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대의 민주주의에서 선거에 임하는 정치가들의 언사는 서로 상반될 수도 있는, 세 가지 이유 때문에 유권자들의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다.

 

첫째는, 공허하고 추상적인 말을 하는 경향 때문이다.

 

"정치가들은 일반적으로 (...) 비교적 안전하고 공허한 말을 고수하면서도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인상적인 말을 만들어낼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란다." (A.C. Grayling, 『Thinking of Answers』. 앤서니 그레일링 저, 윤길순 역, 『우리가 일상에서 부딪히는 철학적 질문들』, 블루엘리펀트, 2013, 209면)

 

왜 정치가는 공허한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일까?

 

그것이 안전하면서도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수사적으로 알맹이 없는 구절을 쓰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그것이 듣는 사람의 지성보다 감정에 호소하기 때문이다. ‘희망과 도전, 새로운 (이것저것), 가치, 가족, 공정, , 열망, 민주주의, 자유, 국민이런 것들은 느낌이 좋은 말이다. 그러나 이런 말을 쓰면 정치가들은 구체적으로 책임질 일이 없다. 이것은 두 번째 이유와 연결된다. 느낌이 좋은 일반적인 말은 정치가가 자신이 모든 국민의 이익과 열망에 따라 공정하게 대처하기를 희망하는 다양한 도전에 대해 무엇을 하겠다고 해야 할지 모르거나 무엇을 하겠다고 해야 할지를 드러내고 싶지 않을 때 유용하다. 선거 기간에 약속한 것이 막상 취임하면 그 자리의 엄혹한 현실에 골칫거리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정치가들은 본래 되도록 말이 많이 하면서도 되도록 적게 말하려고 한다. (같은 책, 206-207면)

이러한 공허한 이야기는 본심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확장성을 유지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전략에 의해 확보된 확장성은 다소 기망적인 성격을 가지게 된다. 왜냐하면 수사에 이끌려 A라는 성향이라고 보고 찍은 후보가 실제로는 B 성향의 정책을 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선거라는 절차는 결국 누가 누구를 더 모호한 말로 잘 속이느냐하는 문제가 되어버린다.

 

둘째는, 오히려 구체적인 공약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첫째와는 반대되는 동기 때문에 생긴다. 확정적인 공약을 제시함으로써 핵심 결집 집단을 창출하려고 한다. 공약이 구체적일수록, 그 공약의 사회적 파급 효과를 보다 분명하게 드러낼수록, 지지자와 반대자의 구분이 명확하게 된다.

그런데 이것이 왜 불만 요인이 될까?

그것은 선거가 단일 쟁점 투표가 아니기 때문이다. 선거는 광범위한 복합적 쟁점에 관하여 유권자의 표를 두고 경쟁하는 장이다.

그러니 유권자로서는 어떤 후보자가 다른 점이 마음에 든다 할지라도 특정한 공약 몇가지 특별히 눈에 거슬리게 된다면, 그 후보자를 뽑을지에 관하여 매우 고민을 하게 된다. 그렇다고 다른 후보자를 뽑으려고 해도, 다른 후보자 역시 다른 쟁점에 관하여 거슬리는 공약을 내세우고 있으므로, 이리저리 살펴보아도 뽑을 사람이 없게 된다.

그렇다고 '전반적으로' 공약의 내용이 자신의 의사에 부합하는가를 두고 표를 던지게 되어도 문제가 발생한다. 자신의 표는 그 정치가의 '모든' 공약에 대한 지지로 쉽게 둔갑하게 되는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a라는 정치가를 특정한 공직의 담당자가 되기에 가장 나은 사람, 또는 가장 덜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사람이 구체적으로 내세운 공약을 모두 지지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선거가 끝나고 나면 그것이 마치 그러한 구체적인 공약 패키지를 모두 지지한 것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셋째, 공약들을 신뢰할 수 없다.

많은 후보들이 공약을 내걸지만, 그 공약들을 실제로 집행할 것인가는 신뢰할 수 없다. 왜냐하면 경험상 거의 대부분의 공약들은 집행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내건 공약에 기초하여 사람을 뽑는 것이 무슨 소용인가하는 생각이 든다.

 

따라서 선거에 의해 확립된 '정당성'이라는 것은 상당 부분 신기루와 같은 성격을 갖게 된다.

첫째, 모호하고 추상적인 말을 한 것에 대한 지지는 속임수에 의한 지지가 될 수 있다.

둘째, 지지하지 아니한 공약이 패키지에 넣어져 있다는 이유로 지지로 둔갑될 수 있다.

셋째, 내건 공약에 대해 지지를 보내 투표했지만, 공약을 실제로는 집행하지 않는다.

 

이것은 결국 대의민주제가 선거라는 절차 하나만 가지고는 그 정당성을 홀로 수립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물론 모호하고 추상적인 수사, 그리고 이리저리 섞인 패키지를 내세우는 것에 불과하더라도, 선거를 치르는 것은 민주주의의 필수 조건이기는 하다.

