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헌법소원심판청구 적격

 

검찰과 경찰은, 성폭력범죄로 고소된 피의자의 성폭력범죄 수사가 종결되기 전까지는, 그 피의자가 무고로 원고소인을 고소하여도, 무고죄 수사는 아예 하지 않기로 하는 내부지침을 만들고 이미 시행에 들어갔다.

 

해당 수사지침을 권고한 법무부의 대책위원회는 다음과 같은 보도자료를 발표한 바 있다.

 

[ 다음 ]

법무부 성희롱 성범죄 대책위원회(위원장 권인숙, 이하 ‘대책위원회’라고 함)는 2018. 3. 11. 법무부장관에게 성범죄 피해자들이 피해사실을 신고하는 과정에서 무고나 사실적시 명예훼손으로 고소되는 두려움 때문에 신고를 주저하지 않도록 안전한 대책을 마련하도록 권고하였음
 - 대책위원회는 서지현 검사 이후 전국적인 미투(Me Too)운동이 전개되어 성범죄 피해자들이 자신의 피해사실을 용기있게 말하기 시작하였음에도 가해자들이 법을 악용하여 자신을 무고나 사실적시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는 경우 그 과정에서 2차 피해를 입고 신고를 주저하는 안타까운 현실을 논의하였음
 - 그 결과 법무부와 검찰은 성범죄 피해자들이 가해자로부터 무고로 고소되는 경우 ‘성폭력사건 수사종료시까지’ 무고에 대한 수사의 중단을 포함한 엄격한 수사지침을 마련하고,
 - 성폭력범죄 피해자에 대한 사실적시 명예훼손 수사시 공익 목적의 위법성 조각사유의 확대적용 및 기소유예 처분의 적극 검토 등 피해자를 최대한 보호할 수 있는 사건처리 절차와 처벌기준을 새롭게 마련하도록 권고하였음
대검 형사부의 무고 관련「성폭력수사매뉴얼」개정
  - 대검은 2018. 5. 11. 대책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성폭력 고소사건에 대한 무고 수사시 성폭력 여부를 명확히 판단할 때까지 수사를 중단’하는 것을 내용으로 「성폭력 수사매뉴얼」을 새롭게 개정하여 전국 59개 검찰청 여성아동범죄조사부 등에 배포하고,
  - 아울러 미투(Me too) 운동 등 성폭력 피해사실 공개 등으로 인한 사실적시 명예훼손 사건의 경우 위법성조각사유(형법 제310조) 적용여부를 면밀히 검토하도록 지시하였음
 □ 맺는 말 
  ○ 대책위원회는 법무부와 검찰에서 성범죄 피해자에 대한 2차 피해 방지를 위하여 전향적인 시스템을 마련한 것을 적극 환영하고, 향후 성폭력범죄 피해자들이 보다 안전하게 자신의 피해사실을 신고하고 가해자들에 대한 정의로운 처벌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함  

[끝]

 

이러한 내부지침 자체는 국민에 대하여 구속력을 갖지 않고, 공무원의 행위를 내부적으로 규율하는 효과만을 갖는다. 그러나 실제로 이러한 지침에 따라 공권력의 행사 또는 불행사가 이루어졌을 때, 그 행사 또는 불행사는 국민의 기본권 관련 지위에 변경을 가져오게 된다. 즉 실제로 수사기관의 공무원이 이 지침을 준수하여, 스스로 그리고 심지어 무고죄 고소가 제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무고죄 수사를 하지 않는 경우에는, 그 고소인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효과를 가져오게 된다. 여기서 문제되는 기본권은 세 가지인데,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제3자인 사인의 범죄에 대한 적시의 수사를 통하여 국가에 의한 기본권 보호를 받을 권리', '재판절차 진술권', '평등권' 이다. 그리고 이또한 이러한 권리의 제한과 관련되어 '무죄추정원칙'과 '법률유보원칙'의 위반이 문제된다.

이러한 제한되는 기본권과 위반이 문제되는 헌법 원칙이 있으므로, 설사 그러한 지침 자체는 헌법재판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하여도, 그 지침에 따르는 공권력의 불행사는 헌법소원심판청구의 대상이 된다. 따라서 최근에 헌법재판소가 해당 매뉴얼의 위헌성에 대하여 각하 결정을 내린 것은 소송상의 테크니컬한 절차적 부분을 문제삼아 그에 대한 실체적 판단을 미룬 것이지, 실체적으로 그것이 합헌이라고 한 것은 아니다. 즉 헌재는 “검찰의 수사매뉴얼은 법무부령 등 법령 형태가 아니며 성폭력 사건 수사에 관한 검찰청 내부 업무처리지침이나 사무처리준칙에 불과하다”며 “기본권 침해는 수사매뉴얼 규정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수사기관의 수사중단 행위에 따라 발생하는 것”이라고 결정한 바 있다. 따라서 이후에 공권력의 불행사, 즉 수사중단이나 수사불개시를 헌법소원 대상으로 하여 헌법소송이 제기되면 본안 판단을 받게 될 것이다.

 

(주석: 물론 헌법재판소의 이러한 태도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왜냐하면 어떤 내부지침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공무원에게 단순한 기계적이고 사실적안 집행행위만을 남겨두고 그 집행행위에 의해 대외적 기본권 제한이 일률적으로 결합된다면 그것을 공권력의 행사라고 볼 여지도 있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 1997. 5. 29 선고 94헌마33결정; 2004. 10. 28선고 2002헌마328 결정등을 참조하라. 지금 그 수사매뉴얼이 있는 한, 수사를 담당하는 경찰 및 검찰 공무원은 객관적으로 명백한 물증이 있다는 예외 조건에 해당하지 않는 한, 무고죄의 개시를 재량의 여지 없이 일률적으로 거부할 것이다. 당연히 있게 될 수사거부를 받은 뒤에야 헌법소원을 청구할 수 있다는 것은 불필요한 본안 심사의 지연에 불과하다. 특히 수사의 적시성을 위해 필요한 기간이 무고죄 고소 이후 3-6개월 가량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가처분 신청에 대한 결정마저도 뒤늦은 것이 될 것이고, 실제로 헌법소원심판 청구를 하는 당사자는 적어도 본안에 관련해서는 그 청구가 인용되더라도 사실상 수사 기간이 끝난 것이 되어 권리보호이익이 없는 경우가 오히려 보통일 것이다. 이렇게 되면 본안 결정을 할 시점에는 권리보호이익을 없다고 하여, 즉 헌법재판소가 예외를 인정하지 않는 한 이미 침해 상태가 종료되었다는 이유로 각하해버릴 위험도 있다. 즉, 어차피 헌법소원심판청구로 매뉴얼 자체의 헌법적 당부를 따질 것인데, 테크니컬한 소송 요건을 엄격하게 봄으로써 본안을 부작위에 관해서만 심사한다고 한다면, 수사거부를 받기 전에는 아예 직접성이 부인되어 각하되고, 수사거부를 받은 뒤에 제기하는 본안청구는 권리보호이익이 없다고 각하될 위험이 있는 것이다. 헌재 2009. 2. 26. 2005헌마764 등 결정, 판례집 21-1상, 170은 "그러나 헌법소원은 개인의 주관적 권리구제 기능뿐 아니라 객관적인 헌법질서의 보장기능도 수행하기 때문에 주관적 권리구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에도 그러한 침해행위가 앞으로도 반복될 위험이 있거나 당해분쟁의 해결이 헌법질서의 수호·유지를 위하여 긴요한 사항이어서 그 해명이 헌법적으로 중대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경우에는 헌법소원의 이익을 인정할 수 있는바, 이 사건 법률조항에 대하여 위헌성이 엿보이는 경우에도 주관적 권리보호이익이 없다는 이유로 헌법적 해명을 하지 아니한다면 향후 교통사고 피해자는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없고, 위헌적인 법률조항에 의한 불기소처분이 반복될 우려가 있으므로 헌법재판소로서는 이 사건 법률조항에 대하여 예외적으로 심판을 할 이익 내지는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한 바 있다. 결국 실제 사건이 발생하고 헌법소원심판청구가 되었을 때 각하될 것이냐 말 것이냐는 '헌법질서 수호유지를 위해 긴요한 사항'이라고 헌법재판소가 판단하느냐 마느냐에 달려 버린다. 기계적이고 사실적인 집행행위만을 남겨두고 있는 내부지침의 공권력 행사성을 부인함으로써 얻는 헌법적 차이는, 적실한 헌법적 이의제기의 봉쇄 외에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 궁극적으로 문제되는 것은 그 공권력 행사의 개별적인 불행사의 기초가 되는 지침의 내용 자체가 헌법규범을 위반했느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수사매뉴얼이 법률의 형식이 아니고 그저 훈령의 형식에 불과하다고 하여, 위헌성 검토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수사매뉴얼의 내용이 헌법규범에 어긋난다면, 그러한 매뉴얼이 내부에서 구속력 있는 지침으로 있다는 이유로 그것을 따랐을 뿐이라는, 수사를 담당하는 공무원의 말은 아무런 법적으로 유효한 변명이 되지 않아, 수사의 중단이나 불개시가 위헌이 된다.   

