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정의론>을 발췌독하다가 "호혜성 원칙"을 설명하는 장을 발견했습니다. 거기서 롤즈가 최대 수혜자와 최소 수혜자 간의 가중 평균을 극대화하는 것은 최대 수혜자의 유리함을 더 높이 판단해서 그들을 이중으로 유리하게 한다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유리함을 더 높이 판단한다고 하기 이전에, 가중 평균을 계산할때 최대수혜자를 배제하는건 이상한 것 같습니다만... 그래서인지 롤즈가 설명하는 호혜성 원칙이 뭔지, 그게 차등 원칙에 어떻게 녹아있는지 명확히 이해되지 않습니다. 도움을 주셨으면 합니다.

답:

1. 관련되는 해당 부분은 다음과 같다.

"또 한가지 점은 차등의 원칙이 호혜성reciprocity의 입자을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상호 이익의 원칙이다. (...) 사회는 단지 두 집단이 있다고, 즉 한 집단은 다른 집단보다 현저하게 나은 운수를 타고난 사람들의 집단이라고 단순하게 가정해보자.(...) 만약 우리가 차등의 원칙을 거부한다면 우리는 두 개의 기대치 간의 가중치가 부여된 평균치의 극대화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유리한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가중치를 부여한다면, 우리는 자연적, 사회적 우연성에 의해 이미 더 유리한 바로 그들을 위한 이익을 더 높이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혜택을 받아야 한다는 요구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이런 식으로 가중치가 부여된 평균치를 극대화하는 것은 말하자면 이미 유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두 번씩이나 유리하게 하는 것이다."(John Rawls, 황경식 옮김, <정의론>, 서광사, 2003, 154면 (제2장 제17절))

2. 호혜성이란 무엇안가?

호혜성(reciprocity)이란 규범이 그 규범 준수자들을 평등하게 자유로운 지위를 가진 존재로 다루는 전제에서 서로 이득이 된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호혜성은 단순한 상호성(mutuality)과는 구분된다.

만일 어떤 사회의 규범이 귀족 집단과 평민 집단을 나눈다고 해보자.

그래서 평민이 귀족의 물건을 훔쳤을 때에는 10배로 배상토록 하고 사형의 처벌을 내리는 반면에, 귀족이 평민의 물건을 훔쳤을 때는 그 등가액을 배상하고 5일 구금의 처벌을 내린다고 해보자.

이 경우 상호성은 존재한다. 즉, 어떤 권리 위반에 대하여 그에 상응하는 구제와 처벌 방법이 쌍방향 모두에 존재한다는 점에서 상호성은 있다. 그러나 이것이 호혜적인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 규범에서 정하는 이득과 보상과 제재는, 당사자들을 평등하게 자유로운 지위로 대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3. 호혜성 검사 

호혜성 검사란, 기본적 질서에 의한 이득의 상호 배분이 당사자들을 시종일관 평등하고 자유로운 지위에 있는 동등자(equals)들로 다루면서 그들 모두에게 상호 이익이 되는 변화만을 허용하고, 그 반대의 변화는 허용하지 않는 검사다.

검사를 충족시키지 아니하는 질서는 근본적 관계를 비호혜적(非互惠的)으로 변형시키는 것이다. 비호혜적 변형은 해당 사회 질서의 도입 결과 일부 구성원에게 기울어진 관계가 도입되었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그 사회 질서의 규범적 정당성을 논하는 주장 체계 내에 일부 구성원을 편드는 전제가 도입되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리고 그러한 전제는 평등하고 자유로운 논증대화 참여자들이 허용할 수 없는 전제다.

호혜성(互惠性) 기준이 중요한 이유는 입헌 민주주의 사회는 여러 세대에 걸쳐 평등하고 자유로운 시민들 사이의 공정한 협동 체계로 이해되며, 기본권 질서는 그 구조 위에서 시민들의 협동을 근본적으로 규제하는 기본 구조이기 때문이다.

