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입법되지는 아니한, 4년전에 이야기 된, 교사에 대한 폭행 가중처벌 법안에 대한 당시의 논평글] 

A: 교육부 장관이 교사에 대한 폭행은 가중처벌하는 법안을 입안하겠다고 합니다.

 

B: 선생님들의 교권이 무시 받는 이 시대에 참으로 필요한 정책이라고 생각합니다.

 

A: 그와 같은 생각은 자연스러운 반응이기는 합니다. 그렇지만 검토를 필요로 합니다.

 

B: 왜 검토를 필요로 한다는 겁니까? 요새 학생들이 대들어서 폭행을 할 때도 있고, 학부모들이 학교에 와서 폭행할 때도 있는데 문제가 엄청난 것 아닌가요. 이런 문제에 대처하는 것은 당연히 옳은 일이지요!

 

A: 그 정책이 달성하려는 목적은 확인됩니다. 그리고 형사적 가중처벌은 그 목적에 대한 수단이 되지요.

 

그렇지만 사회정책이라는 것이 목적 확인’, ‘수단 연결이라는 두 단계만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 많은 것을 놓친 것입니다.

 

B: 그 두 가지면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A: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어떠한 목적도 다른 목적과의 관련 하에 다시 재검토되어야 합니다. 또한 어떠한 수단도 그것이 적정하고 올바른 수단인지를 항상 검토해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B께서는 결론을 내면서 다음과 같은 두 명제를 너무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것 같습니다.

 

[명제1- 어떤 규범 위반의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형사정책적으로 형량을 높여서 해결하는 것이 답이다.]

[명제2- 어떤 범죄행위에 대하여 특별히 형량을 높이는 것은 다른 범죄의 형량을 고려하지 않고 개별적으로, 고립적으로 살펴보고 결정해도 된다.]

 

B: 그게 뭐가 문제죠?

 

A: B., 지금 하루에도 수백 건씩 폭행 사건이 일어나요. , 문제가 존재해요. 그러니 형량을 올려야 할까요?

 

B: 당연히 올려야죠!

 

A: 그렇게 형량을 거듭 올렸는데도 또 폭행하면 또 거듭거듭 올려야 하는 것일까요?

 

B: 폭행이 엄두가 안 날 정도로 올려야 하겠죠.

 

A: 즉 폭행이 계속 발생하는 한, 언제나 형량은 올라가야 하는 거군요.

 

B: 그렇죠.

 

A: 그러나 형량을 결정하는 이유에서 절대적 예방이 결정적인 근거가 된다면 마찬가지 논리로 길거리에 껌을 뱉는 규범 위반도, 그 규범 위반이 0이 될 때까지 형량을 계속 올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B: 당연하죠.

 

A: 그럴 경우 이 사회의 사실상 모든 규범 위반 행위에 대해서 최고형을 규정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B: 그렇게 되겠군요. 그렇다면 절대적 예방이라는 목적은 철회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지만 지금보다는 훨씬 더 형벌이 엄해져야 한다는 주장은 유지하겠습니다. 즉 아직은 충분하지 않다는 입장입니다. 선진국 미국을 보십시오. 범죄를 엄격하게 처벌하지 않습니까.

 

