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istopher Belshaw, "A New Argument for Anti-Natalism", S. Afr. J, Philosophy, 2012, 31(1)

 

121 [동물과 사람의 차이] 우리 대부분은 앞에 놓인 시간과 관련하여, 정언적 욕구(categorical dersires)과 조건적 욕구(conditional desires)를 모두 갖고 있다. 정언적 욕구는 우리의 미래 존재를 확보하려는 이유를 주는 욕구이다. 그리고 조건적 욕구란, 우리가 미래에 존재하게 될 것이라는 전제 하에, 이것 대신 저것이 성립되었으면 좋겠다는 욕구이다. 우리 대부분은, 다음과 같이 할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함에 있어서 우리는 흔히 비합당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 우리는 현재의 고통을 미래의 이득을 위해 참는다. 이 이득이, 미래를 제공하거나 형성하는 것으로 이해될 때 또는 형성하는 것만으로 이해될 때에도.

나는 동물은, 적어도 여기서 고려하고 있는 종류의 동물들이 정언적 욕구를 갖는다는 점을 부인한다. 그들은 계속 살아있을 이유를 제공해주려는, 미래와 관련된 종류의 욕구를 갖지 않는다. 그들은 계속 살아 있기를 원하지도, 그들에게 계속 살아가게끔 하는 그러한 것들을 원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또한 나는 그들이 조건적 욕구를 갖고 있다는 것도 부인한다. 그들은, 일정한 방식으로 미래가 펼쳐지기를 욕구하지 않는다. 그들이 그 미래를 살아서 보게 될 것이라는 조건 하에서 말이다. 즉 사람은 치과에 가서 미래의 존속을 전제로 한 이득을 위해서 현재의 고통을 참아내지만, 동물은 이런 짓을 하지 않는다. 우리는 동물에게 이러한 종류의 미래 이득을 부과할 수는 있지만, 동물은 스스로 이런 결정을 내릴 수는 없다.

그리고 동물은 이 두 종류의 욕구 모두를 결여한다. 그들이, 시간에 대한 관념과 시간을 걸쳐서 지속되는 그들의 정체성에 대한 발전된 관념을 필연적으로 포함하는 그러한 욕구를 결여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논의로부터 죽음의 가치에 관하여 몇가지 관찰이 이루어질 수 있다. 죽음은 우리에게 나쁘다. 그것은 우리가 (합당하게) 하고자 하는 바, 그리고 죽지 않았더라면 하였을 바를 막기 때문에 나쁘다. 나는 여기서 박탈 설명에 욕구 관련적 조건을 부가하고 있는 것이다. 죽음은 우리에게 좋은 삶을 박탈하기 때문에 그것 때문에 단순히 나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기를 욕구하는 좋은 삶을 박탈하기 때문에 나쁜 것이다. 동물들은 그러한 욕구를 결여한다. 그러므로 고통 없는 죽음은, 중요한 의미에서, 동물들에게는 나쁘지 않다. 그것은 우리가 후회하거나 피하려고 노력해야 할 무언가가 아니다. 죽음이 좋을 때는 언제인가? 우리가 죽지 않으면 심각한 고통에 처하게 될 모든 경우에 좋은 것은 아니다. 고통은 우리가 죽음을 피하기 위하여 선택할 이유를 가질 수 있는 그러한 것이다. 동물들은 고통을 참아내기를 선택할 수 없다. 그리고 그들이 죽음을 피할 그러한 이유도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의 삶을 연장시키기 위해 그들에게 합당하게 고통을 가할 수가 없다. 그 이유 때문에 또한 우리는, 그들이 고통을 겪도록 합당하게 허용할 수도 없다. 고통이냐 죽음이냐 문제될 때, 우리는 그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고통을 선택한다.

122 동물들은 사실상 분절화된 삶을 살아간다. 그러므로 시간에 걸쳐 지속되는 동일한 동물을 갖는 것과, 그들을 다른 동물로 교체하는 것은, 이 맥락에서는 심대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당신이 다른 동물의 쾌락을 위해서 한 동물에게 고통을 부과할 수 없듯이, 당신은 하나의 동일한 동물에 대해서도, 그 자신의 어떤 시점의 쾌락을 위하여 다른 시점에 고통을 부과할 수 없다.

 

123 이 논변은, 동물의 삶의 통합성의 결여에 호소하는 것이다. 그것은 고통에 비해 쾌락이 적다는 균형에 호소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것은 동물에 대해서는 반재생산주의와 친종결주의를 주장하는 것이다.

III.

우리의 삶은 다르다. 부분들은 서로 접합되어 조직된다.(knit together) 그리고 우리는 쾌락을 얻기 위해서 합당하게 고통을 겪을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좋은 삶을 살 수 있고 실제로 종종 좋은 삶을 산다. 그리고 그러한 삶들은 그것들이 그 안에 고통의 시기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좋은 것으로 남는다. 그러한 삶을 종결시킬 이유란 없다.

하나의 널리 견지되고 있는 견해에 의하면 우리는 사람(persons)이다. 여기서 사람은, 준 기술적인 용어로서, 심리적 속성에 의해 특징지워진다. 그들은 합리적인 자기를 의식하는 존재이며, 그들과 다른 존재가 구분되는 존재라는 것을 알며, 그들이 시간에 걸쳐 계속 존속하는 존재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흔히 이야기되듯이, 사람과 인간 종 사이의 관계는 동일한 것이 아니다. 태아, 혼수상태(the comatose), 그리고 죽은 자들은 사람이 아니다. 반면에 사이보그, 돌고래는 우리 종에 속하지 않지만 사람일 수 있다. (이하 번역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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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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