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rnard Williams, Morality: An Introduction To Ethics, Harper TorchBooks, 1872

 

목차

 

서문

무도덕주의자

주관주의: 첫 번째 사유

막간: 상대주의

주관주의: 추가적 사유

좋음과 역할

도덕적 규준과 인간의 특징 구별하기

, 도덕, 그리고 타산

도덕은 무엇에 관한 것인가?

공리주의

 

제1장

무도덕주의자

왜 내가 무언가를 해야 하는가?” 그 질문을 이해하는 많은 방식 중 둘은 다음과 같다: “무언가라도 해야 하는 이유를 달라;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와 같은 것을 의미할 때처럼, 좌절이나 희망없음의 표현으로; 그리고 내가 해야 되는should, 해야만 하는ought to 무언가가 왜 있는가?”를 의미할 때처럼 더 반항하는 어조로, 도덕에 반대하는 무언가로.

비록 우리가 나에게 이유를 달라 ...”고 하는 첫 번째 정신으로 그 질문을 바꾸어 표현할 수 있기는 하지만, 우리가 실제로 그것을 물은 사람에게 이유를 줄 수 있는지는 매우 불분명하다. , 그 정도까지 아래에서 출발하여, 우리는 그에게 무언가에 관하여 관심을 갖도록 논증할 수는 있다. 우리는 그가 정말로 관심을 가질 준비가 되어 있는 무언가를 발견한다는 의미에서 정말로 그에게 이유를 줄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그를 추론에 의하여 관심을 갖도록 유도하는 것은 아니며, 그와 같이 추론에 의한 유도라는 것이 있을 수 있는지가 매우 의문스럽다. 그가 필요로 하는 것은, 도움 또는 희망이지 추론이 아니다. 물론, 그가 계속 살아있다면 그는 어떤 다른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할 것임은 참이다. 그러므로 어떤 절대적으로 최소한의 의미에서, 그는 다른 것들이 아니라 그런 것들을 할 어떤 종류의 이유, 어떤 최소한의 선호를 갖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점을 지적하는 것은 우리를 거의 어디로도 데려다주지 않는다; 그는 (2) 그저 기계적으로, 아마도 계속 살아가기 위하여 그것들을 하는 것뿐이며, 그것들은 그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다. 다시금, 만일 그가 그의 상태를 자살을 할 한 이유로 본다면, 그것은 진정한 결정을 내리는 것에 해당할 것이다; 그 어떠한 결정도 내리지 않기위한 한 방법으로, 자살은 지나치게 늦은 하나의 결정으로 불가피하게 오게 된다. (카뮈가 <시지프스의 신화Le Mythe de Sysyphe>에서 지적하듯이 말이다.) 그러나 그가 인정할 주비가 되어 있는 단지 하나의 결정, 바로 자살이라는 결정이 어쨌거나 있었다는 점은 우리에게나 그에게나 아무런 승리가 아닐 것이다.

나는 이성이나 합리성이 그 사람의 상태에 대하여 아무런 힘을 갖지 못한다는 것이 이성과 합리성의 패배로 어떻게 여겨질 수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 그렇기 보다는, 그의 상태는 인간성의 패배이다. 그러나 그 질문을 두 번째 취지에서 물은 사람은 많은 도덕이론가들에게 도덕적 추론에 대한 진정한 도전을 제시하는 것으로 여겨져왔다. 그는, 어쨌거나, 행위를 할 몇몇 이유들은 인정을 한다; 더군다나, 그는 상당한 시간에는 우리 대부분과 같다. 만일 도덕이 합리적으로 순조롭게 출발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에 반대하는 논증에서도 순조롭게 도덕을 출발시킬 수 있어야만 한다; 그의 순수한 형태로는-우리가 무도덕주의자amoralist라고 부를 수 있는 형태로는-그가 실제로 설득되지는 않을지 모르지만, 그가 합리적이기만 한다면 그를 설득시킬 수 있는 이유들이 있다면 도덕에는 위안이 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그가 어떤 동기부여를 갖고 있는지를 우선 물을 수 있다. 그는 도덕적 고려사항에 무심하다. 그러나 그가 관심을 갖는 것들은 있다. 그리고 그는 어떤 진정한 선호와 목적을 갖고 있다. 그것들은 아마도 쾌락이나 권력일 수 있다; 또는 그것들은 더 기이한 것, 이를테면 수집에 대한 어떤 열정 같은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러한 목적들은 그 자체로는 도덕에 대한 어떤 인정을 배제하지 않는다. 그러한 인정을 전혀 하지 않는 존재로 그를 나타내려면 우리는 무엇을 빼야 하는가? 아마도 다른 사람들의 이익에 대한 그의 관심, 자신에게 맞지 않더라도 진실을 말하거나 약속을 지키려는 성향을 갖는 것, 어떤 행위경로를 그것들이 불공정하거나 불명예스럽거나 이기적이라는 이유에서 거부하는 성향이 있는 것 등을 아마도 빼야 할 것이다. 이것들은 도덕의 실질적인 재료들이다. 우리는 아마도 도덕의 더 형식적인 측면 하나도 빼야 할 것이다. , 그가 뒤로 물러나서 이런 방식으로 그가 행위하는 것이 괜찮다면다른 사람들도 그에게 불리하게 같은 방식으로 행위하는 것도 괜찮아야한다는 생각을 해보는 그 어떠한 성향도 빼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만일 그가 이러한 입장을 취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우리는 한 발 더 나아가, 그가 도덕이 없는 인간이 아니고 그저 특이한 도덕을 가진 인간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