 

즉, 수사지침에 따른 공권력의 불행사가 만일 기본권을 제한하고, 그 기본권 제한이 헌법 원리를 위배하는 규범의 도입을 근거로 이루어졌다면, 그것은 위헌이다. 따라서 실질적으로 수사 매뉴얼이 헌법에 위반하는 규범이냐 여부는, 필연적으로 헌법논증 내에서 다루어질 수밖에 없다. 다만, 헌법소원심판청구의 형식적 요건상, 지금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의하면 매뉴얼 자체가 대외적인 구속력을 가지는 것이 아니므로 일반 국민들이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는 없고, 실제 구체적인 사건에서 무고죄 고소를 하였으나 그에 따른 수사의 거절을 받은 사람이 청구인 적격을 가지게 될 것이다.

 

2. 기본권의 제한이 있는지 여부에 관하여

 

이 매뉴얼은 기본권을 아예 제한조차 하지 않는다고 하는 의견이 있다. 게다가 이 의견이 이 수사지침이 위헌이 아니라고 하는 아주 커다란 이유인 것처럼 제시된다.

 

청와대 박형철 반부패비서관이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여 합헌성을 역설하며, 이런 의견을 공적으로 피력한 바 있다. 즉, "무고 판단의 기초가 되는 성폭력 여부에 대한 수사가 계속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무고 수사를 미루는 것도 아니다"며 "이에 따라 헌법상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나 무죄추정의 원칙을 침해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한 것이다. 즉 아예 아무런 수사도 미뤄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견은 다음과 같은 발상에서 비롯될 것이다:

'성범죄에 관한 무고죄가 성립하느냐의 문제는, 선행하여 고소된 성범죄가 실제로 성립하느냐 성립하지 않느냐의 문제는 밀접한 관련성을 갖는다. 고소된 성범죄가 성립한다면, 무고죄는 성립하지 않는다. 반면에 고소된 범죄가 실제로 성립하지 않는다면, 무고죄는 (꼭 성립되는 것은 아니지만) 성립가능하다. 이런 관계에 있기 때문에 성범죄의 성부를 따져보기 위한 기초사실은, 무고죄의 성부를 따져보기 위한 기초사실과 동일하다. 전자의 수사에서 드러난 기초사실들이 후자의 수사에서 드러날 기초사실들과 정확히 동일하다. 따라서 성범죄에 대한 수사를 하는 한, 무고죄에 대한 수사도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즉 무고죄에 대한 수사는 그대로 이루어지는 셈이다. 고로, 무고죄에 대한 수사를 미루는 것이 전혀 아니다.'

 

겉으로 보기에 그럴듯한 이 발상은, 그 주장 내적으로도 모순이며, 외적으로도 그릇된 주장이다.  

 

우선 내적 모순에 관하여 살펴보자. 이러한 '무고죄 수사는 종전과 다름없이 그대로 이루어지므로 아무런 기본권 제한이 없다'는 주장은 그 자체가 이 매뉴얼의 신의성실한 도입 행위와 모순된다. 신의성실한 도입이란 국가가 어떤 법률이나 시행령, 내부규칙을 도입할 때는 국가행위상의 실질적인 차이를 가져오려는 진지한 의도로 도입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테면 수사 매뉴얼은 수사에 있어서의 어떤 실질적인 차이, 변화를 도모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다. 만일 아무런 차이와 변화가 없다면 수사 매뉴얼은 애초에 도입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은 매뉴얼의 그런 차이와 변화를 가져오는 값이 0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반부패비서관이 서로 다른 문답에서 이야기하는 바를 연접하여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수사매뉴얼에 따라 무고죄 수사를 하지 않는 것은 위헌이 아니다. 왜냐하면 무고죄 수사를 미루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미루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은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과 동일하다. '당신은 왜 A라는 과업을 미루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미루는 정당화 이유를 제시하지 아니하고, '아니요, 나는 A를 전혀 미루고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답하려면 '당신은 뭔가 사실을 잘못 파악하고 있다, 나는 A를 원래 해야 하는 바대로 그대로 하고 있다'라고 이야기해야 한다. 즉 '미루는 것이 아니므로'는 '하지 않는 것이 아니므로'와 같다. 또는 '중지하는 것이 아니므로'와 같다.

그러므로 결국 반부패비서관의 입을 통해 공식 표명된 정부의 합헌 논거는 정확히 다음과 같은 명제로 진술된다. 

 

"수사매뉴얼에 따라 무고죄 수사를 하지 않는 것은, 무고죄 수사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니므로, 위헌이 아니다."

 

이것은 곧 다음과 같은 말이다.

 

"수사매뉴얼에 따라 무고죄 수사를 중지하는 것은, 무고죄 수사를 중지하는 것이 아니므로, 위헌이 아니다."

 

결국 이것은 명백한 모순이다.

 

이 모순을 그냥 삼켜 어쩄든 합헌이라는 결론을 강화하는 논거로 받아들이고 싶은 유혹은 이해가 된다. 그러나 모순 명제는 논거가 될 수 없다. 그리고 모순 명제를 논거로 받아들이는 것은 신의성실한 행정권력의 행사를 부인하는 것이다.

 

그러한 모순 명제를 논거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무고죄 수사중지 매뉴얼은, 겉으로는 무고죄 수사를 중지한다고 선언했지만, 실질적으로는 무고죄 수사를 전혀 미루지 아니하고, 즉 무고죄 수사를 중지하지 아니하여, 그대로 수사를 하는 것이므로 관련 당사자의 권익에 조금의 차이도 가져오지 않는다"는 말을 하는 것과 같다.

 

즉 발표된 매뉴얼은 쇼에 불과하고, 위장이며, 껍데기이며, 겉치레이고, 허울 좋은 말에 불과하며, 국가의 행위에 있어서 아무런 차이도 가져오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매뉴얼이 도입되기 전이나 도입되기 후나 똑같은 수사가 예전과 똑같이 이루어진다는 말과 같기 때문이다. 즉, 무고죄 수사에 전혀 아무런 영향이 없어 기본권 제한이 없다고 하려면, 결국 이 매뉴얼의 도입과 실시에 의해 초래되는 수사상의 차이와 변화가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논거를 합헌 논거로 활용하려는 자는 그 활용의 함의를 알고 있어야 한다. 이 논거, 즉 조사될 기초사실은 정확히 동일하므로 무고죄 수사를 전혀 미루는 것이 아니라는 논거를 들어 매뉴얼이 합헌이라고 주장하는 측은, '정부가 실제 수사 행위에는 일고의 변화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큰 변화가 있는 듯이 완전히 거짓 위장된 대국민 쇼를 하고 있다'는 명제도 논리적으로 함께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 주장을 할 것이 아니라면 이 논거를, 합헌의 논거로 들어서는 안 된다. 청와대의 공식입장을 설명하는 고위 공직자가 이런 논거를 들었다는 것 자체가, 입헌민주주의 국가의 구성원을 상대로 한 논증대화에 행정부가 신의성실로 임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신의 정책과 자신의 정책 정당화가 내적 정합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겉으로 그럴법하게 생각되게끔 하는 말이라면 무엇이든 짜깁기로 내세워 치장을 하면 된다는 자세에서 공적 발화를 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증거인 것이다.

 

다음으로 외적인 검토를 해보겠다. 즉, '어떤 범죄와 그 범죄에 대한 무고범죄와 같이 기초사실이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범죄 혐의에 대해서는, 하나의 범죄사실에 대한 수사는, 곧 다른 하나의 범죄사실에 대한 수사와 동일한가'의 질문을 다루겠다. 만일 동일하다면 하나의 수사를 하면서 다른 하나의 수사를 미룬다는 것은 논리적으로나 물리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성범죄와 무고죄에 대한 이런 수사 매뉴얼을 도입한다 해도 그로 인해 초래되는 차이는 0이 필연적으로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 수사 매뉴얼에 대해서 세상 사람들이 무엇이라고 말하건, 실질적으로 아무런 차이도 있을 수가 없게 될 것이다. 즉, 이 수사 매뉴얼은 원래부터 쇼, 겉치레, 위장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 된다.

