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락치기 능력을 부러워하는 A와 벼락치기를 해보지 않은 것을 오히려 부러워하는 B가 만나 대화를 나누었다.

 

(여기서 벼락치기라는 것은 '평소에는 도저히 해낼 수 없다고 생각되는 양의 능동적인 지적인 요소가 들어가 있는 일을 처리하는 능력'이다. 여기에는 시험공부에서부터 작품 활동, 보고서 쓰기, 작품 활동 등이 포함된다. 수동적인 지적 요소는 이미 다 알고 있는 규칙을 그저 적용하기만 하면 될 때 포함된다. 반면에 능동적인 지적 요소는 새롭게 이해하고 창조하는 경우에 포함된다. 사무적인 일이라 할지라도 능동적인 지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지 않은 일을 짧은 시간에 해내는 것은-이를테면 액셀에 자료를 기입하는 일- 여기서 말하는 벼락치기에 포함되지 않는다._

 

A: 저는 벼락치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런 능력을 일생 동안 발휘해 본 적이 없습니다.

 

B: 아닙니다. 벼락치기를 일생 동안 해보지 않았다는 것이 더 대단합니다. 벼락치기 능력이라는 것은 별 것이 없습니다. 거의 이것을 하지 않으면 끝장난다는 데까지 몰려서 억지로 하게 되는 것이니까요.

 

A: 아니오. 저는 그렇게 몰리면 그냥 머리가 펑 하고 터져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끝장이 나버릴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벼락치기를 두려워해서 평생 동안 미리미리 해두느라고 고생입니다.

 

B: 미리미리 해두는 것이 고생이긴 하지만 벼락치기의 고생에 비하면 그리 고생이 아닙니다.

 

A: 어떻게 그렇게 닥쳐서 할 수 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대단합니다.

 

B: 한 가지 잘못 아시는 것이 있는데, 닥쳐서 하는 일의 질(quality)은 미리미리 해둘 때의 질보다 훨씬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만큼 고민하는 시간과, 다시 뜯어보고 고치는 시간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벼락치기를 하는 본인도 별로 그 질이 좋지 못하다는 것을 압니다. 결국 벼락치기를 하지 않는 것이 낫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벼락치기를 합니다.

 

A: 왜 벼락치기를 하는 것일까요.

 

B: 평소에 에너지가 적게 들기 때문입니다. 평소에 설렁설렁 살게 되면 마음이 평온합니다. 그렇게 스트레스가 많이 없는 것이죠. 평소에 꾸준히 미리미리 해두게 하려면 평소에 자신을 좀 다그치고 박차를 가하고 해야 하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좀 발생하죠.

 

A: 그러나 평소에 해두지 않으면 불안해서 오히려 마음이 불편하지 않습니까?

 

B: 그 불편의 정도가 사람에 따라 다른 것 같습니다. 벼락치기 형 타입의 경우에는 좀 불편하더라도 그게 사람을 움직이게 만들 정도의 수준에는 이르지 않습니다. 평소에 해두는 사람의 경우에는 불편함의 정도가 사람을 움직이게 만들 수준인 거죠. 벼락치기를 습관적으로 하는 대부분의 사람이, 평소에 해 두지 않는다고 해서 막 불편하거나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A: 벼락치기의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지 않습니까?

 

B: 그래도 기간이 짧죠. 그리고 벼락치기를 해버릇 하면, 자신의 벼락치기 능력을 알게 된다는 점이 또 고약합니다.

 

A: 자신이 무언가를 해낼 수 있다는 능력을 알고 있다는 점은, 스스로에 대한 이해도를 높였으니 좋은 일 같은데 그게 왜 고약한 일입니까?

 

B: 벼락치기를 해낼 수 있으니, 일을 미루고 있더라도 더 마음이 편안해지는 문제가 생기죠. 그래서 또 벼락치기를 하게 되고, 이렇게 되면, '아 나는 닥쳐야 일이 잘 된다'라는 관념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일부러 닥칠 때까지 무의식적으로 미루기도 합니다.

 

A: 반면에 저처럼 벼락치기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면, 더더욱 미루지 않게 되는 것이겠군요.

 

B: 그렇습니다.