호혜성의 준칙은 중대성이나 필요성과 같은 개념을 남발함으로써 자의적인 예외 규칙을 도입하는 것을 명시적으로 불허한다. ‘이 경우는 매우 중대하므로 특별한 사안이다’, ‘이 경우는 특수한 필요가 있으므로 예외를 구성한다는 선언만으로는 아무 것도 논증하지 않는다. ‘중대성이나 필요성과 같은 개념은, 그것이 그 정책으로 구체적 부담은 더 많이 지는 기본권 주체를 포함하여 모든 기본권 주체의 근본적 지위를 방어하거나 유지하거나 개선하기 위한 것임을 보이는 논증으로 체계화되어야 한다.

3. 이중으로 유리하다는 것의 의미

아름다운 사람A와 그렇지 못한 사람B가 있다고 해보자.

이 경우 아름다운 사람은 이미 자연에 의해 남들보다 더 아름답다는 장점을 타고 났다.

그런데 만일 A, B가 향유할 수 있는 사회적 기초재를 분배할 때, '남들보다 더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이유로 여하한 가중치를 부여한다면, 그것은 이미 자연에 의해 유리해진 사람이라는 이유에 의거해 추가로 A를 유리하게 만드는 셈이다.

즉 처음의 유리함은 자연에 의해, 두 번째의 유리함은 사회질서에 의해 부여된다.

호혜성의 근본 이념인 평등하게 자유로운 자들 사이의 상호이익(相互利益)의 원칙은 유리한 자를 이중으로 유리하게 해서는 안 되고, 불리한 자를 이중으로 불리하게 해서도 안 됨을 의미한다. 이러한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사회는 평등하고 자유로운 시민들 사이의 공존과 협동을 위한 체계로 보기 어렵다. 왜냐하면 이것은 타인들이 보다 나은 처지에 놓이게 하기 위하여 자신은 불리함을 감수해야만 하는 이등 시민(second-class citizens)의 지위를 인정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 부담을 감수하는 사람은, 이득을 보는 그 다른 사람들과 자신을 동일시해야 한다는 교조(敎條)를 주입받지 않고서는 그러한 부담을 명하는 규범을 준수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그 규범이 규범 준수자에게 정당화될 수 없는 것임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부담을 더 많이 지는 이들의 기본적 지위를 악화시킴으로써 다른 구성원들의 이익이 추구되는 것은 정당성이 없다. 그 경우에는 부담을 지는 이들이 희생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경우에는 부담을 공정하게 공유할 수 있는 다른 대안들을 강구하거나, 그 이익 추구를 포기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그 이득은 자유롭고 평등한 모든 기본권 주체의 관점에서 공통된 이익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성적우수장학금 제도를 소재로 살펴보기로 하자. 

대학에서 학점이 좋은 자에게 장학금을 주고, 학점이 좋지 않은 자에게 장학금을 준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집안이 넉넉하여 부모로부터 등록금 및 생활비의 지원을 충분히 받는 사람일수록 성적이 좋을 확률이 높다. 그리고 동료 학생에 비해 머리가 더 뛰어난 사람들도 장학금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반면에 집안이 쪼들려서 동록금 및 생활비를 벌기 위해 대출을 받아야 하고 아르바이트를 해야 한다면, 정신이 분산되고 육체적으로 피로하여 같은 성적을 받기가 더 힘들 것이다.

따라서 학점이 좋은 자에게 장학금을 주게 되면, 그 대체적인 효과는 돈이 덜 필요한 사람에 돈을 더 주는 셈이 된다.

또한 학점이 좋으면 취직도 잘 되고, 더 상위의 교육기관에 진학하기에도 좋다. 이미 그것 자체로 보상과 기회의 전망에서 유리함을 확보한 것이다. 그렇게 유리한 사람에게 돈까지 준다면 이중으로 유리해지는 셈이다.

성적이 우수하고 능력을 탁월하게 키운 대학원생은 이미 그것으로 보답을 받은 것이다. 취직도 더 잘 될 것이고, 이후 연구 기회도 더 넓어질 것이다. 거기다 또 돈까지 보태줘야 한다면 이미 벌어진 격차에 돈의 격차까지 보태는 셈이다. 