A: 형벌의 수위 이야기가 나오면 미국 이야기가 빠지지 않긴 합니다. 그렇지만 '선진'이라는 말은 '먼저 진보했다'는 뜻입니다. 어떤 영역에서 먼저 진보한 것이 있고, 바람직한 것이라면 다른 나라가 그만큼 따라서 달성할 가치가 있다는 뜻이지요. 그렇다면 미국이 그들의 엄벌주의 형사정책으로 무엇을 달성했는지 살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미국에서는 1970년대 부터, 즉 리처드 닉슨과 로널드 레이건 시절부터 엄벌주의가 늘어났어요. 이 때 실형을 선고하는 범죄의 범위가 늘어났고, 형량도 대폭 강화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미국의 경제정책의 흐름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1970년대 이후 미국에선 감세와 경제 긴축, 그리고 복지제도 감축을 대대적으로 실시했습니다. 이 정책 기조로 인해 소수인종들, 특히 흑인들이 가장 많은 타격을 받았습니다. 이들은 첫째로 세금을 많이 내는 쪽이 아니라 세금을 통한 소득이전의 혜택을 보고 있던 집단이고 둘째로 복지제도에 가장 민감하게 삶이 달려 있는 집단이며 셋째로 경기의 하강에도 삶이 무너질 수 있는 한계선상의 경제활동을 하고 있던 집단이기 때문입니다. 인플레이션을 잡는다는 정책목적은 이러한 집단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완화시킬 수 있는 조치와 함께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나 미국은 오히려 복지제도까지 함께 감축함으로써 거꾸로 정책방향을 틀었습니다. 그리하여 흑인들을 비롯한 하층계급은 정상적인 경제활동의 고리 바깥으로 튀어나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현상이 거주지역의 분리와 함께 일어나면서 경제활동의 바깥으로 튀어나간 이들이 마약과 범죄와 같이 소득을 버는 다른 활동의 주요 무대를 바로 그들의 거주지역으로 삼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범죄는 인종 및 지역과 떼어낼 수 없는 것이 되었습니다. 그러한 사회정책적 결과에 대하여 미국은 엄벌주의로 대응한 것입니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미국에서 아이오와주의 경우, 흑인의 수감율은 전체 백인에 비해 13배가 넘게 되었습니다. 인구 10만명당 백인 309, 흑인은 42백명이 갇혀 있다는 뜻이에요. 아이오와 주 뿐만 아니라 2005년 통계자료를 활용한 연구에 따르면 버몬트, 뉴저지, 코네티컷, 위스콘신 주의 흑인 수감률이 백인보다 10배 이상 높다고 합니요. 그런데 흑인들의 유전자에 범죄자의 유전자가 박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흑인들이 형벌의 두려움에 그만큼 덜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러한 차이는 사회적 차이입니다. 하와이를 보면, 백인과 흑인 수감자의 비율이 11.9에 불과합니다. 범죄의 발생은 엄벌이냐 아니냐에 의해서 주되게 좌우되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연구결과에 다르면 미국에서 범죄의 기대값은 이미 큰 마이너스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기적이며 합리적 개인의 입장에서도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손해가 된다는 것입니다. 형벌이 너무도 높고, 과밀화된 교정시설에 수감되어 동성에게 강간을 당하며 사는 것 자체가 어마어마한 고통을 야기하고, 일단 전과자가 되고 나면 삶의 기회가 현격히 좁아지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다른 발전된 자본주의 국가에 비해 범죄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곳입니다. 범죄율의 주된 요인은 엄벌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복합적인 사회적 여건인 것입니다. 그러한 복합적 여건의 중대성에 눈을 감을 때, 손쉬운 해결책으로서 엄벌을 택하게 되는 것입니다.

 

B는 구 소련, 그것도 스탈린 치하의 구 소련이 선진국이고, 그 사회 모델을 우리가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B: 스탈린이 지배하던 소련이요? 절대 아니죠.

 