 

A: 그렇다면 벼락치기는 정말 상황이 객관적으로 여의치 않을 때, 할 능력이 있다면 좋은 것이긴 하지만, 그것이 습관이 되어서 매번 하게 되면 좋지 않은 것이겠군요.

 

B: 그렇죠. 그러나 시간 여유가 있을 때에는 할 마음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 어려운 부분이죠. 저는 대부분의 사람들, 그러니까 80%의 사람들은 벼락치기 성향이 있다고 봅니다.

 

A: 그러나 평소에 '불안'이라는 부정적인 감정이 사람을 움직여서 미리 조금씩 하게 되는 것도 그리 건강한 정신생활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제3의 길은 없겠습니까?

 

B: 생각해볼 만한 문제군요. 제3의 길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겠지요. 마음이 극히 불안해서 미리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업 자체에 몰입해서 어느 정도 재미를 느끼기 때문에 꾸준히 매일매일 하는 것이라고.

 

A: 그런데 매일매일 일상적으로 할 정도로 과업 자체에 몰입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 않겠습니까.

 

B: 자동적으로 되지 않는다는 점은 확실합니다.

 

A: 어떻게 보면 내적 보상 대 외적 보상의 문제라고 할 수 있겠네요. 과업 자체의 흥미 때문에 하는 것은 내적 보상이고, 외부의 제재에 몰려 마감에 쫓겨서 하게 되는 것은 외적 보상이라고 할 수 있지요.

 

B: 그러네요.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내적 보상이 나의 과업 수행을 이끌게 할 수 있을까, 그 고민을 해야 겠군요.

 

A: 내적 보상을 받으려면 과업 자체에 훨씬 더 면밀한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 같습니다.  이것을 음식을 먹는 것에 비유할 수 있겠군요.

 

B: 어떤 식으로 말입니까?

 

A: 음식을 먹을 때 우리가 제일 맛있게 먹는 방법은, 세 가지로 이루어집니다.

 (1) 예산 제약 하에서 최대한 맛있는 음식을 조리하거나 가장 맛있는 음식점에 가서 먹는다.

 (2) 음식을 먹을 때는 음식을 다 먹어치워야 한다는 점에 집중하지 않고, 매번 혀로 느껴지는 맛에 초점을 맞춘다.

 (3) 스트레스 쌓이는 뉴스를 보거나 논쟁을 하지 않는다. 가벼운 이야기를 하거나 아니면 조용히, 최대한 음식 맛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에서 먹는다.

 즉, (1) 음식 고르기 (2) 맛에 집중하기 (3) 여건 형성하기 세 가지로 이루어지는 거죠.

 마찬가지로 과업 수행도 두 가지 방식으로 주의를 기울여서 하는 거죠.

 (1) 시간과 정력의 예산 하에서 최대한 지금 할 기분이 드는 일을 골라서 한다.

 (2) 일을 할 때에는 일을 다 끝내야 한다는 점에 집중하지 않고, 그 일을 하는 과정의 느낌에 집중한다.

 (3) 스트레스 쌓이는 환경에서 일하지 않는다. 자기 과제를 하는 좋아하는 사람 곁에서 일하거나, 최대한 과제 수행 자체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에서 한다.

 

B: 일반적인 지침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2)가 어렵겠네요. 그 일을 하는 과정의 느낌에 집중하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관건이겠군요.

 

A: 네. 여기에는 실사구시의 자세로, 동원할 수 있는 요령은 작은 것이건 큰 것이건 모두 동원해보는 것이 낫습니다. 어떤 요령이 열쇠처럼 딱 들어맞는가를 마치 퍼즐풀이처럼 찾아가는 것이지요.

여기에는 자세부터 해서, 일을 시작하는 방식, 일을 마무리 짓는 방식, 해야 할 일들을 적어두는 방식, 일에 투여하는 시간을 정하는 방식, 일의 양을 정하는 방식 등등 수많은 것들이 들어갑니다.

의외로 사소한 데서 개선의 여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많은 분들이 키보드를 뻑뻑한 것을 많이 씁니다. 키보드만 아주 부드러운 것으로 바꾸어도 작업 능률이 한결 나아집니다.

