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이 한

세상에서 가장 달성하기 어려운 것이 연애라고 말했던 선배가 기억납니다. 그 선배 왈

“연애가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거야. 혁명보다 연애가 어렵다니까.’

제가 그 선배의 말을 다른 사람에게 들려주자 마자 들었던 반박

“연애는 수많은 사람들이 하지만, 혁명은 아무도 하지 못했잖아”

여기서 말하는 혁명이란, 프랑스 혁명이나 영국 혁명과 같은 부르주아 혁명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 사회주의 혁명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저는 사회주의 혁명을 아주 넓게 정의하여, 생산수단을 독점하고 있는 소수의 계급이 사라지고, 생산수단을 사회적으로 공유하는 방식을 통해, 평등한 정치적 참여, 물질적 복지, 자아실현의 기회를 주는 사회로 바꾸는 큰 정치적 전환이라고 생각합니다.

전통적으로 이 큰 정치적 전환을 이루는 방식에 두가지 견해가 있었는데, 그것은 혁명적 사회주의와 사회민주주의입니다. 혁명적 사회주의라는 말은 학문적인 개념도 아니고 확립된 개념도 아니지만, 그냥 알렉스 캘리니코스의 말을 따라서 그렇게 쓰겠습니다. (때에 따라 혁사와 사민으로 줄여 쓰겠습니다)

혁명적 사회주의의 명제를 정식화하자면 다음과 같을 것입니다.

1. 소수의 직업혁명가이든, 대중정당조직이든, 자본주의 사회 내에서 합법과 비합법의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혁명적 계급 의식을 일깨운다.

2. 자본주의의 위기가 왔을 때, 극도에 달한 혁명적 계급의식은 대규모적인 대중파업과 폭력봉기로 이어진다.

3. 이러한 혁명의 과정에서, 소비에트와 같은 노동자들의 참여적인 정치조직인 정치의 장으로 부상하면서, 기존의 국가권력들은 파괴, 소멸, 대체된다.

4. 새로운 정치의 장이, 정치권력 탈환 이후의 혁명사업들을 참여적으로 완수하며, 그 이후의 사회주의 사회의 운영도 맡는다.

사회민주주의의 명제를 정식화하자면 다음과 같을 것입니다.

1. 합법의회 정당으로서 사회민주주의는, 높아지는 계급의식을 투표의 힘으로 전환하여, 정치권력을 합법적으로 이양받고, 이를 이용해서 사회주의로의 전환을 꾀한다.

2. 평소에 계급의식의 고양과, 계급정당으로서 지지를 받기 위해 혁명적 과업이 아닌 일상적 복지 개선에도 한다.

3. 혁명과업은 새로운 정치조직이 아니라, 의회라는 기존 자본주의 사회의 정치조직을 활용하여 이루어지게 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는 이 두가지의 경로 모두가 매우 낮은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판단합니다. 그렇게 확률을 낮게 만드는 문제 중 몇가지는 혁사와 사민 모두에게 공통된 것이고, 어떤 것은 혁사에게 고유한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혁사보다 사민이 조금 더 높은 확률-그러나 여전히 낮은 확률인-을 가지고 있는 경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민 또한 지금 그대로 있는 정치조직이나 정치참여가 아닌, 발전된 정치조직과 참여를 통해서만이 조금 더 높은 확률의 격차를 보장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련의 사회주의자와 그에 영향을 받은 노동대중이 평소에 혁명적 계급의식을 가지는 것도 가능하고, 그에 따라 자본주의 위기에 혁명적 계급 의식을 갖는 것도 가능합니다. 물론 논리적 가능성입니다. 그러나 현실적 가능성은 그것을 저해하는 요소들에 대한 분석을 필요로 합니다. 의식이라는 것은, 자신이 처한 물질적 상황에 의해 전적으로 규정되는 것은 아니며, 세계를 보는 틀을 일상의 경험을 통해 재성찰하는 시간을 통해서 생산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가능성’에 대한 희망입니다. 즉, 계급의식은 자신이 갖고 있는 불만이나 고통, 불이익, 불평등에 대한 인식으로도 구성될 수 있지만 ‘혁명적’ 계급의식은 그것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노동계급개인은, 자식을 통해서 신분상승을 하는 수단을 택할 수도 있고, 종교를 통해서 고통을 정신적으로 합리화하고 견뎌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점은 포스트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지나치다못해 매우 과도하게 지적한 점입니다.

