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정원이 초과된 구명정이 가라앉고 있는 상황에서 제비뽑기로 희생자 한 명을 정하기로 모두가 동의하고 제비뽑기를 하였는데 막상 걸린 사람이 나가지 않고 버틸 경우에 이 사람을 강제로 바다로 떠밀어서 살해하는 경우에는 위법성이 조각됐다고 할 수 있을까요?

 

답변:

이 사안에서 위법성 검토는, 상대방의 동의 문제와 긴급피난이라는 두 주제를 따라 이루어집니다.

 

(1) 상대방의 동의

상대방의 동의는 범죄의 유형에 따라, 동의가 구성요건 해당성을 없애는 경우와 위법성을 조각시키는 경우로 나뉩니다.

A가 B의 물건을 가져가면서 B의 동의를 받았다면, B의 동의는 A의 행위가 절도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지 않도록 합니다.

반면에 A와 B가 프로 권투선수로서 시합에 임했다면 그들의 시합에의 동의는 폭행죄의 위법성을 조각시킵니다.  

이 차이는, 해당 형법 조항이 보호하고자 하는 법익의 침해가 발생했는가 하지 않았는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위 물건 가져가는 사례의 경우에는 물건 점유자의 의사에 의한 점유물의 지배라는 보호법익 자체가 전혀 훼손된 바가 없습니다. 물건의 점유자가 그 물건을 넘겨주는 행위는 지배권의 행사의 한 양태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권투선수의 사례에서는 얻어 맞아서 신체의 자유가 일시적으로 손상되는 법익 침해는 일단 있습니다. 다만 그 침해가 동의를 통해서 위법성이 없어졌을 뿐입니다.

 

살인죄의 경우에 보호법익은 피살해자의 생명입니다. 따라서 동의를 받건 받지 않건 보호법익 자체는 침해됩니다. 죽이면 사람의 목숨은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다만 살인에 대해 동의를 받으면 형법 제252조의 촉탁승낙살인으로 구성요건이 변경되기는 합니다.) 따라서 동의가 범죄 자체를 성립케 하지 않으려면 위법성 단계에 가서야 검토될 것입니다.

 

그런데 법적 구속력 있는 계약을 체결하는 법률행위에 의해서가 아니라면, 동의는 언제든 철회될 수 있으며, 동의가 사실적으로 철회된 경우에는 동의는 없는 것입니다.

 

질문한 사안에서 동의는 사실적으로 철회되어서, 동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경우 동의를 존재케 의제하려면, 그 이전의 동의로 법적으로 구속력 있는 계약, 즉 법원에 의해 집행될 수 있는 계약이 성립하였어야 합니다.

 

그런데 촉탁승낙살인 약정은, 약정 당사자가 이후에 마음을 바꾸었음에도 불구하고 법원에 의해 강제집행할 수 있는 종류의 법적으로 인정되는 계약이 아닙니다. 입헌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은 자신의 배경적 자유 자체를 넘겨주거나 넘겨받는 계약을 체결할 법적 권능을 가지고 있지 아니합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법적 권능을 인정하게 되면, 그런 종류의 계약(노예계약, 살인촉탁승낙계약 등등)을 체결해버린 국민은 더 이상 자유권을 갖지 않는 국민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헌법은 '모든 국민은 --의 자유를 갖는다'라는 형식으로 규정되어 있어, 국민 중에서 자신의 의사로 더 이상 헌법 조항을 적용받지 아니하게 되는 예외를 두고 있지 아니합니다. 그렇다면 국민을 국민이 아니라고 하는 모순규범을 도입하지 아니하는 이상, 그러한 계약체결 권능을 인정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 경우에는 동의가 법적으로 여전히 유효하게 존재한다고 의제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의제가 없는 상태에서 사실적으로 동의가 철회되었다면, 법적으로 동의는 철회된 것입니다. 따라서 동의는 없는 상태에서 살해가 이루어진 것이며, 위법성은 조각되지 아니합니다.

 

물론 현행법상으로는, 마지막에 그 사람이 동의를 철회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여전히 살인죄가 성립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을 죽이는 행위에 대하여 동의는 위법성을 조각는 효력은 없는 것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단지 그것은 구성요건을 변경하여 촉탁승낙살인으로 만들 뿐입니다.

 

(2) 긴급피난

 

긴급피난이 성립하려면, 위난이 존재하고, 위난을 피해서 구하려는 법익이 침해되는 법익보다 본질적으로 우월하여야 하고, 위난의 수단이 사회윤리적 적합성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이 경우에 긴급피난에서 말하는 위난은 존재합니다. 긴급피난은, 정당방위와는 달리, 위난의 원인은 묻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당방위 상황은 방위력을 작용받게 될 상대방이 법익을 침해하는 위법한 행위를 개시했어야 성립합니다. 반면에 긴급피난의 위난은 그 누구의 불법행위 없이도, 예를 들어 자연재해에 의해서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위난을 피해서 구하려는 법익도 생명권이고, 위난을 피하기 위해 침해하는 법익도 생명권입니다. 그런데 둘 다 생명권이기 때문에 본질적 우열 관계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다른 사람을 구하기 위하여 한 사람을 살인한다는 수단 자체는 사회윤리적 적합성을 갖지 않습니다.

