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일날 진행한 '민주주의의 질적 도약- 삼각 민주주의' 강의 교안과 강의 녹음 파일 입니다.

<강의교안>



<강의녹음 mp3>
1- 



-----아래 내용은 교안의 첫 장 내용입니다. 삼각민주주의의 제안 배경에 기술한 내용이기도 하고, 강의에서는 생략된 부분이기도 해서 소개 삼아 올려 둡니다----------------


삼각 민주주의 제안의 맥락

19세기 영국에서 보통 선거권과 비례 대표제가 도입된 뒤, 대의 민주주의는 어떠한 질적인 변화도 겪지 않았다.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많은 제도나 정책의 제안이, 그것을 실현해 줄 민주적 제도가 없기 때문에 학자들의 논문이나 시민단체의 문건 속에서 썪어 들어간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그렇다면, 민주적 제도에 대한 이 제안은, 스스로를 정치적 의제로서 내세워야 할 긴급한 이유를 가진 셈이다. 그리하여 강의자는 모든 체계가 짜여져 있는 학문적 논의를 기초부터 쌓아 올리기 보다는, 구체적인 개혁안을 먼저 제안하고서 이 개혁안이 충분히 추구할만한 가치가 있음을 예를 통해서 보여주는 방식을 택했다. 물론 실용적 제안은 전문적인 학문적 논쟁에 임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논쟁에 의미있게 뛰어드는 일은, 이 제안이 하나의 정치적 영향력으로 대두했을 때의 이야기이다.

강의자가 이 문제를 고민한 지는 6년 정도 되었다. 강의자가 민주주의 제도를 고민하게 된 것은 다소간 우회적인 경로를 통해서였다. 강의자 몇 년 전에 ‘학교를 넘어서’와 ‘탈학교의 상상력’이라는 책을 통해서 교육제도를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는 합리적인 제안을 내어 놓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합리적인 안은 약점이 있다. 그것은 매우 익숙해져 있는 통속적이고 잘못된 통념에 반한다. 따라서 합리적인 안이 좋다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노력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통념을 지지하는 것은 무비판적 습관임에 비해, 개혁안을 지지하는 것은 숙고된 이성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의 대의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이러한 노력을 개인이 비용을 투자하여 들인다는 것은 무의미할뿐더러, 이러한 노력을 들일만한 기회도 거의 주어지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인민은 매일매일의 일상생활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지식과 판단능력, 기준을 가지고 정치적 의사를 형성하며, 그 의사를 대표자를 뽑는데 쓰고 있을 분이다.

결국, 비심의적이고 편파적인 우리사회의 정치체제에서는 통념을 넘어서서 힘들여 생각해야 그 좋음을 알 수 있는 의제가 넘어야 할 벽이 너무나 부당하게 높다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강의자는 새로운 민주주의 제도를 탐구하기 위해 책을 읽고, 자료를 모으고,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강의자가 착안한 것은,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개인들의 질적 차이였다. 동일한 의사결정 능력, 동일한 정보 능력, 동일한 해석 능력, 동일한 판단 능력을 지닌 국민들로 이루어진 민주주의는 신화요, 환상이다. 대의제는 시간과 공간이 없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복잡하고 무수히 많은 의제들에 대하여 모든 국민들이 모든 분야에 대해 적절한 의사결정능력을 똑같이 지니지 못하기 때문에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에 대한 문제의식은, 지난 수백년간 정치철학에서 너무나 쉽게 엘리트주의로 비약해 버리곤 했다. 하지만 엘리트들 사이에는 대중을 넘어서는 동질적인 의사결정 능력이 있다는 가정 역시 신화에 불과하다. 국회의원으로 출마할 만큼 자산력이 있는 전문직이나, 일을 하지 않아도 잘 살아갈 수 있는 자산가들로 주로 구성된 엘리트 집단은 많은 경우 협소한 지식만을 가지고 있으며, 그 동기가 편파적이며, 심지어 종종 멍청하기까지 하다. 우리는 국회의원으로 출마할 수 있는 계급 집단에 속하느냐 마느냐로 그 의사결정 능력의 차이를 가늠할 수 없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매우 잘 알고 있다. 