 

George Orwell. Why I Write. 이한중 옮김, 『조지오웰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 한겨레출판, 2010의 "영국, 당신의 영국 England Your England (1940/가을)"에서 조지 오웰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모든 허상은 절반의 진실이 될 수 있으며, 가면 때문에 얼굴 표정이 바뀔 수도 있다. 민주주의가 전체주의와 '똑같다'거나 '똑같이 나쁘다'고 하는 익숙한 주장들은 그런 사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그런 주장들은 전부 결국엔 빵 반 덩어리는 빵이 없는 것과 같다고 하는 것이다. 영국에선 정의니 자유니 객관적 진실이니 하는 개념들을 아직도 믿고 있다. 그것들은 허상일지 모르나 대단히 강력한 힘을 지닌 허상이다. 그(99)런 것들에 대한 믿음이 행동에 영향을 끼치며, 그 때문에 국민 생활이 달라지는 것이다. (…)하지만 대중의 마음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한, 선거제도가 완전히 부패하는 법은 없다. 투표소에서 권총 든 사람들이 어디다 표를 찍으라고 말하는 경우도, 표 집계를 엉뚱하게 하는 일도, 공공연한 뇌물 수수도 없다.  심지어는 위선도 강력한 안전장치가 된다. 교수형을 좋아하는 가혹한 판사는 주홍빛 법복을 입고 말털 가발을 쓴 악독한 늙은이에, 다이너마이트가 아니고선 지금 몇 세기를 살고 있는지 깨우쳐줄 수 없는 사람이지만, 적어도 책에 있는 대로 법을 해석할 수 있고 어떤 경우에도 뇌물을 받지 않는, 영국의 상징적 인간상 중 하나인 것이다. 그는 현실과 허상을, 민주주의와 특권을, 협잡과 품위를, 미묘한 타협의 연결고리를 묘하게 섞어놓은 하나의 상징이다. 그리고 국가는 그런 상징으로써 익숙한 모양새를 유지한다."(98-99면)

 

그러나 익숙한 모양새가 민주적 정당성의 종결지점은 아니다.

즉,

정책의 정당성이나 바람직함에 대한 논의는, 그 정책을 여러 수사와 정책 패키지 가운데 끼워넣은 사람이 당선되었는가로 종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결국, 대의민주주의는, 각 정책에 대한 추가적인 논의의 제도적 장을 열어 두는 장치에 의해 보완되어야만 보다 온전한 정당성을 가질 수가 있다.

 

그렇다면 이 복잡한 시대의 과제는, 어떤 카리스마 있는 정치가를 뽑을 것인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프로세스를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의 문제가 된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논의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대의제 선거를 통해서 공직자를 뽑은 후, 그 공직자가 일련의 정책을 수립, 집행하거나/ 하지 않을 때, 그때마다 인민이 합당한 공론장을 통해서 개입할 수 있는 제도적 공간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정책의 '민주적 정당성'에 관한 논의는, 우연히 이러저러한 수사의 우산 하에서 이러저러한 집행할 수도 집행하지 않을 수도 있는 무수히 많은 쟁점에 대한 공약 패키지를 내세운 사람이 우연히 당선되었다는 것에 지나지 않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바와 달리, 여론조사는 그러한 '합당한 공론장'을 이루지 못한다. 여론조사는 사람들이 매우 제한된 정보를 가지고서 직감적으로 내리는 결론을 취합한 숫자에 불과하며, 관련된 합당한 '이유들(reasons)'을 숙고해보고 내리는 결론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여론조사의 대상이 되는 쟁점에 대해 많은 사회적 논의가 실제로 이루어졌을수록 그 여론조사의 결과의 민주적 관련성은 커진다. 그러나 그러한 사회적 논의가 실제로 이루어졌다는 점을 평가할 수 있는 기제도 불확실하다.

 

결국, 대의 민주주의는 '여론조사'가 아니라 '공론조사'에 의해, 선출 시점 사이에서도 항상적인 감독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공론조사를 실시한다 함은, 의회라는 장 외부의 별도의, 토론과 숙의가 이루어지는 심의 민주주의의 제도적 기제가 보완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심의 민주주의의 논의는 오래되었지만, 실제로 대의제를 개혁하려는 노력에서 현실 정당의 의제로 설정된 바는 없다. 인민이 직면하는 위험과 도전이 점점 더 복잡해져서 하나의 이념 패키지로 묶을 수 없는 시대로 깊숙이 진입함에 따라, 이제는 이 문제를 진지한 의제로 올려야 할 때가 되었다.

 

(이에 관해서는 자세한 내용과 제도디자인은 올해 말이나 내년 초 즈음에 출간될 책 <민주주의의 새로운 도전> 또는 <민주주의의 질적 도약>에서 다루었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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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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