 

그래서 긴급피난도 성립하지 아니합니다.

 

(3) 현행 형법에 따른 위법성에 관한 결론

 

결국 형법에 따르면, 동의의 측면에서는 (i) 현재의 동의가 없는데다가, 과거의 동의가 현재에도 미친다고 할 수 있는 법적 효력을 가질 수도 없어 동의 자체가 없는 경우이고 (ii) 설사 동의가 있다 해도 그것은 촉탁 승낙 살인죄로서 구성요건을 변경할 뿐입니다. 그리고 긴급피난의 측면에서는 (i) 본질적으로 우월하지 않은 법익을 구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거니와 (ii) 동원된 수단이 사회윤리적 적합성을 가지지 않아 긴급피난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다만 다음과 같은 추가적인 철학적 의문을 제기할 수는 있겠습니다.

 

(4) 본질적 우월에 대한 의문

 

여기서 한 쪽은 다수의 생명이고 한 쪽은 단히 한 명의 생명이기 때문에 본질적 우열관계가 성립하지 않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습니다.

 

이 점은 실제로 국가는 더 많은 수의 생명을 구조하거나 더 적은 수의 건강과 생명에 영향을 주도록 정책을 취해야 할 기본권보호의무가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분명 해명해야 할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기본적 산업활동이 두 종류의 유해물질 중 어느 하나는 발산해야 가능한데, 국가는 그 중 한 유해물질의 영향이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의 건강과 생명에 부정적이라면, 그 유해물질의 사용을 금지하는 해법을 택하는 것이 허용되고, 일반적으로 그렇게 택하는 것이 공직자들의 의무이기도 합니다.

 

또한 국가 구조대가 멀리 떨어진 두 무리의 사람을 구조해야 하는 상황에 빠졌는데, 당시의 상황상 오직 한 무리만을 구조할 수 있을 때에는 사람 수가 많은 무리 쪽을 구조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국가의 기본권보호의무 이행의 양태(즉, 선택이 불가피할 때에는 소수보다 다수를 구한다)를 인정하는 것은, 긴급피난에서는 다수의 생명을 소수의 생명보다 본질적으로 우월하다고 보지 않는다는 판단과 얼핏 보기에는 모순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다수의 생명의 구조가 소수 생명의 박탈을 정당화한다는 원리를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결국 서바이벌 로또(Survival lottery)와 같은 제도를 필연적으로 도입해야 됩니다. 즉, 한 명의 건강한 사람을 죽여 그 신체를 해체하여 다섯 명의 곧 죽음을 맞이할 질환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장기를 이식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래서 본질적 우월에 관한 질문은 딜레마에 처한 것처럼 보입니다. 즉, 한편으로는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관한 정책 결정이나 불가피한 선택적 구조의무를 수행할 때 구해지는 생명의 수를 생각지 않는다는 것은 비합리적이거니와 오히려 인간 생명의 존엄을 경시하는 것 같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다수의 생명이 소수의 생명보다 본질적으로 우월하다고 본다면, 입헌 민주주의 사회에서 보장되는 신체의 완전성과 자유에 관한 권리는 그 토대를 쉽게 잃는 것처럼 보입니다.

 

즉 생명의 수를 고려해야 할 때는 '생명권'을 집계하여 합산치를 내어 더 큰 쪽을 택하여야 하는 것 같고, 또 어떤 때에는 '생명권'과 같은 권리라는 것은 집계의 대상이 아닌 것 같습니다.

 

이 문제는 두 사안의 구조적 차이를 살펴봄으로써 알 수 있습니다.

 

선택적 구조의무를 수행하는 사안이나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 결정을 할 때에는, '침해'라는 적극적 행위가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즉, 이 경우에는 어떤 선택을 하여도 구조되지 아니하는 부분이 있는, 실존적으로 비극적인 측면이 포함되는, '구조'의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구조 선택 시에, 두 가지 '비'집계적인 원칙을 결합시킴으로써, 더 많은 생명을 구하는 원칙을 도출할 수 있습니다.

 

즉 '익명적 파레토 원칙'을 적용하는 것입니다.

 

Iwao Hirose, “Saving the Greater Number without Combining Claims”, Analysis, Vol. 61, No. 4, 2001, 341면에서는 익명적 파레토 원칙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나는 두 가지 비집계적인 조건을 도입할 것이다. (I introduce two non-aggregative condition)

 

불편부당성Impartiality: 두 선택지는, 만일 그 선택지들이 사람들의 정체성과 관련해서만 상이하다면 동등하게 좋다. two alternatives are equally good if they differ only with regard to the identities of the people.


