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즐거움도 없고 지적이지도 않고 애착관계도 희미한 삶은 무의미한건가요. <삶은 왜 의미있는가>를 읽으면서 내내 그런 생각이 들어 절로 무력해집니다.

 

1. 질문하신 분의 삶에서 즐거움이 0이라거나, 지성적 활동이 0이라거나 애착관계까 0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아마도 '없고', '않고', '희미한'이라는 말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평가하여 점수가 작기 때문에 아예 '없고' '않고' '희미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규정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상대적 격차 때문에 자신의 삶이 무의미하다고 규정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의 삶 또한 그렇게 즐거움이 많거나 지적이거나 애착관계가 두껍지가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삶은 즐거움은 조금이고, 진실을 알고자 하지만 거짓에 빠져 허우적 거리다가 그 사실도 모른 채 지내며, 또한 애착 관계가 원하는 대로 형성되는 경우란 오히려 드뭅니다.

모든 인간의 삶은, 삶의 질을 평가하는 어떠한 이론에 의거해서 살펴보아도, 그다지 좋은 질(good quality)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특히 우리는 인간이 겪는 생로병사와 미움과 억압과 폭력과 착취를 겪지 않는 가상의 존재를 생각해보면, 인간의 실존이 대단히 부조리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물론 누군가는 상대적으로 더 부조리한 처지에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상대적으로 덜 부조리한 처지에 있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부조리를 직면해야 한다는 점에서 인간은 태어난 순간부터 곤경에 처하게 됩니다.

부조리에 상대적으로 덜 직면하게 된다는 이유에서 곧 자동적으로 의미 있는 삶이 되고, 부조리에 상대적으로 더 직면하게 된다는 이유에서 곧 자동적으로 의미 없는 삶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판단은, <삶은 왜 의미 있는가>가 집중적으로 공격하는 '위계 내에서의 위치에 의한 점수를 매기는 관찰자의 관점'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관점은 전혀 보증되지 않은 관점입니다.

 

2. 책을 읽어가는 도중이라고 하셨는데, 끝까지 한 번 읽고, 곧바로 다시 한 번 더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지금 책의 논지를 정반대로 읽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책의 논지는 "'쾌락, 고통의 제거와 감소, 진리, 아름다움, 애착'의 항목을 자기 삶이 지금 얼마나 담고 있는가에 따라 자기 삶에 상대치로 나오는 점수를 매기고 그 점수에 따라 의기양양해지거나, 의기소침해져야 한다"는 것이 전혀 아니기 때문입니다.

책의 논지는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그렇게 해서는 주류의 신념에 반동적으로 튀어나온 또다른 속물이 되는 것에 불과합니다. 예를 들어 과학적 지식을 얼마나 갖추고 있느냐에 따라 사람들을 위계 속에 넣고 그에 따라 경멸하거나 찬탄하는 그런 태도를 갖추는 것입니다. 그에 대해서는 책에서도 가상적인 양자물리학 과학자의 사례를 제시하여 논한 바 있습니다.

책의 논지는 "우리는 인생이 의미 있는가라는 질문을, 인생을 구성하는 여러 실천들이 할 이유가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바꾸어 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바꾸어 물은 다음, 어떤 행위를 할 이유가 있으면, 그 행위는 할 가치가 있는 것이고 따라서 하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 행위들을 할 이유가 있다는 점을 실천적으로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팔이 부러져 고통이 크고 팔을 제대로 활용할 수 없다면, 병원에 치료를 받으러 갈 이유가 있습니다. 그리고 병원의 의사는 나의 고통 호소에 대하여 반응하여 치료를 해줄 이유가 있습니다.

고통의 제거나 경감뿐만 아니라 인간 실천의 맥락에서 우리가 부인할 수 없는 행위의 이유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생각이 속물근성의 세계관에 의해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기 때문에, 이렇게 실천적으로 부인할 수 없는 이유가 아니라, 허공의 강박과 충동에 의해 행위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삶을 비판적으로 검토하여, 우리가 부인할 수 없는 이유가 되는 가치들을 구현해나가는 행위들로 이루어진 삶은 전체적으로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1인칭 실천자의 관점에서 가치는 미래지향적인 것이며, 가치들에 대한 탐구는, "나는 지금, 오늘, 내일, 이번 한 달, 일년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됩니다. 

즉, 책에서 거론된 가치의 목록은, 그 목록별로 자기 삶에 점수를 매기라고 제시된 것이 아닙니다. 이유 없는 강박이나 충동에 의해 삶이 휩쓸리지 말고, 내재적 가치(intrinsic value)를 구현하는 삶을 미래를 향해 전개하라는 것입니다.

질문자께서는, <삶은 왜 의미 있는가>를 읽는 행위를 하고 있고, 또 읽다가 의문이 들어 시민교육센터 게시판에 질문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독서와 질의 행위는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실천적 지혜를 구하는 행위'입니다.

즉, 그것은 진리를 구하고자 하는 행위로서, 할 이유가 있는 행위입니다. 물론 할 이유가 있는 행위가 언제나 기대했던 성과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외과의사가 최선을 다해 수술을 했지만 수술이 실패하여 환자가 사망할 수도 있습니다. 올림픽 경기에 참여하는 선수가 올예선에서 그만 긴장을 지나치게 하여 떨오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일회에 국한해서 본 소급적인 평가입니다. 그 일화만을 고립해서 두고 외과의사는 아무런 수술을 할 이유도 없다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질문자께서 제 책이나 이 답변에서 원하던 실천적 지혜를 얻지 못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실천적 지혜를 구하는 행위를 계속 하는 것은 할 이유가 있는 것이며, 그러한 행위들을 하는 시간들은 의미가 있습니다.

이렇게 '실천의 관점에서' 보자면, 분명히 가치의 관점에서 할 이유가 있는 것과(A), 그저 세간에서 지배적으로 이야기되기 때문에, 누가 수치를 심어주려고 하기 때문에, 누가 경멸감을 드러내고 박하게 평가하기 때문에 충동과 강박에 따라 하는 것(B)은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제 책은 이 중 자신의 기질과 여건의 제약과 가능성에 비추어서, 자신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것(A)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즐거움이 0인 삶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딘가에 즐거움이 있는 것이고, 또 아직까지 발견하지 못한 즐거움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여건과 기질을 감안하여 어떻게 하면 더 많거나, 더 깊거나, 더 다채롭거나, 또는 다른 가치와 결부된 즐거움을 누릴까를 고민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스스로 고민해서 행위를 조금씩이라도 조정하는 삶은, 세간의 속물적인 말에 따라 강박과 충동을 가진 채, 떠밀려 사는 삶과는 다릅니다.

 

3.
'삶은 의미 있다'는 것은 과거나 지금, 담고 있는 가치의 상대적 수준을 보고, 점수를 매겨 일정 점수 이상이니 이 정도면 되었다라는 표현이 아닙니다. '삶은 의미 있다'는 것은 행위의 이유를 숙고하는 존재로서, 여건과 기질의 제약 하에서이긴 하지만, 자신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자기 삶을 구성해나갈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는 표현입니다.
<끝>

 

 

Posted by 시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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