마찬가지로, 만일 그가 (의문의 여지 없이 그럴테지만) 다른 사람들이 그가 그들을 대우하듯이 그를 대우하는 것에 반대한다고 하여도, 이는 그의 반대가 그런 대우를 좋아하지 않고 맞서 싸우는 것으로만 구성되는 한에서는 완전히 일관된다. 그가 일관되게 할 수 없는 것은 그것에 분개하는 것(resent) 또는 그것을 불승인하는 것이다. (4) 왜냐하면 이것들은 도덕 체계 내의 태도들이기 때문이다. 그가 이 담보물들에 도덕적 논증을 제공했는지 아닌지를 알아내기는 힘들 수는 있다. 왜냐하면 그는 의문의 여지없이 진실되지 못한 분개와 도덕적 상처의 표현이, 그의 환경에서 비도덕적인 일에 더 민감한 누군가가 삼가도록 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낼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그의 많은 활동들이 그러듯이, 이 사람은 도덕 체계에 기생하고 있으며, 그와 그의 만족은 다른 사람들이 그 사람과는 달리 행동하지 않는다면 존재할 수 없으리라는 명백한 사실을 보여준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얼마간의 도덕적 규칙도 없는 사회란 없으며 그는 사회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약속하기 같은 도덕적 제도 및 그 주변의 사람들의 도덕적 성향의 더 구체적인 이점도 취한다. 그러나 그는 그것의 유관성에 대한 주장에는 크게 저항할 것이다. 왜냐하면 만일 우리가 그에게 모든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행동한다면 당신에게 어떨 것 같아요?”라고 묻는다면 그는 만일 그들이 그렇다면 좋지는 않겠지요. 비록 사실 나는 다른 사람들 중 일부보다는 그로부터 결과하는 혼돈 속에서 더 잘 살 수 있겠지만 말입니다. 그렇지만, 실제로 벌어지는 일은,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은 나처럼 행동하지 않을 것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만일 그들이 실제로 그렇게 할 수 있게 된다면, 그 즈음에는 전 이미 죽었을 겁니다.” 상상된 보편화의 결과에 대한 호소는 본질적으로 도덕적 논증이며, 그는, 일관되게, 그것에 의해서는 아무런 감명도 받지 않는다.

