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단기계획 이행 실패의 원인

 

우리는 가치를 향유하는 삶의 감각을 위해, 가치의 문법에 맞는 방향 속에 있는 중기계획과, 그것들을 실제로 완수케 하는 단기계획의 설정과 이행이 중요하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기계적인 단기계획의 할당과 이행은 결국 실패로 돌아간다는 것도 이미 확인하였다.

 

그리고 기계적인 단기계획의 할당과 이행이 실패로 돌아가는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로, 사람은 기계가 아니다. 즉, 사람은 스트레스, 고뇌, 잔걱정, 주의산만, 감정상 싫음, 진빠짐, 게으름, 어리둥절함, 다운 됨 등을 겪는 존재이다. 또한 이것은 단기과업과 독립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경우 단기과업과 연관되어 발생하기도 한다. 즉, 어떤 일 자체가 이런 상태를 야기하기도 한다. 그래서 비슷하게 시간이 걸릴법한 일이거나 오히려 시간이 적게 걸리는 일이라도, 그보다 시간이 더 많이 걸리는 일보다 하기 싫어서 진행이 잘 안 되거나 아예 일에 착수하지 않는 경우가 생긴다. 더 신기한 현상으로, 똑같은 일인데도 어떤 때에는 하기 싫고 어떤 때에는 하고 싶거나, 어떤 때에는 잘 안 되고 어떤 때에는 잘 된다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기계적으로 계획을 세웠을 때는 감안하지 않았던, 일의 난이도와 감정적 끌림, 착수의 용이, 타이밍 등에서 편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고려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즉 융통성 없이 단기계획으로 할당하다 보면, 안 하게 됨직한 일은 결국 안 하게 된다.  

 

둘째로, 일의 우선순위가 계획에 구조화되어 들어가지 못하게 된다.

(1) 어떤 일은 시급한데 자꾸 그 시급한 일을 미루거나 잊거나 한다.(관리비, 가스비 내는 일들, 외부와의 약속으로 마감이 곧 닥친 일을 하는 것) 

(2) 어떤 일은 지금 당장은 시급하지 않지만 하지 않으면 나중에 똥줄 타게 될 것이 확실시된다.(마감이 넉넉하게 있는 일을 하는 것, 자신이 이미 계획을 확정하여 돈을 내거나 하였는데 세부계획을 세워야 그 계획이 실제로 이행되는 것.)

(3) 미루려면 계속 미룰 수 있지만, 그렇게 되면 정신적, 육체적 건강에 문제를 발생시킨다.(세탁, 청소, 운동, 섭생)

(4) 하지 않는다고 해서 일상생활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도 아니고, 영원히 시급하게 되는 일은 없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자기자신의 가치 지평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은 하지 못하게 된다.(예를 들어 어떤 관심 있는 분야를 공부하고 자신만의 책을 쓰고자 하지만, 아무도 쓰라고 닥달하는 사람이 없으므로 영원히 책 한 권 쓰지 못하고 인생을 마감한다.)

이처럼 시급성, 중요성, 자발성에서 변이(variations)들이 있는데, 이 변이들을 적절하게 감안하지 못하게 된다.

 

이 문제 때문에 기계적 단기계획 실행은 실패한다. 이 실패를 여러 번 겪은 사람은 자기 자신을 잘 알기 때문에 결국 단계계획을 세우지 않고 삶을 살게 되는데, 이러한 삶을 일컬어 '분주한 무기력에 빠진 삶'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패러다임이 되는 무기력에 빠진 삶은 거의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않는 삶이다. 그러나 이것만이 무기력의 전부가 아니다. 곁에 있는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하고, 성찰해보지 않으면 자기도 깨닫지 못하기도 하는 상태가 '분주한 무기력'이다. 이런 상태에서는 매일매일 즉각 닥치는 대로, 주의가 끌리는 대로 일을 분주하게 하는데, 그러다 보면 외부의 마감으로 인해 가장 시급한 일들과, 가장 그 순간 주의를 끄는 일이 생활의 중심을 차지하게 된다. 한마디로 '정신없이 부지런한' 상태이다. 물론 사람이 먹고 살다 보면 이런 상태가 일이주, 길게는 한 달 이어지는 경우는 흔하다. 그러나 이것이 몇 달, 일 년, 이년이 지속된다면 분주한 무기력으로 진단할 수 있다. 즉 이렇게 되면 진정으로 자신에게 소중하다고 생각되는 중기계획들을 거의 실현하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시급한 일들도 체계적으로 처리하지 못하고 마감이 급하게 다가온 일들만 그때그때 하기 때문에, 안정감이 없고 불안한 상태에서 쫓기는 느낌이 일상을 지배하게 된다.