파레토 Pareto : 일부 사람에게는 한 선택지가 다른 선택지보다 낫고, 그 선택지는 다른 어떤 사람에게도 더 나쁜 것이 아니라면, 한 선택지가 다른 선택지보다 낫다. if one alternative is better for some person than another alternative , and if it is worse for no one, then it is better than the other.

 

이제 Kamm의 논변은 다음과 같이 정식화될 수 있다. 비교하라:
X: = (구조, 사망, 사망)
Y: = (사망, 구조, 사망)
Z: = (사망, 구조, 구조).

 

괄호 안은 A, B, C 각각의 상태를 보여준다. 불편부당성 조건에 의하여, X안은 Y안과 동등하게 좋다. 그리고 파레토 조건에 의하여 Z는 Y보다 낫다. 결과적으로 Z는 X보다 낫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많은 이들을 구하는 것은 더 적은 이를 구하는 것보다 낫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불편부당성 조건도 파레토 조건도 두 사람의 권리주장을 집계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Kamm의 집계 논변은 서로 다른 사람들의 권리주장을 집계하지 않는다."

 

익명적 파레토 원칙의 함의는, 더 많은 생명이나 건강 쪽을 선택하는 정책 원칙이, 권리를 집계하는 유사공리주의적인 전제를 깔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즉 이 원칙의 선택은, 생명권을 집계하여 값을 할당하여 그 값이 더 크다는 전제를 도입할 필요가 없습니다.

 

반면에, 제시하신 사안은 익명적 파레토 원칙이 적용될 수 없습니다.

제시된 사안에서 두 선택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옵션a: 다 같이 가라앉아 죽는다.

옵션b: 한 사람을 먼저 죽이고 그 덕분에 나머지 사람이 살아남는다.

 

옵션a에는 어떤 살인 행위도 도입되지 않습니다. 단지 재난을 당해서 다 같이 죽는 사태입니다. 옵션b에는 한 사람을 죽인다는 행위가 도입됩니다. 그래서 두 선택지는 그 사태에서 '살인행위'가 개입하느냐 아니냐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정체성하고만 관련된다'는 조건이 충족되지 않습니다.

 

결론적으로 긴급 피난에서 본질적 우월 조건을 따질 때, 그 법익이 생명, 자유와 같은 개인의 존속 및 인격과 불가분한 것일 때에는, 집계를 하는 것이 정당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안의 경우 본질적 우월 조건이 충족되지 않습니다.

 

(4) 책임의 문제

 

그러나 이 경우 통상적인 살인죄의 죄책을 물을 수 있는지는 다시 살펴봐야 합니다.

 

제비뽑기가 이루어지기 전으로 돌아가서 생각해봅시다.

 

구명정 안의 사람이 세 명으로, X, Y, Z라고 하고 우연히 Y, Z의 의사가 합치하여 바다에 내던져서 죽어야 할 사람으로 지목된 사람이 X라고 해봅시다.

 

그 상태에서 X, Y, Z에게 나타나는 결과를 옵션a와 옵션b에 따라 표현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X       Y         Z

옵션a: X를 바다로 내던짐 : (죽음, 살아남음, 살아남음)

옵션b: X를 살해하지 않음 : (죽음, 죽음, 죽음)

 

Y와 Z는 X에게 초래되는 결과에는 실질적인 차이가 없다고 합니다. 5분 빨리 익사하느냐 마느냐의 차이가 있지만 죽음이라는 결과 측면에서 그 차이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이 점은 구성요건해당성과 위법성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구성요건해당성과 위법성은 양가적인 개념이어서, 성립과 조각 두 가지만 있을 뿐이지, 점진적인 값을 갖지는 않습니다. 만약 그것이 점진적인 값을 가진다면, 남은 생이 얼마 없는 노인을 살해하는 것은 남은 생이 긴 어린아이를 살해하는 것보다 구성요건해당성이 '덜' 하다거나 위법성이 '덜' 하다고 말하는 셈이 되는데 이것은 이치에 닿지 않습니다. 또한 모종의 점진성이 구성요건해당성과 위법성을 달리 만든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럴 경우 암과 같은 불치의 병이 진행되어 갈수록, 어느 순간 그 환자를 살해하는 것이 더 이상 살인죄에 해당하지 않거나 위법하지 않다는 결과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Y와 Z는 X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리가 X 당신을 바다에 내던지는 행위를 해도 X 당신은 죽고, 바다에 내던지지 않아도 X 당신은 죽는다면, 우리의 행위는 X 당신의 죽고 삶에 실질적인 차이를 가져오지 않았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 X는 다른 옵션이 있었음을 이야기합니다.

