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시장의 시장규모 축소가 아무런 제어 없이 계속되고 있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된 시기 이후로 출판시장의 규모 축소는 한 번도 멈추거나 반전된 적이 없다.

 

이것은 두 가지를 의미한다.

 

첫째, 예전에 책을 읽던 사람들조차도 예전보다 훨씬 적은 수의 책을 읽고 있다.

 

둘째, 새로 책을 읽는 독자가 되어야 하는 사람들은, 더 이상 책 읽는 방법을 모른 채 어른이 된다.

 

어느 쪽의 영향이 더 큰지는 알 수 없지만, 둘째의 영향은 돌이킬 수 없는 심각한 것임은 알 수 있다.

 

이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지금의 추세대로라면 점점 더 커져갈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이 세계는 읽기가 사라진 세계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많이 읽고 있지 않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렇다. 사람들은 이전보다 훨씬 많은 글자를 접하기는 한다. 예전에는 종이신문의 활자와 책의 활자를 접하는 것이 전부였지만, 이제는 사람들은 깨어 있는 시간 동안 거의 대부분을 활자와 접하면서 보낸다.

 

그러나 글자와 접한다고 해서 글을 읽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경우는, '읽기'를 '훑기'가 대체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이 글을 접하는 사람들을 100이라고 한다면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1도 되지 않을 것이다.

 

나머지 사람들은 글을 '훑고' 있을 것이다.

 

첫 몇 문장을 보고, 그 다음 대각선으로 쭉쭉 내려가면서 키워드를 체크해 본 다음, 마지막을 읽거나 읽지 않거나 하고 끝내버린다.

 

물론 이 글은 쉬운 글에 속하니까 진중하게 읽을 필요는 없다.

 

그러나 진중하게 읽어야 하는 글들은 논증을 담고 있다.

 

논증을 담은 글은 표시를 해가며, 노트를 해가며 읽지 않으면 그 내용을 제대로 음미하기 힘들다.

 

그런데 이런 활동은 훈련을 해야 점차적으로 체득되고, 일단 체득된 것이라 할지라도 잊어버리지 않으려면 계속 연습해야 잘 할 수 있다.

 

그러나 훑기에 익숙해진 사람은 체득할 기회를 갖지 못하거나, 약간 체득했다 할지라도 금방 잊어버리고 만다.

 

그러고 나면 그들은 더 익숙한 것을 찾아 자신의 눈을 혹사하는 삶에 탐닉한다.

 

훑기에 가장 적합한 메시지는 무엇일까.

 

인상비평이다.

 

인상비평은 논증을 다루지 않는다. 대신에 논증에 대한 인상을 다룬다. 전반적인 감상, 격하, 칭찬 따위다.

 

이런 인상비평을 내뿜는 것을 쓰기의 전부로 하고 있는 사람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다른 글들을 휙휙 훑고는 자신이 원래 갖고 있던 결론과 맞는지 맞지 않는지만 대조해보고는, 바보같다느니, 훌륭하다느니 하는 감상을 말한다.

 

다른 이들은 이 인상비평자들의 인상비평을 보고 원래의 글을 보지 않고, 자기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면서 만족한다.

 

인상비평자들의, 인상비평자들에 의한, 인상비평자들을 위한 뇌 전두엽의 외주화가 만연한 것이다.

 

이러한 세계에서는 정치는 발전하지 않고 진동할 뿐이다.

 

어떤 때에는 진동의 방향이 우연히 올바른 방향을 가리킬 때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우연이 계속 지속될 수는 없다.

 

인상비평 위에 쌓아올려진 방향은 지속적이거나 전진적이지 못하다. 그래서 그 움직임이 언제라도 그릇된 방향으로 향할 확률은, 계속해서 올바른 방향으로 갈 확률가 동등하게 된다.

 

훑기는 사유가 아니라, 인상들의 연접에 의한 연상에 적합하다.

 

그 연상들은 여러 갈래의 길을 가지고 있고, 어느 길을 가느냐는, 접한 인상들의 빈도와 수에 따라 자의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설사 그 노력이 완전히 성공적이지 못할지라도 우리는 '읽기'의 복원을 여전히 포기할 수는 없다. 읽기의 복원이 포기된 세계는 훑기가 지배하는 세계, 인상비평들의 충돌과 충동에 의해 지배되는 세계일 것이기 때문이다.

 

읽기를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복원할 수 있을까.

