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장년이여, 닌자가 되라: 세 가지 기둥을 중심으로 생활을 재조직

 

청년의 습관(habit)과 사고방식(mindset)는, 무언가 멋지구리한 원대한 일이 자기 앞에 펼쳐질 것이라는, 이 세계는 나에게 무언가 좋은 일을 예비해둘 것이라는 기대를 한편으로, 그리고 아무렇게나 살아도 오뚝이처럼 다시 괜찮아지는 생물적 활기를 전제로 하고 있다.

 

이 두 전제 모두가 사라진 장년에서는 습관과 사고방식을 모두 전면적으로 재조직할 필요가 있다.

 

무엇을 중심으로 재조직해야 하는가?

 

그 중심이 되는 것이 세 기둥이다.

 

첫째, 건강 자체를 목적으로 삼아, 이를 관리하는 습관을 기르는 것. 여기에 이제 의식적이고 상당한 양의 비중을 할애해야 한다. 요령들을 생각하고 시행착오를 거쳐, 요령들을 다시 재조정하고, 혁신하고, 조금씩 개선범위를 넓혀가야 한다. 20대의 습관은, 아무렇게나 살아도 그것이 중기적인 영향을 미치지 아니하는, 심지어 단기적인 영향도 거의 미치지 아니하는 그런 전제 하에서 형성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습관이 이미 몸에 붙은 상태에서 장년을 살게 되면, 그 업보가 전부 고스란히, 단기적으로도 자신에게 돌아오게 된다. 그것이 실제로는 어마어마한 복지의 감소를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이 간단한 이치를 깨닫지 못하고, 무언가 다른 거대한 지평에서 그 원인을 찾는 경우가 많다. 인생에서 무언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 있다는 느낌을 갖는 것이다. 그러나 그게 아니고 그냥 이제는 그렇게 몸을 함부로 굴려서는 안 되는 시기가 온 것뿐이다. 세월로 인한 퇴락은, 건강한 습관을 들임으로 인해 상당 부분 회복될 수 있다. 그리고 건강을 관리하는 일 자체가 두 번째 기둥의 수행이 된다.

 

맵고 짠 음식을 먹지 않고, 단 음식을 자제하고, 오히려 허기가 약간 진 상태를 유지해서 밥 때에 입맛을 돋울 필요가 있다. 배가 공허할 때에는 물을 많이 마시고, 그것도 미지근한 물이나 약간 따뜻한 물을 주로 먹는 것이 핵심이다. 그리고 걸어다니는 것을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지 말고 그 자체를 매우 중요한 과업으로 치는 것. 집안일을 하는 것도 집안을 깨끗하게 함으로써 나의 육체적인 건강과 정신적인 건강을 지킨다고 생각하는 것. 그리고 사람을 만나는 것, 어떤 활동을 하는 것도 모두 육체적이거나 정신적인 건강에 비추어 약속하고 맡을 것. 나의 복지에 궁극적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과는 만나지 않을 것. 굳이 내가 언질을 미리 줄 필요가 없는 것에 대해서는 기대를 불러일으키는 언질을 주지 않을 것. 꾸준히 운동을 하지 않고 있다면 꾸준히 운동을 하는 습관을 들이려면 어떻게 할까를 고민하는 것. 운동을 어떻게 하면 재밌게 할까를 생각하는 것. 여러가지로 시도해보는 것.

 

둘째, 거리를 둔 상태에서, 삶의 의미의 깊이만을 염두에 두며, 그 활동의 장르에 고유한 문법을 따라 수행의 질(quality)을 준수하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퍼즐풀이와도 같은 수행에 몰두할 것. 여기에는 가치 있고 적합한 역할 수행에 더해 모든 정당한 자연적 의무의 수행 또한 포함된다.

20대의 마인드세트는 자아와 세계 전체를 일치시키는 것이다. 그리하여 세계가 쇠락하면 자아가 같이 쇠락하는 것이요, 또한 나의 삶의 성공은 내가 세계에 미치는 충격에 의해 측정되는 척도를 갖는다. 나와 같은 견해를 갖게 만들면 의기양양해지고, 나와 다른 견해를 만나면 화가 나거나 침울해진다. 내 성취가 다수에게 인정받을수록 나의 삶은 가치가 보증되는 것이고, 인정을 받지 못할수록 나의 삶의 가치는 격하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우연이고 운이 크게 작용하는 것이며, 의미의 넓이는, 의미의 깊이로 전환될 수 있는 것이 아닌 한, 더 이상 의식의 주의를 기울일 가치가 있는 초점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이렇게 의미의 넓이를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은 세간에서 말하는 수행의 결과적 성공/실패에 대해 실제로 신경을 쓰지 않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스토아적 태도를 취하여, 격정(passion)을 제거함을 의미한다. 신체적 반응으로서 즉각적인 놀람, 슬픔, 언짢음, 부정적 판단 등은 느끼거나 할 수 있지만, 충격, 비통, 격노나 원한은 갖지 않음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후자의 격정들은 모두 그에 상응하는 잘못된 신념(belief)들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격노한다는 것은, 내가 그 사건에 즉하여 언짢은 것을 넘어서서, 또는 그 사람의 행위가 잘못되었다는 판단을 내리고 그에 적절한 대응을 하는 것을 넘어서서, 내 인생의 거대한 부분을 계속 그 사람에 쏟는 것이 가치 있다는 암묵적인 신념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제들은 진화론적으로 적응적인 뿌리를 갖고 있긴 하다. 그러나 바로 그 이유에서 그것들은 장년에게 적합하지 않은 것이다.

