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와 커뮤니케이션 흐름 2   written by 이 한

근래까지의 정치이론은 구시대적인 긴장을 안고 왔습니다. 그 긴장은 바로, ‘동일한 의사결정 능력을 가진 대중들’이라는 단순 민주주의의 전제로부터 발생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단순한 전제에 따르면, 결국 ‘중우정치’가 나타나게 되고, 이 중우정치에 대한 반동으로 항상 ‘엘리트주의’가 등장하게 됩니다. 정치철학은 몇백년동안 플라톤의 주석에 그쳤다는 과장된 논평이 나오는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과두제적인 대의제 민주주의를 정당화하고, ‘과잉 민주주의’를 비난하는 것도 사실은 엘리트주의와 중우정치 간의 어설픈 타협에 지나지 않습니다. 과두제적 대의 민주주의를 옹호하는 사람은 ‘대중들은 대표를 뽑을 능력은 있지만, 의제를 직접 다룰만한 능력은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일가요? 때로 대중들은 대표를 뽑을 능력도 없을 때도 있고, 의제를 직접 다룰 능력이 있을 때도 있습니다. 지금 국회의원이라고 뽑아 놓은 사람들이 의제에 대한 무사공평한 전문가가 아닌 경우도 다반사입니다.

결국, 우리가 민주주의를 사고할 때, ‘동일한 의사결정 능력을 가진 대중’과 ‘전문적 의사결정능력을 가진 엘리트’라는 잘못된 전제를 버린다면, 우리는 보다 풍부한 미래를 설계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한 의제에 대해서 성찰적이고 전문적인, 아니면 그에는 못미치더라도 소양이 깊은 지식을 갖게 되고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것은 많은 조건이 필요한 일입니다. 따라서 A라는 의제에 대해서는 영철이와 영희가 잘 알지만, B라는 의제에 대해서는 수미와 조식이가 잘 알 수도 있지요. 또한 두정이는 어떤 의제에 대해서도 알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A, B, C 등의 의제에 대해 영철, 영희, 수미, 조식, 두정이가 동일한 의사결정 능력을 지녔다고이야기할 수 있습니까?

현대 대의민주주의에서 직접적인 의제에 대한 통제는 대개 여론조사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슈화가 되는 큰 문제에 대해, 여론조사기구가 여론조사를 하고, 그것은 언론을 통해 발표되어 정치인에게 큰 압력을 미칩니다. 그러나 여론조사는 소양의 깊이와 관계없이 이루어지는 것이며 결국 여론조사 정치는 여론조작 정치이고, 중우정치에 불과하다는 혐의를 떼어낼 수가 없습니다. (성찰적이지 않은 판단은 조작되기 쉽고, 그런 판단에 압려을 받는 정치는 중우정치가 되어 버린다는 비판 말입니다.)

발상의 전환은, 하나의 의제에 대해 국민들이 의사결정자로서 그 능력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국민들을 모든 의제에 대해 영구히 배제하거나 영구히 의사결정자로 참여를 보장하는 엘리트주의적이거나 비평등주의적인 방식이 아니라, 사안에 따라서 충분히 심의, 숙고한 사람들을 참여시키는 세팅을 발전시킨다면, 그것은 몇백년 동안 이어져 내려왔던 정치철학의 좁은 긴장과 딜레마를 ‘넘어서는’ 일이 될 것입니다.

여론조사 주도형 대의 민주주의는 대중 전체가 모두 1인이 같은 발언권을 갖고서 정치가들에게 압력을 넣는 민주주의로 볼 수 있습니다. 즉, 의제에 대해 소양을 가지고 있든지, 소양을 가질 자질은 있으나 아직은 정보가 없든지, 아예 정보를 가질 의향이 없든지, 정보 없이 완고한 주장을 하든지 상관없이 모두 압력권을 갖는 것입니다. 이런 대중을 하나의 단일한 대중으로 보고, 이것이 여론조사로 수렴되어 ‘대의자’들에게 압력을 넣는 것이 우리 사회 민주주의 모델의 의사소통 구조입니다. 물론 이 압력이 그데로 대의자들의 행위로 이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대의자들은 자신의 계급적 이익과 직업적 이익, 조직적 이익에 고유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고, 이런 요소들이 여론조사 주도형 압력과 합쳐져서 그들의 의사를 결정짓습니다. 과연 여기에, 올바른 최선의 의사결정이 도달할 수 있는 여지가 얼마나 존재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민주주의는 하나의 정해진 절차가 아닙니다. 민주주의를 이야기하기 이전에, ‘의사결정’이라는 것 자체의 본질을 탐구해야 하고, 이 본질은 ‘사회 윤리학’으로부터 밖에 올 수 없습니다. ‘자율적인 개인들이 평등한 배려 위에서 의사를 형성하고, 그러한 의사형성과정에서 제공된 수준높은 정보를 가지고 심사숙고하여 내리는 집단적 결정’에 의해 움직이는 사회가, 그러한 윤리학으로부터 도출되는 민주주의의 정의가 될 것입니다.

아무리 보아도, 여론조사 주도형 대의 민주주의는 이러한 정의로부터 떨어져 있습니다. ‘조작되기 쉬운 개인들이 불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무관심하거나 완고한 경우에 내린 집단적 결정’+'대의자의 자의적 판단을 제지할 효과적인 장치의 부재’, 이것이 현재의 모습입니다.