A: 197950만 명 정도였던 미국의 수감자수는 2007년에는 230만 명으로 증가하며 이는 미국 성인인구의 1%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수감자의 숫자에 집행유예와 가석방을 합치면 720만 명의 미국인이 행형기관의 관리하에 그 자유가 제한되고 있고, 이건 전체 미국 성인인구의 3.1%에 해당합니다. 미국은 수감 정보가 알려진 국가 중에서는 세계1등을 먹고 있습니다. 인구 10만 명당 수감자 수로 따지면 미국은 2009년 기준 743 명으로 세계 최고, 금메달을 획득했습니다. 2등은? 577 명인 러시아입니다. 반면에 프랑스는 109 , 영국은 92 , 독일은 87명이고, 한국은 94 명입니다. 그리고 한국은 미국에 비해 범죄 발생율이 현격히 낮습니다. 그런데도 단지 미국이 수감율이 세계1등이라는 이유로 한국의 94명을 미국 743명 수준으로 뻥튀기해서 올려야 할까요? 스탈린이 스탈린 치하에서 쿨라크(부농)을 포함해 닥치는 대로 사람을 잡아들여 가뒀을 때 그 숫자가 10만명당 수감자 수로 714명에서 893명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미국과 스탈린 치하 구 소련의 수감자 비율이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거기다 미국에서 수감자의 압도적 다수가 저소득층이거나 소수인종입니다. 2001년에 출생한 흑인 남성 중 32%는 평생에 한 번은 감옥을 갈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그러니, 미국의 엄벌주의가 먼저 도달한 곳이 '선진'이라고 보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B.: 좋습니다. 선진국 미국이 엄벌주의를 취하고 있으니, 미국을 따라야 한다는 주장은 철회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지만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보도록 하지요. 교사가 학부모나 학생들한테 맞으면 사기가 떨어져서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교사를 폭행하는 이들은 잘못을 저지르는 이들입니다. 잘못을 저지르는 이들에게 더 큰 벌을 과함으로써 교사의 교육이 더 제대로 이루어지게 한다는 게 무엇이 잘못되었습니까?

 

A: 명제2와 관련된 부분이군요. 그런 논리는 어디에나 적용됩니다. 학부모가 누군가에게 맞으면 학부모의 사기가 떨어져서 가정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학생이 누군가에게 맞으면 사기가 떨어져서 학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학부모나 학생을 때리는 것을 가중처벌해야 한다는 논리도 마찬가지로 성립하게 될 것입니다.

어느 누구나 각자의 사회적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실업자조차도 구직활동을 하고 있는데 폭행을 당한다면 구직활동에 큰 타격을 입을 것입니다. 사회적 기능의 원활한 수행을 목적으로 삼는다면, 결과는 폭행죄 일반의 형량 상승이 됩니다.

 

이미 단순 폭행에 대해선 형법 제260 1항은 2년 이하의 징역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거기다 진단이 2주만 넘어가도 7년 이하의 징역을 받는 상해죄에 해당됩니다. 신체의 완전성을 침해하는 범죄에 대해서는 이미 충분히 높은 형량이 규정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사람은 각자가 이것보다 더 형량을 높이려면 신체 완전성이 침해되는 사람의 신분이 문제되는 것이 아니라, 신체 완전성이 침해되는 사람''이 더 관련되어야 할 것입니다. 즉 어떤 사람의 신체 완전성이 침해됨으로써 '다른 사람의 생명, 신체의 안전'까지도 위협받는다는 특수한 이유가 있어야 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5조의 10 1항의 '운전자 폭행'을 하면 5년 이하의 징역을 받습니다. 운전 중인 운전자를 때리면 운전 조작을 잘못해서 수많은 사상자를 낼 수 있는 교통사고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형을 높게 정한 것입니다. 그래서 정차중일 때 폭행하면 그냥 형법의 단순폭행이 적용됩니다.(고등법원 201232 판결) 만일 정차 중일 때를 포함해서, 교통사고라는 추가적인 위험이 없는 경우에도 운전자 폭행은 특별가중한다면, 그것은 사회적 기능에 결부된 속성에 법익을 가중해서 보호해야 할 신분적 가중치를 부여하는 셈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신분적 가중치 부여는 법 앞의 평등이라는 헌법의 규범에 어긋납니다. 다시 이 사안에 돌아와서 보면, 교사는 선박, 기차, 자동차를 운전 중이거나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따라서 교사라는 신분에 특별한 가중치를 둘 수는 없습니다.

B: 수업을 하고 있는데 학부모가 와서 때린 경우도 있단 말이에요. 이럴 경우에는 학생들의 학습권도 침해하게 되고, 교사의 수업활동이나 업무활동도 크게 방해를 받게 됩니다.