 

그러나 이 두 수사는 동일하지 않다. 왜냐하면 수사라는 것은, 혐의 범죄구성사실에 대한 입증을 위한 증거자료의 수집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입증대상이 되는 핵심 사건 자체는 동전의 양면을 이루고 있더라도, 범죄구성사실과 그 입증의 근거가 되는 사실들은 크게 다를 수 있다.

 

첫째로, 원범죄와 무고범죄 성립 여부에 관하여 핵심적인 사건은 동일하다 하더라도, 무고범죄는 원범죄의 사건 성부에 관련된 사실 이외의 추가적 사건들을 포함하므로, 두 사건의 범죄구성사실들은 상이하다.

둘째로, 어떤 사건의 발생이 있었음을 입증하는 데 필요한 증거는, 어떤 사건의 발생이 없었음을 입증하는 데 필요한 증거와 다르다. 

 

이를 한꺼번에 살펴보도록 하자. 원래 고소된 범죄의 성립 여부에 관하여 핵심적인 사건은 실제로 문제되는 장소와 시각에 어떤 사실이 있었느냐이다. 이 핵심 사건 자체에 관한 기초사실은 밀접한 양면성을 갖는다. 그 장소와 시각에 A라는 사건이 성립하면, ~A는 성립하지 않는다. 반면에 ~A(not A)가 성립한다면 A는 성립하지 않는다.

 

모든 형사범죄 성부와 그 범죄에 대한 고소의 무고죄 성부는 이와 같은 관계에 있다. 즉, 길동이 몽룡을 사기죄를 범했다고 고소하고, 몽룡은 길동을 무고죄로 고소할 때, 핵심 사건은 사기행위가 있었는지 여부이다. 이 점 때문에 사람들은 범죄구성사실 자체가 동전의 양면 관계에 있다고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구성요건에 포섭되는 범죄구성사실은 동일하지 아니하다. 설사 몽룡이 사기죄를 범하지 않았다는 점이 판명된다 하더라도 길동이 무고죄로 확정되는 것이 아니다. 길동의 무고죄는, 몽룡이 사기죄를 범하지 않았다는 점을 알면서도 고의로 몽룡을 처벌받게 하기 위하여 수사기관에 신고하는 등의 행위가 있다는 점이 적극 입증되어야 한다. 이를테면, 길동이 자신의 친구와 함께 무고를 메신저를 통해 모의했다는 사건 또는 길동이 몽룡의 무고함을 입증할 증거를 집에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를 고의로 은폐하고 있다는 사건, 또는 몽룡의 채무관계에 관한 증거를 위조하였다는 사건은, 사기죄 성부를 결정짓는 핵심 사건과는 별개의 사건이다. 따라서 사기죄가 성립하는가를 조사한다고 해서 길동이 무고를 했다는 증거가 자동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사기죄는 결과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고 수사기관이 판단하더라도, 그 판단에는 무고죄를 구성하는 추가적인 사건이 있었는지 여부에 관하여는 아무런 판단도 내포되지 않는다. 그래서 만일 고소된 원범죄인 사기죄가 수사되는 동안에는, 무고죄 수사는 전면 중단된다고 한다면, 그 동안 길동은 자신이 집에 가지고 있는 증거를 폐기하거나, 메신저의 대화 내역을 삭제하고 새로운 핸드폰으로 바꾸거나 증거 위조를 입증할 증거를 버리는 등의 행위를 할 수가 있고, 이에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게 된다다.

 

무고죄에서 가장 중요한 법리는, "고소한 사실의 진실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점만으로는 결코 처벌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법원 2014. 2. 13. 선고 2011도15767 판결은 "무고죄는 타인으로 하여금 형사처분이나 징계처분을 받게 할 목적으로 신고한 사실이 객관적 진실에 반하는 허위사실인 경우에 성립되는 범죄이므로 신고한 사실이 객관적 진실에 반하는 허위사실이라는 점에 관하여는 적극적인 증명이 있어야 하며, 신고사실의 진실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점만으로 곧 그 신고사실이 객관적 진실에 반하는 허위사실이라고 단정하여 무고죄의 성립을 인정할 수는 없"다고 한 바

 

대법원 2007. 10. 11. 선고 2007도6406 판결 역시 "형사재판에 있어서 공소가 제기된 범죄사실에 대한 입증책임은 검사에 있고, 유죄의 인정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진실한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하는 증명력을 가진 증거에 의하여야 하므로, 그와 같은 증거가 없다면 설령 피고인에게 유죄의 의심이 간다 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으며, 민사재판이었더라면 입증책임을 지게 되었을 피고인이 그 쟁점이 된 사항에 대하여 자신에게 유리한 입증을 하지 못하고 있다 하여 위와 같은 원칙이 달리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고 할 것이고( 대법원 2003. 12. 26. 선고 2003도5255 판결 등 참조), 한편 무고죄는 타인으로 하여금 형사처분이나 징계처분을 받게 할 목적으로 신고한 사실이 객관적 진실에 반하는 허위사실인 경우에 성립되는 범죄이므로 신고한 사실이 객관적 사실에 반하는 허위사실이라는 요건은 적극적인 증명이 있어야 하며, 신고사실의 진실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소극적 증명만으로 곧 그 신고사실이 객관적 진실에 반하는 허위사실이라고 단정하여 무고죄의 성립을 인정할 수는 없다"고 판시한 바 있다.

 

그러므로 무고죄의 성립을 뒷받침하는 증거는, 원범죄의 불성립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초과하는 더 많은, 더 강력한 것을 포함한다. 즉 원범죄의 불성립을 뒷받침하는 증거는 무고죄의 성립을 뒷받침하는 증거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따라서 원범죄의 성립 여부만 조사하면서, 무고죄에 대하여는 수사하지 않는 것이 가능하다. 즉, 무고죄가 성립하기 위해서 핵심 사건 성부 이외의 범죄구성사실 성부에 대한 수사는 중지하는 것이 가능하다.

 

여기까지가 원범죄 수사와 무고죄 수사가 실질적으로 차이나는 이유 첫 번째다.

 

다음으로 원범죄 수사와 무고죄 수사가 실질적으로 차이나는 이유 두 번째는, 사건의 성립을 찬성하는 증거와 사건의 불성립을 찬성하는 증거가 다르다는 것이다.

 

형사사건에서 제3자로서는 문제되는 시공간에 설치된 CCTV와 같은 직접 증거가 없는 한, 그 장소와 시각에 p라는 사건이 있었는가 ~p라는 사건이 있었는가를 직접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사건 p의  적극적으로 입증하기 위한 증거사실은 a, b, c, d이지만 사건 ~p(=p의 불발생)를 적극적으로 입증하기 위한 증거사실은 e, f, g, h로 다를 수 있다. 사건 p와 사건 ~p 모두와 양립가능한 사실들이 i, j, k, l로 중첩되더라도 말이다.

 

이 경우 사건 p를 입증하는 증거들은 a, b, c, d + i, j, k, l이지만

사건 ~p를 입증하는 증거들은 e, f, g, h, + i, j, k, l 이다.

 

여기서 i, j, k, l 부분은 쌍방 고소인이 인정하는 한, 다툼의 대상이 되지 않고, 또한 사안을 결정지을 수가 없다.

 

그런데 사건 p를 적극 입증하고자 하는 입장에서 증거를 수집하여가면, a, b, c, d + i, j, k, l이 있으면 충분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 그러면 e, f, g, h가 사인으로서는 수집할 수 없고 국가 권력을 활용하여야지만 수집 가능할 때는, e, f, g, h는 검토는 커녕 수집 자체도 누락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원범죄의 입증을 위한 수사가 곧, 원범죄 불성립 입증을 위한 수사가 되는 것도 아니다.

