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맥락 과잉 속에서 자기자신을 몰아붙이기

 

인생 활기의 퇴락에 대한 또다른 반응은 '-해야 한다'는 수많은 당위의 맥락 속으로 철저히 들어가는 것이다. 오로지 주위 상황 또는 책무(obligation-스스로 약속하여 떠맡은 책임)에 의해 자신이 맡은 역할(role)이 삶을 끌고 가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반응은 빛을 잃은 인생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일을 잊게 만들기는 한다. 삶은 계속 던져지는 퀘스트에 의해 쫓기는 감각에 의해 주로 추동되게 된다. 그리고 이 퀘스트의 수행은 맥락화된 몰입 속에서 이루어진다. 즉, 어떤 퀘스트를 잘 해내지 못한다면 자신의 존재 의의가 위협받게 되리라는 암묵적인 전제 속에서 이루어진다. 즉 불안과 불안 해소의 연속, 그리고 다른 사람의 평가에 대한 눈치보기와 안심의 연속 속에서 쫓기는 롤러코스트를 겪는다. 이러한 롤러코스터 속에 허망함을 가려진다. 불안과 눈치보기의 감각은 기분 나쁘기는 하지만 어쨌든 껍데기가 되었다는 기분은 현상적으로 느끼지 않게 해준다. 이 점에서 이 대응은 일말의 적합한 면이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주의를 딴 데로 돌리기(distraction)라는 핵심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열심히 이리저리 움직이며 부산을 떨게 되면 인간 실존의 비극적 조건을 곱씹으며 응시하지 않게 해준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현명한 대응이 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겉으로는 분주해보이지만, 실상은 자신이 삶을 주도한다는 느낌은 전혀 없는 분주한 무기력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를 살펴보기 위해서 청소년기와 청년기의 퀘스트 수행과 비교해보자. 불안과 눈치보기가 청소년기와 청년기에 없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신체는 행복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유전자의 확산을 최대화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인간은 사회 속에 살아가는 동물이므로, 자신의 사회적 역할에 수반되거나 주위 사람들이 제시하는 임무를 불안에 쫓겨 가며 수행해내고 또 어떤 임무를 얼마나 잘 수행하느냐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렇게 했을 때에 유전자가 확산될 확률도 높을 것이다. 따라서 청소년기와 청년기에는 이런 유전자가 추동하는 느낌에다가 삶의 의미를 덧붙인다. 그들은 지금의 고생이 결국에는 장대한 의미의 구현으로 나타나리라는 막연한 느낌을 갖는다. 즉 청년기까지는 유전자가 추동한 불안과 눈치보기는 환상(illusion)과 함께 발생한다. 즉, 평가에 민감하게 임무를 수행해나가다 보면 무언가 멋지구리하고 원대한 일이 자기 인생에 발생하지 않을까 하는 믿음이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환상이 청년기까지 단단히 결박되어 있는 것은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 실제로 사회에서 지배적인 게임에 참여하여 그 게임에서 주어진 역할을 성공적 수행하는 것은 유전자를 확산시킬 확률을 높여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장년이 되면 멋지구리하고 원대한 일이 생길 가능성은 별로 없다는 것은 알게 된다. 그런데도 계속 어린 시절의 습관을 벗어던지지 못하여 과도한 임무를 맡고는 그 역할 수행에 치인다.  즉 이것은 인생의 허무에 대한 대응이라기보다는, 젊은 시절의 습관에 포로가 된 것뿐이다.

 

외부와 약속하여 자신을 구속시키는 일을 주의해서 최소화하지 않으면, 자신을 정신없이 바쁜 상황으로 몰아넣기 쉽다. 거기에 더해 생활 곳곳에서 시간을 낭비하는 요소들을 많이 넣어두면 무슨 일을 해도 항상 시간이 모자라기 마련이다. 시간을 낭비한다 함은 자신의 의식적 결정에 의해 시간을 보내지 아니하고, 그저 그 상황에서 주어진 자극에 수동적으로 끌려 반응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한편으로는 외부 자극에 아무 생각 없이 반응하고 나면 남은 시간은 사회적으로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기에도 늘 모자라게 된다. 따라서 수동적 반응과 책무에 의한 쫓김의 연속이 그의 삶을 특징짓는 형식이 된다. 다른 말로 하면, 더 이상 자신이 책임을 지고 삶을 주도한다는 감각을 포기함으로써, 삶의 허무에 대응하는 것이다.

 

이러한 생활형식을 취함으로써, 20대에 던졌던 질문들은 더 이상 의식의 표면 위로 떠오르지 않는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나는 어떤 삶을 살 것인가? 어떤 가치를 구현하고 향유하며 살아야 하는가? 어떤 길을 갈 것인가?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 그럼으로써 그 질문에 대한 만족스럽고 책임있는 대응을 이제는 못하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실망감을 가려버릴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조용한 환경에서 자기 판단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던 사람이, 스스로 소음이 가득한 환경에 몰아넣고는 소음이 시끄럽다고 헤비메탈 음악을 크게 틀고 머리를 뱅뱅 흔드는 반응을 하는 일을 반복하는 것과 같다. 즉, 이것은 장년의 허무에 대응한 것이 아니라, 쳇바퀴 속에 몰아넣음으로써 아예 그 질문이 제기될 여유를 없애버린 것이다.  

 

다만,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장년의 현명한 삶의 방식은, 청년기의 습관들을 버리는 것에 있다는 것을.

Posted by 시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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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기오소리
    2018.06.20 17:3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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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깊이 공감했습니다. 30대가 되어 제일 힘든 점이 항상 시간이 없다, 부족하단 것이었는데 그로부터 해방될수있는 실마리를 얻었습니다. 현자이십니다.
  2. 반달
    2018.06.21 19:57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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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요함 속에서 질문을 하고 의미를 건져올리는 일을 제쳐두고 허둥거리기만 하던 차에 이 글을 봤습니다. 명쾌하고 어딘가 위트까지 있는 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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