 교육은 삶의 여러가지 다종다양한 기회를 실현하기 위해 모든 구성원들에게 보편적으로 제공되어야 하는 기본 기회에 속한다. 기본 기회에 속하는 질서는 기본구조에 속한다. 이러한 기본구조에서 자원의 배분이 이미 유리한 자(재능이 뛰어나거나 부모의 자산이 넉넉한 자)를 더 유리하게 하는 것은, 호혜적이지 않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연의 질서나 출생의 우연으로 인하여 불리해진 이로 하여금, 그 불리함을 이중을 더 불리하게 만드는 질서를 받아들이라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육제도에서 자원의 추가적 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면, 그것은 학업에 집중할 수 없을 정도로 자원이 부족한가를 기준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4. 본질적 응분 이론에 대한 타격

이 부분 롤즈의 논의는, 본질적 응분 이론에 대하여 타격을 가하는 것을 주된 목적 중 하나로 삼고 있다.

응분 이론은, '남들보다 더 탁월하기 때문에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질 자격이 있다'는 명제로 간명하게 표현된다.

남들보다 더 재능이 있다면 당연히, 자연질서의 섭리처럼,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질 자격이 있다.

즉, 남들보다 더 아름답다면, 더 똑똑하다면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질 본질적 자격이 있다.

그런 자격을 인정한다면, 이 남들보다 더 잘난 사람에 대하여 가중치를 부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롤즈의 이론은, 본질적 응분이란 없으며, 사회협동의 기본제도가 이미 자리잡았을 때 발생하는 합법적 기대치만 있다고 말하고 있다.

예를 들어 오늘날 상당수의 젊은이들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되는 것이, 그 입직구에 들어가기 이전의 학벌이나 학업성적 등의 스펙이 보여주는 응분과 연결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는 것이나, 비정규직이 정규직과 동등 대우를 받는 것은 '불공정'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사고에서는 같은 사회에서 정규직이 80%이다가, 점점 경제질서가 변하면서 정규직이 30%에도 못미치게 된 사회 변화를 어떻게 평가하고 바꾸어나가야 할 것인가의 문제의식이 빠지게 된다.

그리고 예전에는 정규직의 응분을 갖던 사람이 왜 지금은 비정규직의 응분만 갖게 되었는지를 이론적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게 된다.

롤즈 이론에서 보면, 그러한 본질적 응분이 있다고 전제하는 것 자체는 독단적 형이상학에 불과하며, 결과적으로 재능이나 출신에서 유리한 자를 이중으로 유리하게 하는 것에 불과하게 된다.

비정규직 제도를 운용함으로써 고용안정성에서 불평등을 두게 된다면, 그 불평등의 증가로부터 모든 이가 이득을 얻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그러한 불평등 증가로 인하여 가장 큰 부담을 지는 이가 더 많은 보상을 받아야 한다. 이를테면 비정규직은 정규직과 같은 일을 할 때 1.3배 정도로 더 많은 임금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러한 고용 형태에 차등을 두는 것은 정의의 원칙에 합치한다고 할 수 없게 된다.

5. 차등원칙이 호혜성 원칙의 구현인 이유

차등원칙의 출발점은, 사회가 협동체이며, 이 협동으로 인하여 개개인이 따로따로 생산할 수 있던 것보다 훨씬 큰 생산물을 사회적으로 산출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어떤 특수한 재능에서 남들보다 뛰어난 자도 사회적 협동이 없다면 그 과실을 산출할 수 없게 된다. 그 재능에 전문화하고 분업할 수 있는 토대를 다른 이들이 만들어주었기 때문에 과실 산출이 가능하다.

그리고 이렇게 협동으로 인해 비로소 산출이 가능하게 된 과실은 원칙적으로 모든 이들에게 평등하게 배분되어야 호혜성이 있다.

