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물음표 쓰는 경우

 

글을 쓸 때 물음표를 쓰는 경우는 두 가지이다.

 

(1) 하나는 이어지는 내용에서 논증을 통해 해답을 제시할 질문을 던지는 경우다.

이 경우 질문은 오로지 자신이 답변을 이미 마련해 놓고 있는 것만을 던져야 한다. 질문의 수와 답변의 수는 대응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이 쓸 수 있겠다: 

 

"다음과 같이 말하는 사람이 있다. '세간에서 도덕이라는 것이 이러저러하다고 이야기되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나로서는, 나에게 이득이 되지 않는 경우에 그것을 따를 아무런 이유가 없다. 즉 나의 이득만이 내 행위의 궁극적인 동기부여(motivation)가 될 수 있다. 그런데 도덕이라는 것은 때때로 나의 이득과 일치하기도 하지만 상충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왜 굳이 도덕이라는 잘 맞지도 않는 중간 정거장을 거쳐 생각하는가? 나에게 가장 이득이 되는 것이 무엇인가를 곧장 파악하고, 그 궁극적인 답에 따라서 어떤 상황에서 무엇을 할 지를 결정하면 된다. 그렇게 결정한 것이 도덕과 우연히 일치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지만, 그런 사정은 내 행위 이유와는 무관하다. 그러므로 도덕적 담론은 나가 행위하는 진짜 이유와는 무관하다. 단지 다른 사람들에게 비도덕적인 사람으로 보이면 나에게 이득이 되지 아니하므로, 도덕에 관심 있는 척 위장할 필요가 있을 뿐이다.' 이 사고는 타당한가?"

 

물론 위 예에서 주어진 사고의 타당성을 따지기 위해서는 몇 가지 쟁점들을 단계적으로 분리해야 한다. 이를테면 위 예에서는, 어떤 사람이 그것이 주관적으로 이유라고 생각할 경우에만 그 사람에게 어떤 것이 이유가 되는가의 문제, 모든 이유는 어떤 사람의 실제 행위의 원인을 설명하는 힘이 있어야지만 이유가 되는가의 문제 등을 분리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쟁점의 분리는 서술문으로 쓰는 것이 훨씬 낫다. 왜냐하면 이것을 계속 의문문으로 쓰게 되면 독자로서는 이해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특히 쟁점들의 위계적인 구조와 논리적 연결관계가 눈에 들어와야 되는데, 질문들을 의문문으로 병치시키면 그러한 구조와 논리적 관계가 모두 무너지기 떄문이다.  

 

(2) 다른 하나는, 어떤 주장의 비정합성을 드러내는 논거를 의문문 형태로 던짐으로써 수사적으로 강조 효과를 가져오는 경우이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이 쓸 수 있겠다.

 

"이사야 벌린은 자유와 평등을 정치적 가치로 보고, 이 정치적 가치는 필연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으며, 우리는 불가피하게 어느 한 쪽의 손실을 감수하고 다른 쪽을 선택해야만 한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더 나은 답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하며, 이사야 벌린 자신도 구체적인 쟁점에 대하여 기꺼이 선택할 용의가 있었다. 그러나 이사야 벌린의 선택에 대하여, 그러한 가치의 맞교환(trade-offs)의 비율에 대하여 동의하지 아니하는 사람이 이의를 제기한다면, 벌린은 이성적 근거에서 자신의 가치 균형점이 타당하다고 논증할 수 있는 근거를 갖는가?"

 

이 경우에 의문문은, 자신이 주되게 답하고자 하는 질문이라기보다는 비판 대상의 가장 결정적으로 문제가 되는 점을 찔러들어가는 예봉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위 예문의 경우에, 글쓴이가 정말로 답하고자 하는 문제는, '규범과 가치가 동차원의 것인가'하는 점이고, 이사야 벌린의 이론은 그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비판하는 대상이 된다. 이렇게 가장 취약점을 찔러 들어가는 질문을 던진 뒤에는 그대로 방치하면 안 된다. 이 의문에 그럴법하게 답할 수 있는 가능성들을 비판을 받는 쪽을 편들어 구성해보고, 다시 그것까지 비판한 후에, 자신의 해명을 제시해야 한다.

 

이 두 가지 외에는 물음표를 쓰지 않는 것이 바람직한 것 같다. 또 위와 같은 경우에 쓰더라도 많아야 두 개까지만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이상 넘어간다면 서술문으로 바꿀 수 있지 않을까 고민하는 것이 좋은 듯 하다.

 

많은 이들이 이 두 가지를 제외하고도 물음표를 마구 쓴다. 정말로 의문이 든 사항에도 마구 쓰고, 비판하고자 하는 대상을 비판하는 수사의문문을 작성하기 위해서도 마구 쓴다. 이렇게 하는 것은 자신이 논리정연하게 사고를 전개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서둘러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고 싶기 때문이다. 즉 상대방의 논의를 최선의 형태로 구성한 다음, 그것을 정교하게 논파하고자 하지 아니하고, 계속해서 의문문을 던짐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무언가 문제가 크다는 인상을 받게끔 하려는 수사적 전략을 써서 쉽게 설득을 하려는 마음이 드러나는 것이다.

 

의문문을 그렇게 많이 쓸 것이라면, 그 시점에서는 글을 공개하지 않는 것이 낫다. 글을 묵혀 두고, 그 의문문들을 다 지울 수 있을 만큼 사유를 전개하고 글로 풀어냈을 때, 그 때 비로소 글을 공개하는 것이 좋다.

 

쇼펜하우어는, 세상에 엉터리 글들을 쏟아내는 사람들의 반만 좀 자제를 해도, 인류의 지적 환경이 훨씬 나아지리라고 이야기했다. 자신도 머리속이 헝클어진 상태로 다른 사람의 머리까지 헝클어뜨리려고 글을 마구 쏟아내는 사람들은 신뢰할 수 없다.

 

자신의 공부 노트에는 얼마든지 의문문을 던져 두어도 좋다. 그러나 거기서 그쳐서는 안 되고, 그것을 출발점으로 삼아 그렇게 던진 의문들을 그 추상범주와 논리적 관계에 따라 정리하는 일이 필수적이다. 그리하여 그 중 가장 답을 내기가 유망한 것부터 차례대로 공략하면 된다. 그러나 공부 노트에 적어 탐구의 출발점으로 삼아도 좋다고 해서, 공개적인 글에 자신의 헝클어진 두뇌를 현시하듯이 내쏟아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의문문을 쓸 때 극히 유의하는 전략은, 하나의 글 안에서 자신이 새롭게 기여하여 풀이를 제시할 수 있는 질문만을 던지도록 유도하는 것으로, 탐구하는 사람의 유용한 연장 중 하나라 할 것이다. <끝>

Posted by 시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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