이 입장을 일관되게 유지하려면, 그가 피해야만 하는 몇 가지 것들이 있다. 그 하나로우리가 앞서 주목했듯이, 사실상-대략 도덕적 다수가 실제로 그렇게 하고 싶더라도 (그의 힘, 매력, 또는 부정직함은 도덕적 다수가 그러고 싶지 않도록 만들수도 있다) 그를 싫어하고 거부하거나, 그를 적으로 다룰 아무런 권리가 없다고 말하고자 하는 그 어떠한 경향도 피해야 한다. (5) 정당화에 관한 어떠한 사유도, 적어도 그러한 종류로는, 그에게는 적합하지 않다. 거기에다가, 그는 일관되려면, 스스로를 그 성품에서 진정으로 눈부신 존재로 생각하려는 은밀한 경향을 갖지 않아야 한다. 특히, 간절히 바라는 일반 대중에 비해 뚜렷하게 용기 있는 존재로 생각하는 경향에 저항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런 생각을 하게 되면, 그는 그 자신의 욕구와 취향의 세계 바깥으로 나가 일정한 기질(dispositions)이 인간이 갖기에 탁월한 것으로 또는 사회에 있는 것이 좋은 또는 그와 비슷한 무언가로 여겨지는 그런 영역으로 들어가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사유가 도덕적 고려사항으로 꼭 이르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사유는 도덕적 고려사항에 실질적인 발판을 부여한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즉각, 그러한 기질에 무엇이 그렇게 좋은 것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불러일으키게 되며, 그로서는, 자신을 배제시키고 있는 도덕적 사유의 세계로 다시금 데려다 놓게 되는, 그의 동료 인간들의 일반적 이익 및 필요에 의거하여 생각하지 않고서는 그러한 질문들을 그다지 멀리 좇는 것이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용기 있는 존재로 생각하려는 유혹은 특별히 위험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 자체가 매우 도덕적 관념에 근접한 것일 뿐만 아니라, 독특하게 도덕적인 반성의 전체 사슬을 함께 끌고 가는 사유이기 때문이다. 이 사람이 그 관념을 적용하는 것은, 또한 거짓인 명제를 갖게 할 것이다: , 더 도덕적인 시민은, 만일 그들이 그러고도 무사할 수 있다면, 또는 그들이 지나치게 두려움에 떨지 않는다면, 또는 그들이 사회에 의해 수동적으로 조건화되지 않았다면, 일반적으로 그들이 억제에 시달리지 않았더라면- 무도덕적이 될 것이라는 명제 말이다.

 

6 [5페이지 It is the idea ~ 누구도 제재 받지 않으면 모든 도덕 규칙을 위반하게 되리라는 단언 ---> 도덕적 교육의 결과로 비사리적인 방식으로 행위하기를 원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반론: 이건 그냥 사회적 조건화 --> 그러나 조건화 반론은 통찰을 낳는 성공적이고 지성적인 양육과, 조건화된 반사를 산출하는 양육을 구분해야 한다. 그러나 도덕뿐만 아니라 언어, 사고방식, 취향 등 모든 것이 그러한 사회적 영향력, 가르침, 문화의 산물이다.]

7 [반론: 그러나 그건 기본적 충동 즉 사리적인 것이다. ---> 사람이 진짜로 어떤가.

그러나 기본적인 것이 유전적으로 원식적인 것이라면 이 반론은 맞다. 그러나 그것은 무관하다. 사람은 유아와 같지 않다. 인간은 진짜로 어떠한지 테스트가 스트레스나 박탈, 희소성 조건 하에서 이루어져야 할 이유가 없다.]

8 [인간이 진정으로 어떠한가는 인간이 실제로 어떠한가와 다르지 않다. 따라서 자신을 찬양하는 비교는 피해야 한다.

사이코패스를 논증을 통해 도덕을 받아들이게 할 수 없다는 것은 도덕이나 합리성의 기반을 훼손하지 않는다. 도덕을 정당화하는 것은, 그것에 반대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대안이 있어야 한다. 그 대안은 매력적인 점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9[그러나 도덕적 사유에 그가 중요한 점은 그 매력적인 면이 아니라 그가 어떻게 그리고 왜 우리를 끔찍하게 하는가이다.]

(...) 우리가 앞서 느슨하게 스케치한 무도덕주의자는 정말로 이것보다는 더 매력을 가질 수도 있는 것 같다; 그 사람을 어떤 애착을 갖는 이로, 때때로 다른 누군가에게 일어나는 일에 관심을 가지는 이로 그릴 수도 있다. 깡패 영화의 몇몇 정형화된 인물들이 떠오를 수 있다. 무자비하면서도 자신의 어머니, 자식, 심지어 그의 정부에도 마음을 쓰는 꽤 매력이 넘치는 인물 말이다. 그는 여전히 곧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무도덕적이다. 어떠한 일반적인 고려사항도 그에게 비중이 가늠되지 않으며, 공정성 등의 고려사항을 극도로 살피지 않는다는 뜻에서 마리다. 비록 그가 이따금씩 다른 사람들을 위해 행위하기는 하지만, 이것은 그가 우연히 어떻게 느끼느냐에 모두 달려 있다. 물론, 이 사람에게는, 실제상에서는 도덕철학의 논증들은 효과가 없을 것이다. 우선, 그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보다는 하고자 하는 무언가가 항상 있을 것이다. 이것은 그런데 말하고자 하는 논지가 아니다. (비록 도덕 논증에 대한 일부 논의가 상정하게끔 이끄는 것보다는 논지에 가깝기는 하지만 말이다.) 논지는, 그것에 의거하여 우리가 도덕적 고려사항이 순조롭게 출발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어렴풋이 알아챌 수 있다. 비록 그와의 대화를 실제로 나눈다면 그것들은 순조롭게 출발할 가능성이 별로 없지만 말이다.