의미의 깊이는 퍼즐을 적절하게 잘 푸는 것을 의미한다. 방향이 맞다면 그 퍼즐을 푸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다. 물론 그 가치가 의미의 넓이에 해당하는 가치는 아닐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퍼즐 푸는 것 자체를 재미있는 일로 환원하는 것이 중요하다. 과정을 철저히 즐길 수 있도록 과업들을 분해하고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퍼즐들은 많이 푸는 것보다 잘 푸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실제로 해야 할 일을 적은 상태로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필연적인 사정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사정들은 .자신이 아둥바둥한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것은 아님을 깨닫게 된다. 자신이 시장에서 어쨌든 교환가치를 가지는 직업을 수행하면서, 퍼즐을 풀고 있는데도 잘 안 되는 것은 어차피 걱정을 매번 해보았자 잘 안되는 것이다. 방향이 타당할 것, 그리고 내가 그 수행의 질을 측정하는 척도에 의거하여 퍼즐 풀기의 좋은 수행을 하는 것. 이것 이외에는 신경 쓸 것이 없다.

그것은 자신이 좌우할 수 없는 외적인 것, 사물의 외관에 자아가 흔들리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테면 주위 사람들은 결과를 요구하며, 여지가 있다면 더욱 더 쥐어짜서 최대한의 수행을 할 것을 요구한다. 그런데 이것은 상당히 이해할 만한 일인 것이, 그렇게 하면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자신들이 최대한의 수행을 하는 것은 또 아니다. 자신들은 되는 대로 하면서 남들에게만 그렇게 요구하는 것이다. 이렇게 호혜성이 무너진 요구는 신경 쓸 필요가 없다. 그리고 그들은 이러한 자기 이익을 숨기기 위해 부패한 윤리적 언어를 동원하여 수치심을 주려고 한다. 수치심을 주는 것은, 자신이 규범적으로도 납득시킬 수 없고, 교환할 수 있는 어떤 이익이 되는 거래를 제안할 능력도 없으며, 또한 정당성 있는 권위를 보유하지 못했을 때 쓰는 방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치를 주는 언어에 붙은 말은 이 두 번째 기둥을 진지하게 이해하는 장년에게 아무런 힘을 가지지 못한다. 그 외에도 규범과 가치의 문법에 적합하지 않은 추임새와 같은 모든 압력들은 시야에서 부적절한 것으로 사라진다.

세계에 대한 관심 역시 오로지 이 두 번째의 과업으로 전환된 한도에서만 의식의 초점이 된다. 예를 들어 세계의 부조리한 면을 두고 비통해하거나 짜증 속에 흔들리거나 화에 사로잡혀 어쩔 줄 몰라하지 않는다. 부조리한 것 중에서 자신이 높은 질의 수행으로서 그 개선에 기여할 수 있다면, 그것은 곧 바로 퍼즐 형식의 과업으로 전환될 뿐이다.

세계에 대한 어떠한 '당위적이고 당연한' 기대도 여기서는 사라진다. 세계는 외적인 것이요, 겉모습일 뿐이며, 내가 해야 할 일을 좌우하지 않는다. 이 두 번째 기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스토아 학파의 철학에 관하여 깊이 있는 이해가 필요하다. 여기에 대해서는 <깊은 의미와 큰 의미>를 참조하되, 이후 추가적으로 더 설명이 이루어질 것이다.

 

셋째, 문화물들을 온전히 목적 그 자체로 즐겨라. 장년이 되고 나서 목적 그 자체로 꾸준히 즐길 수 있는 주된 것들, 오히려 깊이 있게 즐길 수 있는 것들은 오로지 문화물들만이 남는다. 문화물들은 소설, 에세이, 영화, 게임 등이 있다. 이러한 문화물들은 서사 구조를 제공하는데,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현실을 잊고, 그 안에 들어가서 카타르시스도 맛보고 신세계도 맛보고 모험도 하고, 관찰도 거리를 둔 상태에서 할 수 있고, 통찰을 뽑아낼 수도 있고, 그냥 그 자체로 즐겁기도 하다. 이 사회는 이 점에 대해서 전혀 강조를 하고 있지 못하다. 오히려 깨어나서 8시간 내내 문화물을 생산하는 사람을 보면 아주 잘 살고 있다고 칭찬을 하는 반면에, 깨어나서 8시간 내내 문화물을 소비하는 사람을 보면 아주 잘 못 살고 있다고 비난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문화물을 생산하는 것은, 그것을 체험해주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문화물의 체험은 의미의 깊이를 갖는다. 소설가가 써놓은 단 하나의 문장이, 나만 알아보고 감탄한다 할지라도, 그 소설가가 그 소설을 창작할 때 체험한 깊이는, 나에게 전달된 것이다. 게임을 하루에 8시간 할지라도, 그 사람이 스스로를 부양하고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은 전혀 잘못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게임도 하지 아니하고, 그렇다고 다른 문화물들을 즐기지도 못한 채, 하루종일 강박에 쫓기듯 생산만 하고 사는 사람의 삶이 더 빈약하다. 청년은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장년이 되어서도 그러고 있다면 다시 생각해볼 시점이다. 

