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준호, <기본소득이 세상을 바꾼다>, 개마고원, 2017은 기본소득제도에 대한 훌륭한 입문서이고 기본소득론 이외에도 몇가지 흥미로운 쟁점들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174면의 "재능공유제론" 주장은 기본소득의 논거가 되지 못한다.

 

저자는 "롤스는 재능을 인류의 공유자산으로 보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누가 어떤 재능을 갖고 태어나는가는 내가 사는 마을 어디에서 우물이 솟느냐와 마찬가지로 우연에 달렸다. 우물이 어쩌다 내 집 마당에서 솟았다고 내게 우물을 독점할 정당한 권리가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 주장과 근거 모두 틀렸다.

 

롤스는 천부적 재능이 본래적으로 공유라든가 사유라든가 하는 말을 하지 않았다.

롤즈가 한 말은, 원초적 입장의 사람들이 천부적 재능의 '분포'(distribution of natural endowment)를 공동 자산(common asset)으로 간주한다는 합의를 차등 원칙으로 표현했다는 것 뿐이다.

 

재능이 원래 공유자산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재능의 사람들 간의 다양함과 차이를 공동 자산으로 보기로 하는 합의를 한다고 한 것이다. 

 

저자의 오독은 샌델의 오독을 그대로 베낀 것으로 보인다.

 

샌델은 박사학위논문에서부터 이 오독을 시작해서 아직까지도 이 오독을 고집하고 있다.

 

다른 철학자들이 오독이라고 지적해줘도 막무가내로 계속 지적한다.

 

마이클 샌델과 같은 삼류 지식인들이 만들어낸 밈(meme)은 정치철학에 문외한인 사람들에게 파고든다.

 

그래서 '재능공유제가 롤즈의 생각이었다'라고 계속 퍼뜨리고 다닌다.

 

이것은 두 가지로 잘못된 영향을 가져 온다.

 

하나는 롤즈의 이론에 대한 부당한 거부감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롤즈가 재능이 공유된다고 한 바 없는데도 그랬다고 자꾸 우기면, 사람들은 롤즈를 재능공유제를 주장한 엉터리 이론가로 오해하고는 롤즈를 읽지 않게 된다. 그리고 차등원칙의 이론적 근거가 재능이란 공유자산이라는 독단적 선언으로부터 온다는 오해를 하게 되어 차등원칙 자체를 거부하게 된다.

 

사람들이 재능이 공유자산이라는 독단적 선언에 대해서 거부감을 가지는 이유는 당연하고도 정당하다.

 

<기본소득이 세상을 바꾼다>의 저자는 우물의 예를 들면서 그것을 바로 재능에 관해서도 적용시킨다. 그러나 우물은 우리 개인의 구성부분이 아니다. 반면에 재능이라는 것은 우리의 신체에 자리하는 것으로, 재능이 공유된다는 것은 우리의 신체가 공유된다는 말이다.

 

공유라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들이 그 대상에 대해서 각자의 지분을 가지고 있고, 그 지분을 가진 사람들의 회의를 통해 과반수 표결을 얻는 안이 그 대상의 활용방안을 결정하는 소유형태이다.

 

예를 들어 토지를 세 명이 공유하면, 과반을 넘는 지분소유자의 의사대로 토지가 활용되고, 다만 그 토지활용으로부터 얻는 수익은 지분비율로 분배되는 것이다.

 

이런 식의 공유제도를 재능에 대해 인정하면, 재능 있는 자의 노예 상태(slavery of talented)가 초래된다.

 

예를 들어 누군가 프로그래머로서 뛰어난 재능이 있어서 사회에 유용한 생산물을 많이 산출할 수 있다고 해보자. 이 재능이 정말로 공유의 대상이라면, 그 자신을 포함한 사회구성원 모두가 투표를 해서 그 사람의 신체활동의 방향을 결정할 것이다. 그래서 예를 들어 하루에 10시간씩 프로그래머로써 일을 하라고 시킬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 프로그래머로 일한 것 중, 아주 작은 지분비율만큼의 수익을 빼놓고는 나머지 사람들이 다 가져갈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이 사람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들에 대해서도 적용된다.

