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원화는 유동성이 높다. 원하는 대한민국 안에서 어디서나 통용된다. 원화는 미화를 비롯해 여러가지 외국화폐와 교환가능하다. 그러므로 원화는 달러화와 마찬가지로 세계의 시장에서 투기와 축적의 대상이요 수단인 상품이다. 교환 가치 이상을 가지는 상품인 것이다. 이로 인해서, 생활의 모든 곳에서 원화가 필요한 우리의 삶은, 전세계적 자본주의 시장이 펄럭거릴 때, 따라서 펄럭거린다.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다. 미국 인디언들이 그해 농사가 좀 안될 것이라 예상한다고 해서, 우리나라 조선시대 농민들이 갑자기 굶어죽게 되는 일이 생기지 않았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한 곳에서 경제활동이 잘 돌아가지 않으면, 그것은 화폐를 통해서 순식간에 전달되어, 그 유동성과 연결되어 있는 지역 곳곳을 모두 빈곤하게 만든다. 유동성은 커다란 매력이기도 하자, 삶의 종속과 불안정성의 원인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실물경제의 불안정성이 화폐를 통해 다른 지역으로 연결되는 것보다는, 일종의 화폐투기, 즉 환투기에 의해서 실물경제가 흔들리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환율을 방어하는 것은 국가의 중요한 사명이 되었으며, IMF사태를 가속화시켰던 원인 중의 하나도 거대한 국제 환투기꾼들의 존재다.

그렇다면 화폐 때문에 생긴 삶의 종속과 불안정성, 그리고 화폐가 갖는 거대한 사회적 규정력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가?

그것은 바로 화폐의 유동성을 사회의 각 부분에서 제한하는 참신한 제도를 통해서이다.

지역화폐라는 것이 있다. 지역화폐는 지역에서 쓰이는 화폐인데, 발행자는 지역의 주민들의 참여기구이거나, 아니면 개인이다. 지역 화폐는 시장적 화폐라기보다는 ‘호혜고리의 교환증서’와 비슷하다. 예를 들어 품앗이를 할 때, 나는 너희 집에 품앗이를 해주었다…라는 증서가 확장된 개념이다. 즉, 나는 이 지역 공동체에 이러이러한 일을 해주었다라는 증서인 셈이다. 그 증서를 가지고 지역의 다른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받는다. 지역화폐가 제일 크게 성공한 곳은 캐나다의 어느 변두리 지역인데, 이 곳에서는 만성적인 실업으로 사람들이 고통을 받았다. 유동성 부족이 원인일 것이다. 그러나 한 지역에서 유동성이 부족하다고 해서 화폐를 마음대로 발행할 수도 없고, 전지구적 경제활동과 연관된 활동에 유동성을 막 공급하면 결국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것이다. 지역 화폐는 지역의 경제활동과 관련해서만 쓰이는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사람이 먹고 싸고 자고 입고 하는 일은 대체로 항상적이다. 반면에, 유동성 높은 화폐는 매우 불안정하다. 그것은 시장에서 가격이 높아졌다 낮아졌다 공급이 늘었다 줄었다 한다. 그것은 산업자본가의 투자심리 뿐 아니라 금융자본가의 투기심리에도 영향을 받는다. 그런데 오늘날 자본주의에서 항상적인 먹고 싸고 자고 입고 하는 것이 모두 불안정한 화폐를 통해서만 이루어지니, 삶이 불안정해질 수 밖에 없다. 지역사회의 활동들은 항상적인 경우가 많다. 애를 돌보고, 기타를 가르치고, 우유를 사먹고, 쌀을 팔고, 집을 고치고… 이런 일들은 전세계 자본주의가 공황이든 아니든 해야만 하는 일이다. 다만 돈이 없어서 못한다. 이 돈을 지역에서 직접 공급하여 호혜주의적 증서를 발행하게 되면, 불안정성의 일정한 부분이 완화된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이 지역화폐는 ‘유동성이 제약된’ 화폐라는 것이다. 경제학에서는 다른 조건이 같다면 유동성이 높을 수록 훌륭한 상품이다. 그러므로 신고전 경제학에 따르면 이는 매우 비효율적인 도구이며, 파레토 비최적을 낳는다. 그러나 신고전 경제학의 이러한 비판은, 삶의 불안정성’이라는 주요한 비효용을 계산에 넣지 않았으므로 불완전한 비판이다. 화폐로 인한 삶의 불안정성이라는 비효용을 방지하거나 일정한 수준을 낮추기 위한 보험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그러나 이 보험은 시장에서 제공되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이러한 형태의 보험은 전형적으로 역선택을 낳기 때문이다. 실업이 가까워졌거나 도산의 위험이 높은 중소사업가만이 보험에 가입하기 때문에 보험회사의 재정은 파산에 이르게 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시장이 그냥 제공하고 있지 않은 것이 아니라, 이론적으로 시장의 실패라고 부를 수 있는 부문의 일이다.

