10%씩 줄여나가는 이러한 방식으로 충분하다.

 

 

이 법률의 핵심은 두 가지다.

(1) 공적 지위 침해 행위에 대한 신빙성 있는 증거로 고발이 이루어지면, 시민의 지위에서 그릇된 일을 교사받거나 종용받거나 그런 일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제재를 암시받거나 실제로 제재를 받은 사람 그 자신이, 법률에 의해 간주된 액수의 손해배상청구권을 획득한다.

 

(2) 이 법률이 간주하여 정액으로 정한 손해배상지급의무에서 상당부분 벗어나는 길은, 만일 그 증거가 진실하다면, 그 전에 그 행위를 교사한 자를 증거와 함께 고발하여 그 자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방법이 유일하다.

 

이 법률은 물론, 궁극 타겟이 된 피해자 V와의 관계에서 생기는 다른 민, 형사상 관계에는 영향을 미치지 아니한다. 예를 들어 위증을 한 사람은 위증죄로, 위증을 교사한 사람은 위증교사죄로 처벌을 받을 것이다.

 

이 법률은 오로지 "이 사람에게 내가 이런 일을 시키면 나의 지시라는 언어행위에 대한 증거를 이 사람이 남겨서 나에 대한 1억원의 손해배상청구권을 집행하지 않을까"라는 두려움을 만연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예를 들어 어떤 재벌의 공적침해행위를 전담하는 부서가 있다고 하자. 이 부서의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이런 일을 처리하기 때문에, 지시하는 위치에 있는 이는 잠재적으로 손해배상책임을 지는 범위가 수억에서 수백억에 이를 수 있다. 그래서 만일을 도모하기 위해서 자신도 손해배상책임에서 90%, 80%, 70% 등등으로 면제받기 위해 부지런히 평소에 증거를 모을 것이다.

 

사실 이렇게 되면 스스로가 범행을 직접 저지르지 않으면 안심할 수가 없게 된다. 그러면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하여 다른 사람의 권리와 의무를 침해하는 사람은, 매번 스스로 직접 권리와 의무를 침해해야 한다. 사찰도 직접 가서 사진 찍어야 되고, 증언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증언만 해야 하고, 무수한 회사 서류도 자신이 직접 만들어야 하고,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게 된다.

 

 

지배권력자가 되는 맛이라는게, 다른 사람에게 범죄행위를 시키고도 안심할 수 있다는 부분에 크게 있는 건데, 그 제일 맛있는 부분, 케이크 위에 올려진 딸기 같은 부분을 박탈하는 것이다.

 

이 법에서 말하는 '공적 지위'는 바로 지배권력 하에 있는 피교사자의, '그릇된 일을 하지 않을 지위'를 의미함을 주의하라.

 

그리고 건당 1억원이라는 액수가 중요하다.

 

지금의 불법행위법은, 단순히 교사를 받은 것은 손해로도 치지 않는다. 그냥 시키는 대로 하지 않고 거부하면 될 것 아닌가, 하고 넘어가버린다. (명시적으로 협박이나 강요나 공갈을 받지 않는 한 말이다.) 그렇게 되면 조직적으로 노예짓을 하는 비극적 상황을 전혀 예방할 수  없게 된다.

 

노동자들은 왜 비극에 마주하게 되는가?

 

두렵기 때문이다.

 

세상은 험하고, 이 조직에서 밉보여서 쫓겨나거나, 좌천되거나, 승진을 못하면, 참으로 힘들 것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즉, 자신의 부분적 노예상태를 자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건당 1억원은 자유의 길을 열어준다.

 

보통의 노동자가 예를 들어 매달 50만원씩 저축을 한다 해도 1년에 저축하는 돈은 600만원이다. 이런 저축행태를 16년 가까이 해야 1억원을 저축할 수 있다.

 

이것을 공적침해행위 하나를 확실하게 증거를 남겨 권력부패수사처에 고발하는 한 판으로,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자유의 길이 열리게 됨으로써 공적침해행위를 하고자 하는 사람은 도저히 안심할 수 없게 된다. 공적침해행위는, 그릇된 일의 종용을 받는 사람이 옴짝달싹 못하게 부분적 노예상태에 갇혀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그 전제는 자유의 길을 통로로 내어줌으로써 부괴한다.

 

내가 이렇게 교사를 하여 그릇된 일을 지시하고자 하는 자가, 갑자기 1억원, 아니 건당 증거를 모아서 갑자기 10억원의 손해배상청구권을 획득하고 노예게임에서 로그아웃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불안해지는 것이다.

 

심부름센터에 일을 시키는 것도 쉽게 막을 수 있다.

어떤 사람이 돈을 대가로 범죄행위를 매수하고자 했을 때, 즉 돈을 대가로 지급하면서 범죄행위를 지시했을 때 약속된 돈의 액수의 5배의 법정 손해배상청구권을 피약속자가 갖도록 하는 것이다.

 

피약속자는 권력부패수사처에 범죄행위 종용과 액수의 약속이 담긴 증거자료를 제출하면, 약속자에 대한 법정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한다.

 

이로써 지배권력자는, 자신의 지배영역 내에 있는 사람들이 언제나 노예노릇을 할 것이라는 신뢰도, 자신의 지배영역 밖의 사람들의 범죄행위를 돈으로 매수할 것이라는 기대도 하지 못하게 된다.

 

이러한 공적지위침해방지 법률은, 도급-수급-하수급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어야 하는 등, 민간 부문의 확장 영역도 많다.

 

그러나 이 아이디어의 가장 좋은 점은, 이것이 공공부문의 부패를 완전히 틀어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공공부문에서는 건당 2억원으로, 그리고 공공부문의 수사기관에서는 건당 5억원으로 액수를 증액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법률이 자리를 잡고 있다면, 아마도 현 정부에서 벌어진 수많은 지배권력 남용들은 초장부터 잡히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쏟아지는 증거들과 함께 최종 지시자의 법적 책임을 아주 분명하게 물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모든 사항들을 포괄하여 우리는 하나의 법안을 만들 수 있다.

 

그 법안의 이름은 "권력부패수사처 설립과 공적지위침해방지에 관한 법률"이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법안의 다른 이름으로 우리는 '실효적 자유의 법'이라는 말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끝>

 

 

 

 

 

 

 

 

 

 

 

 

 

 

Posted by 시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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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동진
    2018.12.05 09:27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일화에 눈물이 날정도네요..구상하신 법안을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려보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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