대의자의 판단은 항상, 대중의 최종적 심의에 의해 기각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최종적 심의를 하는 대중은 모든 대중을 다 포함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의제에 대해 무사공평한 심의를 한 대중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심의 민주주의적 세팅은, (1) 소양있는 대중에게 중심적인 발언권을 주며, (2) 무식한 대중을 소양있는 대중으로 만들 수 있는 기회와 동기를 부여하며, (3) 무관심하고 멍청한 대중의 견해는 완전 무시하며, (4) 활동적이고 멍청한 대중은 소양있는 대중의 논리적인 반박에 답해야만 하는 절차에 복속시키는 그러한 세팅인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심의적 대중 발언권 부여 세팅’이라고 명명합니다.

그러한 세팅은 민주주의가 제대로 된 의사결정을 하려면 필요한 다음 세 원소를 갖춘 것입니다.

(1) 민주적인 정당정치가 이루어지는 대의제 공간의 대의자들

(2) 결사체들(이익집단, 의제집단)

(3) 소양있는 대중

(1)은 현대 사회의 복잡 다기하고 수많은 전문적인 통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버릴 수 없는 제도입니다. 그리고 (2)는 대중들이 자신의 이익이나 소망하는 사항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압력을 넣기 위해 꼭 필요한 요소입니다. 그리고 (3)은 사안에 따라 무사공평하며 숙고한 판단자로서 최종적인 결정권을 가지는 주체로 필요한 요소입니다. 이 세 요소가 모두 제도화된 권력을 가지고 상호작용을 하는 민주주의가 최선의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의사소통 구조인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부분의 국가의 민주주의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습니다.

<1> 대의자들

<2> 제도화되지 못하고 평등하지 못한 결사체들 - (주로 돈과 권력을 불평등이 그대로 결사체의 불평등으로 반영됨)

<3> 최종적 의결권을 제도적으로 갖지 못한 여론조사 대상으로서의 대중(대부분 소양없음)

그러므로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세 다리 중에서 한 다리만이 매우 불충분한 견제-주기적 선거-를 받으며 제도적으로 존제하고 있으며, 소양있는 대중은 제도적으로 아무런 위치를 부여받지 못하고, 결사체들은 그 평등한 존속이 제도적으로 보장받고 있지 못하고 또한 통치행위에의 참여자가 아니라 ‘압력자’로서 남아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국 ‘권력과 돈에 의한 불평등 구조의 지속’과 ‘엉터리 의사결정’이라는 두 가지 결과를 낳습니다.

삼각 민주주의는 (1) (2) (3) 세가지 요소를 모두 제도화시킵니다.

(2) 즉, 결사체는 세금을 그 재원으로 하는 쿠폰을 모든 시민에게 5장 씩 나누어 주어, 자신이 원하는 결사체에 전송하도록 합니다. 물론 한 종류의 단체에는 한 장의 쿠폰만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시민들은 자신의 직업적 지역적 성별 정체성의 이익에 이바지하는 쿠폰을 쓰고서도 소망하는 의제를 실현시키는 시민단체에도 쿠폰을 주게 됩니다. 한편, 가난한 사람들도 쿠폰을 똑같이 받으므로 그들 또한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결사체를 갖게 됩니다. 그리고 결사체들은 압력집단으로서의 기능만 하는 것이 아니라, 최종적 의결권을 갖는 ‘소양있는 대중’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기능, 그리고 행정부의 통치행위에 직접 참여하는 기능을 갖게 됩니다.

(3) 소양있는 시민들은 지역별 심의회의를 통해 출현하게 됩니다. 지역별 심의회의는, 지역적 전국적 이슈를 모두 다룰 수 있으며, 지역이나 전국의 대의자들이 제 기능을 못한다고 생각되는 의제를 대상으로 심의와 표결을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결사체를 중심으로 의제를 설정하고 정보를 제공받으며, 몇번의 심의회의를 거치며, 각 의제 주창자의 주장이 담긴 정치신문을 읽으며, 정보를 숙지했는지 확인하는 질문지를 풀고, 표결에 임하게 됩니다. 그들의 표결은 전국적 사안이면 전국적으로, 지역적 사안이면 지역적으로 집계되어 헌법적으로 최종적인 권한을 갖게 됩니다. 지역별 심의회의는 정치 배심원으로 구성되어, 특정한 계급이나 인종, 특히 고학력 중간 계급에 치우치지 않는 안배를 하게 됩니다. 지역별 심의회의 결정을 합계한 투표의 결과는 의회의 투표결과에 우선하게 되므로, 의회의 직무유기나 인민 대다수의 이익에 반대되는 특권집단의 옹호에 대하여 제재를 가할 수 있게 됩니다. 모든 사안을 다 다루는 것이 아니라, 의회가 제대로 다루고 있지 못한 사안을 보충적으로 다룸으로써 견제가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의제를 이슈화하고 관철시키려고 하는 사람은, 막막한 일반 대중의 바다를 타겟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심의회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타겟으로 설득작업을 벌일 수 있습니다. 심의회에서 심의한 사람들은 그 의제에 관하여 숙고된 결정을 내릴 수 있으므로, 이로써 커뮤니케이션 위치에 따라 인민을 구별하면서도, 심의회에 참여할 기회를 평등하게 열어 놓음으로써 평등주의적 정치제도는 더 심화시킬 수 있게 됩니다.

자세한 내용은 ‘좌파 자유주의-새로운 청사진’이라는 책을 통해서
그리고 그 이전에 ‘심의 민주주의’ 강의를 통해서 다시 한번 이야기 드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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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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