주의할 것은, 자신이 즐긴 문화물들에 대해서 다른 사람이 어떻게 평하는가는 신경 쓰지 말고 읽을 필요도 없다. 그런 것들은 의식의 초점을 불필요한 곳으로 옮긴다. 다른 사람의 추천이나 소개는 문화물들을 접하는 계기일 뿐이다. 그것을 가지고 뽐내거나 잘 난척을 하는 사람과는 거리를 두라. 그 시간에 한 번 더 즐기거나, 다른 깊이 있는 문화물을 즐기는 것이 낫다.  

 

이 세 가지 기둥에 속하지 아니하는 것처럼 얼핏 보이는 것들도 결국에는 두 번째 기둥으로 전환될 수 있는 것에 속한다.

 

이 세 가지 기둥은 소극적인 원칙을 전제로 한다. 자신이 적절한 수행의 문법에 따라 수행할 수 없는 것들은 모두 이제는 강박 속에서 접속해 있을 필요도 없는 것이다.

 

이 세 가지 기둥은 점오점수를 명한다. 이 세 기둥이 의미하는 바는, 실천을 구체화함으로써 점점 더 깊이 깨닫게 된다. 또한 이 세가지 기둥을 실천하는 것도 시행착오를 통해 자신의 기질과 여건에 맞는 것을 찾아가게 된다.

 

그러므로 세 가지 기둥에 따라 자신의 삶을 재조직화하는 방안을 써보고, 출력하고, 자주 읽어보면서 다시 수정해보라. 다른 어떠한 명령도, 기대도, 환상도 완전히 버리고, 거기에 맞춰 물든 습관과 사고방식을 재조정하라.

 

이것이 바로 장년이 닌자가 되는 방식이다. 여기서 닌자란 역사적으로 존재하였던 닌자가 아니라, 우리가 닌자 하면 중심적으로 떠올리는 어떤 이미지를 말한다.

닌자는 일단 눈에 띄지 않는다. 나대지 않는다. 자신의 이미지를 세상에 드러내보이고자 하지 않는다. 닌자는 묵묵히 자기 일을 수행할 뿐이다. 닌자는 세계가 자신과 일치되지 않는다는 점에 신경 쓰지 않는다.

닌자는 조심스럽다. 조용조용 살금살금 걷는다. 닌자는 임무 수행을 위해 건강에 신경 쓴다. 임무 수행을 더 날래고 민첩하게 하기 위하여 여러가지 훈련을 한다.

닌자는 틈만 나면 휴식을 취한다. 멋지구리하고 원대한 일이 생길 것이라는 기대가 없다. 남는 시간이 있으면 그 자체로 즐긴다. 다른 일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그 자체로 시간을 즐긴다.

 

닌자와 같은 이미지를 뚜렷하게 염두에 두는 것은, 점오점수를 하는 데 유용하다.

 

나는 닌자와 같이 살고 있는가? 나는 한 마리의 닌자인가? 닌자라면 어떻게 하였을 것인가? 닌자는 어떻게 하루를 조직하였을 것인가? 닌자라면?

 

그렇다, 장년이여, 닌자가 되라.  

Posted by 시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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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호호
    2018.06.19 01:35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세상 근심 중 잘 할 수 있는 것을 프로젝트화하면 되는군요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2. 닌자오소리
    2018.06.20 17:49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출력해놓아야겠습니다b 몇년전 문득 깨달았습니다. 내작품은 쓰레기이고 내 실력은 수준이하구나. 그것을 직시하지않고 작품을 만들어 늘 괴로웠단것을 알게되었습니다. 네 실력은 이게아닐텐데 왜 이런 허접이만 만드는거야, 뭐가 문제인거야, 실력발휘를 해야 작품으로 먹고살게되어 더 작품을 많이해서 더 좋은작품을 만들수있을텐데.......그런데 그냥 실력이 별로라는것, 그 실력이 얼마나 늘지 알수없단 것, 내 실력이 개떡이라도 행복하게 계속 살고싶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은 그냥 여유시간에 욕심버리고 세월아 내월아 작품을 하고있습니다. 죽기전에 볼수있는거냐고 주위에서 묻지만 그냥 닌자처럼 계속 해야겠습니다.
  3. 홍인표
    2018.06.29 10:59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재밌네요. 두번째 기둥부분을 읽을때 잘 안 읽혀서 여러번 읽었는데 마지막에 핵심을 잘 요약해놓으셨네요. 나대지말고 건강을 신경쓰며 하고 싶은거 눈치 안보고 하고, 조용히 잘 살아가야겠어요. 이미 어느 정도는 그렇게 살고 있는 듯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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