 

즉 재능의 공유제를 주장하는 것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노예상태를 주장하는 것이다. 만인이 집단적으로 함께 투표해서 각자가 신체를 어떻게 활용하고 인생을 어떻게 기획할지를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신체가 정말로 우물과도 같다면, 10명의 불치병 환자를 살리기 위하여 1명의 신체를 해체하여 그 10명에게 장기를 나눠주는 이식수술을 해도 된다는 뜻이 된다. 왜냐하면 그 신체가 해체된 1명은 어쨌거나 자기지분만큼의 의사결정권은 행사했으니 말이다.

 

설사 누군가는 불치병에 걸리는 신체를 불운하게 타고 났고, 누군가는 운이 좋게 건강한 신체를 타고 났다 하더라도, 즉 건강의 분포가 운에 따른 것이라 할지라도, 단순한 '운'이라는 논거는 다른 이의 두뇌와 몸을 탈취적으로 활용할 권한을 주지 않는다.

 

기본소득제도는 오히려 재능에 대한 이러한 관점의 대척점에 선다.

 

즉, 생산수단과 결합하여 최대의 이윤을 낼 수 있는 방법으로 활용될 수 있는 재능에 대한 개인의 온전한 통제권을 부여하는 것이다.

 

지금의 노동윤리는, 생산수단과 결합하여 이윤을 내도록 몰아댄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굶어죽는다는 위협을 통해서 그러한 결과로 유도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회적 생산수단에 대한 응당한 지분을 부여받지 못하는 질서의 사람들은 부분적으로는 노예상태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기본소득제도는 이러한 부분적 노예상태를 크게 완화시키는 것이다.

 

자신이 프로그래머로서의 재능이 탁월해도, 자신이 다른 일을 하고 싶다면 그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실질적 기반을 제공해주는 것이 기본소득제도이다.

 

그렇기 때문에 재능공유제에 대한 주장이 기본소득제도에 대한 논거가 된다는 생각은 크게 잘못되었다.

 

롤즈가 이야기한 것은, 모든 사회적 생산물은 사회적 협동의 결과이며, 그 협동의 기여분을 본질적으로 정하는 수법은 없다는 것이다. 한 사람의 고립된 재능에 상응하는 고립된 본질적 응분이라는 것이 애초에 이론적으로도 파악될 수 없다는 것이다. 시장은 응분이 아니라 시장질서 내에서의 희소성에 상응할 뿐이라는 것이 롤즈의 생각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 협동에 의한 생산물은 원칙적으로 모두에게 평등하게 배분되어야 하지만, 만일 불평등 배분이 그 불평등 위계에서 가장 아래에 있는 사람의 처지를 더 낫게 만든다면 불평등 배분을 받아들일 합당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려운 숙련과정을 거침으로서 생기는 비용에 대한 보상과 인센티브의 제공으로 인해서 사회적 분업이 더 촉진되고 노동의 공급이 부족한 분야에 더 노동이 잘 공급되는 경우가 그러한 경우에 해당할 것이다.

 

기본소득제도는 이러한 사회적 협동물을 차등 원칙의 취지에 부합하게 배분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생각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추론에는 재능이 공유된다는 이상한 아이디어는 들어갈 자리가 없다.

 

재능이 공유된다는 사상은 사람들의 신체가 공유물이라는 사상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최근에는 출산율이 낮다고 해서 타인의 신체를 각종 제재를 통해서 집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발상이 마구 만연하고 있다. 그러한 발상에 대하여 규범적 방벽을 세우는 일 또한 현 시대에서 중요하다.

 

저자의 책이 잘 팔려서 2쇄를 내기를 바라며, 2쇄에는 이러한 오류가 수정되기를 바란다. <끝>

Posted by 시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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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기오소리
    2017.01.18 21:24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오독얘기 읽다 웃어선 안되는 곳에서 웃을뻔했네요ㄷㄷ 많이 배우고 갑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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