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보수언론들이 한국의 성장률이 2%대로 낮아졌고, 또한 앞으로도 그 정도의 성장률이 전망된다는 보도를 하면서, 항상 덧붙이는 말이 있다.  

 

그래서 구조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항상 기승전구조개혁의 구조로 이야기를 한다.

 

그러면 이 구조개혁의 내용이라는 것이 대단히 중요해진다.

 

그러나 보수언론이 바라는 구조개혁의 내용은 두 가지로 구성된다.

 

첫째는 파견허용업무를 확대하고, 사내하도급을 합법도급으로 보고, 상시지속적 업무에 기간제 사용 기간을 늘리고, 자본이 일방적인 평가를 통해서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도록하는 하는 자본의 노동에 대한 인격적 지배 확장이다.

 

둘째는, 안전이나 환경을 사유로 한 각종 규제 장치들을 벗어던져야 한다는 취지의, 공익에 근거한 기업활동에 대한 제약의 제거이다.

 

즉, 그들이 말하는 구조개혁은, 자본의 '자의'의 영역(realm of arbitrary will)의 최대한의 확장을 의미한다.

 

그러나 자본의 자의가 확장되는 것은, 시장경제의 성장을 견인하는 원인이기는 커녕, 시장경제의 성장을 저해하는 원인이 된다.

 

노동자가 중간에 파견업체나 사내하도급업체에 삥을 뜯기는 일이 훨씬 더 확대되고, 기간제로 신분이 불안정한 기간이 확대되면 성장률이 높아진다는 공식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설명은 제공되지 않는다.

 

한국경제와 같이 시장경제질서가 이미 자리잡고, 자본과 노동, 토지의 추가적인 대대적 동원이 이미 완료된 사회에서는, 손쉬운 방식을 통한 성장의 묘안은 나오지 않는다.

 

이러한 경제사회에서는 Paul Roemer와 Paul Krugman이 이야기했듯이, 성장은 생산성 증가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산성 증가란, 같은 단위의 자원투입으로 이전보다 더 많은, 또는 더 나은 재화와 용역을 생산하는 것이다.

 

그리고 생산성 증가는 혁신에서만 나올 수 있다. 혁신은 혁신을 담당하는 인적 주체들이 하는 것으로, 인적 주체들이 혁신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것을 배우고, 서로 아는 것을 교환하고, 새로운 것을 실험할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 한다.

 

기존 생산방식을 고수하면서, 노동압착을 통해서 같은 수의 노동자에게 대가 없이, 또는 더 적은 대가로 더 많은 노동량을 뽑아내는 것은 시장의 투명성과 혁신을 파괴하는 것이다.

 

노동압착을 통해 증가된 생산물은, 노동자 측의 여가와 건강의 상실의 대가이지 생산성 증가가 아니다.

 

노동이 새로운 것을 혁신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함과 아울러, 혁신 주체들이 정당한 대가를 가져갈 수 있도록 하는 경제질서 확립이 또다른 과제입니다. 일감 몰아주기, 단가 후려치기, 불공정거래를 하는 곳에선 혁신이 나오기가 어렵습니다.

 

자본의 노동에 대한 인격적 지배를 늘리고, 그 결과 노동의 대가가 불투명하게 되고, 파견업체나 사내하도급업체 같은 삥 뜯는 재분배 부문 확대되면, 당연히 생산성 증가는 멀어지게 됩니다

 

환경을 더 많이 오염시키거나 위험을 증가시키는 것은, 바로 깨끗한 환경과 안전을 희생한 대가이지 생산성 증가가 아니다.

 

깨끗한 환경과 탄탄한 안전은 사람들이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생활하고 새로운 것을 발명하고 발견하기 위한 기반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기반을 허물고 사람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일은 어떠한 명목상의 수치의 증가로도 정당화되지 않는다.

 

그러나 자본은 압착될 노동의 처지에 있지 않고, 증가되는 위험과 더러워지는 환경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사익을 얻기 때문에 언제나 그러한 교환을 추구하려고하는 동기를 갖는다.

