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 지배(rule of law)란 무엇인가?  

 

만일, 어떤 국가의 헌법이 단 하나의 조항만 갖고 있다고 해보자. '모든 법률은 총통이 즉석에서 문서에 법률조항을 적어넣고 서명을 함으로써 만들 수 있으며, 그렇게 만들어진 법과 충돌하는 기존 법은 소급해서 무효화된다'라는 조항만을.

 

이 국가에서 총통은 어떠한 일도 그 헌법조항의 절차에 따른 법률에 의해서만 처리한다고 해보자. 이 경우 법의 지배는 지켜지고 있는가. 즉 그 사회는 법치주의 사회라고 할 수 있는가.

 

그렇다고 말하는 것은 '법률주의'에 빠진 것이다. '법률주의'는 법치주의를 형식적 법률에 의거하기만 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협애하고 보잘것 없는 이념으로 타락시킨다.

 

우리 사회의 신문 사설에서 흔히 이야기하는 법치주의는, 기껏해야 이런 의미의 법률주의 이념에 불과한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면 이런 사소한 이념에 그치지 않는 법의 지배는 무엇을 목적으로 하는가.

 

법의 지배는 결국에는, 법의 지배에 대립되는 것을 억제하고자 하는 이상이다.

 

법의 지배에 대립되는 것이란, '정당화 이유가 없는, 자의에 의한 지배'이다.

 

공적 행위는 법원리상 충분한 정당화 이유가 있을 수도 있고, 충분한 정당화 이유가 없을 수도 있다. 법원리상 충분한 정당화 이유가 있을 때, 그것은 합법칙성이 있는 행위이고, 충분한 정당화 이유가 없을 때 그것은 합법칙성에 어긋난 행위가 된다.

 

권력을 가진 집단이나 개인이 합법칙성에 어긋난 행위를 마음껏 할 수 있는 사회는, 그 집단과 개인에게 구성원들이 노예처럼 휘둘리는 사회이다.

 

법치주의가 궁극적으로 배격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사회다.

 

"우리가 막아야 할 것은 지배자의 힘의 증대이다. 우리가 막아야 할 것은 개인과 그들의 자의성이다. 어떤 제도는 개인에게 자의적인 힘을 부여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것을 부인하는 제도도 있다.

이런 관점에서 노동입법을 고찰해보면, 우리는 두 가지 종류의 제도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대부분의 노동입법은 국가의 행정기구에 아주 작은 힘만을 부여한다. 아동 취업을 금지하는 노동법은 국가의 행정기구에 아주 작은 힘만을 부여한다. 아동 취업을 금지하는 노동법은 때로 관리들이 죄없는 시민들을 협박하거나, 제압하는 데 오용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종류의 위험은 통치자에게 노동감독권과 같은 재량권을 부여하는 법률에 내재된 위험에 비하면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다. 이와 비슷하게 시민이 자기의 재산을 오용했을 경우에 벌과금을 물려 벌을 주는 법률은 지배자나 공무원들에게 시민의 재산을 징발할 수 있는 재량권을 부여하는 위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국가의 경제적 간섭이 수행되는 두 가지 전혀 다른 방법에 도달한다. 그 첫째는 그 보호제도의 법률적 틀을 설계하는 방법(그 예로, 동물의 소유주나 지주의 권한을 제한하는 법률들을 들 수 있다)이다. 둘째는 통치자가 일시적으로 세워 놓은 목적들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에, 국가의 권력기관이 어떤 범위 내에서 조처를 취하는 방법이다. 우리는 첫번째 절차를 제도적혹은 간접적간섭이라 부르고 둘째 것을 대인적혹은 직접적간섭이라고 말할 수 있다."(Karl R. Popper, The Open Society and Its Enemies. 이명헌 옮김, 열린사회와 그 적들 II, 민음사, 1997, 186)

 

칼 포퍼가 이야기하듯이, 대인적, 직접적 간섭은 통치기구를 좌우하는 인간의 자의에 공적 행위가 결정되게 한다.

반면에 제도적, 간접적 간섭은 인간의 자의를 줄이려는 주된 목적으로 설립된 제도를 통해 공적 행위가 결정되게 한다. 

 

그리하여 법치주의를 통해, 구성원들은 '받아들일 수 없는 통제력의 배분'을 제어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어느 누구도 자신의 신체가 타인에 의해 함부로 훼손당할 수 있도록, 그 통제력을 타인에게 귀속시키고자 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려면 신체의 완전성을 포함한 신체의 자유를 각자에게 평등하게 부여하고, 그러한 자유가 침해당했을 때 즉시 방어와 구제조치를 실시하는 제도를 설립해서 실효적으로 운용해야 한다. 

반면에 어떤 공익을 위해 타인의 신체를 어떤 형식만 통하면 마음껏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그러한 제도는, 법률주의의 외양만을 갖춘 인간의 자의적 지배에 지나지 않는다. 

 

법치주의의 진정한 의미는 자의의 제어에 있다. 

그렇다면 자의를 부여하는 법률을 비판하고 개선을 촉구하는 것이야말로 법치주의의 정신에 부합하는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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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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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기오소리
    2017.07.28 18:16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많이 배우고갑니다. 법률주의란 말 첨 들어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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