그러나 그 평등 배분에서 이탈하여, 불평등이 증가하더라도, 그 불평등 증가로 인해 모든 이들이 이득을 얻는다면, 호혜성은 역시 유지된다.

A, B가 각자 홀로 생산하면 1, 1씩 생산하여 갖게 된다. (고립생산)

협동하여 생산하면, 전체 4를 생산하여, 2, 2씩 갖게 된다. (협동생산-평등분배)

그런데 유인구조를 설계하면 전체 7을 생산하여 4, 3씩 갖게 된다. (협동생산-차등원칙)

이렇게 되면 최소수혜자 B는 완전한 평등 분배 때보다 불평등 분배 때에 더 많은 것을 가지게 되므로 동등자의 입장에서 더 이득을 얻게 된다.

그리고 최대수혜자 A 역시 완전한 평등 분배 때보다 불평등 분배 때에 더 많은 것을 가지게 되므로 동등자의 입장에서 더 이득을 얻게 된다.

그러나 총생산량이 더 많아져서 8을 생산하게 되더라도, 그 분배 결과가 6, 2가 된다면, B는 그러한 불평등의 추가적인 증가에 의해 손해를 본 셈이 되므로 호혜성 원칙은 훼손된다. (협동생산-평균최대화 분배)

따라서 평균공리주의는 호혜성 원칙을 위반하는 반면에, 차등 원칙은 호혜성 원칙을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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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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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성우맨
    2017.02.11 13:37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3. 이중으로 유리하다는 것의 의미

    아름다운 사람A와 그렇지 못한 사람B가 있다고 해보자.

    이 경우 아름다운 사람은 이미 자연에 의해 남들보다 더 아름답다는 장점을 타고 났다.

    그런데 만일 A, B가 향유할 수 있는 사회적 기초재를 분배할 때, '남들보다 더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이유로 여하한 가중치를 부여한다면, 그것은 이미 자연에 의해 유리해진 사람이라는 이유에 의거해 추가로 A를 유리하게 만드는 셈이다.

    즉 처음의 유리함은 자연에 의해, 두 번째의 유리함은 사회질서에 의해 부여된다."

    이 부분에서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천부적으로 타고난 아름다움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자연적인 사실을 사회의 제도가 유리하게 처리하는 방식’이 바로 정의 여부가 문제되는 유리함의 문제라고 한다면, 롤즈가 해당되는 부분에서 '이중으로 유리하게 하는 것'이라고 하였을 때, '처음의 유리함'을 (사회질서와 무관한) “자연에 의해 부여된 것”이라고 해석하게 되면 그 의미를 알 수 없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정의론 17절의 해당 부분을 이렇게 이해했습니다.

    “정의의 원칙이 적용될 것이라고 가정된 현대 산업 사회에서는 일반적으로 자연적, 사회적 우연성에 영향 받는 불평등한 이득의 분배 방식이 도입되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불평등한 분배 방식에 의해 우위에 서게 되는 집단(현저하게 나은 운수를 타고난 집단)과 열위에 서게 되는 집단이 있을 것이라고 추상적으로 말할 수 있다. 그럼 이 두 집단에 대한 구체적인 분배방식은 어떻게 정해져야 하는가? 만약 우리가 우위에 있게 되는 집단에게 조금이라도 가중치를 부여한 평균을 최대화하는 방식을 채택하게 된다면, 사회의 분배제도가 불가피하게 불평등한 분배 형태를 취하기 때문에 남들보다 더 유리해진 사람을 바로 그 도덕적으로 무관한 이유에 의해 얻게 된 유리함을 이유로 해서 또 다시 유리하게 하게 된다.”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 2017.02.13 18:07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1. '이중으로 유리하게 한다'는 말은 롤즈의 해석서를 쓰는 철학자들도 왜 그런 표현을 썼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보통 이야기합니다.

      그 이유는 실제로는 이중의 유리가 문제되는 것이 아니라, 일중의 유리만 문제되기 때문입니다.