  

이런 이치는 이미 대립당사자구조를 가진 형사절차에서 드러나 있다. 만일 사건 p를 적극적으로 입증하기 증거사실(E1)이 ~p를 적극으로 입증하기 위한 증거사실(E2)과 동일하다면, 이미 검찰까지의 수사가 마무리되어 공소가 제기된 후의 형사재판에서 법원은 피고인의 증거제출을 금지하여도 아무런 절차상의 잘못을 저지르지 않은 셈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검사가, 공소사실인 사건 p를 적극 입증하는 증거사실들을 수사기록을 통해 모두 제출했기 때문에, 판사로서는 그것만 보아도 p인지 ~p인지를 모두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에 따르면, 피고인과 변호인은 어떠한 증거를 제출하지 못하여도, 재판결과에서 아무런 차이가 없을 것이다. 판사가 필요한 증거는 모조리 다 제출된 것이니까 말이다. 피의자가 무고하다면 검사가 범죄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모은 증거자료들 그 자체가, 아무런 추가증거자료의 수집 없이, 아주 자동적으로, 피의자의 무죄를 드러내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터무니없다. 공정한 판단은 사건 p의 성립을 찬성하는 증거사실(E1)과 더불어 사건 p의 성립을 반대하는 증거사실(E2)을 함께 보아야 이루어질 수 있다. 바로 이런 까닭에서, 설사 경찰과 검찰의 수사단계에서, 피의자가 자기 항변을 하였고, 그에 따라 검사가 최종적인 기소 판단을 내렸다고 할지라도, 형사재판은 검사가 제출한 증거로만 진행되지 않는 것이며, 진행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성범죄에 있어서도 범죄구성사실의 성립을 찬성하는 증거사실에는, (1) 두 당사자가 어떤 장소와 시각에 같이 있었던 것을 마지막으로 보고 떠났다는 성범죄 고소인의 친구의 진술, (2) 그리고 바로 그 장소와 시각에서 성범죄가 발생했다는 고소인의 진술 (3) 그 장소와 시각 이후에 고소인이 가까운 사람에게 범죄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알렸다는 통화 내역 등이 자료가 될 것이다. (증거사실 집합 E1)

 

그러나 범죄구성사실의 성립을 반대하는 증거사실에는 (1) 두 당사자(고소인과 피고소인)가 그 장소와 시각에서 고소인의 친구가 떠난 시각 이후에 곧바로 떠났다는 핸드폰 위치정보의 기록 (2) 고소인이 고소인의 친구 사이에 고소 전에 아주 많은 수의 상호연락 기록이 있었다는 점 (3) 혐의 사건 발생 전후로 고소인의 행동에 아무런 특이한 점을 찾을 수 없고 평소와 같았다는 원범죄 고소인과 가까운 사람의 진술이 그 자료가 된다. (증거사실 집합 E2)

(여기서 위와 같은 쌍방의 핸드폰 위치 정보, 원범죄 고소인과 그에 유리한 참고인 진술을 한 이의 부단한 상호연락 기록, 그리고 원범죄 고소인과 가까운 사람의 진술은 원범죄 피고소인이 수집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것임을 주목하라.)

 

위 사례에서 증거사실 집합 E1과 E2는 같지 않다. 따라서 다투게 되는 핵심 사건 자체의 기초사실이 동일하다고 해서, 그 사건의 성립을 찬성하는 증거와 사건의 불성립을 찬성하는 증거가 동일하리라는 생각은 틀린 것이다. 하물며 사건의 불성립에 더해서, 추가적인 사건의 발생까지 입증하여야 하는 무고죄의 범죄구성사실을 뒷받침하기 위해 수집할 증거사실이 동일하다는 주장은 한층 더 강력한 이유로 틀렸다.

 

그렇기 때문에, 수사매뉴얼은 겉치레나 쇼가 아니다. 그것은 실질적인 차이를 만들어 낸다. (1) 무고죄가 성립하기 위해 성립이 필요한 추가적인 사건들을 입증하는 사실들에 대한 조사는 전혀 하지 아니하고 그에 관한 증거도 전혀 수집하지 아니할 것을 명하며 또한 (2) 적어도 국가의 수사력을 동원해야 수집할 수 있는 증거와 관련해서는, 수사가 종결되기 전까지는, 원범죄구성사실을 적극 입증하는, 즉 원범죄에 해당하는 사건에 찬성하는 증거에만 집중하여 수사할 것 두 가지를 명한다. 즉 관련된 당사자에 있어서, 체계적 편면성을 수사를 담당하는 공무원에게 의무지우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본권 제한이 아예 없다는 합헌 논거는 수사를 중단하지 아니하므로 수사를 중단하지 않는다는 식의 내적으로도 명백히 부정합적이고 모순된 주장일 뿐만 아니라, 외적으로도 실질적으로 수사상의 차이를 가져와 관련된 기본권을 제한함이 분명하기 때문에, 타당하지 아니하다.

 

3. 매뉴얼 도입 목적에 따른 준수 결과: 객관의무의 편면적 의무화와 증거 적시 수집 거부

 

어떤 범죄구성사실이 되는 사건 p가 있었다는 점을 적극 입증하는 증거들은, 법조문 및 현행 판례에 의해 판단하건대, 그 증거들이 제출되었을 때 공소사실 입증이 있음을 보이기에 충분한 증거들이다. 경찰과 검찰의 수사의 주된 목적은, 이와 같은 사건 p를 뒷받침하는 충분한 증거가 수집하는 것이다.

검사는 수사기간 중에 그런 종류의 충분한 증거가 수사기간에 수집되면 공소를 제기한다.

만일 수사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충분한 증거가 수집되지 아니하였을 경우에는 검사는 혐의 없음의 불기소처분을 최종 내리게 된다.  

다시 말하지만, 경찰과 검찰은 심판 기관이 아니라 수사 기관이다. 수사의 목적은 범죄구성사실이 있다는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을 적극 입증하는 증거를 모으는 것이다.

 

물론 검사(그리고 검사의 지휘를 받는 경찰)가 이러한 목적만을 가지고 사건에 접근하는 경우에는 여러가지 부작용이 생겨난다. 즉 피의자의 혐의 없음을 입증할 증거들은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을 위험이 생겨난다.

이러한 위험을 제어하기 위하여 검사에게는 이 일차적 목적만을 가지고 수사에 임해서는 안 됨을 명하는 객관의무가 있다. 객관의무는, '정말로 범죄구성사실이 되는 사건 p가 있었나? 없을 수도 있지 않은가? 없었다는 점을 뒷받침할 수도 있는 증거는 무엇이 있을 수 있는가? 없었다는 점을 뒷받침할 증거를 검사의 권한을 활용하여 충실하게 적시에 수집하였는가?'를 진지하게 묻고, 이러한 질문에 관하여 나오는 답에 따라 실제로 행위하는 것으로 발현된다. 예를 들어 '없었다는 점을 뒷받침할 수도 있는 증거는 무엇이 있을 수 있는가?'에 'x, y, z가 있을 수 있다'는 답이 나온다면, 그 x, y, z를 스스로 적극 조사, 수집하여 공적 기록으로 보관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혐의에 찬성하는 증거 a, b, c와 혐의에 반대하는 증거 x, y, z를 모두 갖고서, 사건이 실제 어떠하였는지 과학적 방법에 따라 판단한 뒤 기소 여부의 결론을 내려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검경과 같은 주체는 그 주어진 일차적 목적이 수사이기 때문에, 이러한 객관의무를 어기려는 유혹을 받기가 쉽다. 판단은 최종적으로 법원이 한다는 역할분담이 있다는 생각에, 적어도 수사기관의 의사결정절차 내에서는 법원에 공소를 제기하기에 충분한 증거들만 모으면 문제가 없는 것으로 처리된다. 특히 수사기관이 이미 수집한 혐의에 찬성하는 증거들로 인해 특정 인물이 범죄자라고 확신을 굳히는 경우에는, 이미 범죄자라고 생각하고 있는 그 인물의 무죄에 찬성하는 증거를 적극 수집하기는 인간 본성상 쉽지 않다. 그것은 자신이 스스로 공익이라고 생각하는 바, 즉 그 사악한 범죄자에게 응당한 처벌을 가한다는 바로 그 목적에 반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어떤 목적을 확고하게 염두에 두면, 그 목적에 장애가 될 수도 있는 것들을 일부러 찾아서 하지 않으려는 보편적 성향을 갖는다.  

 

실로 인간의 전문직업의식은, 자신이 속한 조직의 기풍(ethos)에 크게 좌우된다 할 수 있다. 그리고 조직의 기풍은 기관의 일차적 목적에 따라 정해진다. 그것이 바로 개개의 경우에 경찰과 검사가 확고하게 염두에 두는 목적을 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찰과 검사는 범죄자를 잡아 처벌받게 하는 주체이지, 범죄자라고 생각되는 이들에게 유리한 증거를 굳이 활용하여 풀어줄 여지를 만들어주는 주체가 아니라고 스스로의 정체성을 파악하기 쉽다.