그래서 질문은 '어떻게 하면 좀 더 저항감 없이, 쉽게, 작업 자체의 맛에 몰입할 수 있을까?'를 매일매일 생각하는 것입니다. 했던 대로 하는 것이 자꾸 미루고 벼락치기로 가게 한다면, 방법을 좀 바꿀 필요가 있죠.

 

B: 미루는 습성은 일단 디폴트로 두고, 그 습성을 내적으로 바꾸려는 것이 아니라, 그 습성에 힘을 보태는 요인들을 조정한다는 것이군요.

 

A: 네. 그러한 요인 조정의 요령은 <이것이 공부다>에서 상당히 많이 예를 들었습니다.

 

B: 하나의 예만 더 들어보시죠.

 

A: 네. 그러면 마감이 당장 닥치지 않은 장기적인 과업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그날그날 처리해야 하는, 상대적으로 그날그날 여유있게 처리할 수 있는 과업들은 제때 해내죠. 그렇지만 마감이 닥치지 않은 장기적인 과업은 계속 미루다 보니까, 인생이 진전되어야 할 때를 놓치고 맙니다. 예를 들어 복잡한 서류들을 다 챙겨야 하는 이력서를 쓰는 일이라든가, 아니면 논문을 쓰는 일이라든가 하는 것 말입니다.

 

B: 그렇죠. 이를테면 작품 활동을 할 때에도, 매일매일의 마감이 있는 작품 활동은 그날그날 해치우지만, 장기적으로 하나 큰 작품 프로젝트를 병행한다고 약속하고도 그 약속은 못지키죠.

 

A: 그래서 이를 경우에는 2시간에 5분이라는 원칙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그러니까 자신이 수행하고자 하는 장기적인 과업에 2시간마다 5분씩 투자하라는 것이죠.  

  일반 성인들의 집중력은 8분에서 12분 정도라고 합니다. 물론 스마트폰이 생활의 일부가 되면서 이 시간이 좀 더 짧아지고 있다고는 합니다. 그래서 스마트폰 문화까지 포함해서 5분이면 상당히 안전한 집중의 시간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리고 5분 동안 집중하면 상당히 많은 일을 해낼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일의 얼개를 잡는데도 5분만 깊이 생각해보면, 잠정적인 얼개를 잡을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얼개를 써놓으면 실제 일에 착수하는 게 저항감이 덜해집니다.

 

B: 하루에 8시간 일을 한다 치면, 2시간에 5분이면 하루에 20분 정도 하는 셈이군요.

 

A: 네. 장기적인 프로젝트는 하루에 20분 정도만 매일 해두어도 상당히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실제로 5분 정도 할 때, 계속 하고 싶으면 계속 되는 데까지 하는 겁니다. 이를테면 15분이나 20분 정도 계속 하고 싶으면 하는 거죠. 실상 몰입해서 하다 보면 처음에 5분만 딱 집중해서 해야지 하던 일이 20분을 넘어가서 상당히 진행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어쨌든 이를 위해서는 과제를 두 개 정도 동시에 수행하는 겁니다. 단기적인 과제와 장기적인 과제, 또는 하기 쉬운 과제와 하기 어려운 과제, 하고 싶은 과제와 하기 싫은 과제. 그래서 전자의 과제를 1시간 30분 정도 할 때마다 후자의 과제는 5분 정도 하는 거죠. 나머지 시간은 휴식 시간이라고 보고요.

다만 이렇게 쪼개서 일을 하려면, 일의 일지를 잘 적어두는 것이 필요합니다. 지금 하고 있는 것을 끊고 다음에 돌아와서 어디까지 했는지를 찾아보기 쉽도록 적어두는 거죠. 그리고 일을 하다보면 다음 할 일들이 주르륵 목록으로 생각나는 때가 있는데, 그것도 되도록이면 자세히 다 적어두는 것이 좋습니다.

 

B: 그렇군요. 그 방식이라면 그렇게 부담이 되지는 않겠군요.

 

A: 네. 이것은 하나의 방식입니다.

사실 더 핵심은 일이 진척되어 나가는 모양은 보면서 어느 정도 기쁨을 느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하는 일의 구조와 미학을 잘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B: 어떤 과업이든 잘 수행되는 것과 잘 수행되지 않는 것이 있죠. 즉, 수행의 질(quality)을 평가하는 규준들이 있죠.