 

A: 그럴 경우엔 이미 형법상 공무집행방해죄와 업무집행방해죄로 처벌받게 되어 있습니다. 공립학교 교사가 수업하고 있는데 폭행을 가하면 7년까지 징역을 살 수 있고, 사립학교 교사가 수업하고 있는데 폭행을 가하면 5년까지 징역을 살 수 있습니다. 이것은 상해나 치상이 발생하지 않은 경우를 말하는 것입니다. (각각 형법 제136조 제1항과 제314조 제1) 사회적 기능에 대한 법익 보호가 이미 법에 의해 고려되고 있습니다. 만일 이 법익 보호를 더 가중하게 된다면, 아무런 상해가 발생하지 않은 폭행에 대해서 8, 9년의 징역형을 주장하는 셈이 됩니다. 살인죄의 형량 하한이 5년이에요. 그것과 비교하면 이미 균형을 잃은 것입니다.

 

B: 그러나 학생들의 폭행에 대해서 엄벌에 가하지 않으면 통제가 안되요.

 

A: 그 말은 가중처벌의 주된 대상이 학생이 될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둔 말일 것입니다. 그런데 학생은 교사의 지도를 받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교사가 주재하는 공간에서 학생은 교사의 지도를 따르게 되어 있고 교사는 공익의 표상에 따라 그 지도를 수행할 책임이 있습니다. 형법 제125조는 판사나, 검사, 경찰, 교도관 등이 형사피의자나 기타 사람을 폭행하면 5년이하의 징역을 받게끔 되어 있습니다.

 

 

, 어떤 시공간에서 사회적으로 통제 권한을 가진 사람이 직무를 수행할 때 폭행을 당하면 공무집행방해죄나 업무방해죄로 보호받습니다. 이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B: 학생에 비해 교사는 높은 사람입니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말랬는데 스승에 대해 폭행을 행사했으면 당연히 가중처벌되어야 할 것입니다.

 

A: 사회적인 위계가 법적인 위계로 번역되어야 한다는 원리는 타당하지 않습니다. 그럴 경우 사회적 신분이 높은 사람은 사회권력에도 우위를 차지할 뿐더러 법적인 보호에서도 자동적으로 더 우위를 차지하는 법적인 특권계급이 됩니다. 이를 우리 헌법은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금지되는 원리에 따르면, 직장 상사가 말단 사원을 폭행했을 때에 비해 말단 사원이 직장 상사를 폭행했을 때 더 심하게 처벌받아야 할 것입니다. 대명률에 따라 조선시대에는 주인은 노비가 불구가 되지 않는 한 마구 때려도 되었지만, 노비가 주인에게 유형력을 행사할 경우 그것은 사형에 해당하는 죄였습니다. 이러한 불균형한 법익 보호 장치는, 노비 제도의 변형된 형태로의 도입입니다.

 

최근에 폭력예방 담당 교사가 학생을 심하게 때려서 상해가 발생한 뉴스가 보도되었습니다. 그 사건에서 학생이 교사의 말을 순종적으로 듣지는 않았지만 교사에게 폭력을 행사하진 않았습니다. 반면에 교사는 자신의 지시가 먹히지 않을 때 다른 제도적인 수단을 강구하는 대신 곧바로 폭력 행사에 나섰습니다. 그 결과 학생의 이빨이 모두 다 나가버렸습니다. 이렇게 교사가 먼저 폭행을 시작한 상황에서 학생이 울컥해서 교사를 때리는 경우에, 오히려 상해를 저지른 사람보다 폭행을 저지른 사람이 더 심하게 처벌되어야 되는 결과는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그러나 교사 가중처벌은 바로 그러한 결과를 도출하게 됩니다. 그것은 법이 준수해야 할 공정함을 완전히 잃어버린 것입니다.


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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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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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기오소리
    2017.02.26 18:38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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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크라테스 문답 교육 감사합니당! 그런데 미국과 스탈린치하 수감자수가 비슷하다니, 대충격받았어요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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