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니지만, 공부를 하면서 나이를 먹다 보면 정신이 혼란스러워지는 경우들이 있다.

 

그런데 왜 자꾸 정신이 혼란스러워질까 그 원인을 파악하지 못하면 계속 혼란스러운 상태로 있게 된다.

 

여기서는 혼란의 원인과 그 대처법을 생각해보기로 한다.

 

첫째로 논증적 아름다움이 결여된 주장들이 눈에 많이 띄게 된다.

공부를 많이 하기 전에는 이런 주장도 있고 저런 주장도 있다고 하며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듯이 빨아들이고 읽어갔던 주장들이 이제는 결함 있는 패턴의 반복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특히 그 주장들의 기반이 되는 것들을 철저히 한 번씩 검토해 보았다면, 이제는 그 주장들이 어디서 길을 잘못 들었는가가 보인다. 그래서 예전에는 아무것이나 읽는 데서 기쁨을 느꼈다면 이제는 오히려 읽는 것의 상당수가 괴로움을 유발한다.

 

둘째로 사람들의 불완전성이 눈에 두드러지게 띄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두드러진 결함들이 광장에, 말린 대구처럼 전시되어서 각자의 중심을 주장하는 것들이 대단히 비극적으로 느껴진다. 무엇이든 제한된 정보로 명명백백한 것으로 판정해버리고, 고려가 필요한 사항들을 고려하지 못한 채, 곧바로 과감한 주장과 행동으로 나가는 사람들과 더 이상 동질감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정신을 맑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요령이 필요하게 된다.

 

첫째로, 읽는 것의 중심을 논증적 아름다움이 얼마간 보증된 것으로 제한할 필요가 있다.

그럴려면 우선 논증이 결여된 글들은 읽지 않는 것이 좋다. 그러한 글들은 대개 사람들의 불완전성을 두드러지게 보여주는 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스마트폰의 보급 때문에 사람들이 가장 질이 낮은 글들을 가장 많이 읽는 환경에 늘상 노출되어 있다. 그래서 SNS의 자기독백적인 글이나 인터넷 커뮤니티 사람들에게 아첨하는 글들을 아예 읽지 않기로 원칙을 세우는 것이 좋다. 이런 시대일수록, 신뢰할 만한 저자들의 출간된 책과 출간된 논문에 중심을 두고 읽기를 제한하는 것이 좋다. 무언가를 제대로 논증한 책들에 자신의 정신을 집중하는 것이다.

 

둘째로, 정보는 오로지 자신이 능동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분야의 정보만을 주의깊게 본다. 그러므로 예를 들어 뉴스 같은 것은 지나치게 많이 보는 것은 좋지 않다. 만일 자신이 그 분야에 대해 무슨 할 말이 있을 것이고, 그래서 자료가 필요하다는 직감이 드는 것만 주의깊게 보는 것이 낫다. 세상만사가 어지러이 흘러가는 것을 전부 내 뇌에 퍼붓게 되면 뇌가 당연히 피로를 느끼게 된다.

 

셋째, 체계가 잡힌 글을 쓰는 프로젝트를 항상 실행하고 있어야 한다. 그런 글을 쓰기로 정신의 모드가 잡히게 되면, 그 모드에 부적합한 글들은 자연스럽게 걸러내게 되기 때문이다. 반면에 짧은 토막글들을 내뱉으면서 자신의 불만스러운 마음을 토로하는 글들을 매일매일 쓰다 보면 자신의 정신도 그 글들을 닮아가게 된다. 정리되지 않은, 정돈되지 않은, 질서 없는, 협소한, 산만한 정신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최소한 30페이지 이상의 분량이 되는 글을 쓰는 프로젝트에 항상 몸을 담그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글을 쓰기 위해 읽는 것들을 우선시하는 것이 좋다.