 

이 동기를 그대로 나팔수처럼 공익으로 포장하는 것이 보수언론들이 하는 일이다.

 

오히려 이 시대의 과제는 바로 이 보수언론들이 공격하려고 하는 두 지반을 복구하는 데 가 있어야 한다.

 

가계가 안정적인 소득 전망을 가져야 소비 여력이 생기는데, 끝없는 고용불안에 몰아넣고, 비정규직과 실업 상태를 왔다 갔다 하게 만들면, 당연히 소비 여력도 없을 뿐더러, 획득한 숙련도 감퇴된다. 

 

간접고용은 생산성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으므로 폐지되어야 한다. 그리고 직접고용 하의 기간제 비정규직은, 고용불안정성을 감수하는 대가로 기간의 정함이 없는 노동자의 1.3배의 임금을 받아야 한다. 더 나아가 시장이 숙련기회를 제공할 여력이 없으면 정부가 최후고용자로 나서서 제대로 된 숙련 기회를 줘야 한다. 그리고 정부가 산업안전보건법과 최저임금법, 그리고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는 합당한 일자리를 제공할 수 없을 때에는 즉시 생활급여와 함께 직무훈련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가계가 보편적복지를 통해 사회임금을 안정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도록 해야 한다. 이와 함께 경제전반에 투명성을 증대해야 한다. 여기에는 상습적이고 관행적인 임금체불과 같은 법학적 개념으로서의 노동착취를 제거하는 실효적 대응도 필요하다.

 

다른 한편으로, 환경과 안전에 관해서는 그것이 대의 민주주의의 멀고 우회적인 기제를 통하지 않고도 공중이 직접 자신과 관계된 사안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의사결정을 하고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기제가 제기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산업안전보건법의 준수는 행정관청의 공적 규제를 통해서만 작동해서는 안 되고, 현장에서 노동자들이 산업안전위반 사항을 보았을 때 그것이 긴급한 위험상태가 아니더라도 작업을 중지하고 여전히 임금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제공해야 한다.

 

이처럼 경제 내부에서 진정한 개혁 과제로 수행할 것들은 명확합니다. 그럼에도 이런 과제들은 치워두고, 흑사병 이후 봉건영주들처럼 농노들로부터 어떻게 하면 같은 임금 주고 더 많이 노동을 강제로 뽑아낼까만 골몰하는 것은 어리석은 사고이다.

 

오늘날 경제의 성장은 경제의 발전과 함께 가는 것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경제의 발전이란, 경제에 참여하는 모든 주체들에게 이익이 되는 구조의 변화를 이야기한다. 그러한 공통의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성장은, 무언가 중요한 복리를 희생시키고도 그 희생시킨 복리를 회계상 감춘 숫자놀음일 뿐이다.

 

그 외의 어떤 신비스러운 방법을 통해 위정자들이 폭발적인 경제성장을 갑자기 달성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어느 누구도 가지지 않은 수법을 위정자들만 가졌다는 이상한 가정을 전제로 한다.

 

이러한 이상한 가정 위에서 위정자를 뽑은 결과는 오늘날 우리가 모두 목도하고 있다.

 

한국 정치에서 경제성장의 이슈가 중요하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어떠한 정치세력도 경제성장의 복안을 갖고 있지 않다면, 자신이 가진 선의를 아무리 내세운다고 해도 집권할 수 없고, 또한 집권을 유지할 수도 없다.

 

그러나 정치지도자는 유권자의 막연하고 정제되지 않은 선호를 그냥 레토릭으로 반영하고는 그 레토릭에 기반해서 당선되고는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정치지도자는 유권자가 보수언론을 비롯한 주체들의 잘못된 민담에 의해서 왜곡된 경제성장에 대한 관념을 파훼하고, 새로운 발전의 상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발전의 상은 모든 경제주체에게 그 응당하고 합당한 지위를 부여하는 바탕 위에서 혁신을 도모하는 그림이어야 한다. <끝>

 

Posted by 시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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