 

물론 단기계획을 융통성 없게 기계적으로 설정하는 것이 분주한 무기력의 유일한 원인은 아니다. 많은 경우, 자신의 기질과 여건에 맞지 않게 지나치게 많은 일을 부담하게 되면 분주한 무기력에 빠지게 된다. 그러므로 우선은 자신의 생활이, 평균인의 삶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일을 외부와 약속하여 부담하고 있지 않은지 점검해보고, 최대한 외부와 약속해서 하는 일들은 줄여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평균인에 비해 그렇게 많은 일을 부담하고 있지 않은 데도 분주한 무기력에 빠진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대학교 학부생인데, 자신은 다른 동료 학생들에 비해 특별히 학업의 부담이 더 있지 않은데도, 분주하고 쫓기는 기분에 쌓이고 원래 계획했던 것은 하나도 하지 못한다면, 단기계획 설정과 실행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현재 일단은 많은 일을 부담하고 있는 사람도, 아래에 소개할 방법을 쓰면 어느 정도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2. 하루 7개의 할 일

 

이제 단기계획 설정과 이행의 간단한 방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들어보면 간단해서 싱겁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필자는 이 방법을 효과를 봐 왔으니, 기질과 여건에 따라 이것이 도움이 되는 이들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1) 하루 7개의 할 일을, (2) 중기계획과 자기유지를 감안하여 (3) 시급성, 난이도, 수용성, 복합성, 중요성 등을 고려하여 (4) 적당한 크기를 한 다위로 삼아 (4) 전날  (5) 공책에 미리 적어두고, (6) 다음 날 그 일 목록을 계속 수정하고 조정하면서 (7) 과잉성취 해나가라'는 것이다.  

 

이것을 자세히 설명해보자.

 

일단 공책을 산다. 공책은 면적이 적당히 크고 아주 가벼운 것, 그러니까 가격이 1000원에서 2000원 정도 하는 얇은 것으로 산다. 다이어리는 의외로 무거운데다가, 한 면의 면적이 넓지 않아서 그렇게 좋지 못하다. 공책 맨 앞 장에는 지금 자신의 중기계획을 적어둔다. 이를테면 필자는 현재 1년에 2편의 논문을 학술지에 싣고, 2권의 책을 저술 내지는 번역하는 것을 중기계획으로 잡아두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6개월에 1편의 논문과 1권의 책을 저술(번역)하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이러한 중기계획은 단순히 숫자를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다. 필자가 탐구하여 그 성과를 공유하고 싶은 글의 주제가 이미 십수개 있기 때문에 그 중 가장 끌리는 것부터 골라 차근차근 탐구하고 써나가는 것뿐이다. 필자에게는 논문을 1년에 2편 게재할 어떠한 사회적 책무도, 책을 2권 써야 할 어떤 긴절한 필요도 없다. 즉 이러한 중기계획은 전적으로 자기자신에게서 나온, 자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인, 진리를 탐구하고 공유하는 일인 것이다.  이것 외에도 해외여행이나, 다이어트, 스윙 배우기, 그림 배우기, 일본어 교재 2권 마스터 같은 것도 중기계획이 될 수 있겠다. 

다만 조직에 속해서 주어진 과제 자체가 중기인 것도 중기계획에 넣어도 무방하다. 어쨌거나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니까 말이다.

공책은 보통 1달 정도면 바뀌게 되니까, 공책을 바꿀 때마다 이렇게 중기계획을 다시 한 번 적어둔다. 그러면서 중기계획도 조정하거나 수정할 수 있다.

