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안정된 성격과 불안정한 성격

 

"저 사람 성격이 참 안정적이야./사람이 참 안정되어 있어."

"저 사람은 성격이 안정되어 있지가 않아./사람이 참 불안정해보여."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들어본 적이 없어 처음 듣게 되었다고 해도 '안정적/불안정적'이라는 대립쌍 개념으로 사람의 성격을 묘사하는 것은 그럴법해 보인다.

 

여기서 안정적이라는 것은 그 사람의 객관적 처지를 가리키는 말은 아니다. 프리랜서로 일하는 사람도 성격이 안정되어 있을 수 있다. 공무원으로 정년을 보장받았지만 성격은 불안정할 수 있다.

 

또한 여기서 안정과 불안정이 꼭 정신건강 전반과 관련되어 있지도 않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매사를 좀 비관적으로 보는 성향의 사람도 안정적이라고 평가받을 수 있다. 자기 미래는 잘 풀려갈 것이라고 확신하며 꽤나 많은 일상생활에서 즐거움을 발견하는 사람도 성격이 불안정하다고 평가받을 수 있다.

 

그러니까 이것이 포착하는 것은, 객관적 처지도, 그 사람의 정신건강 상태도 아니다.

그렇다면 이 개념쌍은 무엇을 포착하는가?

 

그것은 인간적 상호작용에서의 안정성을 의미한다.

 

안정적인 사람은 기분이 좋지 않을 때라도, 다른 사람이 대하기 어렵지 않다. 즉 다른 사람들은 그 사람과 서로 선(good)이 되는 인간적 상호작용을 불의의 기습을 당하리라는 걱정 없이 이어나갈 수 있다. 즉 그 사람과는 애착 형성과 진리 및 쾌락 공유라는 가치를 추구하기에 적합한 기반이 있다는 것이다.

 

불안정한 사람은 설사 기분이 좋을 때라도 대하기가 조심스럽다. 즉 다른 사람은 그 사람과의 상호작용이 언제 악(evil)으로 갑자기 평가받을지 알 수 없으며, 향후에 언제 불의의 기습을 당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그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언제나 합당한 불안이 있기 때문에 애착 형성이나 진리 및 쾌락 공유라는 가치를 추구하기에 적합한 기반이 없다는 것이다.

 

2. 자아의 인격적 통합성

 

그러므로 이것은 다른 사람과의 인간적 상호작용 하에 드러나는 주체의 인격적 통합성(personal integrity)하고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인격적 통합성이라는 것은, 자기자신을 그때그때의 행동을 조절하는 덕(virtue)을 실천하는 자로 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덕(virtue)이란 규범을 존중하고 가치를 비판적으로 지향하면서 이를 구체적인 상황에 녹여 구현할 수 있는 능력이다. 다른 말로 하면, 상황이 바뀐다 할지라도, 다른 사람을 동등한 규범적 지위를 가지고서 각자의 가치를 추구할 수 있는 존재로 존중하면서도, 의미 있는 가치를 지향하는 안착된 성향을 의미한다.

이로써 자신이 말하고 행동하는 것의 뿌리가 확고하게 정해진다.

뿌리가 정해진 사람은 덕에 어긋나는 일은, 설사 일시적으로 충동이 생겼다 하더라도, 거기에 휩쓸려서 무비판적으로 실행까지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에게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규범을 존중하고 비판적으로 검토된 가치를 지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자아가 인격적으로 통합되지 아니한 사람은, 자아는 상황에 종속된 변수가 된다. 자아는 외부 자극에 휘둘리는 일종의 반응 기계이며, 언제나 이 세상에서 자신이 차지하는 지위가 어떻게 되느냐에 노심초사하게 된다.