국민의 의제제안, 심의능력은 인위적인 경계선으로 구분될 수 없다. 분야에 따라서 발휘될 수 있는 능력이 달라지고, 따라서 그 능력을 보지하고 있는 사람들도 달라진다. 설사 능력이 부족하다고 해도, 어떤 사람들은 심의와 의결을 하는 자들이 필요로 하는 중요한 정보를 갖고 있는 경우가 있으며, 대변해야 할 이해관계를 지니고 있을 수 있다. 이러한 능력의 차이를 가져오는 여러 요소들을 포괄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개념은 사회연결망Social Network이다. 그런데 민주적 원칙에 따라 제도화되어 있지 않은 사회연결망은 합당하지 않은 사적 이익의 추구와 그 추구를 위한 파당의 형성, 거짓된 지식의 대량유포와 교정력의 부재, 동원할 수 있는 정치적 자원의 불평등, 심의의 부재를 낳는다.

현재 대의제도 하에서, 실제로 구속력 있는 의결을 하는 곳은 국회다. 그리고 많은 행정입법을 하고, 재량해석을 하며, 전문적인 입법 발안을 하는 것은 행정부다. 그런데 국회와 행정부에서 영향을 미치는 사람, 즉 국회의원이나 행정부의 고위 관리가 되는 길은 대다수 국민들에게 거의 열려 있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국회의원이 되려면 돈이 필요하고, 전문적인 직업 정치가의 길을 걷는 것이 유리하다. 이런 정도의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산가이거나 아니면 돈을 많이 버는 변호사와 같은 전문 직업인들이다. 행정부의 고위 관리로 등용되려면 학계에서 유명하거나 아니면, 경쟁률이 어마어마한 고등고시를 합격하여 차근차근 승진을 순조롭게 해야만 한다. 한마디로 이들은 이 사회의 엘리트들이다. 

엘리트가 되느냐 마느냐는 인생의 꽤나 이른 단계에서 결정이 된다. 그리고 엘리트가 되는 것은 가정 환경이나, 유전적 특질에 의해서 많은 영향을 받는다. 엘리트가 되느냐 되지 않느냐의 많은 부분이 도덕적 정치적으로 책임있는 잘못이나 미덕에 의해 발생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그들에게만 정치적인 의사결정권을 배타적으로 부여하는 것은, 일반 시민들이 동등한 정치적 주체임을 자의적으로 부인하는 것이다. 

마흔 살을 먹은 노동자가 노조의 스터디 그룹을 통해서 조세 정의를 실현시킬 매우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안을 알게 되었다고 심지어 새로 만들 수 있었다고 하자. 시민단체와 접촉하고 대학의 교수와도 상담하여 안을 더 손질해서 지금의 조세제도 중 일부를 개혁하는 안을 만들었다. 이 사람이 이 안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과연 돈을 쏟아 부어서 국회의원이 되어야 하나? 그 나이에 다시 고등고시를 합격해야 하나? 아니면 국회의원이 될만한 선전 선동 능력도, 고등고시에 합격할 능력도 없는 사람은, 이러한 의제를 발안하거나 지지할 어떤 ‘영향력’이라 할만한 것을 가질 기회가 아예 없어야 하나?

지금의 대의제는 ‘없어야 한다’고 대답한다. 그러나, 그 이유는 말하지 않는다. 설사, 인민들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 ‘경향성’이나 ‘정체성’이 정당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대의’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어떤 정책에 대한 ‘명시적인’ 선호가 대의된 것은 아니다. 인민은 정당정치 하에서도 여전히 정치적 무력감을 느끼는 존재로 남는다. 다만, 자신을 간접적으로 대의하는 정부를 갈아치울 수 있는 무수한 권리-투표권-중 하나를 갖고 있음을 자각할 따름이다. 그러나, 투표권 이외의 별 영향력이 없는 삶은 정치적 삶이라 할 수 없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활동을 한다 해도, 그들이 누릴 수 있는 영향력은 국회의원이 누리는 영향력의 새발의 피도 되지 않는다. 

