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공정으로서의 정의:재서술"을 읽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책에서 롤즈는 공정한 사회 협력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두 가지의 도덕적 힘을 가지며, 그것은 정의감의 능력과 선과의 능력이라고 하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왜 공정한 사회 협력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그런 능력을 갖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았고 다음과 같은 잠정적인 답을 내렸습니다.
 "공정한 사회 협력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그 협력의 조건이 되는 정의의 원칙을 이해하고 그에 맞추어 행동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정의감의 능력을 가진다. 또한 그들이 자신의 삶에 있어서 좋은 것을 알고 추구하는 것은 사회 협력의 동기를 만들며 그것을 지속될 수 있도록 한다. 따라서 선관의 능력을 갖는다."
여기서 제가 잘못 이해하고 있거나, 보충되어야 하거나, 더욱 적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지적해주셨으면 합니다.
 

답변:

 

잠정적인 답의 앞부분은 맞지만 뒷부분은 다소 부정확한 것 같습니다.

관련된 내용을 분명하게 이해하려면 롤즈의 <정치적 자유주의>를 보는 것이 좋습니다. 강의 I '근본 개념들'의 제5절 '정치적 인간관' 부분이 기본입니다. 이에 더하여 같은 책의 '강의VIII 기본적 자유와 그 우선성' 중 3절 '인간관과 사회협력관', 부터 6절 '자유의 우선성, II: 두번째 도덕적 능력'까지를 찬찬히 읽어보실 것을 권합니다.

관련되어 롤즈의 논의는 다음과 같은 두 노선으로 재구성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노선: 정의의 원칙이 수행하는 역할, 즉 '과제'에 기반한 재구성

(1) 정의의 역할은 상이한 선관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통합되어 살 수 있는 공정한 사회 협동의 조건을 규율하는 것이다. (정의의 원칙의 과제)
 (2) 첫째로, 이러한 공정한 사회 협력이란, 다른 사람들이 수용한다는 조건 하에서 합의조건을 합당하게 받아들인다는, 상호성과 호혜성의 이념을 표명한다. (과제를 충족하려면 합당성이 필요함)
 (3) 둘째로, 공정한 사회 협력이라 할 수 있으려면 각자가 자신에게 가치 있는 것, 자신이 증진시키고자 하는 것을 왜곡되지 않게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과제를 충족하려면 합리성이 필요함)
 (4) 이러한 정의의 역할에 수행해내야 한다는 정의의 원칙의 과제에 비추어볼 때, 우리는 원초적 계약의 당사자들이 염두에 두어야 하는, 질서정연한 사회의 시민들의 두 능력을 상정해야 한다. (즉 이러한 인간관을 상정하지 않으면, 애초에 정의의 원칙을 수립하려는 목적 자체가 무의미하게 된다. 즉 합당성과 합리성이라는, 과제를 충족하기 위한 전제가 인간관이라는 형식을 통해서 구현된다.)
 (5) 첫째로 질서정연한 사회의 시민들은 정의의 원리에 의거하여 행위하기 위하여 이를 이해하고, 응용하고, 유효한 욕구에 의해 정상적으로 추동되는 능력(정의감의 능력)을 갖는다. 둘째로 가치 있는 인생이라고 느끼는 그와 같은 선의 관념을 형성하고, 수정하고, 추구하는 능력(선관의 능력)을 갖는다.
 (6) 귀류법적으로 이러한 능력을 결여한 인간관을 갖고서 정의의 원칙을 구성해보자. 이는 공정한 조건을 이해하고 준수할 의사가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의 협력의 조건을 만들어내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는 노골적인 힘의 관철, 힘의 발현형식의 세부적인 패턴을 찾아내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공정한 협동의 조건을 찾아낸다는 과제를 충족하지 못한다. 둘째로 무엇이 자기 삶에 가치 있는가를 스스로 반성하고 수정할 능력이 없는 인간관을 가정해보자. 이는 스스로의 삶에서 좋은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그 좋은 것들을 추구할 공정한 조건을 마련한다는 의미가 된다. 이로써 결과로서 도출된 원칙은 사람들이 비판적 검토를 통해서 좋다고 생각한 바를 추구할 수 있는 조건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우연한 여건에 의해 고정된 패턴을 재생산하는 원칙이 된다. 그 패턴은 당사자들의 합리적 이익이나 선에 부합된다고 전혀 보증할 수 없게 된다. 사회적 협력이란 각 참여자의 자신의 관점에서 본 합리적 이익 또는 선 개념을 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평화로운 공존과 통합 하에서 공정한 협동의 조건을 규명한다는 정의론의 과제를 빗겨나가게 된다.
그렇다면 애초의 전제, 즉 정의감의 능력과 선관의 능력이 없는 인간관을 투입하여 정의의 원칙을 도출할 수 있다는 전제는 거짓이다.
그렇다면 정의감의 능력과 선관의 능력은 정의의 원칙을 규명하는 추론에 필수적으로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다.

 

두 번째 노선: 자유롭고 평등한 의사소통주체들 사이의 유효한 규범적 타당성 승인을 위해 필수적인 전제.