여기서 말하는 통합된 자아상은,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외면적 모습이 있다는 것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에 카리스마적인 모습을 보이는 사람도 혼자 있을 때 카리스마에 가득 차야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생활은 아주 우스운 것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카리스마라는 것은 다른 사람들을 이끄는 상황에서 표출되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A. C. Grayling, The Meaning of Things : Applying Philosophy to Life, <미덕과 악덕에 관한 철학 사전>, 에코의서재, 2006. 218-219면에서는 “우리는 하루에도 서로 다른 수많은 역할들을 소화하게 되었다. 그 역할들은 우리 정체성의 일부분을 표현하므로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다양하고 변화무쌍한 존재인 셈이다. 끄 역할들의 상호작용이 만들어내는 인물의 특성은 일정한 변화의 폭을 유지하면서 외부 세계에 대해 안정적인 외양을 구축한다. 예를 들면 많은 음표로 훌륭한 화음이 구성되는 것처럼 말이다. 역할 연기는 일상생활의 요구에 따라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또한 역할 연기는 일상 생활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때문에 필요해서 뿐만 아니라 일부러 찾아서 그 역할을 할 수도 있게 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면 “인간을 연극배우로 간주하면 많은 것이 설명된다. 예컨대 각 개인은 자아라는 감각을 스스로 정의하기 어려운데, 그것은 배우가 무대에 오르기 전까지 자신의 배역에 확신을 갖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또한 자신에 관한 진실을 찾아주는 왕도, 예컨대 심리요법 같은 것이 있다는 생각도 착각임을 말해준다. ‘나’라는 진실에 이르는 길은 여러가지이며, 그 중 적어도 몇 개의 길은 가봐야지만 그 진실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주체성을 찾으라’라는 가르침이 왜 그토록 실천하기 어려운가도 설명이 가능하다. 우리가 자아의 중심에 가장 가까이 다가갈 때는 바로 자기 자신에 알지 못할 때, 그것을 몰라도 행복할 때이기 때문이다.”고 쓰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통합된 자아상을 찾는다고 해서 한결같은 표면적 모습을 찾아야 할 필요는 없다. 어떨 때는 과묵하다가 어떨 때는 수다스러운 것, 후배에게는 인자하면서 선생에게는 공손한 것, 어떤 주제에 대해서는 회의하면서 다른 맥락에서는 단호한 결정을 빨리 내리는 것은 오히려 상황에 맞는 덕의 실천 면에서 적절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상황과 무관한 한결같은 표면적 모습을 가진 '진정한 자아'를 찾아야 한다거나, 그것을 찾았다고 생각하고 고수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인격적 통합성은 외면적 모습의 통일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덕을 실천하는 존재라는 그 기저에 놓인 인식에 의해서 달성되는 것이다.

 

3. 종속변수가 된 자아들의 전형적인 행태

 

예를 들어 '베수비오 화산 대폭발' 현상을 살펴보자.

어떤 사람이 평소에는 별 말 없이 지낸다. 그러나 그의 마음 속에는 지금 자신이 당하기만 하는 피해의 사건들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이것은 대단히 부당한 일로 그에게 생각되는데, 그 사건들은 자기 스스로 생각하는 자신의 위상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일이 생길 때마다 이런저런 점이 잘못되었다고 차분히 지적하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그때 그는 다른 사람에게 인기가 없어질까, 괜히 나를 싫어하지 않을까, 내가 알 수 없는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얻을 수 있는 이익을 혹시 잃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휩쓸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면 결국 이 사람은 막연한 불안이나 인기, 표면적 호감, 미래의 이득을 위해 타인의 부당한 행위에 동조하는 셈이다. 이 때 자신의 자아는 그때그때의 상황적 변수에 따라 주물되는 것으로 설정된다. 그러다가 이 사람이 이제 상대적으로 안전한 상황 놓이게 되었을 때 자신의 신경에 거슬리는 일이 하나가 생기면 갑자기, 자신이 당했다고 생각하는 모든 부당함에 생긴 울분과 원한을 토해내고 전가하는 행위를 보인다. 곁에 있는 사람으로서는 이 사람의 반응이 매우 갑작스럽게 여겨진다. 그리고 일어난 일에 비해 불비례적으로 과도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안정되지 못한 성격을 갖고 있다고 판단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행위자의 입장에서 이 모든 사건은 자아와 세상의 대립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일어난 귀결이다. 다른 주체들은 모두 '세상'이라는 뭉뚱그려진 실체로 혼융된다. 세상에 함께 존재하는 타인들이 모두 개별자로서 독자적인 규범적인 지위와 가치지향을 갖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는다. 세상이 나를 이렇게 핍박했으니, 나도 세상에 대해 분개를 표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화풀이한다'는 것은 불안정한 성격을 가진 이들이 그들의 관점에서는 아주 자연스럽게 보이는 행동이다. 즉 세상에 고분고분 해줘서 보상을 받을 것으로 기대했는데 이렇게까지 신경을 긁다니 도저히 참을 수 없도다, 세상이여 나의 복수를 받아라, 하는 정당한 대응인 것이다. 자신에게 핍박을 한 사람도 세상이요, 자신이 화풀이한 사람도 세상이니, 이는 공정한 복수에 해당하게 된다. 따라서 이런 사람을 대하는 주위 사람은, 사실 독자적인 권리주장의 원천으로 대접받지 못한다. 대신에 이 사람이 받았다고 생각하며 차곡차곡 쌓아두었던 피해를 어느 순간 폭발시킬지 모른다는 관념을 갖게 된다. 즉, 그 사람과 지낸다는 것은 언제 대폭발할지 모르는 베수비오 화산 곁에 거주하는 것과 같다.

