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인간에 권리에 관하여, 거부할 수 없는 권리도 있나요?

가령 국민은 ○○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이를 거부할 수 없다. 이렇게 규정하는것이 앞뒤가 맞나요?

기본권은 자기 스스로 포기하거나 이양할 수 없나요? 만약 없다면 이것은 권리가 아니라 의무의 성격을 갖는것이 아닌가요?

 

0.
'거부한다', '포기', '이양' '권리', '의무'가 각각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의하셔야 질문이 어떤 뜻을 가질 것입니다.

1.
일반적으로 근본적이지 않은 권리이자 실정법상의 비배경적 권리(non-background rights)로서 한정적으로 특정되는 권리는 양도와 포기가 가능합니다.

대표적으로 특정 재산에 대한 재산권이 있습니다. A가 볼펜의 소유주라면 그는 볼펜에 대하여 소유권을 갖습니다. A가 이를 B에게 증여 의사표시를 하고 B가 이를 수락하면, 볼펜의 소유권은 B에게로 이전됩니다. 물론 B는 증여를 수락하지 않을 수도 있고, 이 경우 소유권은 여전히 A가 가집니다. A는 그것을 쓰레기통에 버릴 수도 있는데, 이 때 그것은 무주물이 되고, A는 소유권을 포기한 것입니다. 그 때 C가 이 쓰레기통을 뒤져 볼펜을 가져간다 하여도 C는 누구의 소유권도 침해하지 않은 것이며, C는 이제 이 볼펜에 대하여 소유권을 가집니다.

그러나 이것은 볼펜에 관한 것이고, 토지와 같은 부동산은 이런 식으로 절차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특정 부동산 역시 판매를 하고 나면, 부동산에 대한 소유권을 잃습니다.

소유권과 같은 물권 뿐만 아니라 채권도 포기와 양도가 가능하며, 또한 채권의 무상 양수도 거절할 수 있습니다.

또한 여러가지 법정된 절차적 권리들은 양도는 안 되지만 포기는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위법한 행정처분을 받았을 때 그 행정처분에 대하여 취소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법정된 제척기간이 있습니다. 이 제척기간 내에 소를 제기하지 않으면, 취소소송을 할 권리를 포기한 셈입니다.

위와 같이 비배경적인 실정적인 특정한 권리의 양도와 포기는, 실제로는 권리의 행사(매매와 증여의 경우)이거나 행사 포기(제척기간 내에 소를 제기하지 않은 것)에 해당한다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비배경적 권리는 누가 공짜로 준다고 하여도 양수하기를 거부할 수 있는데, 이 때의 거부는 그 권리에 따르는 법적 관계의 복합체를 이전받기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부동산을 이전받으면, 그 부동산으로 담보된 채무가 추심될 위험까지 이전받는 것이며, 부동산 소유주로서 내야 할 납세 의무, 그 부동산 소유주로서 법적 관리책임까지 이전받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건물을 증여받고 얼마 뒤 불이 난다면 그 화재와 관련하여 민형사상 책임을 면할 수가 없습니다.

이와 같은 유형들의 비배경적, 실정적, 특정된 권리들은 '권리'라는 이름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항상 이득이 되는 것은 아니고, 언제나 어떤 부담과 함께 가기 때문에, 그 부담을 지기를 거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공무원 임용시험에 합격했다 하더라도 공무원 피임용권을 행사하지 아니하고, 스스로 임용절차를 중단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공무원이 되어서 일을 하지 않으면 직무유기죄에 해당되며, 또한 공무원으로서 여러가지 제약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 이치가 공무원이 일단 되어도 공무원을 그만둘 수 있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적용됩니다.

 

2.
그러나 질문하신 분은, 기본권의 층위를 갖는, 배경적 권리를 보유하지 않기를 선택할 수 있는가를 질문하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배경적 권리 자체를 포기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어떤 부담을 지움으로써 의무적인 측면이 있지 않은가 하는 질문을 한 것 같습니다.

헌법에 규정된 기본권들은 배경적 권리(background rights)입니다.

배경적 권리란, 그 권리를 제한하려면 특수한 논거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구조적 요청을 발하게 되는 지위 보유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기본권은, 실정적인 특정된 권리와는 다소 성격이 다릅니다. 실정적인 특정된 권리들은 양도하거나, 잃거나, 거부할 수 있습니다만, 기본권은 그러한 양도, 포기, 거부를 가능케 하는 근본적 지위에 관한 것이므로, 그 자체가 양도, 포기, 거부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근본적 지위를 스스로도 부인할 수 없다고 해서, 어떤 의무에 해당하는 부담을 지는 바도 없습니다.

대표적으로 헌법상 규정된 재산권은, 특정한 물건에 대한 법률적 재산권과는 구분됩니다.

배경적 권리들은 행사 포기가 될 수는 있지만 배경적 권리들 자체를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권리의 행사 포기(waiving)와 배경적 권리 자체의 포기(relinquishing)의 차이는 다음과 같습니. 이 구분은 Joel Feinberg, “Voluntary Euthanasia and the Inalienable Right to Life”, 115-119면의 설명을 따른 것입니다.