제가 이보다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자본주의 내에서 노동자들의 투쟁은, “‘교섭’의 형태를 띨 수 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즉, 노동자가 계급으로서 집단행동을 하고 움직이는 범위는 자본주의를 완전히 박살내려는 철저한 준비를 계속 축적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의 계급이익을 훼손하는 각종 문제-특히 노동시간과 노동강도, 임금의 문제-에 대해 자본가들에게 집단행동을 통해 압력을 가하여 ‘무엇인가를 따내는’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노동자들이 ‘자본주의 위에서 먹고 산다’라는 단순한 사실로부터 도출되는 합리적 행동입니다. 즉, 노동자들은 자본주의, 특히 자국의 자본주의가 잘 운영되는 것에 강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으며, 투쟁의 저력은 잘 운영되는 자본주의로부터 무엇인가를 얻어내는데에 사용됩니다. 따라서, 알랙스 캘리니코스가 ‘역사와 행위’에서 역설한 바대로 노동자들이 ‘철저히 자기 효용을 계산하는 합리적 행위자가 아니라’ 실제로 ‘성찰을 통해서 집단의식’을 키워나가는 존재라 인정할지라도, 그들이 키워나가는 계급의식은 ‘교섭적 계급의식’이지 ‘혁명적 계급의식’이 될 수 없습니다.

물론 개인적으로 혁명적 사회주의자가 있을 수 있고, 파업 때에 매우 분노에 찬 혁명적 발언이 나올 수도 있지만, 집단의식을 규정하는 물질적인 틀은 교섭입니다. 자본주의가 위기에 처했을 때, 혁명의 가능성이 늘어난다고 판단했던 모든 19세기 사회주의자들은, 의식을 허황된 추상의 차원에서 분석하고 있었습니다. 자본주의가 위기에 처하면, 노동자들은 기존의 ‘잘 운영되던 자본주의’에서 보장받던 권리들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교섭’투쟁을 벌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새로운 사회로 전환하자고 하는 혁명적 의식이 아닙니다. 바로 ‘교섭’의 파트너로서 얻고 있었던 것을 정당하게 보장받고자 하는 계끕의식인 것입니다.

이러한 점을 부인하려는 사회주의자는, 노동자 계급 대중 개개인이 다음과 같은 위험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어떤 집단적 상황이 있음을 논증해야 합니다.

(1) ‘자본주의의 위기’가 왔을 때 자본주의 경제를 완전 파국으로 몰아 버림으로써 사회주의 이후 장기간-어쩌면 한 세대가 될지도 모르는 기간-동안 경제와 생산성의 침체의 위험

(2) ‘자본주의의 위기’가 와서 자국의 경제를 파탄내 버렸는데, 혁명이 성공하지 않음으로 인해 생기는 장기간의 위험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러한 논증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위험을 피하는 것은 원자적인 합리적인 행위자의 기본적인 선택일 뿐 아니라, 서로를 같은 계급으로 인지하고 협동하는 ‘교섭적 계급의식’을 갖고 있는 집단의 선택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자본주의 위기가 왔을 때, 오직 방어적인 교섭적 계급의식만이 발동할 것이고, 자본주의가 잘 운영될 때에는 더욱이 혁명적 계급의식은 발휘되지 않을 것입니다. (잘되고 있는데 왜 사서 고생을?)

위의 문제는 사민과 혁사 모두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봉기를 통한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야 하는 혁사의 경우 뿐 아니라, 사민의 경우에도 ‘이행의 계곡’은 적용됩니다. 아담쉐보르스키의 ‘자본주의와 사회민주주의’를 참조하십시오)

그렇다면 혁사에 고유한 문제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혁사가 ‘새로운 정치의 장’을 혁명의 과정에서 만들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는 점, 그에 따라서, 혁명으로 가는 정치적 의제화와 대중의식의 변환이 의회 바깥에서 이루어질 것이라고 예상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 다음 시간에 다루겠습니다.

Posted by 시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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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박민선
    2010/06/14 03:14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자본주의 위기가 왔을 때, 오직 방어적인 교섭적 계급의식만이 발동할 것이고, 자본주의가 잘 운영될 때에는 더욱이 혁명적 계급의식은 발휘되지 않을 것입니다.

    -->프랑스 대혁명때 말이에요, 왜 하필 그때 그런 혁명이 일어났는가에 대해서 보통은 '너무 먹고 살기 힘들어서. 마리앙뚜와네트의 사치가 어쩔시고 저쩔시고. 그리고 선동할 수 있도록 활자기술과 사상이 발전해서'라고 하는데,

    역사적으로 보았을때 그 혁명일어났을때보다 더 먹고살기 힘든때가 많았다고 하더라구요.

    너무 힘들땐 너무 힘들어서 생계부지가 힘들어서 혁명할 기력도 없어서 그런게 아니었나 라고들 생각한다고 그러셨는데...(교수님이)

    그럴싸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아직도 의문이에요. 어느때 사람들은 그렇게 피터지는 혁명을 하게 되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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