 (1) 정의의 원칙은 사회의 기본 구조에 관하여 가장 근본적인 규범으로서, 평등하고 자유로운 의사소통 주체들이 합의할 원칙이다.
 (2) 따라서 동등하게 자유롭다는 의사소통 주체의 지위는, 그 원칙을 추론해내는 논증 과정에서 항상 유지되어야 한다.
 (3) 자유롭다는 지위는 세 가지 의미를 갖는다.
첫째, 시민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서로에 대해서 각자는 선관을 형성할 수 있는 도덕적 능력을 가진 존재라고 생각한다. 만일 이 능력을 가지지 않는다면 예를 들어 이미 가지고 있던 신앙은 절대 버릴 수 없는 존재를 상정하게 되는 셈이다. 그러나 그 신앙을 합당하고 합리적인 근거에 따라 수정하고 변경할 능력이 없는 존재는, 그 신앙의 포로이자 노예이지, 자유로운 존재라고 할 수 없다. 그 사람은 단지 그 신앙을 담는 용기(container)에 불과한 것이 된다. 그릇에 불과한 자는 규범적 타당성을 승인하는 논증대화에 참여할 신임을 얻을 수 없다. 그러한 그릇과도 같은 존재는 논거들의 타당성을 음미하여 주장된 규범을 승인할 자유를 갖고 있지 않고, 오로지 자신이 이미 담고 있는 신조와 부합하는가만을 살펴보는 존재가 된다. 이러한 존재에게는, 어떤 신조를 변경시키는 것은 곧 존재의 죽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자유로운 존재로 스스로를 이해하는 공적 정체성과 도덕적 정체성은 바로 그 신조의 타당성을 음미할 수 있기 위한 기반이 된다. 따라서 살아가면서 자신의 삶을 가치 있게 하는 신조의 타당성을 음미할 수 있는 기반을 없애버린 존재는 자유로운 존재라고 할 수 없다.
둘째, 시민들은 스스로를 타당한 주장의 자기확증적 원천(self authenticationg sources of valid claims)이라고 간주한다. 즉 시민들은 자신들이 선관을 주장하기 위해 사회제도에 대해 주장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존재로 자신들을 생각한다. 이는 자신들이 이미 고정된 사회적 역할의 패턴을 수행하기 때문에 오직 그 때문에 발언권을 가지는 존재가 아니라, 그 자체로서 삶이 잘 진행되는 것이 중요한 존재로서 스스로를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기확증적 원천이 되지 못하는 자가 바로 노예이다. 노예와 관련된 법률은 노예 스스로의 청구에 의해 입법된 것이 아니라 노예 소유자들을 포함한 노예 이외의 사람들의 일반 이익을 위해 입법된 것이다. 즉, 노예는 사회적으로 죽은 존재이다. 그리고 의사소통주체들이 평등하게 자유롭다는 것은, 특정한 집단이나 개인들만 자기확증적 원천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동등한 자기확증적 원천이라는 뜻이 된다. 그러므로 특정한 신조를 믿고 있다거나, 특정 성별이나 특정 인종집단이나 특정 지역에 속한다는 이유로 더 많은 가치를 부여받는 것은, 이러한 의사소통주체의 지위와 모순된다.
셋째로, 시민들은 그들이 자신들이 설정한 목적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는 존재로 간주된다. 그래서 시민들은 자기들의 제기하는 주장의 비중이 자신들의 욕구의 심리적 강도에 의해 주어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아주 값비싼 기호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그 값비싼 기호의 포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 기호를 추구하기 위해 소요되는 비용이나, 그 기호의 바람직함에 비추어 기호를 변경시킬 수 있는 존재로 본다. 목적에 대한 책임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사람들은 자신들이 이미 붙들려 포로가 되버린 욕구나 신조를 최대한으로 관철시키려는 기계적 발화만을 할 수 있을 뿐이며, 그리하여 논증대화는 불가능하게 된다.
 (4) 평등하게 자유로운 존재가 아닌 이들 사이에서 도출된 합의는, 순수한 규범으로서의 자격을 결여한 것이다. 그것은 어느 지점에서는 누가 다수이냐, 누가 힘이 더 세냐, 누가 더 조작을 잘 하느냐, 누가 더 전략을 잘 짰느냐, 누가 더 완고했는가, 누가 더 위협을 잘 했는가 등의 규범과 무관한 사실이 결정적으로 개입하여 도출된 결론이다. 이러한 결론을 정의의 원칙으로 채택한다는 것은, 애초에 정의의 원칙을 도출하려는 추론의 목적에 반한다.
 (5) 즉 부자유한 시민을 가정하는 것은, 정의의 원칙을 도출하는 논증대화에서 수행적 모순을 범하는 것이다. 즉, 자유롭고 평등한 이들 사이에 합의될 규범을 찾으면서, 동시에 그 대화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부자유하고 불평등하다고 가정하는 셈이다. 따라서 시민들은 위에서 말한 의미에서 자유롭다고 가정되어야 하며, 이는 시민들이 정의감의 능력과 선관의 능력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고
Posted by 시민교육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BLOG main image
대안민주주의와 사회윤리학 담론 형성을 위해 노력하는 '시민교육센터-배움의 연대망’ 홈페이지 입니다. 이곳에서는 열린 강의 형태의 시민교육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트위터 아이디: civiledulee, 이메일: civiledulee@gmail.com (이한) by 시민교육
전체 글 보기 (912)
공지사항 (19)
강의자료 (86)
학습자료 (292)
기고 (509)
  • 게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