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번역에 실제로 걸려 있는 중대한 문제

 

몇몇 국내 학자들과 번역가들은 Utilitarianism을 공리주의(功利主義)가 아니라 공리주의(公利主義)라고 번역한다. 물론 분명히 차이 나는 두 한자 중 하나를 고른 것이므로 의도적으로 그러는 것이다. 

 

그 이유로 제시되는 것은 공리주의의 공익적 정신, 즉 모든 사람들을 오직 하나로만 계산하고 둘 이상으로 계산하지 않는, 그리하여 모든 이들의 이익을 두루 보살피는 정신을 번역어에서 드러내고자 한다는 의도이다.

 

그러나 이것은 혼란의 도가니로 학습자를 빠뜨리는 행위다.

 

첫째로,  Utilitarianism을 공리주의(公利主義)라고 번역한다면, Utility는 공리(公利)라고 번역을 해야, 번역어에 일관성이 있다. 그러나 Utility에 대해서는 명백히도 공리(功利) 내지 효용(效用)이 맞는 번역어이다.

공리(功利)는 행복을 궁극적인 기준으로 삼아 식별한 이익을 의미하고, 공리주의에서 Utility는 바로 그 뜻이기 때문이다.

단 한 사람이 느끼는 순쾌락, 순욕구의 충족값도 효용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한 쾌락이나 욕구의 충족이 어떤 연유에서 나왔건 공리주의에서는 상관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타인의 고통을 보고 만족하는 쾌락도 여전히 효용이다. 그것은 효용의 세계에서 정당한 시민권을 가지고, 각 하나로 다루어진다. 이렇게 가장 기초 단위에서도 Utility라는 말이 쓰이고 거기에는 공공의 것이라는 의미가 전혀 없다. 따라서 Utility는 공리(功利)가 맞다.

그러니 공리주의(公利主義) 번역어를 채택하는 논자도, Utility는 공리(功利) 내지 효용(效用)으로 번역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Utilitarianism을 공리주의(公利主義)로 번역한다면 이는 앞뒤가 맞지 않는 소치이다.

 

둘째로, 그 번역어는 Utilitariansim에서 추구하는 것이 공리(公利)라는 점을 아예 인정하고 들어간다. 그러나 과연 최대 행복이 공공의 이익, 공익(public interest)인가 하는 것은 공리주의의 내용 정의와는 별도로 논쟁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논쟁에 대단히 중요한 것이 걸려 있다. 만일 최대 행복이 당연히 공익이라면, 공익을 위해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게 한 헌법 제37조 제2항은, 최대 행복을 달성하기 위하여 개인의 기본권을 제한해도 된다는 목적론적 공식을 천명한 것이다. 반면에 최대 행복이 당연히 공익이 될 수 없다면 헌법 제37조 제2항은 기본권은 오로지 기본권의 전체계를 더 강화한다는 특성을 만족시키는 한정된 사유들에 의해서만 제한할 수 있다는, 의무론적 정식으로 읽히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게 된다.

 

구 전기통신법 제47조 제1항 전기통신기본법(1996.12.30. 법률 제5219호로 개정된 것)은 제47조에서 “(벌칙)①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전기통신설비에 의하여 공연히 허위의 통신을 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었는데, 헌법재판소 2010.12.28. 2008헌바157 등 결정은 위 조문의“공익을 해할 목적” 부분과 관련하여 명확성의 원칙에 위반된다고 판시한 바 있다..

이 사건에서 특기할 만한 점은 소수의견(반대의견)이 상대적으로 공익에 대하여 적극적인 정의를 시도함으로써 위 조문이 명확성 원칙을 만족시킨다는 점을 보이려고 했다는 점이다. 그 소수의견에 따르면 “공익”은 “개인의 이익과 구별되는‘공공의 이익’”으로서 “대한민국에서 공동으로 사회생활을 영위하는 국민 전체 내지 대다수 국민과 그들의 구성체인 국가사회의 이익”을 의미하고, 따라서 “특정한 사회집단이나 그 구성원의 관심과 이익에 관한 것”은 “공익”이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공익 개념은 두 가지 오류를 범하고 있다. 첫째, ‘전체 내지 대다수’라는용어로 부주의하게 ‘전체’와 ‘대다수’를 등가적으로 다루었고, 둘째, ‘구성체인 국가사회의 이익’을 병렬적으로 열거하여 구성원의 이익과 절연된 어떤 별도의 이익이있다는 점을 암시하였다.

 

특히 이 소수의견이 범한 첫 번째 오류가 공리(utility)가 곧 공익(public interest)이라는 오류이다. 만약 소수의견이 맞다면, 다수가 어떤 통신 내용이 대단히 부적절하다고 생각하여 상당한 비효용(disutility)를 느낀다면, 그 이유만으로, 그 통신을 금지시킬 수 있고, 그것은 공익을 추구하기 위해 정당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2. 반론

 

그런데 최대 행복이 공익이 아니라는 강력한 논거들이 있다.

 

공익은 공중의 구성원으로서 공통되게 보유하는 이익이다. 따라서 어떤 정책이 공익에 부합한다 함은, 공중의 모든 개별 구성원 각각에게 이익을 보장해주는 보편적 보장형식을 지닌 정책원리에 의해 뒷받침된다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최대 행복은 그 본성상, 다수가 원하는 것과 상반되는 것을 원하는 소수의 이익은, 그 강도가 다수의 숫자를 상쇄할 정도로 강렬하지 않는 한, 무시하게 된다. 예를 들어 표현의 자유의 경우, 소수가 그 표현을 함으로써 느끼는 효용이, 다수가 그 표현을 듣지 않음으로써 느끼는 효용보다 충분한 정도로 매우 강렬하지 않는 한, 다수가 듣기 싫은 표현을 금지하는 것은 언제나 공익이라는 결론이 된다.

 

이것은 '다수'가 곧 공동체 전체라는 잘못된 다수결공익관의 필연적 결과이다. 다수가 곧 공동체 전체라면, 소수는 그 공동체 구성원이 아니게 될 터이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가 공동체 구성원이라는 헌법 제11조와 같은 규범에 어긋나게 된다.

 

그 외에도 다수결 공익관에 대해 제기되는 반론들은 상당하다.

 

3. 결론

 

이러한 점들은 감안한다면, 함부로 공리주의에게 공리(utility)가 공리(public interest)라는 양보를 번역에서조차도 하여서는 안 된다. <끝>

Posted by 시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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