그는, 내가 생각하기에 우리게 거의 충분한 것을 준다. 왜냐하면 그는 누군가가 무엇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를 해준다는 관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사실상 그가 그럴 마음이 드는 때에만 이 관념을 갖고서 행위한다. 그러나 (10) 그것 자체는 그가 그럴 마음이 든다는 관념은 아니다. 설사 그가 그러기를 원해서 또는 그 사람들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리고 그외에는 어떠한 이유도 없이 (이 구체적인 행위들이 관련되는 한에서는 그 탁월한 이유에서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그런 이유에서가 아니고) 이 사람들을 돕는다 할지라도, 그가 하기를 원하는 바는 그들이 도움을 필요로 하기에 그들을 돕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누군가를 좋아하며 이런 방식으로 행위할 때 그가 갖는 사고는 그들이 도움을 필요로 한다이지 나는 그들을 좋아하고 그들은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사고가 아니다. 이것이 극히 중요한 점이다: 이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이익에 의거하여 사고할 능력이 있으며, 그가 도덕적 행위자가 되지 않는 것은 (부분적으로는) 그가 오직 간헐적으로만 그리고 변덕스럽게만 도덕적 행위자가 되고자 하는 성향이 있다는 사실에 (부분적으로) 놓여 있다. 그러나 이 상태와 도덕의 기본적 성향 사이에는 바닥이 보이지 않는 간극이 있지 않다. 도움을 필요로 하지만 그 순간에 그가 우연히 돕고 싶어하거나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다른 구체적인 사람들을 좋아하고 돕기를 원하는 다른 사람들이 있다. 그가 그들의 상황을 고려하게끔 하는 것은, 어떤 꽤나 다른 도덕적 지평으로의 불연속적으로 뛰어오르는 것이라기보다는, 그의 상상과 그의 이해의 확장으로 보인다. 그리고 만일 우리가 그로 하여금 그들의 상황을 고려하게 할 수 있다면, 즉 그것에 관하여 생각하고 사고한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만들 수 있다면, 그는 아마도 그것에 대한 얼마간의 고려를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우리는 그의 공감(sympathy)을 확장한 것이다. (...)

11 (...) 이 모델은, 공감의 가능성과 공감의 확장에서 전체 도덕을 구성하는 틀을 개괄하려고 의도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 그 모델은 그저 하나의 것을 시사하려고 의도되었을 뿐이다: 즉 우리가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관심만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기만 하여도, 우리는 그에게 도덕의 세계에서 그를 포함시키기 위해 근본적으로 새로운 종류의 사고나 경험을 귀속시켜야 할 필요는 없고, 그가 이미 갖고 있는 것의 확장으로 아마도 생각될 것만을 귀속시키면 된다는 것이다. (...)

이로부터, 다른 사람들에 대한 공감적 관심을 갖는 것이, 도덕의 세계에 있기 위한 필요조건이라는 결론, 즉 개괄한 방식이 도덕으로 진입하기 위한유일한 방식이라는 결론이 따라나오지는 않는다. 그러한 결론은 이때까지 이야기한 것으로부터 따라노이즌 ㄴ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참이다.

도덕 및 다른 동기부여에 관한 여기서 건드린 고려사항들 중 일부를, 우리는 나중에 다시 살펴볼 것이다. 나는 지금은, (12) 도덕에 의해 속이 상하지만, 무도덕주의와는 다른 방식으로 속이 상한다고 생각되는 누군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 사람은 그가 도덕을 가져야 하는 것에는 만족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다른 도덕을 가진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러면서 그러한 도덕들 가운에 선택하는 아무런 방법도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바로 주관주의자다.

  <1장 끝>

Posted by 시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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