 

A: 네. 그 규준들을 감안할 때 자신이 잘 해내고 있다면, 모종의 쾌감이 느껴지기 마련입니다. 예를 들어 논리적인 글을 쓸 때는, 그 글의 논증이 탄탄하게 진행되고 읽는 사람이 설득력 있고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게 쓰인다면, 그 글쓰기는 잘 진행되어 나가는 것이죠. 

 또, 과업의 리듬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요즘 글쓰기는 타이핑의 리듬과 떼어놓을 수가 없습니다. 글을 쓸 때 타이핑을 치는 것이 즐거울 정도가 되어야 글쓰기가 잘 진행되어 나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타이핑 치는 일이 리듬을 찾으려면 자세도 여려가지로 시도해봐야 하고 또 요령들을 동원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낮은 자세에서 타이핑하면 경쾌하게 타이핑을 못하는데, 자세를 꼿꼿이 세우고 옆으로 가끔 흔들어주기도 하고 고개도 돌려주기도 하면서, 눈도 감아 가면서 타이핑을 하면 훨씬 리듬감이 있게 되죠.

 이런 식으로 과업 자체의 탁월성을 자신이 성취해나가고 있다는 맛과, 그 과업을 해나가는 리듬의 맛을 느끼게 되면, 과업 자체에 몰입할 수 있게 됩니다.

 

B: 또다른 요령은 어떤 것이 있을가요?

 

A: 중간 중간 생각을 해야 할 때가 있는데, 그 생각을 필기구와 수첩을 가지고 좀 돌아다니면서 하면 좋습니다. 그래서 저는 회사에서는 아주 작은 간이 헬스장을 만드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몸을 좀 움직이면서 다음 할 일이나, 고민하고 있는 해결책들을 생각할 수가 있게 되니까요. 몸이 움직이면 뇌도 움직인다는 최근의 연구결과로 많이 드러난 바입니다.

 

B: 그럴법하게 들립니다.

 

A: 네. 공부하거나 일하는 모든 시간을 이렇게 맛을 느끼면 할 수는 없을지라도, 그 맛을 느끼는 영토를 조금씩 늘려가는 방법은 누구나 쓸 수 있습니다.

 

B: 제3의 길의 영토가 조금씩 늘어나는 이미지로 생각하면 되겠군요.

 

A: 네. 제3의 길이죠. 마감이 코앞에 닥쳐 몰려서 하는 벼락치기의 제1의 길도 아니고, 미리미리 해두지 않으면 큰일 날 것 같다는 정신건강을 나쁘게 만드는 항상적인 불안 때문에 하는 제2의 길도 아니고, 그저 잠정적인 계획대로 일을 해나가는 맛에 빠져드는 순간을 즐기는 제3의 길 말입니다.

 

B: 나는 지금 제3의 도로를 확장하고 있다는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는 것도 도움이 되겠군요.

 

A: 그렇습니다. 제3의 도로는 과업 자체의 탁월성의 규준을 충족하고 있다는 느낌, 그리고 그러한 과업을 할 때 발생하는 정신과 신체의 감각적 느낌으로 죽죽 달려가게 되는 것이지요.

 

B: 벼락치기냐 평소의 불안이냐 양자택일은 그렇다면 잘못 설정된 딜레마라고 할 수 있겠군요.

 

A: 네. 저는 이 제3의 길을 누비는 시간이 많은 것이 사람들의 정신 건강에 상당히 중요하다고 봅니다. 인생이 닥쳐서 완전 몰려서 죽을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면서 과업을 하는 시간이나, 아 지금 안해두면 큰일 나겠지 해서 불안을 느끼면서 과업을 하는 시간으로 점점이 박혀 있는 사회는 불행도가 높을 것입니다. 사회적으로도 과업 성취에만 초점을 두지 말고, 이 과업 과정을 진행해나가는 기술들을 잘 익히도록 하고, 그런 기술들을 잘 써먹을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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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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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기오소리
    2017.07.28 18:26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저두 일상에 적용해봐야겠네요. 도움될것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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