 

"Y가 내던져지거나 스스로 바다에 뛰어들었다면, 나 X와 Z가 살고, Z가 내던져지거나 스스로 바다에 뛰어들었다면 나 X와 Y가 산다. 왜 이 세 가지 옵션 중에서 하필 나 X가 죽는 시나리오를 택하여야 하는가?"

 

즉, X가 희생되거나 희생되지 않는 옵션만 있는 것이 아니라, Y가 희생되는 옵션도, Z가 희생되는 옵션도 있습니다.

 

이 중 어느 옵션을 취하더라도, 희생된 당사자는 하필 왜 나를 뽑았는가라는 항변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특히 그 선별이 나머지 당사자들의 합의에 의해 정해졌다면, 그 선별은 나머지 당사자들의 목숨보다 뽑힌 사람의 목숨이 소중하지 않다는 모종의 전제를 도입해서 이루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누군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렇다면 어느 누구의 목숨도 다른 사람의 목숨에 비해 경시된다는 전제를 도입하지 않고서, 우리 모두의 상태를 더 낫게 만드는 제안을 하겠다. 지금 우리의 보상 구조는 필연적으로 (죽음, 죽음, 죽음)이다. 이 보상구조를 (2/3확률의 생존, 2/3확률의 생존, 2/3확률의 생존)으로 바꾸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바로 제비뽑기다."

 

이 순간, 제비뽑기의 도입은 익명적 파레토 원칙을 충족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왜냐하면 어느 누구도 제비뽑기 원칙에 의해 특정되지 않고, 제비뽑기를 하지 않는 것보다 하는 것이 모두의 생존확률을 더 낫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비를 뽑았는데, X가 걸렸습니다.

그런데 X는 바다에 뛰어내리기를 거부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정확히도 원래의 제시된 사안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리고 이 원래의 제시된 사안에서는 동의에 의해서 위법성이 조각될 수도, 긴급피난에 의해 위법성이 조각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이미 X가 거부하고 있는 이상, 원래 제비뽑기로 의도했던 결과는 X에 대한 살인행위라는 새로운 행위를 개입시킴으로써만 초래할 수 있고, 그러면 정체성에 차이만 가져온다는 익명적 파레토 원칙은 더 이상 적용되지 않게 됩니다.

 

그런데 앞서 살펴보았듯이, 동의와 긴급피난에 의한 위법성 조각을 이 사안에 하지 않는 것은 모두 우리가 거부할 수 없는 타당한 일반적 원리에 의거한 것입니다. 이 원리를 거부한다면 우리는 생존 로또 제도를 받아들여야 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두 사람을 구하기 위해 의사가 직접 한 사람을 납치해서 해체하는 행위의 위법성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더 나아가, 계약에 의한 노예제도 받아들여야 할 것이며, 또한 장기기증을 신청했다가 수술대 앞에서 취소하여도 강제로 수술집행을 할 수 있다는 결론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러한 대안적 결론들은 모두 하나같이 '권리를 수치로 집계한다'는 유사공리주의적 특성을 지닙니다.

 

그런데 집계되어서 수치로 환산되고, 수치가 높은 쪽을 위해 낮은 쪽을 희생할 수 있는 것이라면, 권리는 그 본질적 특성을 잃게 됩니다. 권리란 자유롭고 평등한 사람들 사이의 훼손되어서는 안 되는 관계를 표현하는 것인데, 집계되어 우세한 수치를 가진 쪽이 그걸 훼손할 수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권리가 아니라, '잠정적인 이익 주장'에 불과한 것으로 변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논의를 차례로 따라가다 보면, 제비뽑기를 도입하는 것이 그 상태에서 허용가능한 대안처럼 보였는데, 실제로 제비뽑기의 결과를 강제로 관철시키는 것은 더 이상 허용가능하지 않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이것은 매우 역설적으로 보입니다.

 

제비뽑기는 제비로 뽑힌 사람이 거부할 경우에 결과를 관철시키지 못한다면 그 의미가 크게 감소합니다. 관철이 불가능할 경우, 자신이 뽑혔을 때에는 제비뽑기 결과의 실행을 거부하면서, 자신 아닌 다른 사람이 걸렸을 때에만 실행하자고 다시 제안할 수 있다는 소리가 되는데, 이것은 합당한 거부가 아닙니다. 자신에게 초래될 피해와 동등한 피해를 다른 사람이 입는 경우에만 받아들이겠다는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비뽑기는 제비로 뽑힌 사람의 동의에도 불구하고 강제로 그 결과를 관철시킬 수 있어야 공정한 해법으로서 온전한 의미를 갖는다고 할 것입니다.

 

이 점을 감안하면, 제비를 뽑은 사람이 강제로 희생되는 사안을, 그저 나머지 사람이 합의해서 지목된 사람이 강제로 희생되는 사안과 그 법률적 평가를 정확히 동일하게 한다면, 제비뽑기를 도입할 이유를 대부분 무화(neutralize)하는 셈이 됩니다.