      <정의론>, 154면의 위 인용문에 뒤이어 롤즈는 "유리한 사람들은, 그들이 일반적인 관점으로부터 문제를 볼 때, 각각의 복지는 사회적 협력 체계에 의존하며, 만일 이런 협력 체계가 없을 경우 아무도 만족스런 삶을 영위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또한 그들은 오로지 이 체제의 협력 조건들이 합당할 경우에만 모든 이의 자발적 협력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들을 포함해) 그 누구도 요구를 할 수 없는 이익들에 의해 자신들이 정말로 이미 보상받았다고 생각한다."

      즉 롤즈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1) 자연과 우연에 의해 남들보다 유리하게 된 사람이 있다.
      (2) 그러나 그 유리함은 원래 그 누구도 정당하게 요구할 수 없는 유리함이었다.
      (3) 그걸 타고 났으니 이미 보상받았다. (마치 아름다운 사람이 아름다운 것만으로도 이미 보상받았다)
      (4) 아름다운 사람은 그 아름다움을 활용하여 협동체계에서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무언가를 산출할 수 있다.
      (5) 그러나 그 산출은 모든 사람들의 자발적 협력이 전제되어야 한다.
      (6) 그러므로 이미 유리한 그 특질에 본질적으로 연결된 어떤 가중치를 요구하는 것은 그러한 자발적 협력을 불가능하게 한다.

      즉, 해당 페이지의 전후 문구를 보면 롤즈가 '이중'이라는 말을 쓴 것은, 자연과 우연에 의한 한 번의 유리함을 다시 사회질서에 의해 더 유리하게 한다는 뜻임이 분명합니다.

      물론 이런 식으로 '이중'이라는 말을 쓴 것은 다소 부적절합니다. 그래서 학자들도 당혹스럽다(puzzling)는 표현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문맥상 응분 이론을 비판하면서 나온 것임을 이해한다면, 이런 표현이 그렇게 부적절한 것은 아닙니다.

      2. 원초적 입장에서 사회계약을 맺기 이전에는 불평등한 분배 방식은 일반적으로 상정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분배 방식은 사회질서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고, 그러려면 사회질서가 있어야 되는데, 아직 그 사회질서를 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만 인간 사회에 관한 일반적 사실로서 부모의 유전자, 부모가 꾸려나가는 가정환경, 부모의 재력 등이 서로 다를 것임은 알 수 있고 이것이 바로 출생과 연결된 운에 의해서 유리해지는 것입니다.

      저는 원초적 입장에서 무지의 베일을 '누가 부자이고 빈자인지 모르게 한다'는 뜻으로 축소하는 설명에 반대한 바 있습니다. 왜냐하면 무지의 베일을 쓰고 사회계약을 맺기 위해서는 '부자'와 '빈자'의 뜻이 불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누가 출생과 우연 등에 의해 남들보다 유리하게 되는지 모르게 된다'고 설명하는 것이 보다 적절합니다.

      1차로 이미 전제되는 사회질서가 있고, 그 뒤로 2차로 사회계약을 맺는 것이 아닙니다.

      기본구조에 대한 정의의 원칙은 단 한 번 합의되는 것입니다.

    • 성우맨
      2017.02.13 18:38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자세하게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 성우맨
      2017.04.03 17:58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1. 응분 이론을 비판하고 있는 맥락임을 생각한다면, '처음의 유리함'을 자연에 의한 유리함으로 봐야 한다는 선생님의 설명이 잘 이해되었습니다.


      2.

      정의론 24절에서,

      "당사자들은 어떤 종류의 특정 사실을 알지 못한다고 가정된다. 무엇보다도 각자는 사회에 있어서 자기의 지위나 계층을 모르며 천부적 자산과 능력, 지능과 체력, 기타 등등을 어떻게 타고나는지 자신의 운수를 모른다." 존 롤즈, <정의론>, 황경식 옮김, 이학사, 2003, 195~196쪽.

