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와 커뮤니케이션 흐름 1    written by 이 한

근본생태주의자 바로는 녹색당 활동을 하다가 현실정치의 한계에 실망을 느끼고는 ‘의식의 혁명적 전환’을 촉구하며 재야로 돌아갔습니다.
저는 근본생태주의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환경문제가 인류에 매우 중대하고 시급한 화두임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현실정치에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는 동의합니다.
비단 환경문제 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대안사회에 대한 제안들이 마찬가지 문제에 부딪힙니다.
그런데 대의민주주의 사회에서, 이처럼 인민에게 모두 다 같이 중요한 문제이며, 논쟁거리가 되어야 할 치열한 제안들이 어째서 전적으로 무시당하는 것일까요? 또한 때때로 인민의 이익에 반하는 정책들이 별 반대 없이 통과되곤 할까요?

여기에는 커뮤니케이션 흐름의 문제가 존재합니다.

지식에 관하여 먼저 살펴 보겠습니다. 지식은 하나이지만, 그 심급에는 두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매우 전문적이고, 소수만이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으며, 처음에는 소수만이 알고 있는 지식이 있습니다. 두 번째는, 이 지식이 다수가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풀어서, 여러가지 수사적 전략을 써서 동참의 동기를 불러 일으킬 수 있고, 그 결과로 여러 사람이 이미 이용하고 있어서 그 지식에 접근하는 것이 매우 일상적이고 용이하게 되는 심급입니다.

예를 들어서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현대 사회의 쓰레기가 어떤 문제를 일으키고 있으며, 그 쓰레기를 어떻게 분리하고 재활용할 것인가와 관련된 지식은 전문심급의 지식입니다. 이것이 쓰레기 봉투 종량제로 나타나서, 가정에서 실천할 수 있는 지식의 형태로 유통될 때는 대중심급의 지식이 되는 것입니다. 물론, 가정에서 종량제에 따라 쓰레기를 아껴쓰고 분리하는 사람들은, 전문심급의 지식을 완벽하게 이해하지도 못했고, 그러한 문제를 감지하거나 해결책을 생각해내지도 못했지만, 실천할 수 있는 만큼 그 정도만 알고 실천해도, 결과는 처음의 전문심급의 사람들이 의도했던 대로의 집합적 결과를 내는 것입니다.

이렇게 심급이 나타나는 이유는 당연합니다. 지식의 창조와 발견에 유리한 환경이라는 것은 차별적으로 분배될 수 밖에 없고, 지식노동은 소질을 필요로 하며, 또한 규모의 경제가 성립하기 때문입니다. 쓰레기 전문가는 소수일 수 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이 전부다 쓰레기 연구비를 지급받는 것도 아니고, 통계학이나 생태학에 소질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것만 하면서 여가를 소비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하면 된다, 어떤 것이 좋은 해결책이다 대충 최선으로 짐작할만한 능력은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동기가 개입합니다. 보통 전문적심급의 지식을 다루는 사람들은 그럴만한 동기가 있습니다. 대부분은 자기가 하는 직업과 관련이 있습니다. 학자들은 당연히 그걸로 먹고 살기 때문에 전문가가 됩니다. 아니면 사회운동가나, 관심있는 사람처럼 그것이 삶의 정체성 중 중요한 한 부분으로 되면 전문가가 됩니다. 그러나, 동기를 여러분야에 다 가질 수 없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은 그러한 것을 알 필요도 없고, 다 알 수도 없습니다. 그것은 대중 심급의 지식이라 할지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1998년 우리사회에만 해도 국민연금, 의약분업, 노동시간단축, IMF시기의 이자율 상승조치와 같은 여러가지 논쟁들이 있었는데, 이것에 대해서만이라도 전부 다 대중심급의 판단 정도라도 내릴만한 지식을 갖춘 사람은 매우 드뭅니다. 그래서, 전문적 심급이 대중심급으로 전화될 수 있을만한 수사적 정리가 된 상태에서도, 그것이 어렵습니다.

또한 권력도 개입합니다. 권력은 매스미디어를 활용하여, 서로 경쟁하는 다른 의견을 내는 전문심급의 지식 중 일부만을 편애하여 대중화합니다. 그래서 대중은 실제의 상황과는 괴리되는 세계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대북정책입니다. 안보상업주의로 먹고 사는 우리나라의 신문들은, 냉전적 사고를 가진 한나라당의 근거없는 폭로성 발언이나 냉전적 딱지 붙이기를 선정적으로 간략화해서 팔아먹습니다. 노동문제와 관련해서 보자면, 그에 대한 경쟁적인 의견을 소개하기보다는 자본가의 입장만을 자세하게 소개하고, 파업의 비용만을 계산해서 제1면에서 때려 버립니다.