 

이때문에, 검사가 어떤 범죄자의 유죄를 확신하고 있는 경우, 혐의를 기각하는 증거를 판단자인 판사에게 제출하지 않는 경우도 왕왕 생긴다.

 

대법원 2002. 2. 22. 선고 2001다23447 판결을 살펴보자.

 

이 손해배상청구 사건 있기 이전에, 원고는 성범죄 사건의 피의자가 되었다가, 다시 피고인이 되었다. 그 사건에서, 피해자는 ‘범인이 자신의 팬티를 칼로 찢은 후 강간하였는데 당시 범인이 사정을 한 것 같다’고 진술하고 있고, 피해당일 압수된 팬티에 정액으로 보이는 얼룩이 있어 경찰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감정을 의뢰하였다. 검사는 원고를 강도강간 등 혐의로 구속기소한 후 당해 팬티에서 검출된 유전자형은 원고나 그 피해자의 남편의 유전자형과 일치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 피해자의 유전자형과도 일치하지 않는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감정서를 입수하게 되었다.  그런데 검사가 위 감정 결과서를 법정에 제출하지 아니함으로써 제1심법원이 원고에 대하여 일부 유죄를 인정하여 징역 15년의 형을 선고하게 되었고, 항소심에서도 이를 제출하지 아니하였다. 항소심법원이 직접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직접 사실조회를 하여 그제서야 원고에게 무죄판결을 선고할 수 있었다.

 

이에 대하여 원고가 무죄판결을 받고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건에서 위 대법원 판결은 "검사는 수사기관으로서 피의사건을 조사하여 진상을 명백히 하고,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피의자에게 증거 인멸 및 도주의 염려 등이 있을 때에는 법관으로부터 영장을 발부받아 피의자를 구속할 수 있으며, 나아가 수집·조사된 증거를 종합하여 객관적으로 볼 때, 피의자가 유죄판결을 받을 가능성이 있는 정도의 혐의를 가지게 된 데에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고 판단될 때에는 피의자에 대하여 공소를 제기할 수 있으므로 그 후 형사재판 과정에서 범죄사실의 존재를 증명함에 충분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무죄판결이 확정되었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사정만으로 바로 검사의 구속 및 공소제기가 위법하다고 할 수 없고, 그 구속 및 공소제기에 관한 검사의 판단이 그 당시의 자료에 비추어 경험칙이나 논리칙상 도저히 합리성을 긍정할 수 없는 정도에 이른 경우에만 그 위법성을 인정할 수 있다."고 하여 손해배상 요건을 설시하였다. 그런데 이 부분은 검사의 일차적 목적이 혐의의 입증이고, 검사가 수집한 증거로 유죄판결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합리적으로 판단할 정도가 되었다면, 이후에 무죄 판결을 받아도 검사에게 꼭 위법성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하고 있다.

 

다만 "검찰청법 제4조 제1항은 검사는 공익의 대표자로서 범죄수사·공소제기와 그 유지에 관한 사항 및 법원에 대한 법령의 정당한 적용의 청구 등의 직무와 권한을 가진다고 규정하고, 같은 조 제2항은 검사는 그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그 부여된 권한을 남용하여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 아니라, 형사소송법 제424조는 검사는 피고인을 위하여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고, 검사는 피고인의 이익을 위하여 항소할 수 있다고 해석되므로 검사는 공익의 대표자로서 실체적 진실에 입각한 국가 형벌권의 실현을 위하여 공소제기와 유지를 할 의무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피고인의 정당한 이익을 옹호하여야 할 의무를 진다고 할 것이고, 따라서 검사가 수사 및 공판과정에서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를 발견하게 되었다면 피고인의 이익을 위하여 이를 법원에 제출하여야 한다."

 

위 법원은 "강도강간의 피해자가 제출한 팬티에 대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유전자검사결과 그 팬티에서 범인으로 지목되어 기소된 원고나 피해자의 남편과 다른 남자의 유전자형이 검출되었다는 감정결과를 검사가 공판과정에서 입수한 경우 그 감정서는 원고의 무죄를 입증할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에 해당하는데도 검사가 그 감정서를 법원에 제출하지 아니하고 은폐하였다면 검사의 그와 같은 행위는 위법하다"고 한 것이다.

 

이 판례의 사실관계는, 일차적 목적이 혐의의 입증에 있는 조직의 기풍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 사건의 검사는 범죄구성사실의 불성립에 찬성하는 결정적인 증거를 가지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법원에 제출하지 아니하였다. 그리고 항소심 법원이 1심 법원처럼 제출된 증거만으로 판단했을 경우, 피고인은 유죄로 선고되었을 것이고, 법률심인 대법원은 어떤 증거가 제출되지 않았는지를 전혀 알 수 없어 그 유죄는 확정되었을 것이다.

만일 항소심 법원이 감정결과라는 증거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거나, 그런 생각을 했더라도 직접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사실조회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유죄 확정이 곧 피고인의 운명이었다. 즉, 제출된 증거 자체만으로는 피고인에게는 충분히 유죄 입증이 되었던 것이다.  

 

다만 위 판례는 이러한 중요 증거의 법원에의 불제출이라는 부작위는 객관의무에 위배된다는 점만 확인하였다. 즉, 검사가 유죄 판결을 받을 가능성이 있는 정도의 혐의를 뒷받침하기에 족한 증거들을 수집하는 것을 중심으로 수사하고, 그 증거들만을 가지고 기소를 하는 것 자체가 위법이 된다고까지 말하지는 않았다. 이는 검사가 수집하지 아니한 증거는 아예 수집되지 아니하여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불수집 자체를 법원이 통제할 수 없기도 하다.

 

이것은 검사의 객관의무가 실질적으로 준수되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만일 위 사건에서, 검사가 피해자의 피해사실 진술, 그리고 피해자가 피고인을 범인으로 특정한 것에 만족하여, 아예 피해자의 팬티를 임의제출받아 감정하지도 않았다고 해보자. 그 경우에 검사는 아무런 위법도 저지르지 않은 것이 될 것이다. 그리고 피해자의 팬티라는 증거물은 시간이 흐르면서 멸실되거나 훼손되었을 것이며 따라서 나중에는 여기에 생각이 미치더라도 아무런 유의미한 결과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검사의 객관의무가 가장 절실히 요구되는 곳, 적시의 증거수집이라는 영역에서, 오히려 법원의 사후적 통제는 위력을 거의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

 

혐의사실의 입증만을 염두에 둔다면, 성범죄와 같은 특수성을 가진 범죄 사건에서는 검찰이 직접 적극적으로 조사하여야 할 사항은 그리 많지 않다.

 

대법원 2012. 6. 28. 선고 2012도2631 판결에서는 "피해자를 비롯한 증인들의 진술이 대체로 일관되고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경우 객관적으로 보아 도저히 신빙성이 없다고 볼 만한 별도의 신빙성 있는 자료가 없는 한 이를 함부로 배척하여서는 안 된다( 대법원 2005. 4. 15. 선고 2004도362 판결 등 참조)고 확고한 법리를 밝힌 바 있다.

 

즉 원범죄의 혐의사실 입증에는 피해자의 진술이 대체로 일관되고 전후 정황과 일치한다면 이를 객관적인 신빙성 있는 자료가 없다면, 배척할 수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검사로서는 피해자의 일관된 진술과, 그 진술과의 전후 정황과의 일치와 부합 여부만을 확보하면, 유죄를 받을 가능성이 있는 정도의 혐의에 대한 합리적 이유는 가진 셈이 된다.

 

그런데, 도입된 수사매뉴얼의 목적은, 대책위원회의 보도자료에도 나와 있듯이 '무고나 명예훼손죄'로 고소되어 수사되는 것 자체를 2차 피해로 보고, 이 2차 피해로 인하여 신고를 망설이게 되는 이유를 제거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무고나 명예훼손죄로 고소되어 수사되는 것이 실질적으로 갖는 의미는, 검찰이 범죄구성사실인 사건 p를 찬성하는 증거뿐만 아니라 그것이 발생하지 않았다는 사건 ~p를 찬성하는 증거까지 적극적으로 수집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이 수사매뉴얼이 방지하고자 하는 2차 피해를 막으려면, 사건 ~p를 찬성하는 증거를 검찰의 권한을 활용하여 적극 조사하여 수집하여서는 안 된다. 그것 자체가 바로 2차 피해이니까 말이다.

