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는 B의 행동을 바꾸려고 한다. (또는 행동에 영향을 미치려고 한다.)

A의 행위가 아예 없다면 B는 X를 하려고 했겠지만, A는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개입하여 B가 Y를 하기를 원한다.

 

이때 인간이 취할 수 있는 행위에는 네 가지 종류가 있다.

 

첫째, 주고 받기.

상대에게 무언가를 줌으로써, 상대로부터 무언가를 끌어내는 것이다.

여기에는 커피숖에 가서 돈을 주면 커피가 나온다는 가장 전형적인 상행위는 당연히 포함된다.

그러나 크게는 친구관계와 같이, 개개의 행위의 대가성을 따지지 않더라도, 그 관계 자체가 두루 두 사람의 삶을 좀 더 나은 것으로 구성해줄 때에도, 첫째 유형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관계의 이상(ideal)은 투명성이다.

상거래에서는 주고 받을 것이 명확하다는 의미의 투명성이 중요하다.

친구관계와 같은 보다 인격적인 관계에서는 서로에게 진실되다는 것이 중요하다.

주고 받기가 이상에서 멀어질 경우, 그것은 속이기로 타락한다. 속여서 자신이 줄 것처럼 하고 받아내는 것, 또는 상대에 대해 좋지 않게 생각하면서도 좋게 생각하는 척 해서 무언가를 끌어내는 것 등이 되는 것이다.

 

둘째, 권력을 통해 강제적으로 집행하기

경찰이 범죄자를 체포하는 것, 세무당국이 과세하는 것, 상사가 지시하는 것 등이 이러한 행위 양태에 속한다.

상대나 상대에게 속한 재산에 직접 물리력이나 그 법적 지위를 변경하는 형성권력을 행사하거나, 명령을 듣지 않을 때 가해질 불이익을 고지함으로써 이러한 행위는 이루어진다.

이러한 관계의 이상은 정당성이다.

강제적 집행을 수행하는 권력이 정당성이 없을 때, 그것은 날 것 그대로의 폭력에 가까워진다. 국가가 위헌인 법률에 의거해서 사람들을 마구 잡아들이는 경우 국가는 테러집단이 된다. 고용주가 부정의하며 위법한 방식으로 피고용인에게 지시를 내릴 때, 그는 그 작은 영역에서 불의한 지배권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반면에 정당성이 훌륭하게 갖춰진 행정권력의 매체는, 오히려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들이 안심하고 그 안에서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해준다. 자유를 침해하는 범죄는 잡히게 되어 있으며, 불법한 명령을 지시하는 공무원은 그 공직을 강제로 박탈당한다는 보장은, 사람들이 스스로의 기획 하에 삶을 꾸려갈 수 있다는 기반을 강화해준다.

 

셋째, 사실과 규범, 그리고 가치에 대해서 설득하기.

인간은 충동과 공포, 그리고 목전의 이득에 따라서만 행위하지 않는 동물이다.

많은 인간은 이성적인 이유(reasoned reasons)를 갖춘 행위를 하고 싶어한다.

이유에 근거하여 행위하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그 사람이 알지 못하거나 생각하지 못했던 좋은 이유를 제시하는 것(providing good reasons)은 그 사람의 행위를 바꿀 수도 있다.

이런 의미에서 적어도, 좋은 이유에 근거하여 행위하고 싶어하는 사람에게는, 신념에 대한 자유의지는 없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들은 주어진 근거들이 가리키는 '강제 없는 강제력'의 방향에 따라 신념을 채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떤 것이 증거에 의해 사실이다, 사실이 아니다, 어떤 것이 규범적 근거에 의해 타당한 규범이다 아니다, 어떤 것이 가치론에 기반하여 할 만한 일이다, 아니다를 이야기하는 행위 역시 이상(ideal)을 갖는다.

그 이상은 바로 이상적 대화상황이다.

이상적 대화상황은, 모든 이에게 참여할 동등할 기회, 모든 생각들이 도전에 열려 있고 토론에 열려 있을 것, 참여자들이 스스로에게 진실할 것, 그리고 모두가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동등한 힘을 갖고 있을 것이라는 조건이 갖추어진 상황에서 무한한 시간 속에 사람들이 의견을 주고 받을 때 발생한다.