      여기서 "자기의 지위나 계층을 모른다"는 것의 의미는 특정 자본주의 체제를 전제해야만 존재하는 자본가, 프롤레타리아와 같은 어떤 구체적인 계급을 모른다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인간 사회에서 어떠한 불평등이 도입된다고 할 때 그 불평등한 체제에서 어디에 분포할지를 모른다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정의론 24절 강의에서 설명해주셨는데요.

      그럼 여기서 계약 당사자들이 일반적 사실로서 알고 있다고 전제되는 '인간사회의 불평등'은 어떤 불평등을 말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저는,

      1. 무지의 베일을 쓴 계약 당사자들은 자기의 지위나 계급을 모른다고 한다.

      2. 지위나 계급을 모른다는 말을 한다는 것은, 그 이전에 분포의 우열을 나눌 수 있는 불평등한 사회 체제가 일반적으로 상정된다는 것이다.

      3. 불평등한 분배 방식이 있어야만 인간 사회는 불평등할 수 있다.

      4. 따라서 일반적으로 인간 사회가 불평등한 것으로 상정된다고 한다면, 인간 사회가 불평등하기 위한 전제 조건인 불평등한 분배 방식도 일반적으로 상정된다고 해야 한다.

      이렇게 이해를 했었습니다.
    • 2017.04.04 23:00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간단히 말하자면, 원초적 입장의 당사자들이 일반적 사실로서 알고 있다고 가정되는 '인간 사회의 불평등'은 '분업'이 있다고 했을 때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불평등을 의미합니다.
      롤즈의 정의론은 '분업'을 전제로 합니다. 분업은 '협동적 사회'의 핵심요소입니다.
      자발적인 분업을 하게 되면 그 특유한 기능의 발휘에 보상과 기회가 달리 부여되기 마련입니다. 예를 들어 제빵업자는 제빵과 관련한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일차적으로 소득을 벌게 되고, 제빵기술을 발전시킬 기회를 가장 근접해서 얻게 됩니다. 의술 같은 경우에는 의사가 아닌 경우에는 실제적 의술 실천의 지식을 추가로 얻을 기회를 얻지 못합니다. 전문 재판관을 두게 되면, 재판을 하고 판결을 내릴 권한을 그러한 자격을 갖춘 사람들에게만 부여하게 됩니다.
      또한 인간의 가족제도를 전제로 하게 되면, 속한 가족에 따라 교육의 기회나 누릴 수 있는 재화의 정도가 달라지는 차이도 있을 것이 예상됩니다.
      이렇게 보상과 기회가 달리 부여되는 분업상의 위치를 '지위나 계층'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원초적 입장의 당사자가 아직 정하지 아니한 사회의 구체적 질서를 전제해야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지위나 계층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일반적 사실을 지득하고 있는 것에 대응하는 일반적인 보상과 기회의 불평등 가능성을 지칭한다고 할 것입니다.
      이렇게 이해할 때, 베일을 썼을 때 전제한 것이 베일을 벗으면 사라져 있게 된다는 모순적 설명을 제거할 수 있습니다.
      (분업에 따른 보상과 기회의 불평등한 결부 가능성을 넘어선, 우리가 통상 생각하는 구체적인 지위와 계급을 상정해버리면 다음과 같이 됩니다: 어떤 사람은 야경국가의 자본가 계급으로서 노조에 가입하는 사람을 해고할 수 있는 권한을 지니는 지위와 계급에 있다. 그런데 원초적 입장의 당사자들이 수립한 정의의 원칙을 구현하는 사회는 재산 소유 민주주의 사회다. 즉, 야경국가도 아닐 뿐더러 어느 누구도 준독점적으로 틀어쥐고 있는 고용기회를, 결사의 자유를 행사했다는 이유로 철회할 수 있는 지위를 갖지 않는다. 그러므로 애초에 그런 지위에 누가 있느냐를 모른다는 베일을 쓰는 것이 말이 안 된다.)
  2. 명동사
    2017.03.04 19:13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재서술>에선 reciprocity가 호혜성으로 번역됐는데 <정치적 자유주의>에선 상호성으로 번역됐네요. 중요한 개념인 것 같은데 헷갈리게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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