 

하루를 살면서 중간중간, 그리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에 공책에다가 다음날 할일을 적어둔다.  중간중간 적는 것은, 다음날이 되어야만 할 수 있는 일인데, 지금 생각난 것을 적는다. 예를 들어 구청에 갑자기 가야 할 일이 생겼는데, 이걸 알게 된 시점이 오후 5시다. 그러면 어차피 그 날은 못 간다. 내일 가야 한다. 그러니 내일 할 일에다 적는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에는 중기계획을 염두에 두고 찬찬히 내일 뭘 해야 할지를 적는다. 또 이 때는, 스마트폰 달력을 보면서, 내일 꼭 해야 할 일도 공책에 옮겨적는다. 스마트폰 달력에만 입력해두면 그 달력을 안 봐서 낭패가 생기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지인과 7시에 만나기로 2주 전에 정했는데 그것을 공책에 옮겨적고, 공책을 하루종일 끼고 생활하면, 이런 약속을 잊는 법이 없게 된다. 이런 습관을 들이면 며칠 후의 일을 미리 머리에 계속 넣어둘 필요는 없게 된다. 공책 한 면을 하루에 할당한다.

 

이렇게 전날 적는 일의 갯수는 7개다. 7이라는 숫자는, 평범한 인간이 작업기억 속에 한 번에 올려놓을 수 있는 정보단위의 최대치이다. 이 이상의 할 일은 미리 적지 않는다. 7개 중에서 그 시급성 등에서 최우선적인 일은 별표를 쳐놓는다. 만일 그 일이 복합적인 일이라면, 최대한 생각을 짜내서어서 단순 과제로 여러개로 나눈다. 예를 들어 구청에 가는 일은 복합적인 일이 아니므로 1개의 일이지만, 기획서를 쓰는 일이라면 최소한 과정별로 분해해서 3개 정도로는 나누어주어야 한다.

 

7개의 일을 다 해치우는데 필요한 시간은 집중한 시간으로 5시간이 넘지 않도록 정한다. 그 이상의 계획은 전날 세울 필요가 없고, 정말로 몰리지 않는다면 세우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즉, 애초에 한개의 단위로 치는 일의 크기는, 과잉성취하도록 처음부터 조절되어 있어야 한다.

 

하기 싫거나 자신이 잊어먹고 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 일들은 아무리 시간이 적게 걸려도 1개로 잡는다. 예를 들어 필자는 가스비나 관리비 등을 내는 일을 무조건 1개로 잡는다. 이렇게 습관을 들이고 난 뒤에는 이 단순한 자기유지(sef-maintenance) 행위를 미루는 법이 없었다. 왜냐하면 약간의 시간을 들여 지로용지를 집어드는 순간 계좌이체를 하고 나면, 곧바로 1개의 일을 해치웠다는 자기만족이 들기 때문이다. 업무상 전화를 걸어야 하는데, 이런 전화를 걸기가 싫어도 1개로 친다. 3분이면 끝날 전화라도 그렇다. 이렇게 해두지 않으면 하루종일 전화를 미루다가 전화를 까먹고 하지 않게 될 위험도 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일의 크기는 자신이 그 일을 해낼 수 있도록 자신이 정하는 것이다.

 

다른 일들도 하나의 분명한 단위가 생기도록 한다. 시간으로 정하는 경우는 없어야 한다. 예를 들어 '30분간 일본어 책A 보기'라는 식으로 정해서는 안 된다. 그 대신 5분 정도 더 에누리해서, 25분 집중하면 충분히 볼 수 있는 분량을 정해서, '일본어 책A x분량 보기'라고 한 단위 일을 정한다. 필자는 논문 1편 읽는 것을 1개의 일, 책이라면 한 챕터를 읽는 것을 1개의 일로 정해두었다. 그리고 필자가 계속 외국 문헌만 읽으려고 하는 편향이 있기 때문에 훨씬 빠르게 읽을 수 있는 국내 문헌도 역시 똑같이 1편에 1개, 1챕터에 1개로 정해두었다. 그리고 정리를 하는 것도 1개로 분리해서 정해두었다. 시민교육센터에 쓰는 1편의 글들도 1개로 정해두었다. 논문이나 책을 쓰는 경우에는, 소목차 한 개를 1개의 일로 정해둔다. 전자소송시스템에서 준비서면을 제출하는 것도 1개의 일이다. 그 외에 하기 싫은 잡무들도 모두 1개의 일이다. 이를테면 자신이 청소를 미루는 습관이 있다면 청소도 분명한 공간이나 청소종류의 단위를 정해서 1개로 정한다. 세탁이나 다리미질을 미루는 습관이 있다면 이것도 1개로 쓰면 된다. 우체국에 가는 일도 1개다.