 

네 가지의 노력을 잠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

 

첫째로는 국가적 차원에서, 도서관을 시민 생활의 중심지로 육성하는 것이다. 도서관의 수를 늘리고, 도서관의 규모를 늘리고, 도서관의 프로그램을 늘리는 것이다. 지금보다 훨씬 많은 예산이 도서관에 투입되어야 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생활반경 내에서 원하는 책은 거의 대부분 구할 수 있어야 한다. 아이와 주말 외출을 하기 좋은 곳이 도서관이어야 한다. 퇴근 이후에 무엇을 할지 고민하는 사람에게 좋은 프로그램을 제공해주는 곳이 도서관이어야 한다. 더 나아가, 특히 공공적 지식을 보급하는 종류의 책들은, 도서관의 구매를 통해서도 최소한의 수익을 맞출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둘째로는 국가적 차원에서 전자책의 플랫폼을 통일시켜야 한다. 다른 나라에서는 종이책의 수요가 전자책으로 점차적으로 이전되면서, 전체 책의 수요는 거의 동등한 수준으로 유지되었다. 그러나 한국에서만은 유독 종이책의 수요만 줄어들고 전자책의 수요는 전혀 늘지 않았다. 이것은 한국 출판계의 실패이자 국가의 실패이기도 하다. 지금이라도 전자책의 플랫폼을 통일시키고, 출판사들이 모든 책을 종이책과 함께 전자책으로도 내는 관행을 확립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가주도의 인센티브 정책이 필요하다. 종이책은 여전히 남아 있겠지만, 어려워서 내용을 하나하나 뜯어봐야 하는 책의 경우에만 그 수요가 지금과 비슷한 정도로 남을 것이다. 전자책 기기의 기술은 오늘날 상당히 높은 수준이 되었다. 다만 전자책으로 구할 수 있는 종수가 많지 않고, 또한 플랫폼이 통일되지 않아서 문제인 것이다. 이와 도서관을 연계해서 생각하면, 도서관은 관별로 하나의 전자책을 구입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단순히 예산의 문제가 아니다. 만일 국가의 도서관 전체가 1권의 전자책만을 구입하여 모든 도서관 이용자들에게 그 전자책을 서비스할 수 있다면, 결국 도서관 이용자들에게는 전자책을 구매할 유인이 전적으로 0이 되는 것이다.

 

셋째로, 정당, 노동조합, 시민단체에서 책 읽는 모임들을 조직해야 한다. 소속된 구성원들이 그러한 단체의 상부 의사결정기구가 결정한 프로프간다를 전달받고 따르는 주체가 아니라,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주체가 되기를 바란다면, 정기적인 책 읽는 모임은 필수적이다.

 

넷째로, 인터넷에 글을 쓰는 사람들은 책에 관해서 이야기를 많이 해야 한다. 책에 대해서 전혀 이야기하지 않고 인터넷 상에서 얻은 신념을 복사하는 글들이 넘쳐나는 시대일수록 이러한 일은 특히 더 긴요하다. 책을 직접 인용하고, 간접 인용하고, 책의 논증을 정리하고, 책의 논증을 현실의 문제에 적용하고 하는 일들을 부지런히 해야 한다.

 

이러한 네 가지 노력이 읽기를 완전히 복원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이 경주된 세계는 그렇지 않은 세계와는 큰 차이를 낳을 것이다.

<끝>

 

 

 

 

 

 

Posted by 시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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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홍삼
    2017.10.18 16:28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지금도 앞으로도 많른 사람들이 책읽을 것같진 않습니다...일단 요즘애들이 책을 안읽죠..그런애들이 어른돼서 읽을 리도 없고요...독서도 습관 아닙니까? 손가락한번 까딱하면 자극적이고 재미난 정보가 폭포처럼 쏟아지는 시대에 자제력도 부족한 애들이 책따위 붙잡고 엉덩이 꾸리뭉태고앉아있겠나요..책읽을 유인이 없습니다 물론 깊이 음미한다는 전제에서 양서를 읽는것만큼 재밌는것도 없지만...양서를 깊이 음미할만한 애들이 되면 얼마나 되겠습니까..
    • 2017.10.23 18:17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책을 읽지 않을 것'이라는 명제(A)는 아마 사실이겠지만, '어떤 정책이나 사회적 노력 여하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책 읽는 비율은 전혀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명제(B)는 사실이 아닐 것입니다. 이 글은 B에 관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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