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즈는 자유롭고 평등한 사람들의 협동적 과업을 위한 연합체인 사회의 기본구조를 규율하는 정의의 원칙을, 원초적 계약이라는 틀을 통해서 설명한다.

 

이 원초적 계약 상황은 여러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계약 당사자는 타인의 이득에 대해 상호무사심하다는 가정이다.

 

상호무사심(mutually disinterested)하다는 말은,

 

각 당사자는 협동적 사회에서 자신이 확보할 기초재(primary good)이 어느 수준인가에만 관심을 가질 뿐, 다른 사람이 확보할 기초재의 수준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가정에 대해서 엉터리로 비파하는 이들이 있다.

 

롤즈의 원초적 계약의 당사자들이 상호무사심하므로, 롤즈의 인간관은 고립된 개인의 인간관이라는 것이다. 즉, 가족도 이웃도 전통 공동체도 동료 시민애도 없는 삭막한 인간이라는 소리를 한다.

 

이것이 엉터리 비판인 이유는, 첫째로 원초적 계약의 당사자들은 롤즈가 그려내는 정의의 원칙이 완전히 준수되는 '질서정연한 사회'의 당사자와 다르다는 것이다.

 

질서정연한 사회의 당사자는 상이한 수준의 자비심과 이타심을 가지는 것이 당연하다. 그리고 그들은 특별한 애착과 의무를 규정짓는 특별한 관계 속에 있을 것이다.

 

둘째로, 이타심 등은, 공정한 기본구조가 확립되었을 때 여러가지 방향과 수준으로 발현될 수 있는 덕성이지, 공정한 기본구조를 결정짓기에는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질서정연한 사회에서 발현될 이타심에 관한 가정을 원초적 계약 당사자가 숙고를 시작하기 위한 출발점을 틀지우는 가정으로 들여온다고 하여보자.

 

이타심은 (1) 동일한 수준으로 분포되어 있거나, (2) 당사자의 속성에 따라 다른 수준으로 분포되어 있거나 둘 중 하나다.

 

(1) 모든 당사자들 사이에 동일한 수준으로 이타심이 분포되어 있다고 해보자.

 

이 경우, 이타심 가정은 상호무사심 가정과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서로를 염려하는 형님과 아우 이야기를 알고 있다. 추수가 끝나고 아우는 가족이 많은 형님을 염려해서 쌀 한 가마니를 몰래 형님 집으로 옮겨 놓는다. 형님은 새로 아이가 태어난 아우 집을 염려해서 쌀 한 가마니를 몰래 아우 집으로 옮겨 놓는다. 이 짓을 계속한다. 물론 이야기 속에선 형님과 아우가 밤중에 어이쿠 부딪혀서 서로 감동하며 울고 그 짓을 그만두었지만, 이 짓을 무한히 계속한다고 하여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형님 한 가마니, 아우 한 가마니 하듯이, 원초적 계약의 당사자들이 각자 자신의 기초재를 동일한 정도로 다른 사람 모두에게 옮긴다고 하면, 그 결과는 옮기기 전과 동일하다.

 

기초재의 수준이 L이라고 하면 될 것을 L-10+10-10+10 ..... = L이라고 하는 식이다.

 

따라서 오컴의 면도날에 의해, 논의의 복잡성을 아무런 실익도 없이 쓸데없이 증가시키는 가정은 생략하는 것이 낫다.

 

(2) 질서정연한 사회의 당사자들 사이에 이타심의 수준이 상이하게 분포, 발현된다고 가정해보자. 그리고 이 가정을 원초적 계약 상황에 짜넣는다고 해보자. 

 

이것을 평균해서 짜넣으면 (1)의 결과와 같다. 따라서 쓰잘데기 없는 짓이다.

 

이것을 패턴화해서 짜넣으면 이상한 결과가 도출된다.

예를 들어 성별에 따라 A성별이 B성별보다 이타심이 더 많다는 가정 하에 원초적 계약에 합의한다고 해보자.

그러면 B성별은 더 많이 갖게 될 것이다. (A성별이 원초적 계약에서 더 많이 양보했으므로!)

결과적으로 A성별은 그 사회의 기본구조에서 체계적으로 더 적은 이득을 얻고 더 많은 부담을 지게 되는 이등시민(second class citizen)의 지위에 처한다.

 

이제 A성별에 속하는 사람이, 이러한 이등시민의 지위는 정의의 원칙에 반한다고 이의를 제기한다. 이러한 이의에 대하여, "아, 그건 A성별이 통상 이타심이 더 많고, 이것을 원초적 계약에 짜넣어서 생긴 결과이니, 오히려 이등시민이 되는 것이 정의롭다!"라고 답할 수 있는가. 이런 답은 어처구니 없는 것이다.