 

전날 적어둔 일은, 별표를 친 일을 제외하고는 모두 다른 일로 대체할 수 있다. 7개의 할 일이라고 해서 번호를 매겨서 적으면 안 된다. 그냥 간단하게 ◎나 를 활용해서 적으면 된다.

 

○ 세탁기 돌리고 건조대에 널기]

○ Moral Luck 한 챕터 읽기.

 

그리고 나서 해치우면 사선을 좍 그으면 된다. 그리고 바를정()을 써서 한 일들의 수를 기록하면 된다.

 

하지 않은 일들은 지우지 않고 그대로 둔다. 다른 일로 대체해서 하지 않은 일들은 다음 날 할 일로 옮겨 적으면 되기 때문이다. 이로써 타이밍 문제는 해결이 되어버린다.

 

별표를 친 복합적인 일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마감이 곧 닥친 일이다. 다른 하나는 꾸준히 하지 않으면 도대체가 진행이 되지 않는 일이다. 그런데 하루 일과가 시작되고도, 이를테면 오후 3시가 되어도, 이 일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지 않거나 착수조차 되지 않거나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더 쪼개면 된다. 할 일로 정해두었는데도 하지 않는다면, 아마 난이도가 생각보다 높거나, 복합성이 더 크거나, 아니면 스트레스가 더 크거나, 마음에서 싫다는 생각이 있거나, 일의 과정을 명확하게 정리하지 못했거나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쪼갠다.

복합적인 일을 쪼개는 수법은 아주 오래된 것이고 누구나 다 아는 것이지만, 여기서 추천하는 방법에는 트릭이 있다. 즉, 원래 한 가지 일이라고 생각한 것을 3개로, 4개로 늘려 성취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3개, 4개에 맞먹는 일이었다. 그러므로 그러한 일을 해냈다는 기록을 해줄 자격이 있다. 또한 그 일을 함으로써 다른 일들은 더 적게 해도 된다.

 

이렇게 처음부터 계획을 하루 일과의 3분의 1이면 해낼 분량으로 정했기 때문에, 늘 과잉성취를 할 수밖에 없다. 이 방법을 써보고 과잉성취를 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일의 크기를 지나치게 덩어리로 잡았기 때문이다. 과잉성취하는 것으로 기록될 때까지 계속 일의 크기를 작게 조정하여야 한다.

 

이제 정말로, 일과의 3분의 1 시간이 지나자, 7개의 일을 모두 해치웠다고 하자. 그러면 남는 시간에는? 잠시 생각의 시간을 갖는다. 이때, 중기, 단중기 계획들을 감안한다. 공책에다 추가로 할 일을 적는다. 그리고 또 그것들을 한다. 이점이 특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추가성취를 할 때에는, 지금은 시급하지 않지만 중요한 일들을 적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일상생활에 일종의 게임과 같은 형식을 제공한다. 미션이 있고, 미션은 짧으면 5분, 길면 30분 정도의 초집중으로 간단히 완수할 수 있다. 미션이 성공하면, 바를정자가 늘어난다. 바를정자가 7개를 넘어서면 과잉성취다. 7개를 넘어선 부분은 +4, +5 하는 식으로 적어둔다. 만일 토요일까지, 그 주에 과잉성취한 것이 7개를 넘는다면 일요일은 쉰다. 만일 7개보다 모자란다면, 일요일에는 그 모자란 수를 채운다. 이렇게 매주 통계를 내면서, 한달이 지나면 중기계획들이 얼마나 진척이 되었는가를 보고, 다시 매일 7개의 할 일을 정할 때 참고를 한다.

 

이것은 기계적 할당과 완전히 다르다. 온통 융통성 범벅이다. 중기계획을 고스란히 염두에 두면서도, 단기의 시급성 등을 고려하게끔 한다. 하기 싫은 일은 더욱 일의 크기를 줄임으로써 그것을 하기 쉬운 상태로 만든다. 의무감은 게임 감각으로 바뀐다. 외부에서 부과된 일만 목전에 두고 급급하게 끌려가기보다는, 짜임새 있게 자신에게 중요한 일들을 하나씩 실행시킬 수 있는 일종의 트릭장치를 갖게 되는 것이다.

<끝>

 

 

Posted by 시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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