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글, 그러니까 원고지 20매 정도의 글(A4로 4페이지 이하)은 딱히 핸들링하는 데 문제가 없다. 그러니까 쓰면서 자신이 무얼 쓰고 있는지 길을 잃을 위험이 거의 없다.

 

그러나 원고지 40매가 넘어가게 되면, 글이 수미일관하게 진행되는 데 주의를 특별히 기울여야 한다.

 

핸들(handle)은 조종하고 사용하고 처리하고 통제하고 지휘하는 것이다. 즉, 영어에서 핸들링은, 어떤 일이나 사물을 그 원래 용법이나 진행방식에 맞게 잘 운영하면서 통제하여 나아가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나는 감당을 못하겠어I can't handle it라는 말은, 그 사태의 진행이 자신의 지휘와 통제를 벗어나서, 원래 되어야 할 바대로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을 뜻한다.

 

처리해야 할 일이 글쓰기인 경우, 글이 길어지는 바람에 핸들링을 하지 못하겠다는 것은, 논의가 수미일관하게 진행하도록 글을 짜임새 있게 구성하기가 힘들다는 것을 뜻한다.

 

왜 그렇게 될까?

 

사람이 작업기억에 담을 수 있는 정보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보통 우리가 짧은 글을 써 갈 때는, 글 전체의 흐름을 배경으로 염두에 두고 써나간다. 즉, 자신이 지금 쓰고 있는 문장이 논증에서 어느 흐름에 있는지 위치를 가늠하면서 써나가는 것이다. 잠시 길을 잃더라도 A4 한두 페이지 정도의 글을 쓸 때에는 시야를 약간 넓히거나 페이지 업과 페이지 다운을 한 번만 해서 보기만 하면 무엇을 쓰고 있는지가 바로 보인다. 그렇게 상기하고 나서 다시 자신이 쓰는 문장으로 돌아오면 간단하다. 이 모든 일들이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뇌에서 벌어진다.

 

그런데 글이 길어지게 되면, 작업기억(working memory)에 논증 흐름을 다 담을 수가 없게 된다. 왜냐하면 긴 글은 기본적으로 복합논증(complex of arguments)을 담고 있으며, 이 복합체의 구성부분 하나하나가 각각의 논증이 되기 떄문이다. 그리고 글을 써나갈 때에는 가장 기본이 되는 논증단위만을 염두에 두고 있을 수밖에 없다. 작업기억에 한 번에 담을 수 있는 정보는 7개 정도라고 한다. 그래서 7자리가 넘어가는 수는 계속 되뇌이지 않으면 몇 초 뒤에도 금방 까먹게 된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글을 쓰면서도 작업기억 속에서 처리할 수 있는 정보량도 7개를 넘을 수가 없다. 그런데 논증 복합체는 그 정보량이 어마어마하니, 제대로 요령을 쓰지 않으면 글을 쓰다가 길을 잃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실제로 논문 심사를 의뢰받아 하다보면, 글을 쓰는 것이 직업인 학자들조차도 수미일관성을 놓치는 경우를 가끔 볼 수 있다. 어떤 경우는 분명히 서론에서 풀겠다고 약속한 문제인데도, 그 문제는 건드리지 않고 변죽만 올리다가 글을 끝맺는다. 또 어떤 경우는 앞에서 정리한 것을 전혀 활용하지 않고 뒤의 논의를 불쑥 전혀 다른 틀로 시작해서 이어가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아마 글을 쓴 본인들은 이렇게 논의가 끊기고 전혀 엉뚱한 소리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할 것이다. 애초에 글을 써가면서 수미일관성을 조망할 수 있는 요령을 사용하지 않으니, 글을 다 쓰고 나서 읽을 때에도 수미일관성을 조망하지 않고 검토를 하기 때문이다.

 

이제, 원인을 알았으므로 그에 대한 해법도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정보량이 많아서 그것을 우리의 작업기억의 한계 내에서 다 다룰 수 없을 경우에 해야 하는 일은, 그 정보들을 범주화하여 꾸러미로 싸는 것이다.

 

논증하는 글은 논증의 핵심뼈대가 되는 명제들이 그 역할을 한다.

 

그래서 글을 쓰기 전에 핵심뼈대가 되는 명제들에 (1), (2), (3), (4), .... 번호를 붙여서 먼저 써보면 좋다. 이 명제들은 논리적 구조를 정확하게 가져야 한다.

많은 이들이 긴 글을 쓰기 전에 목차를 써야 하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목차쓰기에 도움을 주기도 하면서도 병행되어 이루어져야 할 이 작업을 놓친다.

 

먼저 이렇게 번호를 붙인 명제들을 먼저 쓰고 나서 목차를 쓴다. 물론 목차가 저 명제들에 일대일 대응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대한 저 명제들이 목차의 각 부분에 수미일관한 흐름을 가지고 들어가도록 만들면 좋다.