우리는 시장이 제공하고 있지 않은 보험을 여러가지 방식을 통해서 구성할 수 있는데, 하나는 국가가 제공하는 실업보험과 적극적노동시장정책 그리고 국민연금제도이며, 다른 하나는 바로 지역주민들 사이에 호혜적인 관계를 특수한 도구를 통해서 맺는 협약이다.
유동성이 높은 화폐는 이 특수한 도구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협약의 목적이 안정성이기 때문이다. 지역화폐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그 사람이 지역에서 다른 사람의 일상적인 삶에 도움이 되는 재화와 용역을 공급했다는 증거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가 재화와 용역을 공급받고자 한다. 화폐의 상품으로서의 성격을 벗겨버림으로써, 서로 돕는다는 협약의 성격을 두드러지게 만드는 것이다.

유동성이 제약된 화폐를 통해서, 삶의 항상성을 회복할 수 있다면, 그만큼 이윤에 삶이 덜 얽매이게 되는 것이고, 삶의 전면에 나선 이윤동기도 그만큼 줄어든다. 무제한의 자본주의 경쟁 속에서 희소한 권력-자본이라는 권력-을 차지함으로써 삶의 안정성을 확보하는데 골몰하기 보다는, 주위의 이웃고 나눔으로써 그것을 확보하는 길이 열리게 되기 때문이다.

이 뿐 만 아니라, 사회의 각 부문에서 유동성이 제약된 일종의 화폐를 사용함으로써, 돈이 삶을 규정하는 정도를 줄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정치헌금은 오직 정치바우처로만 할 수 있게 하면 어떻게 될까? 개인이나 단체가 돈을 국가에 내면 국가는 그것을 정치 바우처로 바꾼다. 그 외의 헌금은 법으로 금지한다. 정치 바우처는 다음과 같은 부문에 사용된다 : 정책개발 연구 조사 비용. 정책 선전 비용. 정당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임금 비용 등 정치와 관련하여 필요한 비용에 사용될 수 있게 한다. 그런 활동을 통해서 바우처를 습득한 사람들은 다시 바우처를 돈으로 바꿀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정치자금의 경로가 매우 투명해질 수 밖에 없다. 뇌물식으로 로비를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또한 이렇게 되면, 단순히 대의자를 뽑는 선거에서 뿐만 아니라 정책형성과정에서도 1원1표가 아니라 1인1표의 원칙이 보다 잘 지켜지게 될 것이다.