 

제비뽑기 도입의 이유를 대부분 무화한다는 것은, 합당하고 합리적인 사람들 사이에, 제비뽑기를 도입할 이유(reason)가 거의 없다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거의' 없다고 하는 이유는, 제비뽑기로 뽑힌 사람이 자발적으로 바다에 뛰어들 가능성을 높여주기 때문입니다. 즉, 제비뽑기를 실시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자발적으로 뛰어들기를 주저하지만 자신이 제비로 뽑힌다면 어쩔 수 없다, 운명이다 하고 뛰어들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에서 약간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적 가능성만으로는 제비뽑기 제도를 충분히 유의미하게 하지는 못하는데, 제비뽑기가 아무런 구속력을 갖지 않고 제비뽑기 결과를 관철시키는 것이 살인죄로 평가될 것을 안다면, 누구라도 간단히 동의를 철회하여 그 결과를 거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이것은 심리적으로 누군가 자발적으로 영웅적인 희생을 할 확률을 증가시키는 사항일 뿐이지, 제비뽑기의 제도적 규범적인 의미를 구성하는 것은 아니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합당하고 합리적인 사람들에게, 어느 누구의 생존확률도 불공정하게 악화시키지 않으면서(합당성을 지키면서), 모든 사람의 생존확률을 높이는 선택(합리성이 있는 선택)을 무조건 포기하라고 하는 것은 기대가능하지는 않습니다. 즉, 제비뽑기에 의한 해결을 도입할 이유가 실제로 있습니다. 행위의 한 이유가 있는데도, 그 이유가 없는 것처럼 행위하라는 요구는 기대가능성이 매우 낮은 요구입니다.

 

즉, 공정하게 생존확률을 증가시키는 해법을 도입하지 말고, 스스로 희생하거나 사실상 모두가 익사하라는 요구를 법이 하는 셈이 됩니다. 이러한 요구를 실행하는 것은 기대가능성이 매우 낮습니다.

 

결론적으로 제비뽑기를 실행한 사람들이 제비로 뽑힌 사람을 강제로 희생시키는 행위는, 그 대안이 누군가가 자발적으로 스스로의 목숨을 포기하거나 아니면 다 같이 죽는 대안만을 받아들이라는 내용의 요구를 하는 법 준수의 기대가능성이 극히 낮습니다. (다시금, 기대가능성이 없다고 하지 않고 낮다고 하는 것은, 제비로 뽑힌 사람이나 다른 사람이 스스로 영웅적인 희생을 할 가능성이 아예 없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책임을 감경시킵니다.

 

따라서 이 사안의 경우에 제비뽑기를 강제로 관철시킨 살인죄를 저지른 사람들은 죄는 인정되나, 그 책임이 감경되어 통상의 살인죄에 비해 훨씬 낮은 수위의 처벌을 받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5) 규범적 권위의 본질적 성격

 

1) 두 의문

여기서 두 가지 의문이 제기됩니다.

 

첫째로, 책임이 크게 감경된다면 그것은 책임 단계라는 뒷문으로, 권리를 집계하는 사고를 들여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제기됩니다. 

둘째로, 왜 책임이 조각되지 않고 감경되는 것에 불과한가 하는 점입니다.

 

2) 권리 집계 사고?

 

첫째 질문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권리집계 사고는 권리에 의해 보장되는 법익을 모종의 방식으로 합산하여, 그 합산치가 큰 쪽의 권리가 승리한다는 식의, 권리충돌 해법입니다.

 

그러나 이 사안에서 책임을 감경할 때는 그런 해법을 취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상황의 특수성(즉, 누군가 죽거나 아니면 모두 죽는다는 특수성)과, 그 특수성 때문에  합당하게 도입될 수 있는 제비뽑기 절차의 온전한 의미를 거의 무화하라는 요구가 기대불가능하다는 점만을 논의함으로써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위 두 요건(상황의 특수성과 그 특수한 상황에서 도입된 특정 해법의 무화 요구의 기대불가능성)은, 일상적인 정의의 여건에서 권리 집계의 문제점을 가져오는 다른 사안에는 성립하지 않는 요건입니다.

 

권리집계 사고는 예외적인 경우와 일반적인 경우를 가리지 않습니다. 즉, 어느 때나 권리를 집계하여 합산치를 냄으로써 문제를 해결합니다.

 

그러나 앞서 논한 논의는, 일반적으로는 책임이 감경되지 않지만, 상황의 특수성 때문에 책임이 감경된다는 식의 해법을 취합니다.

