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사는 사람이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 들어온다고 해보자. 그러면 일단 씻게 된다.

그리고 소파나 침대에 눕는다.

 

물론 소파나 침대에 누울 때는 바로 그 자세로 저녁을 다 소모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름의 계획이 있다. 청소도 하고, 책도 좀 보고, 메일 처리도 하고, 등등.

 

그러나 그 계획은 실행되지 않는다. 소파에 앉아서 TV를 보거나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으로 유투브 지옥에 빠지고 나면 저녁은 벌써 지났고 이미 잘 시간이 지난 밤이다. 그래서 오히려 쉬려고 했던 것이 역효과가 나버린다.

 

그런데 이것이 되풀이된다 하여도,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다가온다.

왜냐하면 하루종일 일과를 처리하느라 상당한 에너지를 소모하였기 때문에, 일단 아무것도 할 힘이 없는 것으로 느껴진다. 그래서 일단 에너지를 충전하고자 한다. 물론 그러다가 오히려 정신이 번잡해졌지만, 일련의 과정은 불가피한 것으로 느껴진다.

 

그런데 사실 소파에 늘어져서 TV를 보거나 유투브를 보는 것은 30분 정도라면 에너지 충전이 되지만, 그 이상 시간이 흐르게 되면 오히려 에너지를 고갈시키는 일이 된다. 일종의 관성의 법칙처럼 저에너지 상태로 딱 눌러붙어서 일어나질 못하게 되는 현상이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사실 정말로 재미있는 것은 세상에 얼마 없기 때문에, 그다지 재미있지도 않은 것을 그저 도파민 분비를 촉발하기 위해 클릭하다가 시간을 소모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오히려 스트레스가 쌓일 수도 있다. 도파민이 분비되는 것과, 우리가 의식상에서 기분이 좋은 것은 대응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발상을 전환해보자.

 

아주 맛있는 식당에 가서 배가 부를 정도로 먹었다고 해보자.

일행 중 누군가 말한다.

"팥빙수 어때?"

"아니, 배부른데 무슨 빙수냐."

"에이, 그 배랑 그 배랑 같냐."

그리고 실제로 빙수 집에 가서 팥빙수에다 과일빙수까지 먹어도 맛있게 잘 들어간다. 정말로 그 배랑 그 배랑 다르다.

 

마찬가지로 하루 일과에 소모되는 에너지도 그 에너지랑 그 에너지가 다르다.

 

이것은 헬스의 경우에 쉽게 알 수 있다. 사무직 노동자가 하루 일과가 끝나고 헬스를 가려고 하면 도저히 에너지가 딸려서 헬스를 할 힘이 없는 것 같다. 그러나 막상 헬스를 적당히 하고 샤워를 하고 나면 오히려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느낀다. 적어도 사무직 노동자에게는 일과를 처리하는 에너지와 헬스를 하는 에너지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것을 시도해봄직 하다.

우선 일과가 끝나서 집에 오면 씻은 다음 딱 십분만 청소를 한다.  

청소를 하고 씻어도 좋다.

머리가 짧은 사람은 머리까지 감으면 좋다.

샤워를 하고 나면 기분이 잠깐 좋아진다.

이 잠깐 좋아진 기분을 연료로 해서 짐을 챙겨 도서관이나 스터디 카페에 간다.

 

집 바로 근처에 도서관이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는 도서관이 많지 않아서, 차를 타고 가야 하거나, 걸어도 한참 걸어가야 도서관이 나온다. 그러니 일단 일과를 끝내고 난 저에너지 상태에서 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만일 도서관이 없는데 가까운 곳에 스터디카페가 있다면 여길 가보는 것도 생각해봄직하다.

 

스터디카페는 사실 카페형 독서실이다. 그러나 독서실과 다른 점이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인테리어와 자리의 배치가 다소 카페 스타일이라는 점이 다르다. 그래서 음울한 느낌이 거의 없다.

둘째, 허용되는 소음의 수준이 독서실보다는 약간 더 높다. 그래서 키보드 스킨만 제대로 깔면 컴퓨터 작업을 할 수도 있다.

셋째, 시간제로 끊을 수가 있다. 독서실은 일제로 끊기 때문에, 일과가 있는 사람이 활용하기에는 합리성이 떨어진다. 스터디카페의 경우 미리 한 번에 많은 시간을 사는 상품으로 잘 끊으면 1시간 1100원-1200원 정도로 커버가 된다. 하루에 2시간을 한다고 해도 2200원 정도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한 번 산 상품으로 거의 4-6개월 정도를 커버할 수 있게 된다.