 

또다른 현상으로는, 뒷담화 쓰나미 현상이다. 불안정한 성격의 사람은 다른 사람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를 함으로써 자신이 올바른 사람이라는 점을 확인받고 싶어한다. 그런데 이 안좋은 이야기는 과연 실제로 일어난 일인지, 과장된 것인지, 아니면 전적으로 만들어진 이야기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통 다른 사람 이야기를 들으면 실제로 일어난 이야기를 한다고 여긴다. 그러므로 이런 뒷담화 쓰나미를 일삼는 사람 곁에 있으면 언제 사실이 날조되어서 자신의 평판이 떨어지고 기회가 축소당하는 일이 생길지 모른다. 이런 사람은 거짓말을 함으로써 다른 사람의 기회를 축소시켜서는 안 된다는 규범을 측면제약 원칙으로서 존중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은 개인이 아니라 역시 세상의 혼융된 일부이다. 따라서 세상에서 자신이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세상을 이용하는 것은 전혀 잘못된 바가 없다.

 

그 다음으로 신경 긁기 간헐천 현상을 보자. 불안정한 성격의 사람은 자신의 위상이 침해당하는 것에 대해 대단히 민감하다. 그러나 자신이 상대적으로 안전한 상황이 아니라면 베수비오 화산 대폭발을 할 수는 없을 정도로 비겁하기는 하다. 그러므로 통상의 경우에는 상대의 신경을 긁어댐으로써 대응을 한다. 즉, 같은 말을 해도 꼭 저런 식으로 말을 해야 하는가 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공무원이 쏟아지는 업무와 민원 때문에 과로하여 상당한 불만이 쌓여 있다고 해보자. 이 사태 자체는 안타까운 일이다. 그런데 이 사태를 해결하려면 적정한 인원을 투입하고 업무를 조정하는 일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그러한 인원 투입과 업무 조정에 대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으니, 좀 어리버리하여 품이 많이 가는 민원인에게 짜증을 내면서 경멸조로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게 교묘하게 선을 넘는 행위라서 민원인은 뭐라고 공식적으로 대응하기도 난감한 처지에 이른다. 물론 이 민원인도 불안정한 성격의 사람이라면 여기서 당한 것을 다른 곳에 가서 쏟아낼 것이다.