 

그러므로 ~p를 찬성하는 증거가 될 수 있는 사실에 대한 조사행위는, 오로지 피고인 자신의 진술과 피고인이 물적 형태로 제출할 수 있는 증거를 수동적으로 접수하는 행위에 그치게 된다. 즉, 검찰은 수사에 있어서 오로지 p의 적극적 입증에 관계된 사실만을 조사하고, 그 부정을 찬성할 수 있는 증거의 적극적 조사에까지 나아가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것이 영향을 미치는 것은, 특히 공권력을 통해서만 조사할 수 있는 사실에 대해서이다. 고소인의 진술을 피의자의 진술로 제호를 바꾸어 받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통신자료사실조회, 통신기록에 대한 압수/수색, 휴대폰에 대한 압수/수색, CCTV 증거에 대한 임의제출 내지는 압수수색과 같이 공권력을 통해서만 입수할 수 있는 증거들이 있다.

 

예를 들어 피의자는 자신의 통신기록만을 제출할 수 있을 뿐, 고소인의 통신기록을 제출할 수는 없다. 그런데 검사는 고소인의 통신기록 제출을 그저 요구하지 않을 수 있고, 고소인의 진술이 일관되고 다른 정황과 부합되는 한, 그런 통신기록 제출을 요구할 필요도 없다. 설사 요구한다 하더라도, 고소인이 제출을 거부할 경우에, 고소인의 통신기록을 압수수색하는 것은 무고죄의 수사에 해당되므로 해당 수사매뉴얼에 의해 금지된다. 또한 고소인이 휴대전화의 메시지 기록 중 일부만을 인쇄하여 냈을 때, 고소인의 휴대폰 통째로 임의제출 받고자 하는 것도 고소인의 고소사실을 의심하는 무고죄 수사에 해당하므로 해당 매뉴얼에 의해 금지된다고 볼 수 있다. 확실한 것은 고소인이 휴대폰 제출을 거부했을 때 이를 압수수색하는 것자체는 명백히 금지된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렇게 금지되는 것들이 많기 때문에, 관련된 증거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멸실되고 훼손될 수 있다.

휴대폰에 담긴 정보들은 휴대폰을 적시에 입수하지 아니하면, 휴대폰을 교체하고 버림으로써 간단히 없앨 수 있다. 이것이 원범죄 수사 당시에 하필 이루어진 일이라면 의심받을 수 있겠으나 긴 수사기간 동안 이루어진 경우에는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일반적인 문자 메시지는 통신회사에서는 저장되지 않고 오로지 발신(發信)·수신(受信) 이력만 저장되는데, SK텔레콤의 경우 문자 발신·수신 내역을 각각 일년간 보관하고, KT와 LG유플러스는 수신 내역은 일주일, 발신 내역은 1년간 보관한다고 한다. 개정된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라 휴대전화 음성통화의 발신·수신 내역도 1년간 보관된다. 

그리고 이동통신(휴대전화, 태블릿PC 등) 가입자가 음성통화, 문자메시지, 인터넷 등을 사용할 경우 인근 기지국 주소가 기록으로 남는다. 통신비밀보호법 시행령은 이동통신사가 가입자들의 송수신 명세와 당시 위치정보를 무선통화(무선→무선, 무선→유선)와 문자메시지의 경우 12개월 보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유선통화(유선→유선, 유선→무선)는 6개월, 인터넷 로그기록은 3개월간 보관토록 규정하고 있다.

사건이 일어난 뒤 한참 지난 몇 개월 뒤에 고소가 이루어지면, 고소된 원범죄의 사건을 조사하는 동안에 위 내역들은 모두 보관기간이 끝나 사라지게 된다. 이를테면 위치 정보에 관한 신뢰할 만한 통신회사의 정보도 구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또한 개인정보보호법은, CCTV와 같은 기구를 통해 수집된 개인정보를 처리하는 처리자는, 보관기간을 미리 정해두고 보관기간이 지나면 삭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보관기간 중이라도, 제18조 제1항 및 제2항에 따라 그 개인정보가 담긴 사람 모두의 동의를 얻지 않고는 해당 영상을 사인에게 제공할 수 없게 하고 있다. 그러므로 원범죄의 고소인의 동의를 얻지 아니하면 원범죄의 피의자는 CCTV 영상조차 확보할 수 없다.

제18조 제2항 제7호는 "범죄의 수사와 공소의 제기 및 유지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를 규정하여 경찰이나 검사가 임의제출 받았을 때에는 합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즉 수사기관만이 이러한 정보에 장애없이 접근할 수 있는 것이다. 만일 이런 수사기관이 이를 적시에 확보하지 않으면, 보관기간이 지나 증거는 멸실되고 만다.

 

이러한 과정은 서울중앙지방법원 2012가합3628 사건의 실제 사례에서도 드러난다. A씨는 명문대 졸업 후 직장에 다니고 있었다. 그는 직장 이직을 추구하고 있었고 국립대학교 교직원 채용에 합격했다. 한 달 뒤면 새 직장에 출근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2010년 5월 11일 저녁 경찰에 체포되었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16세 B양이 자신을 성폭행범으로 지목하였기 때문이다. A씨는 "B양을 전혀 알지 못하고 성폭행 장소라는 모텔에 가본 적도 없다"고 항변했지만, 결국 체포 이틀만에 구속영장이 발부됐고, 경찰은 A씨를 기소의견으로 구속 상태에서 서울남부지검에 송치하였다. A씨는 이직을 통보했던 다니던 직장에서는 권고사직을 받았고, 새 직장에는 구속 상태에서 출근하지 못해 합격이 취속되었다. 그러나 검찰 수사 과정에서는 B양은 가출 후 임신을 하자 어머니의 추궁이 두려워 거짓말을 한 사실이 밝혀졌다. B양이 우연히 주운 휴대전화가 A씨 지인의 전화기였다. B양은 저장된 A씨의 번호로 전화를 자신의 전화기로 걸었고, 그 결과 A씨의 통화기록에는 B양과의 통화내역이 기록되었다. 당시 성폭력범죄 아동진술분석 전문가는 B양의 진술이 일관되고 매우 신빙성이 있다고 보고서를 올렸다. 그러므로 경찰이 보기에는 혐의 입증에 충분한 증거들이 이미 갖추어졌다. 명백한 객관적 증거가 없으면 배척할 수 없는 B양의 진술이 아동진술분석 전문가에 의해 확인까지 받았고, 또 아무런 인적 관계가 있을 수 없는 A씨와 B양의 통화내역까지 까닭없이 있기 때문이다. A씨 항변대로라면 애초에 B양이 A씨를 알지도 못하므로 그와 통화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당시 경찰은 비록 2010년이긴 했지만 2018년에 도입된 수사 매뉴얼의 지침을 이미 따르는 행위를 한 것이다. 즉, A씨의 무고함을 밝히는 적극적인 수사는 전혀 하지 않음으로써 2차 피해를 예방했던 것이다. 반면에 당시 검찰이 A씨의 혐의없음을 밝혔던 적극적 수사행위는 수사매뉴얼에 위반된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아동진술분석 전문가의 판단까지 거슬러 B양을 의심함으로써 2차 피해를 가한 것이며, B양이 무고했을 가능성에 관계된 증거를 수집하고 또 B양에게 자백을 받아냈기 대문이다.

B양과 그 모에게 손해배상 판결을 받았지만, B양과 그 모는 자력이 없어 실질적으로 집행할 수 없는 껍데기 집행권원일 뿐이었다. A씨는 국가의 편면적인 수사에 대해서도, 국가를 피고로 하여 손해배상청구를 하였지만, 법원은 이를 위법성이 없다고 보고 기각하였다

법원은 "B양의 진술이 비교적 구체적이었고, B양의 조사 과정에 참여한 아동행동진술분석전문가가 'B양 진술의 신빙성이 높아 보인다'고 보고했다"며 "A씨를 수사한 수사기관의 판단이 합리성을 긍정할 수 없는 정도의 행위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하였다. 즉 경찰은 아무런 위법도 저지르지 않은 것이다. 왜냐하면 경찰이 한 것(즉 이미 있는 B양의 진술, 성범죄 전문가의 분석, 그리고 통화기록 내용을 기초로 구속하고 기소의견 송치한 것)은 법원의 위법성 판단 기준에 따르면 전혀 위법한 것이 아니다. 편면적으로 수사를 하면, 그 수사방향에 맞는 증거만이 수집된다. 그 증거만을 기초로 합리적 판단을 하게 되면 유죄 가능성 있는 혐의가 있다는 판단을 하게 된다. 따라서 전혀 위법성이 없다.