 

얼핏 보면 권리집계 사고가 훨씬 일관된 것 같습니다. 이를 피하는 논의에 대해서는 왜 자의적으로 '예외'를 도입하는가라는 의문이 제기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규범이 갖는 권위가 작동하는 여건에 초점을 맞추게 되면, 이런 이분화된 사고가 더 타당한 것임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여건의 성격이 달라짐에 따라, 선택상황에서 규범이 갖는 권위가 본질적인 성격 변화를 겪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통상의 권리 사안을 논하는 여건은 '정의의 여건'입니다. 정의의 여건은 적절한 부족 상태와, 서로 다른 선관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평화롭게 공존하고 공정하게 협동할 의도를 갖는 것이 가능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제시된 사안은 이러한 정의의 여건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특히 제비가 뽑힌 사람조차 스스로 죽기를 거부하는 상태는) 누군가가 강제로 죽어야지만, 다 같이 죽는 상태를 피할 수 있는 비상상태입니다.

 

이 상태에서는 물리적으로 공멸하지 않고서는 다른 사람의 권리를 존중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권리존중과 함께 계속된 평화로운 공존과 공정한 협동이 이어지리라는 것을 전제한 일반적 원리들을 구성하는 규범학의 논의는 그대로 적용될 수가 없습니다.

 

이 점은, 상황이 '합당한 거부의 교착 상태'라는 점에 의해서 보여집니다.

이 상황에서는 누구라도 자신의 존재를 끝내게 하는 선택지는 부담이 너무 크다고 하면서 거부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거부를 인정하는 것의 대안은, 또한 마찬가지의 동등한 힘을 갖고 있는 거부에 부딪히는 선택지, 즉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교착 상태 때문에 아무것도 실행하지 못하게 되면, 결국 거부의 원인이 된 부담이 바로 자신에게 돌아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이 경우에 유일한 합당한 해법은 누군가 자발적인 의사로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 바다에 뛰어드는 것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렇게 하려고 하지 않을 때에는 합당한 거부를 받지 않는 해법은 없습니다.

즉, '합당한 거부를 받지 않는 행동 규칙'이라는 게 아예 도출되지 않는 것입니다.

 

이렇게 합당한 거부의 교착상태가 발생할 때에는, 공존과 협동을 지향하는 규범의 권위는 그 힘이 크게 약해집니다. 그러한 규범의 권위는 거의 대부분이, 평화로운 공존과 공정한 협동 상황을 전제로 하는 상황에서 끌어와지기 때문입니다.

 

공존과 협동을 지향하는 규범의 권위가 힘을 잃는 상황이 바로 극단적 전쟁상태입니다. 양쪽 모두가 서로의 존재를 절멸시키려는 의도를 갖고 있고, 기회만 있으면 그 의도를 관철하려고 하고, 이 사실을 양쪽 모두 알고 있을 때, 이들 중 어느 한쪽에도 '공존과 협동을 지향하는 규범'은 권위를 갖지 않습니다. 강력한 중재자를 설립하여 그 중재자가 폭력을 독점하지 않는 한, 이들에게 우선하는 것은 자기보존의 원리입니다. (물론 지금 다루고 있는 사안은 그러한 극단적 전쟁상태가 아닙니다.) 따라서 이 상황에서는 '살해하지 말라'는 원리는 그 규범적 힘이 발생할 전제인 정의의 여건을 잃게 됩니다. 그런데 이 경우 작동하는 자기보존의 원리는, 공존과 협동을 지향하는 규범과는 그 권위의 성격이 완전히 다릅니다. 즉, 공존과 협동을 지향하는 관계가 계속 지속될 것이고 그 관계를 보증하는 기구가 있을 것이라는 점이 전혀 전제되지 않은 상태의, 도덕적 행위 선택의 물음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오히려 이러한 규범 권위 성격 변화를 오롯이 반영하는 이론이야 말로 더 정합적이라고 하겠습니다. 이 둘을 같이 다루는 것은 겉보기의 일관성만 있는 것이고 실제로 정합적인 것은 아닙니다.

 

결론적으로, 사안의 책임 감경 해법은 권리 집계 사고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권리 집계 사고를 하지 않은 것은 '합당한 거부의 교착 상태'가 성립하였고, 이것이 성립하게 되면 규범의 권위가 크게 힘을 잃게 되기 때문입니다.

 

3) 왜 조각이 아니라 감경인가?

 

핵전쟁으로 지구가 파괴되어 아무런 협동적 산업생산도 이루어지지 아니하며, 희소한 자원을 내가 차지하지 아니하면 다른 사람이 차지하는 그러한 세계를 상상해봅시다. 이런 세계는 여러 영화에서 다루어진 바도 있습니다. 이런 세계에서는 질서정연한 사회의 기본적인 요건이 성립하지 아니합니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차등의 원칙도, 기본적 인권보장을 위한 기본권보호의무의 원칙도 적용될 근거를 잃습니다. 그러나 질서정연한 사회를 전제로 하여 적용될 여러 정의의 원칙은 더 이상 적용 대상을 잃게 된다 하여도, 자연적 의무(natural duty)는 여전히 남게 됩니다.  

 

자연적 의무는, 정의의 여건이 성립하지 않을 때조차도, 사람들 사이에 준수를 거부하는 것이 비합당한 의무입니다. 이러한 의무에는 무고한 사람을 살해하지 않을 의무가 포함됩니다.

