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누군가는 신체와 재산권을 필두로한 행동이야말로 자유의 근간이라고 합니다. 선생님은 자유의 개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답변:

 

'신체와 재산권을 필두로 한 행동이야말로 자유의 근간'이라는 표현은 의미가 불분명합니다.
'필두로 한' 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거니와 '행동' 자체가 자유가 된다는 것도 이해가 안 됩니다. 그리고 '자유의 근간'이라는 표현도 알 수 없습니다.

이해하거나 공박하고자 하는 입장을 우선 명료한 최선의 형태로 정식화한 후에야, 그 입장을 논할 수 있습니다.

 

자유지상주의는
(1) 자기신체소유권(self ownership)에서부터 시작합니다.
(2) 거기서 나아가 자기 신체를 활용하여 노동을 투여한 대상에 대한 소유권리 잠정적으로 근거짓고 (왜냐하면 신체를 활용해 노동을 투여한 것에 대한 어떤 소유권리(entitlement)를 전혀 인정하지 않는 것은 그 노동 자체를 무화함으로써 결국에는 신체소유권에 대한 침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3) 그 소유권리(entitlement)를 외부 대상에 대한 절대적 소유권(absolute ownership)으로(즉, 당사자의 동의 의사에 의해서만 소유물을 다른 이에게 넘겨주거나 사용을 허락하게 만드는 권리로) 논증한 후 [이 논증에 소위 '로크적 단서Lokean Proviso'가 개입합니다.]
(4) 자유란 행위나 선택이 타인의 부당한 (즉 소유권 질서를 위배하는) 간섭에 의하여 제약되지 않는 상태로 이해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유권 질서에 부합하는 간섭은 자유에 대한 장애가 아니며, 소유권 질서를 위배하는 간섭은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 됩니다.

(이와 같은 각 논증의 단계는 모두 로버트 노직의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노직이 자유를 제약하는 장애인 간섭 자체를 '권리 침해'를 통해 규정하고 있는 것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즉, 자유지상주의에서 말하는 자유관에서는 자유의 관념(conception of freedom)보다 소유권리론(entitlement theory)이 선재(prior to)합니다.

그래서 자유지상주의에서 말하는 자유는 정치철학자들로부터 도덕화된 자유 개념(moralized concept)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즉, 자유지상주의자들이 정당한 것으로, 도덕적인 것으로 채택하는 질서가 먼저 이론적으로 확립된 후에, 그 질서에 부합하는 행위는 자유이고, 그 질서를 위배하는 행위는 자유 제약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지상주의자의 관점에서 챔벌레인이 농구 경기를 해서 사람들이 그 경기에 감격하여 모두 1달러씩 챔벌레인에게 기부하여, 챔벌레인이 시장에서 거대한 교섭력을 가지게 되었고 그 교섭력으로 어떤 결과를 얻어낸다면, 여기에는 자유가 문제될 것이 전혀 없습니다. 예를 들어 챔벌레인이 기업을 설립하여 자신과 같은 종교를 믿는 사람에게만 채용을 허락하거나, 혼인할 경우에는 퇴직한다는 혼인퇴직제에 서명해야 채용한다고 해도 여기서 자유는 전혀 침해된 바 없습니다. 챔벌레인이 퇴직후 경업금지약정을 노동자와 맺어, 그 노동자가 같은 업종에 죽을 때까지 어디에 가서도 종사하지 못한다는 계약을 법원을 통해 관철시킨다 하여도 이는 직업의 자유와 무관합니다. 마찬가지로 챔벌레인이 사립종합대학을 설립하여 필수교과목으로 종교교육을 받게 하여도 자유와는 무관합니다. 챔벌레인이 큰 토지를 매입하여 그 안에 공장 단지를 세우고 하나의 마을을 조성한다면, 자신이 소유한 토지 위에서 누군가가 어떤 정치적 표현을 하기 위한 집회를 하느냐를 마음대로 결정하여도 자유와 관련된 사안이 아닙니다. 모두 챔벌레인 마음대로이며, 모든 구성원들의 자유는 완전히 존중된 것입니다. 즉 자유지상주의는 일반적으로 헌법학계에서 이야기하는 기본권의 제3자적 효력은 이론적 오류(theoretical mistakes)로 보게 됩니다. (따라서 이 입장에 따르면 혼인퇴직제를 금지한 남녀고용평등법은 혼인의 자유를 보장한 법이 아니라, 고용주와 노동자의 계약의 자유를 제한한 법이 됩니다. 또한 노동자에게 종교 강요와 종교차별을 금지한 근로기준법 조항 역시도, 당사자들의 자유에 대한 부당한 제한을 추구하는 법이 됩니다.) 