경찰이 하지 않은 것(즉 A씨의 항변을 뒷받침할 수도 있는 추가적인 증거수집을 하지 않은 것)은 위법성 판단에 고려되지 않는다.

그런데 위 사건에서 검찰도 경찰과 같이 편면적 수사를 했다면, 당연히 수집된 증거로는 입증에 충분하므로 공소가 제기되었을 것이고, 재판이 진행되는 와중에 A씨와 B양의 행적에 관한 모든 CCTV, 위치정보 등은 모두 기간의 경과로 멸실되었을 것이다.

'아니요, 새로 도입된 수사 매뉴얼에 따라도 위 사건에서의 B양의 진술 자체를 부인하게끔 하는 그런 증거를 적극 수집할 것이오, 모든 가능한 강제수사기법을 동원하여 그렇게 할 것이오. 그러므로 이는 수사 매뉴얼이 갖는 함의에 대한 과도한 해석이오'라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그 반론은 결국 원범죄의 고소인에 대하여 '피의자'라는 명칭만 붙이지 않는다뿐이지, 실질적으로 똑같이 수사를 한다는 주장, 즉 기본권 제한이 아예 없다는 주장과 동일하다. 그리고 그 주장은 '수사를 중단하지 아니하므로, 수사를 중단하지 아니한다'는 모순으로 귀착되고, 이 모순을 합헌 논거로 내세운다 함은, 행정부가 겉치레의 위장을 할 뿐 아무런 변화도 도모하지 않았다는 주장을 함께 받아들이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수사매뉴얼은 이미 검찰과 경찰이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서나 아니면 확고한 공익 확신에 따라 종종 하고 있었던 편면적 수사와 그에 따른 증거의 적시 수집 거부를, 이제는 행정부의 통일된 지침으로 내려보내 보편적으로 하도록 의무화한 것이다.

 

이러한 의무화는 실질적인 차이를 만들어내며, 이 실질적인 차이가 바로 기본권의 제한이다.

 

"객관적으로 명백한 물증이 있는 경우에는 무고죄 수사를 하도록 허용하였다"는 것은 편면적 수사 의무화와 증거 적시 수집 거부에 의한 기본권 제한의 존재를 부인할 근거가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여기서 말하는 명백한 객관적 물증이란 피의자가 제출해야 하며, 피의자가 그런 결정적인 물증을 갖고 있는 경우, 무고죄 수사의 필요성이 가장 작은 사안이라 하겠다. 피의자가 그런 물증을 확보하지 못할시-피의자는 CCTV 영상도 확보할 권리가 없음을 주목하라-, 그 물증은 아예 현출조차 되지 아니하였으므로 무고죄 수사는 개시되지 않는다. 무고죄 수사가 개시되지 아니하였으므로, 사건 p의 불성립을 찬성할 수도 있는 물증을 수집하지 아니한다. 그런 수집을 적극적으로 하지 말라는 것이 수사지침의 취지다. 따라서, 공권력에 의한 적시의 무고죄 수사가 그리 필요치 않은, 피의자가 객관적 물증을 이미 확보하고 있는 그런 사안을 제외하고는, 수사를 하지 않음으로써 기본권을 제한하는 효과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수사매뉴얼 도입 이전에 일반적으로 무고죄 고소는 합리적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당해 사건에 걸린 것을 훨씬 크게 만들기 때문이다. 만일 피의자가 실제로 유죄인데, 고소인의 고소에 맞대응하여 무고죄로 고소한다면, 무고죄로 무고하였다는 내용의 무고죄까지 합쳐져서 처벌을 받게 된다. 즉, 피의자가 성범죄로 고소당한 뒤 무고죄로 고소한 사안에서, 재판에서 성범죄가 유죄판결이 날 경우 피의자는 틀림없이 무고죄로 함께 처벌받는다. 이 둘은 실체적 경합범 관계에 있어 형량이 크게 늘어난다.

 

검사가 만일 사건 p의 성립뿐만 아니라 그 불성립 즉 사건 ~p를 뒷받침하는 사실도 검사의 권한을 충실히 활용하여 적시에 조사하고 관련 증거를 수집한다면, 피의자로서는 굳이 무고죄 고소를 하여 그와 같은 위험을 크게 높일 어떤 합리적 이유는 없는 것이다. 경찰관과 검사의 수사권한을 통로로 하여서만 조사하고 수집될 수 있는 증거가 있다는 것을 피의자가 확신하는데도 경찰관과 검사가 이를 조사하고 수집하고 있지 아니할 때 이를 하도록 강제하는 지렛대가 되는 권리가 무고죄의 고소권이다.

 

그런데 수사매뉴얼은 (인지가 크게 필요 없는 명백한 물증을 피의자가 보유하고 있는 사건을 제외하고는) 검사의 인지도, 피의자의 고소도, ~p를 찬성하는 사실들을 조사하게 할 수 없다. 그러한 조사는 하지 않을 것이 요청되게 된 것이다.

 

바로 이것이 차이이며, 이 차이를 부인한다면, 다시금 수사매뉴얼은 쇼라는 명제로 돌아가게 된다.

 

그리고 이는 거꾸로 생각해볼 때 명백해진다. 핵심사건의 기초사실이 동일하다고 해서, 기본권 제한이 없다고 한다면, 거꾸로 무고로 고소가 되면, 원범죄인 성범죄의 수사를 중지하고 무고죄 수사만 하여도 동전의 양면을 그대로 조사하는 것이 되어, 성범죄 수사는 전혀 중지된 것이 아니므로, 아무런 기본권 제한이 없다는 결론이 나올 것이다. 이러한 결론은 터무니없다.

 

그러므로 기본권 제한이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4. 기본권 제한에 따른 필연적 귀결: 법률유보 원칙 위반

 

앞서 살펴보았듯이, 제한되는 기본권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제3자인 사인의 범죄에 대한 적시의 수사를 통하여 국가에 의한 기본권 보호를 받을 권리', '재판절차 진술권'(헌재 1989. 4. 17. 88헌마3, 판례집 1, 31, 37;헌재 1993. 3. 11. 92헌마48, 판례집 5-1, 121, 129 , 헌재 2009. 2. 26. 2005헌마764 등, 판례집 21-1상, 171 등), '평등권' 이다. 그리고 이또한 이러한 권리의 제한과 관련되어 '무죄추정원칙'과 '법률유보원칙'의 위반이 문제된다.

 

청와대 반부패비서관은 이것이 남녀 불문 성폭력 범죄와 그 무고 범죄에 적용되는 것이므로 성별에 따른 불평등 대우가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성별에 따른 불평등 대우는 문언상 범주가 성을 언급해야만 되는 것은 아니고, 그 문언에 의해 압도적으로 높은 비율이 한 성이 불평등한 대우를 받을 때 간접차별로 구성되는 것이다. 제대군인지원에관한법률 제8조 제1항 등 위헌확인 사건에서, 제대군인이 공무원채용시험 등에 응시한 때에 과목별 득점에 과목별 만점의 5% 또는 3%를 가산하는 제대군인가산점제도(이하 “가산점제도”)를 위헌으로 결정하면서 헌재 1999. 12. 23. 98헌마363, 판례집 11-2 결정은 "전체여성 중의 극히 일부분만이 제대군인에 해당될 수 있는 반면, 남자의 대부분은 제대군인에 해당하므로 가산점제도는 실질적으로 성별에 의한 차별"이라고 한 바 있다. 또한 "가산점을 받을 수 있는 현역복무를 하게 되는지 여부는 병역의무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징병검사의 판정결과, 학력, 병력수급의 사정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므로 가산점제도는 현역복무나 상근예비역 소집근무를 할 수 있는 신체건장한 남자와 그렇지 못한 남자, 즉 병역면제자와 보충역복무를 하게 되는 자를 차별하는 제도이다."라고 한 바 있다. 성폭력 범죄로 고소되느냐 여부는 피고소자인 피의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고소인의 고소에 의해 결정되고, 그렇게 고소된 결과 압도적 다수가 남성이기 때문에 성범죄과 그에 대한 무고죄 고소를 달리 취급하는 것은 이와 같은 법리에 의해 차별을 구성한다.  

 

또한 성별 차별이 아니라, 단지 고소된 범죄의 유형에 따른 고소인 차별이라는 관점에서도 불평등 대우의 정당화 사유는 보이지 아니한다. 이에 대해 반부패 비서관은 "무고죄의 성립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 성폭력이 있었는지 여부를 먼저 명확히 하라는 수사의 일반 원칙을 규정한 것"이라고 답하였으나, 이는 앞서 보았듯이, 핵심 사건의 기초사실이 동일하다고 범죄구성사실이 동일하지도 아니할 뿐더러, 편면적 수사로 확인되는 사실이 양면적 수사로 확인되는 사실과 동일하 지도 않기 때문에 타당한 정당화가 되지 못한다.