 

따라서 핵전쟁으로 지구가 파괴되어 경찰도 군대도 없다 하더라도, 재미로 사람들을 사냥하거나 고문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그른 일이 됩니다.  

 

즉, 중앙에서 폭력을 독점하고 자원을 배분하고 법에 의해 자유와 권리를 보장해줄 권위가 없을 때조차도, 도덕의 상당 부분은 남게 됩니다. 이것은 그러한 경우에도 개인들 사이의 개별성(distinctiveness)가 성립하기 때문입니다.

 

난파한 배에서 구명조끼를 입은 사람에게 다가가 그 사람를 때려눕히고 강제로 구명조끼를 빼앗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의 삶을 구하기 위하여 다른 사람의 삶을 희생시키는, 자연적 의무에 위배되는 행위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난파한 배 근처에 구명조끼가 둥둥 떠다니는데 먼저 가서 구명조끼를 잡아 착용한 뒤, 다른 사람에게 이를 양보하지 않는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사안의 경우를 보자면, 다른 사람을 희생시켜서 자신의 목숨을 구하는 것은 자연적 의무를 위배하는 일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설사 그것이 매우 특수한 상황, 즉 구체적으로 계속되는 공존과 협동의 원리를 생각할 수 없는 사안일지라도, 책임이 조각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끝>

 

 

 

 

 

 

 

 

 

 

 

 

 

 

 

 

 

 

 

 

 

 

 

 

 

 

 

Posted by 시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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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성우맨
    2018.01.24 03:17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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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세한 답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선생님의 아름다운 문제 풀이 덕분에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2. 성우맨
    2018.01.24 03:17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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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가지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1. 제비뽑기 절차가 "어느 누구의 생존확률도 불공정하게 악화시키지 않으면서(합당성을 지키면서), 모든 사람의 생존확률을 높이는 선택(합리성이 있는 선택)"이라고 정의되는 것이 잘 이해되지 않습니다.

    제비뽑기 절차에 대해 '합당성'이 있다고 할 때의 '합당성'과 제비뽑기에 걸린 사람에 대해 룰 이행을 강제하는 것은 '합당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할 때의 '합당성'은 서로 다른 것인가요? 후자의 합당성 기준으로 보면 모두에게 (2/3)의 생존확률을 보장하는 '합리성' 있는 제비뽑기 절차는 룰 이행의 강제성을 전제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합당성이 있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2. 테러범이 탄 비행기가 빌딩에 충돌하기 전에 공중 요격을 해야 하는지와 관련하여,

    옵션a: 비행기가 빌딩에 부딪쳐서- 승객: 사망, 빌딩 안의 사람들: 사망.

    옵션b: 비행기가 공중요격 당해서- 승객: 사망, 빌딩 안의 사람들: 생존.

    옵션a에서는 비행기 승객들이 테러범에게 살해당하고 옵션b에서는 승객들이 국가에 의해서 살해당하기 때문에 두 옵션 모두 '비행기 승객을 살해하는 행위'가 개입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동등한 한편, 옵션 a에서는 빌딩 안의 사람들이 사망하고 b에서는 그들이 생존하기 때문에 옵션b는 빌딩 안의 사람에게는 더 나은 옵션인 한편 나머지 다른 사람들에게는 나쁜 점이 없기 때문에 '익명적 파레토 조건'이 충족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 2018.01.29 17:3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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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궁극적으로 보자면, 제비뽑기의 '거부하는 사람에게 관철시키는 부분'은 합당성이 없을 것입니다. 즉 '뽑힌 사람이 그 결과를 자발적으로 이행하는 것을 전제로 도입하는 제비뽑기'만이 합당성이 있을 것입니다.

      다만, 여기서는 시점 이동에 따른 역설적인 논의의 추이를 보여주기 위해서, 제비뽑기를 도입할지 도입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시점에서 제비뽑기 절차를 도입한다는 결정 자체에는 '합당성'이 있었는데, 막상 그 절차의 결과를 자발적으로 준수하지 아니할 때 그 결과를 거부하는 사람에게 강제하는 시점에 도달하게 되면 합당성이 없게 된다는 설명을 하였습니다.