 

스터디카페에 갈 때는 할 일을 단순화한다. 딱 2개 이하로만 정한다. 주건과 부건. 그리고 일과에서 했던 일과는 다른 일로 고른다. 또 30분 정도면 끝낼 수 있는 과업 두 개만 정하고 간다. 탐구하는 이는 당연히 30분짜리 탐구 과업 두 개 정도를 고르면 된다.

 

일단 가서  과업을 시작하면, 마음이 더 평온해지면서, 에너지가 오히려 차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처음에 책을 보거나 글을 쓰거나 하는 고도의 탐구를 곧바로 하기 힘들다면, 책을 보면서 모르는 단어 표시해둔 것을 찾거나, 아니면 자료를 정리하거나 하는 단순한 과업부터 시작해도 좋다.

 

그리고 들어갈 때 시간을 많이 끊을 필요가 없다. 하루 1시간-2시간 정도를 하는 것이 적당하다. 보통 1시간을 먼저 끊고, 연장을 하면 한다. 2시간 정도 집중해서 하는 것이 3-4시간 끊고 늘어지는 것보다 훨씬 효율이 좋다.

 

시간제로 돈을 냈기 때문에 이게 또 동기가 된다. 그래서 책을 읽을 떄 효율이 1.2배는 빨라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빠르고 정확하게 읽어야 하는 논문이나 책을 가지고 딱 쉬운 목표를 정해서 가면 거의 달성을 하고 나오게 된다.

이런 식으로 짧게 스터디 카페를 사용하는 것은 두 가지 전략을 활용하는 것이다. 하나는 어떤 활동의 경계가 매우 가까이에 있어서(즉 2시간이 최대) 늘어지지 않게 되는 효과이다. 다른 하나는 일종의 돈을 내고 시간을 사는 것이므로 의례(ritual)를 거치는 셈이 된다.

 

<해리포터>의 작가 조앤 롤링은, 해리포터 시리즈를 쓰다가 하도 작업이 안 되어서, 아예 비싼 호텔 방을 잡아서 효과적으로 썼다고 한다. 우리는 비싼 호텔방을 잡을 처지는 안 되지만 스터디 카페를 갈 수는 있다.

 

2시간을 최대로 잡되, 기분이 좋으면 1시간 더할 수 있다.

 

그러면 집에 오면 잠이 오히려 잘 오므로, 그대로 자면 된다.

어쨌든 이처럼, 집에서 샤워를 하고 잠시 누워 쉬다가 나와서 어떤 다른 공간에서 무언가를 하는 것은 오히려 에너지 측면에서 건강해지는 비결인 듯 하다.

<끝>

 

 

 

 

 

 

 

Posted by 시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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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oo
    2018.06.17 01:55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정말 공감합니다!! 그에너지와 그에너지가 다르다는 것, 환경에 나를 집어넣는 것도!
  2. 아기오소리
    2018.06.20 18:42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우와 이건 진짜 핵꿀팁이네요. 오늘부터 당장 실천해보겠습니다!
  3. 덕수
    2018.07.04 12:45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직업이 있는 탐구자는 전업 탐구자에 비해 가용시간이 적기때문에 퇴근 후에 시간을 최대한 이용해야겠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면 정작 압박감에 시달려서 논문 쓰는 즐거움을 잊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이 방법을 쓰면 좋을 것 같은데, 너무 쉬엄쉬엄?하다 보면 부담은 적겠지만 정작 해낸 양은 얼마 되지 않을 것 같다는 걱정도 조금 됩니다. 아니면 더 적게 하는 것이 더 깊이 할 수 있는 방법일까요..

    글을 읽고 나니 이것저것 생각이 들었어요 ㅎㅎ

    항상 좋은 지혜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2018.07.04 23:46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일과가 끝난 후 추가로 집중해서 정해진 짧은 시간 하는 것이 쉬엄쉬엄하는 것과는 약간 뉘앙스가 다른 것 같습니다.
      전체 탐구 시간을 얼마나 잡을지는 자신의 여건과 기질, 목표에 따라 달라집니다. 시행착오법을 쓰는 수밖에 없습니다. 일주일은 얼마 공부해보고, 일주일은 또 다르게 얼마 공부해보고, 이런 식으로 해서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시간을 범위(range) 형태로 찾아내는 것이 좋습니다. 여기서 적합하다는 것은 꾸준히 할 수 있으면서도, 어느 정도 목표한 바는 차근차근 이루어낼 수 있다는 의미가 될 것입니다.
  4. 덕수
    2018.07.06 14:34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답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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