 

더 나아가, 차별대우가 문제되는 비교 집단이 하나 더 있는 바, 그것은 바로 일반범죄로 고소된 이가 무고로 고소한 경우와, 성폭력 범죄로 고소된 이가 무고로 고소한 경우의 차별이다. 이 차별은 일반범죄로 고소된 이에 비해 성폭력 범죄로 고소된 이가 유죄가 더 높이 추정된다는 이유 없이는 정당화될 수 없는데, 그러한 사유는 헌법의 무죄추정원칙에 반하는 사유이므로 정당화 사유가 되지 못한다. 무고죄로 고소받음으로 인해 무고죄 피고소인이 수사를 받음으로 인해 받게 되는 손실은, 그 어떠한 범죄로 고소받더라도 받게 되는 손실이므로, 이를 특별취급 하는 것 역시, 성폭력 범죄 고소는 진실될 가능성이 높다는 유죄추정원칙이 아니고서는 정당화할 수 없다.

 

즉, 이 수사매뉴얼은 그 도입 취지 자체가 유죄추정원칙에 기초한다. 성범죄로 고소된 이가 유죄일 확률이 높다는, 즉 원범죄로 고소된 이는 가해자일 가능성이 매우 높으므로, 이런 가해자가 무고 고소를 하는 것이 아무런 효과도 적시에 가질 수 없도록 하고, 검사 또한 인지를 하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피해자일 가능성이 매우 높은 이가 적어도 원범죄의 수사기간에는 피의자로서 수사를 받는 어떠한 위험도 제거하고자 하는 것이다.

 

만일 이러한 유죄추정이 전제되지 아니하였다면, 원범죄의 고소인이 무고죄와 명예훼손죄로 수사받는 것 자체가 2차 피해라는 도입 취지는 성립하지 아니한다.

 

청와대 민정수석은 한 신문에의 기고에서 “성폭력범죄 피해자에 대한 무고죄 적용을 봉쇄하는 것은 고소한 상대방을 ‘유죄 추정’하고 헌법·법률적 권리행사를 금지해 위헌”이라고 하면서도 성폭력 사건 수사 중 무고 수사를 (명백한 물증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일률적으로 중단하는 것은 유죄추정이 아니라고 한다. 이는 명백한 모순이며, 무죄추정을 장기간 훼손하는 것은 위헌이지만 중기나 단기간 훼손하는 것은 합헌이라는 명제를 전제한다. 그러나 유죄추정원칙을 단기간 하여도 좋다는 규범은 헌법 어디에도 없다. 무죄추정원칙은 헌법 규범으로서, 사회정책적 목표 달성을 위해서도 훼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수사 매뉴얼은 성폭력 범죄에 대한 고소의 촉진이라는 목표 달성을 위해 일정 기간동안 무죄추정원칙을 적용하지 아니하자는 것이다. 그것이 '균형 잡힌 해법'이라는 단언은 전혀 논거가 되지 못한다. 헌법규범은 어떤 논자의 심리 내의 저울을 작동한 결과로 파악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같은 취지의 내용을 담은 입법안의 위헌성 검토에서 다룬 바 있다.

(링크: http://www.civiledu.org/1155)

 

그런데 문제의 수사매뉴얼은 행정부 내부 지침으로서, 법률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 매뉴얼에 따른 수사 부작위는 법률상 근거가 없다.

그러므로 매뉴얼에 따른 수사 중단, 수사 불개시, 수사 거부가 기본권 제한에 해당한다면, 이는 법률상 근거 없는 기본권 제한에 해당한다.

 

헌법 제37조 제2항은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고 하여 법률유보원칙을 천명하고 있다.

 

헌재 1999. 1. 28. 97헌가8, 판례집 11-1, 6-7 [위헌] 결정은 "국민주권주의, 권력분립주의 및 법치주의를 기본원리로 채택하고 있는 우리 헌법상 국민의 헌법상 기본권 및 기본의무와 관련된 중요한 사항 내지 본질적인 내용에 대한 정책형성기능은 원칙적으로 주권자인 국민에 의하여 선출된 대표자들로 구성되는 입법부가 담당하여 법률의 형식으로써 이를 수행하여야 하고, 이와 같이 입법화된 정책을 집행하거나 적용함을 임무로 하는 행정부나 사법부에 그 기능을 넘겨서는 아니된다. 헌법 제75조는 “대통령은 법률에서 구체적으로 범위를 정하여 위임받은 사항……에 관하여 대통령령을 발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여 위임입법의 근거를 명시하는 한편, “구체적으로 범위를 정하여” 위임하도록 하여 위임의 한계를 제시하고 있다. 법률에 미리 대통령령으로 규정될 내용 및  범위의 기본사항을 구체적으로 규정하여 둠으로써 행정권에 의한 자의적인 법률의 해석과 집행을 방지하고 의회입법의 원칙과 법치주의를 달성하고자 하는 헌법 제75조의 입법취지에 비추어 볼 때, “구체적으로 범위를 정하여”라 함은 법률에 이미 대통령령 등 하위법규에 규정될 내용 및 범위의 기본사항이 구체적이고도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어서 누구라도 당해 법률 그 자체로부터 대통령령 등에 규정될 내용의 대강을 예측할 수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위임입법의 구체성, 명확성의 요구 정도는 그 규율대상의 종류와 성격에 따라 달라질 것이지만, 특히 국민의 기본권을 직접적으로 제한하거나 침해할 소지가 있는 법규에서는 구체성, 명확성의 요구가 강화되어 그 위임의 요건과 범위가 일반적인 급부행정법규의 경우보다 더 엄격하게 제한적으로 규정되어야 하는 반면에, 규율대상이 지극히 다양하거나 수시로 변화하는 성질의 것일 때에는 위임의 구체성, 명확성의 요건이 완화되어야 할 것이다(헌재 1995. 11. 30. 91헌바1등, 판례집 7-2, 562, 589)."라고 한 바 있다.  

그런데 이 사건 내부지침에 따른 수사 부작위는 법률의 근거도 없을 뿐더러, 법률의 위임도 없다. 따라서 이는 법률의 근거 없이 당연히 해야 할 국가 의무를 하지 않음으로써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여, 법률유보 원칙에 위배하여 위헌이다.

 

즉, 내부지침에 따른 수사 부작위는, 비슷한 내용의 법률안이 위헌이 되는 모든 이유에 더하여, 법률유보원칙의 위배라는 이유까지 더하여, 곧바로 위헌이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같은 취지의 법안에 대한 위 링크된 검토글에서도 밝혔듯이, 중대한 목적은 그 목적을 달성하는 수단을 그 자체로 정당화해주지 않는다. 모든 목적들은 기본권을 보장하는 헌법규범을 어기지 아니하여야 한다.

 

어떤 사람이 결백함에도 불구하고, 사인이 고소함에 의해 수사가 개시되고, 범죄 혐의를 수사기관에 의해 추궁받고,  강제수사권의 발동으로 각종 인신의 구속, 압수수색 등을 받게 되는 것은 비극적인 일이다. 이 비극의 크기는 결백함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불완전한 형사절차를 직접 겪어본 사람만이 안다. 그러나 이 비극은 형사사법체계가 작동하기 위해 슬프지만 때때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비극이다. 만일 이 비극을 어떤 종류의 범죄에 대하여는 일정기간 거부하는 것은, 어떤 사람이 진정으로 그 범죄의 피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적시의 수사를 통하여 보호를 받을 수 없는 결과를 낳는다. 결백함에도 불구하고 사인의 고소에 의해 마치 이미 유죄가 확정된 것처럼 수사 과정에서 피해를 입는 비극은, 바로 그러한 유죄 추정 전제 하에서 행위하는 수사기관의 수사행위를 보편적으로 고침을, 즉 무죄추정원칙을 실질적으로 구현함에 의해서만 완화될 수 있다. 그 비극을 오히려 유죄추정원칙을 지렛대로 삼아 특정 영역에서만 완화하는 것은, 자신이 가장 익숙하게 접하는 비극에 자연스레 선한 마음이 움직였으나, 공권력의 행사와 불행사가 어떤 거대한 함의를 갖는지를 보지 못한 결과이다. <끝> 

 

Posted by 시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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