      여기에는 역설적인 부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즉, 종합적으로 보자면, '뽑힌 사람의 자발적 준수가 있을 경우에만 결과가 이행되는 제비뽑기'만이 합당성이 있지만, 처음부터 그렇게 절차의 목적을 분명히 공지하고 제비뽑기를 도입하게 되면, 제비뽑기의 목적 자체가 사실상 무화됩니다. 이러한 특수성이 책임을 경감시키는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즉 판단 시점별로 '합당성'에 대한 판단이 달라져 보이는 현상 자체가 책임경감의 토대를 논증하는 것이라 할 것입니다.
    • 2018.01.29 17:34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이 경우에는 익명적 파레토 원칙 적용이 그대로 될 수 있는 전형적인 구조 선택 사안이 아니라 '침해'를 수반하는 정당방위 대응과 동시에 이루어지는 구조 사안이므로 다루어야 할 문제의 성격이 다른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이 문제는 결국에는 2명이 선로에서 일하고 있고 5명이 선로에서 일하고 있는데 5명으로 가는 고장난 트롤리의 방향을 바꾸는 일반적인 트롤리 문제와 다르지 않습니다. 즉 희생되는 사람들은 단지 수단으로서 대우된 것이 아니라는 논증을 할 수가 있습니다. 다만 이 논증 과정의 일부로 익명적 파레토 원칙은 상당부분 그대로 적용될 것입니다.
      책임 있는 공직자는 부득이한 경우에 그러한 명령을 내릴 수 있을 것이고, 그럴 경우 최선을 다해 파악하여도 그 상황에서 다른 가능성이 없었음을 증명한다면 위법성이 조각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만, 공중요격을 법률로 명문화하는 것은 책임자에게 구체적인 상황의 가능성을 경시하도록 하는 원인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인간존엄성의 원칙에 반할 수 있습니다. 동일한 내용의 법률이 독일의회에 의해 도입된 바 있는데, 독일연방대법원은 이를 인간존엄 원칙 위반으로 위헌으로 판결한 바 있습니다.
    • 2018.01.30 02:58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합당한 거부의 교착상태'에서는 '영웅적인 희생'이라는 실현가능성이 매우 낮은 일이 생기지 않는 한은 '합당한 거부를 받지 않는 해법'이 없는 것이라고 본문에서 선생님께서 설명을 해주셨는데도 제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지엽말단적인 질문을 드린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구명정이 가라앉고 있는 그 상황에서 합당하고 합리적인 사람에게 제비뽑기 절차를 도입하는 것은 충분히 합당한 선택으로 여겨질 수 있으나 (일반적인 상황 같으면 합당성이 있는 사람들이 그와 같이 공정성을 지키기 위해서 도덕적으로 고민해서 해법을 내놓게 되면 합당성이 있어야 되겠지만) 사실 그 상황은 누군가가 영웅적인 희생을 한다는 거의 일어날 가능성이 없는 일을 제외하고는 "합당한 거부를 받지 않는 해법"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합당한 거부의 교착 상태'이기 때문에 우리는 한편으로는 제비뽑기 절차를 도입하는 결정에 대해 합당성이 없는 것이라고 해야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상황이 "공존과 협동을 지향하는 규범의 권위의 힘"이 매우 약화되어 있어서 그 사람들의 책임이 크게 경감되었음을 인정해야만 한다는 의미로 이해를 하였습니다.
  3. 성우맨
    2018.02.10 01:22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가) 탑승 인원의 총 몸무게가 90kg을 초과하게 되면 가라앉는 소형 구명정에 A, B, C 세 사람이 타고 있는데 A, B는 각각 40kg이고 C는 100kg이라고 할 때, A와 B가 C를 바다로 떠밀어 살해하는 경우.

    (나) 세 명 모두 40kg인 상황에서 두 명이 한 명을 임의로 살해하는 경우.

    (다) 세 명 모두 40kg인 상황에서 제비뽑기를 하였고 걸린 사람이 나가지 않고 있을 때 그를 살해하는 경우.

    위의 세 경우 모두 누군가가 죽어야지만 모두 다 죽는 상태를 피할 수 있게 되는 '합당한 거부의 교착 상태'에서 일어난 살인이기 때문에 통상의 살인죄에 비해 훨씬 낮은 수위의 처벌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나)와 (가)를 비교한다면, (나)는 셋 중에 어느 한 명이 죽으면 모두 다 사는 상황인 반면에 (가)는 오직 C가 죽는 경우 이외에는 모두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나)보다 (가)의 여건이 더 열악하기 때문에 (나)의 살인자보다 (가)의 살인자의 책임이 더 감경된다고 할 것이고,

    (나)와 (다)를 비교하게 된다면, (나)의 경우와는 달리 (다)에서는 제비뽑기를 도입하였고, 이 제비뽑기는 모든 사람들에게 동의를 얻었고, 모든 사람의 생존확률을 공정하게 높이는 것이기 때문에 도입할 이유가 있는 해법(제비뽑기)의 의미를 법이 무화시킬 수는 없기 때문에 책임이 더 감경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가)와 (다)를 비교하는 경우에는 어느 쪽의 책임 감경 사유가 더 크게 작용하는지 어떻게 판단할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 2018.02.10 23:03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가)와 (다)의 책임 감경 사유의 크기를 정확히 비교하는 일은 힘들 것입니다. (가)의 경우에 행위의 비난가능성은 더 크지만, 또한 (가)에 처한 사람들은 도덕적 운(moral luck)이 더 열악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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