이러한 부문별 화폐는 상품권과는 다르다. 상품권은 돈으로 사는 것이다. 그러나 부문별 화폐는 노동을 함으로써 획득하는 것이고, 협약에 참가하게 되면 기본적인 양의 화폐를 받게 된다. 또 다른 예로 ‘교육화폐’를 생각해보자.
(율적이고 비자본주의적 인간의 성장과 지금의 학교체제는 상극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지금 논하지는 않겠으나, 대안적 교육제도에 대해서는 <학교를 넘어서, 이한, 민들레>와 <탈학교의 상상력, 이한, 삼인>을 참조하세요.)
교육이라는 활동은 호혜적인 체계를 잘 구성될 수 있는 인간의 활동이다. 협약에 가입하는 사람들의 수가 적으면 그것은 잘 작동하지 않겠지만, 그 수가 일정수를 넘어서게 되면 충분히 잘 작동할 수 있다. 물론 전문적으로 훈련받은 사람들이 좀 더 이점을 갖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전문적인 교사의 수는 적으며 시장에서 분야별로 다 잘 제공되고 있지도 못하다. 또한 시장이 제시하는 가격은 너무나 높아서, 경제사정이 조금만 나빠지면 그만두어야만 한다. 예를 들어 스페인어를 배우고 싶은 사람이 있다. 지갑사정이 좋을 때는 스페인어 학원을 다니겠지만, 이제 경기가 나빠져서 임금이 체불되면 스페인어는 그만둬야 한다. 다른 삶의 부문에서 일어난 사태 때문에 스페인어를 배운다는 활동이 갑자기 제약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이 평소에 협약에 가입해서 자신이 좀 알고 있는 어떤 것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주면서 살아왔다면, 아니면 다른 문화적 활동을 제공했다면-예를 들어 아마추어 콘서트를 열었고, 티켓을 교육화폐를 받고 판매하였다- 유동성이 높은 를 지불하지 않고 스페인어를 배울 수 있다. 전문적인 교사들은 유동성이 높은 화폐를 원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다루고 있지 않은 틈새의 영역은 무한히 많고, 사람들의 배움의 욕구는 그 틈새의 영역에서 만들어진 다양한 네트워크를 통해서 많은 부분 충족될 수 있다.
일정한 시기에 가르쳐줄 수 있는 게 적은 사람은 교육화폐를 대출받거나 마이너스 계좌를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마이너스 계좌나 대출이 이자를 지불할 것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그 사람이 교육화폐를 통해 가르쳐준 사람들에게 고마워한다면, 그도 무언가를 잘 숙련하여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주고자 하는 마음이 생길 것이다. 이런 것은 호혜적인 마음이며, 돈을 벌기 위해 가르쳐주고 싶다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돈 때문에 배우는 것을 겁내하지도 않게 된다. 그만큼 자본주의적 욕망과 성격으로부터 이탈되게 된다.

한편, 보살핌 노동이나 사회개혁노동과 관련한 노동을 시민노동으로 규정하고 이러한 노동을 한 사람에게 시민화폐를 지급하게 되면, 보살핌 노동의 상당한 부분이 비이윤적인 활동으로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애돌보기나 환경보호를 전적으로 이윤의 부문에 맡기는 것은 많은 부작용을 낳는다. 그렇다고 자원봉사에만 맡기자니, 이윤동기만을 가진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원봉사자는 언제나 과소공급된다. 시민화폐는 제3의 영역을 창출하여 보충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시민노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시민화폐를 일정비율 지급하고, 시민화폐를 의류와 식품과 같은 기초적인 생필품 구입과 시민노동을 받을 수 있는데에 사용하게 되면 사회 전반에 호혜성과 안정성이 늘어날 것이다. 실업자들은 국가가 제공해주는 실업보험에 더하여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통해 새로운 직업훈련을 받고, 지역화폐를 통해 지역의 재화와 용역을 교환하며, 시민노동을 통해 생필품을 구입한다. 이는 자의적으로 실업자 중 소수만이 선택되어 비체계적으로 동원되는 공공사업과는 다른 것이다. 공공사업의 내용을 행정가들이 성의없이 자의적으로 정하다보니 벽화 그리기나 쓰레기 청소와 같이 우선성(priority)을 가지지 않는 일에 투입되는 경우가 많다. 시민화폐는 시민들의 자율적 판단에 따라 시민노동을 하는데 사용되므로, 노동의 적재적소 분배에 더 많은 역할을 할 수 있다. 즉, 공공사업에 투입되는 자원은 시민화폐에 투입되어야 한다.

(이와 관련된 자세한 내용은 <아름답고 새로운 노동세계, 울리히 벡, 생각의 나무>를 참조하세요)

Posted by 시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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