같이 일하는 사람의 개선될 점을 지적한다고 해보자. 그럴 경우 가장 효과적인 것은 문제해결을 지향하는 방식이다. 이 점이 기준에 못 미치고, 기준에 미치게 하려면 어떤 전략을 써야 하는지를 함께 고민하고 공유하는 것이다. 반면에 불안정한 성격의 사람은 이 기회를 신경 긁기 간헐천을 분출하는 계기로 삼는다. 그래서 상대방을 인격적으로 교묘하게 모욕하고 굴종적인 기분을 갖게 하면서 울쑥 울쑥 자신의 적대감을 실어 신경을 긁어대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과잉 냉온탕 현상을 보자. 불안정한 성격의 사람들은 처음 사람을 만났을 때, '저 사람은 나의 응당한 지위에 맞게 나를 대우해줄 거야'라는 기대를 갖는다. 그러므로 그 사람에게 과잉 온탕을 보여준다. 아주 살갑게 대하고, 아첨하고, 부탁하지도 않은 친절을 베풀고, 갑작스레 시간을 많이 공유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다가 그 사람이 나의 응당한 지위를 무시한다는 점, 또는 나와 세상에 대한 억견을 공유하지 않는다는 점을 알게 되면, 곧바로 과잉 냉탕을 보여준다. 여기서 과잉 냉탕이란, 마치 그 사람이 지구상에서 사라져버렸으면 좋을 것이라고 염원하듯이, 그 사람의 어떠한 규범적 지위도 고려하지 않는 악의의 발로를 말한다. 따라서 이를 상대하는 사람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는데, 이 어리둥절이 불안정한 성격의 사람을 또 화나게 만든다. 자기 잘못을 모르고 응당 반성하지 않는 저 태도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몸에 배인 친절이 아니라, 무언가 자신의 마음에 극히 들기 때문에 아주 살갑게 대한다는 점을 표정에 가득 드러내는 사람은 불안정한 사람이다. 그 사람의 친절은 시초부터 불안의 선을 담고 있다. 나의 기대에 부응하지 않는다면 곧바로 과잉 냉탕으로 저주를 퍼부으리라는 원한의 씨앗이 그 최초의 과잉된 온탕의 친절에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4. 관할권에 대한 의식

 

이 사람들은 자동반응기계처럼 인생을 살고 있다. 그들의 전제는 세상은 그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지위에 맞춰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은 세상이 자신을 핍박한 것을 언제든 기회가 되면 되돌려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주위 사람들의 반응에 노심초사하여 상황에 더듬이를 세우고 있다가, 폭발할 수 있을 때 폭발하고, 뒷담화 쓰나미를 몰아칠 수 있을 때 몰아치고, 신경을 긁을 수 있을 때 긁는다.

그런데 세상은 부조리하고, 부조리한 세상 속에서도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운영할 관할권을 갖게 된다. 즉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일 속에서 가치를 향유하며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자극에 종속된 충동에 휘둘릴 것인가를 결정하고 결정한 대로 실천할 관할권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불안정한 성격의 사람은 부조리를 직시하지도 못할 뿐더러, 관할권에 대한 의식도 희미하다. 따라서 아메바가 외부 자극에 반응하듯이 반응을 토해 놓는다. 그리고 외부 자극은 상황에 따라 다르므로, 당연히 그들의 반응은 안정성을 가지지 못할 것이다.

세상과 나의 경계가 불명확하고, 나와 타인의 경계도 불명확하다. 경계가 불명확해서 응당 원래는 '나'에게 다 속하는 것들이 제멋대로 움직이는 것이 항상 좌절스럽다. 자아가 이렇게나 대폭 인플레되어 확장된 사람에게는, 안정된 것이 있을 리가 없다. 세상은 항상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일어나며, 자신과 일치된 정신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이 넘쳐난다.

즉 이들은 자신의 관할권이 세상 전체를 포괄하기도 하면서, 자기 자신도 포괄하지도 못하기도 한 것이다.

관할권에 대한 의식이 희미하다는 것은, 자기 자신이 삶을 가치의 기반 위에 주도해서 살아가는 것이라는 의식도 희미한 것이다. 그런데 그 의식이야말로 자아의 통합성을 유지케 하는 중심핵이다.

 

5. 성숙해 간다는 것

 

누군가는 나이를 먹음에 따라 성숙해지고, 누군가는 나이를 먹음에 따라 오히려 더 미성숙해진다. 이 차이는 통합된 자아상을 가지고 규범과 가치를 기반으로 자신의 삶을 주도해 가는 사람인가, 아니면 응당 가져야 할 자신의 지위에 대한 강한 관념과 뭉뚱그려진 세상에 대한 반응만을 갖고서 사는 사람인가에 따라 갈리는 것이다.

통합된 자아상을 가진 사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시행착오를 통해 가치에 기여하지 않는 일들을 잘라낼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통제하여 집중할 수 있는 일에 초점을 점점 맞추게 될 것이고, 그 외의 일, 즉 중요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커다란 반응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삶은 가치의 측면에서 하나의 작품이 되며, 적어도 자신은 그 작품의 통합성을 알아보게 된다.