의제를 직접 다루는 최종적 의결권을 실제로 갖지 못한 인민은 언제나 정치적으로 소외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정치적 의사결정은 ‘압력’의 대상이지 ‘참여’의 대상이 아니다. 사실, ‘참여’라는 것은 의사결정의 주체가 되는 것이다. 반면에 ‘압력’은 ‘참여하는 자’에게 가하는 것이다. 자신의 의사가 어떤 결정권을 할당받지 못하고, 단지 ‘들어보는 것’에만 그친다면, 그것을 가지고 참여했다고 말하기에는 참으로 낯간지러운 일이다. 

정치적 무력감은, 그 사회의 현실을 개혁할 좋은 안들이 창조되고 넓게 퍼지는 일을 대단히 심하게 억제한다. 왜냐하면 정치적 무력감에 빠진 인민들은 쉽게 정치적 무관심으로 향하기 때문이다. 무관심은 무식으로 향하고, 무식은 심의의 반대에 가까운 위치에 놓여 있다. 어떤 이슈에 대해 열심히 읽고 주위 사람과 토론하고 해봤자, 국회의원의 콧털하나 건드리지 못할 바에야, 취미가 아닌 이상 그런 문제로 씨름을 할 필요가 뭐가 있을까? 여론조사? 여론조사는 매우 수동적인 이벤트다. 표본을 어디에다 잡을지도 모르는데, 내가 혹시나 여론조사 당하는 시민 중의 하나가 될까봐, 그것을 미리 대비해서 열심히 정치적 이슈에 대해 공부한다는 것은 정말로 비합리적인 일일 것이다. 어떤 이슈에 대해 열심히 공부했는데 우연히 그 이슈에 대한 여론조사 대상이 될 확률은 로또 복권에 당첨될 확률만큼이나 적은 것이다. 그렇다고 표집 대상이 되려고 모든 분야의 이슈를 다 섭렵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선발된 엘리트들만이 직접적인 의사결정권을 가지는 제도는 ‘폐쇄적인 제도’이다. 개방성이 매우 낮은 것이다. 설사 귀족들이 평민들을 매우 잘 대표한다 하더라도, 귀족들 내부에서만 권력이 순환된다면, 평민들이 정치적 무력감을 느끼고 곧 정치적 무관심에 빠질 것은 뻔한 일이다. 따라서 개방성의 정도는 심의성과 대의의 온전성 정도와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독립된 기준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여론조사형 중우정치와 편파적인 엘리트주의라는 신화적 극단 사이에, 현실에 대한 보다 세부적이고 정확한 분석이 놓여 있는 셈이다. 나는 이 분석을 끝까지 밀고 나간 끝에, 대의제의 성격을 획기적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는 보조 장치를 고안해 냈다고 믿는다. 

여기서 제안된 제도가 그 목표한 바를 이루기에 충분한 것인지, 또는 우리가 택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인지, 아니면 목표도 이룰 수 없으며 부작용만 생기는 실패작인지 판단하는 것은 독자들에게 달렸다. 이제까지의 강의에서 제시된, 정치체제를 비교 평가하는 여러 가지 기준들이 그 판단에 도움을 줄 것이다. 

그러나, 비심의적 여론조사로 간접적인 압력을 받는 대의제도는, 결코 우리가 추구할 수 있는 정치체제의 종착지가 아니라는 사실, 그 사실만큼은 분명해 지리라 믿는다. 이 제안서가 잘못 인식된 역사의 종말을 넘어서는 부단한 여정의 일부를 이루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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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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