 

아예 목차를 명제들로 채우는 방법도 있다.

고틀로프 프레게가 산수의 기초를 이런 식으로 썼다. 그래서 목차를 보면, 프레게가 이 부분에서 논증하고자 하는 목표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게 된다.

물론 목차를 이런 식으로 쓰는 것이 관례에 어긋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럴 경우에는 목차를 먼저 이렇게 명제식으로 쓰고 나서, 최종적으로 퇴고할 때 목차를 관례적인 방식으로 고치면 된다.

이것을 '프레게식 목차 쓰기'라고 이름 붙일 수 있겠다.

 

프레게식 목차 쓰기를 하면 항상 글을 쓸 때에는 그 명제들 중 하나를 논증하고자 하는 것이라는 점을 정확히 알 수가 있으므로, 좌표를 잃지 않게 된다.

 

그리고 애초에 컴팩트하게 짜인 논증을 상세히 설명한 것에 불과하므로, 글이 중구난방으로 뻗어나가지도 않게 된다.

 

다른 요령은 글을 일단 최대한 간략하게 쓰는 것을 목표로 삼되,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경우에 말을 보태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대체로 글이 길어서 문제지 글이 짧아서 문제되는 경우는 없다. 학술지에서도 논문 분량 상한치만을 정하고 있지 하한치는 정하지 않고 있다.

유명한 인식론 논문은 2쪽짜리도 있다. 물론 새로운 아이디어를 설득하려면 좀 더 길게 설명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이렇게 설명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길어지는 것이지 처음부터 긴 글을 쓰겠다고 마음 먹는 것은 아니다.

 

물론 박사학위논문과 같이 어느 정도의 분량을 요구된다고 생각되는 것도 있다. 그러나 실제로 분량이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깊이가 요구되는 것이다. 간단하게 한두마디로 답할 수 있는 문제는 박사학위논문의 주제가 되지 못한다. 깊이 있게 파다보면 얼핏 보기에는 간단한 문제로 보였던 것이, 문제의 복합체임이 드러나게 된다. 그리고 이 복합체의 구성부분이 되는 문제에 대하여 해답을 하나씩 논구하다 보면 어느 정도 분량이 나올 수밖에 없게 된다. 예를 들어 "사람을 살해하는 것은 왜 그른가?"와 같은 질문이 그러하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자명하다고 생각될지 모르나, 그 자명성은 어떤 규범과 가치 이론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것이 결국 드러난다. 그리고 어떤 이론들은 통상적인 케이스들은 설명해주지만 비통상적인 케이스들은 설명해주지 못한다는 점이 드러난다. 예를 들어 고전적 쾌락주의 이론은, 앞으로 남은 인생의 순쾌락이 마이너스인 경우에는 그 사람을 죽이는 것이 옳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게다가 고전적 쾌락주의 이론은, 아이가 태어나서 살게 될 인생이 전체적으로 순쾌락이 양(+)이라면 재생산이 가능한 기간에는 최대한 아이를 재생산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함의한다. 더 나아가,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은 사람을 죽이는 것과 동등하게 그릇된 일이라는 결론까지 함의한다. 그러므로 죽음이 나쁜 이유를, 그 사람이 이 세상에 보탤 수 있었던 순쾌락의 양에 의거해서 설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런 식으로 저변에 깔린 이론(ulterior theory)들을 하나하나 분해해서 검토해가거나, 관련 쟁점들을 분설하다 보면 글이 길어지게 마련이다. 이는 탐구를 정당하게 하려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일이지, 쓸데없이 같은 소리를 길게 늘였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 아니다.

 

다시 말해, 답할 가치가 있는 어떤 질문이든 깊이 파보면 간단하게 답할 수는 없는 것이니, 결국 깊이 판 사유의 과정을 공유하려면 글이 자연스레 길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러 길게 하기 위해서 길게 쓰는 것은 아니다.

 

이 점을 명심하는 것은 중요하다. 이렇게 되면 아무리 긴 글을 쓰더라도, 결국 명제형태로 진술된 목표로 달려가는 과정임이 글의 어느 부분에 위치한 것을 쓰든지 명확하게 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 글의 위상을 드러내주는 명제들의 복합체를 이미 뼈대 형태로 진술했으니까!

 

요약하자면, 첫째로 논증을 번호를 붙인 명제 형태로 논리적 구조에 맞추어 정확하게 정리하고(물론 도중에 수정할 수 있다), 둘째로 글을 최대한 짧게 쓴다고 생각하고 시작하되 그 문제의 복합성을 온전히 다루고, 또 논증의 납득력을 높이기 위해 설명이 필요한 경우에 길어진다는 태도를 유지하면 좋다.

Posted by 시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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