반면에 아메바와 같은 식으로 사는 사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이 응당 얻었어야 하는 위계에서의 지위에는 못미친다는 생각이 분명해진다. 30, 40, 50, 60이 되어 더 이상 미래에 위계에서 올라갈 가능성이 없어질수록 때 울분은 더 강해진다. 그러므로 베수비오 화산 대폭발, 뒷담화 쓰나미, 신경긁기 간헐천은 더욱 강렬해지고 눈에 뚜렷하게 뛰게 된다.

과연 어떤 사람으로 늙을 것인가.

자신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상황에서 사람들을 향해 쏟아내는 말들이 현저한 공격성을 띄는 사람은 아마도 늙어감에 따라 불안정한 성격이 강해질 것이다. 사회의 불이익으로부터 상대적으로 면제된 공간인, 친한 사람들에게 베수비오 화산 대폭발을 일으키거나 신경 긁기 간헐천을 습관적으로 구사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불안정한 성격을 심화시킬 가능성이 많을 것이다.

 

6. 실천적 함의

불안정한 성격의 면모를 가지고 있다고 스스로를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의 삶의 기반을 재검토하는 것이 먼저 필요하다. 만일 자신의 불안정한 성격을 자가진단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미 거기서 탈출할 가능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어느 정도 자신의 일차적 자아에서 거리두기가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 무엇이 인생에서 집중할 일인가를 주의깊게 검토하고, 그 집중할 일 중 자신의 관할권에 들어간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봄으로써, 어지럽게 반응하던 일상의 정신을 하나의 통합된 주제 아래에 정련할 수 있게 된다.

안정된 성격의 사람은 자신의 성격의 안정성이 변치 않는 것이 아님을 주의할 필요가 있다. 즉 그것은 이때까지 암묵적으로 알게 된 덕의 습관화에 의해 겨우겨우 구성된 것이다. 그러니 안정적 성격의 보유자라 할지라도 불안정한 성격을 가진 사람을 조심할 필요가 있다. 불안정한 성격을 가진 사람에게는 규범이나 가치는 반응의 종속변수이지, 삶에 대한 대응을 결정하는 독립변수가 아니다. 근묵자흑이라는 것은 성격의 안정성 측면에서도 적용되는 격언이다. 안정된 성격과 불안정한 성격은 정도의 차이다. 그리고 안정된 성격은 꾸준히 주의해서 보듬지 않으면 어느 순간 해체될 수도 있다. 불안정한 성격의 사람이 옆에서 신경을 긁어댄다면 당연히 안정된 통합성이 스웨터 실 풀려나가듯이 뜯어져나갈 수 있다. 따라서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조심스럽게 관찰할 필요가 있다. 자신과 견해를 달리 하는 이들에 대해서 담즙을 토해내는 이들이나, 외부자와 내부자를 가르고 외부자의 규범적 지위는 어찌되어도 좋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안정적 성격이라 보기 힘들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 안정적 성격이 아니라면 그 사람과 함께 인생의 도를 논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따라서 어떤 사람이 가치와 규범의 기반 없이 행동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파악한다면, 그 사람에 대해서는 동료 시민으로서의 예를 갖추어 대하면 될 일이다.

인생은 생각보다 짧은데, 안정된 성격의 사람과 만나서, 진리와 아름다움 등을 함께 논하고 공유하며 서로의 삶이 잘 진행되는 것에 관심을 갖는 애착의 관계를 맺는 일을 하기에도 모자란 것이다.

불안정한 성격의 사람들이 그렇다고 애착 형성의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그들의 세계상이 일치하는 동안은 서로에게 정서적 지지를 해주며 서로에게 도움을 받는다. 비록 그 끝은 좋지 않을 수 있을지라도. 따라서 적어도 친교의 영역에서, 사람들은 각자 자신이 살아가는 바대로, 자신에게 적합한 것을 갖는다. <끝>

 

Posted by 시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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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웃겨
    2017.12.27 13:35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베수비오 화산 대폭발, 신경 긁기 간헐천 현상, 담즙을 토해내는 등등.. 표현력이 탁월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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