 권리의 행사 포기(行使抛棄)는, 그 권리에 수반되는 청구권의 한 예화(instantiation)를 적극적으로 행사하지 아니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그것은 사실은 소극적으로 그 권리를 행사하는 것에 해당한다. 반면에, 배경적 권리 자체(自體)의 포기(抛棄)는, 그 유형의 권리를 보유하는 지위 자체를 박탈당하는 상태로 진입하는 것입니다.
재산권 행사 포기의 예는, 자신이 소유하는 부동산의 무단침입자에 대하여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거나, 무상으로 타인이 사용하도록 허락하거나, 증여를 해버리거나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은 권리를 소극적으로 행사한 것입니다. 반면에 배경적인 재산권 자체의 포기를 인정하는 사회에서는, “법적으로 구속적인 방식으로 재산을 획득할 자신의 권리 자체를 공식적으로 포기”하게 되면 “그 사람은 대상을 점유하고 장소를 점할 수는 있지만 그것들을 결코 소유할 수는 없는(one could possess objects and occupy places but never own them)” 법적 지위에 처하게 됩니다. “그 사람은 이러한 측면에서 특수한 하위 계급의 구성원”이 되는 것이다. (같은 논문, 116-117면.)
 그런데 우리 헌법 제11조 제2항은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특수계급’은 그 기본권적 지위가 선천적으로든 후천적으로든 다른 구성원에 비해 우월해지거나 열악해지는 것을 인정하는 법제도를 의미합니다. ‘어떠한 형태로도’라는 명시적인 문언이 있으므로, 자기 의사에 의해서도 ‘하위 계급’에 속할 수 없음은 분명합니다. 즉 우리 헌법은 기본권 자체의 포기를 허용하고 있지 않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강학상 '기본권 포기'라는 표제 하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것들은 모두 기본권 행사의 포기에 불과하며, 그 어떠한 경우에도 기본권 자체의 포기는 헌법상 인정되지 아니합니다. 따라서 강학상으로도 이를 '기본권 포기'라는 오도하는 표제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며, 단지 '기본권 행사의 포기'라고 하는 것이 타당하다 하겠습니다.

 

3.

그런데 의문은 이렇게 기본권 자체의 포기를 불가하게 하는 것이, 어떤 의무적인 측면이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권리와 의무의 가장 기본적인 유형을 알아야 합니다.

Newcomb Hohfeld, Fundamental Legal Conceptions as Applied in Judicial Reasoning, David Campbell & Philip Thomas eds., Dartmouth, 2001, 12면에서 Hohfeld는 청구권(right)은 의무(duty)와 대응하고, 특권(privilege)은 권리 없음(no-right)에 대응하며, 형성권(power)은 타인의 처분에 법적 지위가 좌우되는 상태(liability)에 대응하고, 면제권(immunity)는 형성권 없음(disability)에 대응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의무는

(i) 타인의 처분에 법적 지위가 좌우되는 상태, 즉 형성권에 복속을 받는 상태로 존재하거나

아니면

(ii) 원래는 간섭받지 않고 할 수 있는 것을 다른 주체 때문에 하지 못하게 되는 상태, 즉 청구권에 의해 행위가 제약되는 상태로 존재하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기본권 자체의 포기가 불가하게 된다는 것은 이 둘 중 어느 것에도 해당하지 않습니다.

국가나 다른 사람이 무슨 짓을 해도 나의 기본권 보유자로서의 지위를 바꿀 수 없다는 것은, 오히려 면제권(immunity)을 보장하는 것이지, 형성권 하에 놓이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한 내가 기본적인 지위를 보유함으로 인해 내가 어떤 행위를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어떤 관리책임을 지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나는 기본권으로서의 재산권은 여전히 보유하면서, 옷가지를 제외하고 모든 재산을 처분할 수 있습니다. 내가 원한다면 다시 노동을 하거나 타인에게 증여를 받아서 다시 재산을 취득할 수 있는 근본적 지위가 계속 유지된다는 것은, 나에게 어떠한 행위도 의무지우지도, 나에게 어떠한 부담도 지우지 아니합니다.

따라서 '지위의 변경불가능성'은, 부담이 되는 '의무'와 동치가 아닙니다. 근본적 지위가 변경불가능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슨 의무가 지워지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근본적 지위가 변경불가능한 이유는 입헌 질서의 정당성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어떠한 강제력의 질서도, 그 강제력의 정당성을 의사소통적 권력 형성의 수문에 의해 검토할 수 없다면, 정당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검토가 가능하려면, 의사소통주체로서의 근본적 지위가 계속 유지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근본적 지위를 박탈당하거나 침식당한 주체가 있다면, 외형적으로 검토가 있다 하더라도, 그 검토는 제대로 정당성을 산출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투표권을 양도와 양수의 의사표시로 인하여 1인이 2표를 행사하고 한 명은 투표권을 행사할 수 없는 법적 지위가 관철된다면,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은 정당성은 산출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기본권적 지위가 정당성을 검사하는 수문에의 참가 자격이라면, 그 참가 자격은 임의로 박탈될 수도, 포기될 수도, 양도될 수도 없는 것입니다.

<끝>

 

 


 

 

Posted by 시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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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질문했습니다
    2018.09.14 23:49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감사합니다!!
  2. 아기오소리
    2018.10.16 16:27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기본권을 배경적권리라고 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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