매스미디어만이 권력의 개입경로는 아닙니다. 각 계급집단이나 직능이익집단이 어떻게 국가를 포획하고 있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커뮤니케이션은 매스미디어 뿐 아니라, 국가기관이나 정당을 통해서도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자본가들은 국가를 효과적으로 포획하고 있습니다. 부르주아 정당들은 자본가의 정치헌금이 없으면 생존할 수가 없습니다. 또한 자본가들은 자본철수나 투자사보타지, 그리고 자본의 해외도피에 관하여 경고로 위장한 위협을 사용합니다.

각 이익집단들은 무임승차적인 의사결정 구조를 이용합니다. 한 이익집단이 로비를 하여서, 그 이익집단에만 이익이 되는 정책을 통과시켰을 때, 국민들이 부담하는 비용은 1인당 1천원 정도가 되어도, 그 이익집단에게는 몇백억하는 막대한 이익을 줄 수 있습닌다. 그렇다면 이익집단에게는 막대한 동기가 부여되고, 국민들에게는 동기가 부여되지 않습니다. 1달에도 얼마나 많은 수의 정책이 집행되고 통과되는데, 그걸 1천원을 아낄려고 일일이 다 감시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닙니까? 여기에 대해서는 공공선택 이론 연구자들이 자세히 밝힌 바가 있습니다.

결국 정보가 완전하지 않은 사회에서, 대의민주주의 체제는 심각한 고질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것입니다. 즉, 커뮤니케이션 흐름이 민주주의 작동에 충분한 조건을 갖추지 못하고 있어 체계적인 문제를 반복해서 발생시킵니다. 이 문제들을 우리는 전적으로 대의자들의 선의에 맡길 수 밖에 없는데, 대의자들 대부분이 이익집단이나 지배계급과 얽혀 있어서 큰 기대를 걸기 어렵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전문적 지식이 대중적 지식으로 공정하게 전화된다면, 다른 정치적 결과가 나올 것을 쉽게 예상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가장 선진적이고 최선의 수많은 좋은 아이디어들이 대중적인 지지를 얻게 되고 실현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21세기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커뮤니케이션 흐름의 구조’입니다.

우리 사회의 각 부분들은 서로 커뮤니케이션이 분절되어 있고, 해결책을 갖고 있는 사람은 그것을 실현시키거나 대중화시킬 수단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그리고 분절된 각 부문들은 자본주의라는 경제체제의 이윤구조에 의해서 몰려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시대 커뮤니케이션 흐름의 모습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중간 기술을 쓰게 되면, 지역의 원료와 지역의 원자재를 쓰면서도 조금 생산성은 떨어지지만 훌륭한 농업생산을 할 수 있다고 해 봅시다. 이반 일리치가 활동하던 남미에서는 신기한 트랙터가 개발된 적이 있습니다. 이 트랙터는 지역에서 나는 광물과 목재를 결합시켜서 만들어졌고, 옥수수를 원료로 하여 딩딩딩딩 가는 것입니다. 물론 그 속도는 느리고, 할 수 있는 일도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 트랙터를 만들어서 대중화하게 되면, 외국자본을 빌려서 빚을 진 농민들의 부채상황의 악순환도 개선시킬 수 있고, 국내의 일자리도 많이 만들게 됩니다. 외국자본도 안빌려도 되니까 그만큼 자본상황도 개선시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안은 별로 실현되지가 못합니다. 빨리 이윤을 내야 되니까, 속도가 높으 트랙터를 쓰게끔 정부에서 유도하고, 그러한 정부 안에 반대하여 이 딩딩딩딩 트랙터를 보급화시킬만한 수단을 변혁적 농민들은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우리나라 안에서도, 생태주의적 사회로 만들기 위한 좋은 기술적 아이디어들, 제도적 아이디어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는 조금만 재정지원을 하면 그러한 아이디어들을 만들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 일상생활의 작은 부분부터 큰 부분까지 생태주의적인 시스템으로 끌어넣을 수 있는 전문적 심급의 지식들은 큰 잠재력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지금의 커뮤니케이션 흐름은 이 전문적 심급의 생태주의적 지식에 아무런 힘을 싫어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정책으로 전화되지 못하고,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면 더 깊은 연구의 동력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현대사회의 문제는 매우 복잡하기 때문에, 권력의 주체만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지금의 커뮤니케이션 흐름 구조를 그대로 놓아두고 일을 하고자 한다면, 이 사회에서 가장 선한 사람들만 모아서 정부를 구성한다고 해도 사정이 별로 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선한 사람들은 ‘좋은 해결책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한 가장 능력있는 사람들로 정부를 구성한다고 해도 사정이 별로 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능력을 사용할려면 정보와 지식이 필요한데, 이 흐름이 막혀 있기 때문에 그들은 각자가 한 분야에 전문적 지식은 갖고 있을지언정, 전부에 대한 지식은 갖고 있지 못하고, 또한 전문적 지식간의 경쟁을 다룰만한 환경도 못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좋은 커뮤니케이션 흐름을 만들 것인가?

이것이 바로 대안민주주의 제도 즉, 심의 민주주의의 구체적인 형태를 탐구하고자 하는 노력에 전제되는 화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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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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