반면에 일자리를 얻지도 못하고 도와주는 사람도 없어 곧 굶어죽을 사람이 물건을 훔치게 되면 그것은 물건 소유자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도덕화된 자유 개념을 도입하게 되면, '자유'(freedom) 그 자체는 논증에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게 됩니다. 결론으로서 이야기되는 자유관은, 오직 자유 이외의 다른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 해서 도출된 결론을 표현하는 수사에 불과합니다. Ian Carter는 이러한 접근법을 정의 기반적 접근justice based approach라고 지칭한 바 있습니다. 자유를 뺀 정의질서에 관한 논의를 다 하고 난 뒤, 그 질서에 위반한 것은 자유를 침해하는 제약이라고 평가하고, 그 질서에 부응하는 것은 자유를 전혀 제한하지 않는 행위라는 것입니다.

 

이는 얼핏 보기에는 우리가 사용하는 용법에 부합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고속도로란 원래 쌩쌩 달릴 수 있는 곳인데, 추석이 되면 고속도로에 차가 많아져서 쌩쌩 달리는 행위에 제약이 생깁니다. 그러나 그러한 제약은 부당한 것이 아닌데, 모두가 고속도로를 통해 귀향할 권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고속도로가 정체되는 상태는 누구의 자유도 제약하지 않은 상태라고 말하는 것이 그럴법하게 들립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우리가 사용하는 용법에 부합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또 다른 용법에 어긋나는 측면도 있습니다.

 

이것은 위 마지막 사례에서 '일자리를 얻지 못하고 곧 굶어죽을 사람이 다른 사람의 소유물을 훔쳐서 밥을 먹을 자유(freedom)는 어떻게 되었는가?'라는 질문을 사라지게 만든다는 점에서 알 수 있습니다.

 

자유 논증에서 자유가 사라져버리게 만드는 것은, 역사과정적 정의관을 택하고 있는 자유지상주의에만 두드러지는 특성이 아닙니다.

 

다양한 목적론적 견해 역시 무엇이 자유다라는 결론을 도출함에 있어 자유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마이클 샌델과 같은 이론가에게 자유는, 공동체가 객관적 숙고를 통해 덕스럽다고 승인하여 허락된 행위의 범주를 가리키는 개념입니다. 따라서 무엇이 자유에 속한다, 속하지 않는다를 따지는 작업은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 미덕이다, 악덕이다를 가리는 작업과 대응하게 됩니다.

 