 

A성별에 속하는 사람이 이타심을 더 많이 발휘하는 패턴이 현실사회에서 관찰된다고 하여도 이것은 원초적 계약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아야 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즉 미덕의 발휘를 원초적 계약에 짜 넣게 되면, 사람들은 공적 지위를 박탈당하고 의무로 미덕 발휘를 불평등하게 강제당하게 된다.

 

마이클 샌델과 같은 삼류 학자들은 이 점을 알지 못하고 '미덕이 풍부하면 정의는 필요치 않게 된다'는 이상한 소리를 해댄다.

 

사람들이 원초적 계약 상황에 대해 자꾸 딴 소리를 하는 이유는 "계약이론의 결과가 타당하려면 그것은 실제의 계약에 근접하여야 한다"는 잘못된 암묵적 가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가정은 헛소리다.

 

강도가 행인에게 총을 들이밀며 '돈이냐 목숨이냐' 선택하면 자신이 계약을 맺고 그 계약을 철썩같이 지키겠노라고 약속한다.

 

그래서 행인은 목숨을 선택하고 돈을 내놓기로 하는 계약을 맺고 계약서에 도장을 콱 찍는다.

 

이것이 실제로 벌어진 일이라고 하자.

 

이 실제로 벌어진 일의 규범적 유효성, 즉 실제의 계약의 타당성은 오로지 그 배경의 지위에 비추어 판단된다.

 

그 배경의 지위란,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의 평등하게 자유로운 신체의 자유 몫을 찬탈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강도가 저 계약을 맺을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행인의 신체의 자유를 처분할 수 있다는 탈취적 배경을 전제하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규범적 추론에서 사용되는 계약주의적 논변의 타당성을 실제와의 근접성에 의거해 평가하는 것은 애초에, 계약주의 논변의 목적을 망각한 소치이다.

 

결론적으로 상호무사심 가정 이외의 가정을 도입할 때에 그것은 (1) 동일한 결과를 가져오면서 더 복잡한 헛짓거리만 하게 되거나 (2) 아니면 상이한 결과를 가져오는데 그 상이한 결과란 이타심 수준이 더 높다고 패턴이 관찰된 이들을 이등 시민의 지위로 몰아넣고 이타심의 발휘를 공적 규범으로 강제하는 결과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상호무사심 가정은 필수적이다.

 

마지막으로 상호무사심 가정을 도입하는 이유 하나를 더 첨부하자면 다음과 같다.

 

롤즈는 질서정연한 사회의 사람들이 속물이 아니라고 보았다.

 

속물은 자신이 향유하는 가치가 아니라, 향유하는 가치의 수준에 따라 위계를 만들어놓고 그 위계에서 차지하는 자신의 위치를 중심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속물은 다음과 같이 기초재의 배분과 관련된 두 사회가 있을 때

 

사회1 A 10 B 10

사회2 A 18 B 20

 

이 두 사회 중 사회1을 택한다. 사회2를 택하면 도저히 자존심이 상하고 질투심이 나서 견딜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롤즈는 이런 식의 사고는 합리성 가정에 어긋난다고 보았다. 합리성 가정에 어긋나는 자는 자유로운 자가 아니다. 그는 타인이 어떻게 사는가에 정신이 매여 그것에 휘둘려 노예짓을 하게 되는 자이다.

 

이러한 상호무사심 가정을 없애고 '짍투 폭발 가정'을 도입한다고 해보자.

 

이 경우에는 분업의 확산과 생산성을 증가시키기 위한 인센티브의 도입이 불가능해진다. 즉, 결과의 절대적 평등 지점에서, 노동시간이 숙련의 투입이나 위험이나 고통의 부담을 통해서 불평등은 증가하지만 모두의 절대적 처지는 더 나아지는 변화가 아예 처음부터 막히게 되는 것이다. 어떠한 그러한 변화도 질투심을 폭발시킬테니까.

 

따라서 원초적 계약 당사자의 상호무사심 가정은 정당화된다.

 

이것을 달리 생각하는 것은 자유연상기법에 의해 사고하는 것이다.

 

'음, 상호 무사심, 무사심하다라, 허허, 아니 인간이 어찌 그렇게 무사심할 수 있나, 냉혹하구먼, 이 참 고립된 원자주의적 가정일세, 공동체를 파괴하는 가정의 도입이다. 따라서 원초적 계약은 엉터리다. 끝.'

 

자유연상기법을 하려면 그냥 침대에 누워서 몽상하는 것이 세상을 위해 좋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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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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