물론 현실에서는 이상적 대화상황은 성립하지 않는데, 그렇다고 해서 이 이상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규제적 이상(regulative ideal)으로서, 그 이상에 명시적으로 어긋나는 제약들을 비판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넷째, 수치심 주기(Shaming strategy)

수치심 주기는 앞의 세 방법을 쓸 수 없는 처지의 사람들이 자주 사용한다. 이런 처지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행위가 타인의 삶에 이익을 주거나, 타인이 인정할 수 있는 관점에서 타인의 삶을 더 낫게 만들어줄 수 있다는 점을 보일 수 없다. 그리고 행사할 수 있는 정당성 있는 권력도 없다. 더 나아가 사실과 규범, 그리고 가치에 관해 설득하기에는 그 능력이 되지 않는다. 자신은 그런 능력이 된다고 착각하지만 실상은 그럴 능력이 되지 않기 때문에 손쉬운 방안을 찾는 것이다.

수치심 주기는 상대를 조작(manipulate)하는 한 방법이다. 즉, 상대방이 실제로는 그렇게 할 이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이유가 있다는 식으로 은연중에 착각하게 만드는 방법이다.

따라서 이러한 방법에서는 '이유 제시'는 아예 없거나, 빈약하기 짝이 없다.

수치심 주기에서 애용되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당위의 근거가 제시되지 않았음에도 당위의 형식을 사용하는 문장이다.

"---해야 한다"라는 문장은 실제로 규범적 당위가 아닌 것에도 즐겨 사용된다. 실제 그러한 문장을 활용하는 화자에게 이득이 되거나, 그 화자의 포괄적 선관을 관철하거나 하는 것뿐인데도 그런 어미로 끝내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낙인찍는 개념을 활용하는 것이다. 이럴 경우에 그 개념이 일단 제시되면 사람들은 대부분 자동반응을 갖는다. 이러한 개념을 함부로 어디서나 내미는 사람들은, 그 개념으로 인한 자동반응으로 지성의 활동이 마비된지도 모른 채, 단지 분류 명칭만 제시함으로써 논증을 했다고 착각한다. 

사람들은 이러한 수치심 주기가 '진정한' 이유를 제시하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다. 그것은 단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말과 시선을 신경쓴다는 진화적인 성향에 기초해서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눈치보게 만들기 위해서 내뱉어지는 말들이다.

 

사람들은 아주 많은 경우에, 상대의 삶을 더 낫게 해줄 것도 없고, 정당성 있는 권력도 없고, 또한 근거들을 제시할 능력도 없으므로 수치심 주기를 대단히 많이 사용한다.

 

이러한 수치심 주기를 사용하는 것은 결국 화행을 하는 주체에게 근거와 정당성이나 매력이 결여되어 있다는 증거다.

 

그래서 이 전략의 실체를 파악한 사람들은 이 전략에 대해 분명한 저항심을 가지게 된다. 그것은 타인을 조작의 대상으로 삼는 발화자의 태도를 두드러지게 드러내보이기 때문이다. "저 사람은 나를 의사소통주체가 아니라, 하나의 조작당할 대상으로 대하고 있다"는 인식을 갖게 되는 것이다.

 

전략의 실체를 파악하지 못한 사람의 삶도 그다지 좋게 진행되지 않는다. 그는 이리저리 휘둘리는 가운데 불쾌한 느낌만 갖게 되고, 이유들을 직접 검토할 기회로부터 멀어진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의 윤리적 존재로서, 이러한 전략을 사용하는 것을 삼가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 또한 윤리적 존재로서 우리는 수치심 주기에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

 

수치심 주기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가치의 중심이 확고하게 서 있어야 한다.

 

자신이 신경 쓰는 것과 신경 쓰지 않는 것을 명확하게 구분하고, 그것이 가치의 문법에 뿌리박고 있을 때, 우리는 사람들의 말이 근거 없는 수치심 주기인지, 아니면 주의를 촉구할 만한 것에 관한 진지한 이야기인지를 구별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인간은 주위 사람들의 말이나 태도라면 무엇이나 신경 쓰도록 진화해왔다.

그러나 진화를 통해 장착된 모듈은 곧바로 가치의 능력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인간의 자연적 성향 중 일부는, 이차적 욕구를 조정하는 우리의 능력으로 늘 극복의 노력을 필요로 하는 것들이 있다.

 

수치심 주기를 하는 사람들은 중심 없이 삶에 몰두하도록 만든다.

그러나 삶의 펼쳐진 모든 영역에 몰두하기에는 우리의 시간은 너무나 짧고, 우리의 주의는 제한되어 있다.

 

다른 사람의 행위를 바꿀 의도로 수행될 수 있는 전략 중 우리는 세 가지 전략에 집중해야 하며, 그것도 규제적 이상에 따라 집중해야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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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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