오늘날 시대정신은 목적론적 견해에 의해 자유를 정의(define)함으로써 자유에 관한 모든 논의를 종결짓고자 하는 성향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논자가 추구하는 상태에 불리한 영향을 초래하는 행위는 단순히 자유의 범위에 속하지 않는다고 선언함으로써 모든 논의를 끝내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게 선언하면서 새로운 개념을 발명해서 이름을 붙이는데, 이렇게 이름붙이기를 통해서 논증이 없다는 점을 교묘하게 가리는 것이 매우 유행입니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너도나도 자기 자신을 제외한 이의 자유를 제약하고자 하면서, 어떤 목적상태를 인용하면서, 그 목적상태를 거스르는 행위에는 매우 감정적으로 불쾌한 이름을 붙여서 간단히 자유 범위에서 제외하는 식의 논의가 아주 만연해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도덕화된 자유 개념은, 자유 그 자체에 대한 분석과 추론을 통해 도출된 것이 아니라, 이론가가 선택한 좁은 범위의 특수한 고려사항에 의해 결정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결론은 이미 그 좁은 범위읱 특수한 고려사항을 선택했을 때 다 나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진정으로 자유에 관한 논증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다른 것에 대하여 실컷 논증해 놓고 거기에다가 그냥 자유라는 이름을 마음대로 붙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날 단순히 '무엇이 당신의 자유관이냐?'라고 물음으로써 무언가 생산적이고 의미 있는 대답이 나오리라고 기대할 수 없는 실정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런 질문을 해보았자, '나는 이런 특수한 목적 상태들을 대단히 중요한 것으로 여긴다'라는 심리적 선언으로 환원되는 답변만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의미 있는 질문은 '당신의 자유관이 무엇이냐?'라는 결론부의 도착점을 묻는 질문이 아니라, '자유를 논증에서 사라지지 않게 만드는 당신의 자유 논증 체계는 무엇이냐?'가 되어야 합니다.

 

이 질문에 답할 수 없는 자유이론가는 사이비 이론가들입니다. 즉, 오늘날 시대정신을 따라 자유를 입에 올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로 이러한 사이비 이론가에 해당합니다.

 

'자유를 논증에서 사라지지 않게 만드는 자유 논증 체계'는 다음과 같은 구조를 가집니다. 

 

자유에 관한 추론은 1인칭 시점의 실존적 자유(실현가능태)로부터 시작하여 2인칭 이상의 복수시점을 도입한 잠정적 자유, 그리고 그 잠정적 자유에서 출발하여 자유의 전 체계 강화 논증을 거친 확정적 자유라는 3단계를 거쳐야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서 사람들은 오로지 자유 그 자체를 위하여만 자유를 제한한다는 롤즈 <정의론>의 맥심을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롤즈는 <정의론>의 그 격률maxim을 이후에 Hart 등의 비판을 받고 <공정으로서의 정의>와 <정치적 자유주의>에서 수정했는데, 이는 이론적 퇴보에 해당하며, Habermas도 이에 관하여 같은 취지의 이야기-그런 수정은 이론적 개선이 아니다라는 이야기-를 한 바 있습니다.)

 

이러한 단계 구분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 언어에 깊애 배태된 여러가지 용법들을 의미 있게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예를 들어 '살인할 자유는 자유가 아니다'라는 용법은 자유의 유형 구분(type distinction)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모순 언명이 됩니다. 그러나 앞의 '살인할 자유'의 '자유'는 실존적 가능태를 가리키고, '자유가 아니다'의 자유는 자유추론이 끝이 나서 확인된 자유의 경계에 속하지 않는다는 확정적 자유의 언명에 관한 것으로 보면 모순이 아니게 됩니다.

 

자유지상주의자들의 소유권리론, 그리고 도덕화된 자유 개념에 대한 비판은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1, 2, 3단계를 거쳐 자유에 관한 추론을 통해 확정적 자유의 경계를 긋는 방법론에 대해서는 <기본권 제한 심사의 법익 형량>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위와 같은 책에서 다 다루기에는 자유에 관한 이론적 쟁점들을 매우 광범위하고, 학습자들이 길을 잃기 쉽기 때문에, 저는 <자유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준비 중에 있습니다. 이 책의 목적은 자유에 관한 광범위한 이론적 노선들을 모두 다루면서도, 체계화된 자유 논증 추론을 시민들이 할 수 있는 공적 정치적 문화를 만드는 것입니다. <끝>

 


 

Posted by 시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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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10.11 16:03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자기 내키는대로 하는 자유에 규범적인 이론을 삽입해서 자유라고 부른다는거군요 그렇게되면 규범이론이 똥이냐 금이냐만 중요해지지 자유자체는 들러리란 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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