 

넷째, 자신이 지성의 전당에 모셔놓은 저자들의 책을 반복해서 읽는 것이 좋다. 이 저자들은 함부로 허투루 아무 말이나 하지 않았다. 그들의 책을 진하게 두껍게 철저하게 읽는 것은 정신의 질서를 잡는 데 매우 유익하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 전문적으로 공부를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마저도, 이러한 지적인 영웅들의 책을 문제설정과 그 해결방식에 초점을 맞추면서 주의깊게 읽지 않는다. 그러니 그들이 쓰는 글들도 질서가 잡히지 않고 산만하다. 문제가 아닌 것을 문제로 설정하는가 하면, 이리저리 학자들의 글을 따와서 죽도 밥도 아닌 글들을 생산해내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많은 정치학자와 철학자, 법학자들이 롤즈를 제대로 읽은 적이 없다. 그저 한 번 정도 스윽 하고 읽어본 경우가 많다. 롤즈를 진하게 읽으려면 계속해서 연관된 문제설정을 가지고 다시 접근해서 읽어봐야 한다. 그 문제설정들은 구체적인 사안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항상 이론의 다른 측면들을 조명하게 된다. 

물론 지성의 전당에 저자들은 넉넉하게 모셔놓는 것이 좋다. 그래야 읽을거리가 항상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이 저자들을 읽는 것은 명상을 하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가져온다. 이것은 자신이 현재 견지하는 편견과 일치하는 편견을 아무렇게나 내쏟은 작가들의 글을 반복해서 읽는 것과는 다르다. 그러한 글들은 아무리 읽어보았자 편견이 강화되고 정신이 협소화될 뿐이다. 읽기에는 즐겁지만, 그 즐거움은 정신을 산만하게 하고 핍진화하는 즐거움이다. 반면에 창조적이며 질서가 딱 잡힌 저자들의 글을 반복해서 읽고, 읽지 않은 글들을 찾아내서 읽는 시간을 정기적으로 가지게 되면, 새로이 발굴해낼 문제해결의 양식들이 창조적으로 질서를 잡아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예를 들어 스캔론의 지성의 전당에 모셔놓았다고 해보자. 그러면 이틀에 한 번씩은 스캔론의 책과 논문을 최소한 30분 이상은 읽게 된다. 이렇게 읽으면 그의 어법과 어조, 개념에 익숙해지는 과정이 서서히 발생하게 된다. 그리고 이 과정이 거듭되면 거듭될수록 그가 천착하려고 했던 심층적인 문제들의 구조가 머리속에 잡히게 된다. 이렇게 구조가 잡히고 나면 스캔론의 이론을 이용해서 여러가지 문제들을 풀 수가 있는 기초가 잡히게 된다.

 

이처럼 글을 읽는 것은 정신의 엔트로피를 늘리는 과정이 아니라 정신의 엔트로피를 줄이는 과정이 되는 것이 좋다.

 

읽기에 능숙하게 되고 나서 사람들은 자신이 읽는 것을 선별하고 읽는 대상을 조정하는 데 지나칠 정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저 자동반응식으로 눈앞에서 읽어달라고 유혹하는 것을 읽어내는 흐름에 휩쓸린다.

공부를 많이 안했을 때에는 그런 흐름에 휩쓸릴 때 나타나는 정신의 혼란이 의식의 표면에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나 공부가 어느 정도 되고 나면, 자신이 읽는 것들에 중심을 잡을 필요가 있다. 읽는 것이 곧 일종의 명상 효과를 가져오도록, 그리하여 정신이 맑게 유지되도록 의식적으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렇게 주의를 꾸준히 기울이는 사람이, 결국에는 정신을 맑게 만드는 그런 글들을 생산할 수 있다.

 

불완전성을 큰 자랑이라도 되는 듯 현시하는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자기주장이 가득 차 있는 것은 이 세상의 부조리한 실존이다. 인간이 자기 자신의 삶의 서사를 주인으로서 쓴다는 것은 그 부조리의 흐름에 이리저리 휩쓸려 넘어가지 않고, 뚜렷한 정신의 족적을 남기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러한 족적을 남기는 과정에 의식적으로 몰입할 때, 공부하는 사람의 정신은 맑은 상태로 유지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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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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