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워킨의 원리의 문제 13장은, 법해석의 원칙으로 "부 극대화 원칙"을 단일 원칙으로 정당화하려는 포스너, 그리고 중심 원칙으로 정당화하려는 칼레브레시에 대한 비판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원리의 문제 12장과 연결해서 읽으면, 부를 일종의 가치로 보고 그것을 극대화하는 것을 법 해석의 원리로 보거나, 중요한 공동체의 목표라고 생각하는 것이 왜 잘못되었는지를 논박할 수 있는 여러 논거들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제13장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부분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타협으로서의 조합'과 '조리법으로서의 조합'을 구별하는 것입니다.
부의 양과 기계적인 평등분배 두 척도에서 어떤 지점을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가 과연
 1) 가치있는 두 개 사이의 적절한 균형을 찾는 타협이라는 의미인가
 2) 아니면 하나의 올바른 결과를 산출하기 위한 조리법으로서의 의미인가
의  문제입니다.

한국사회에서도 "파이의 크기와 평등분배"라는 말이 자주 운위되고 있는데, 이는 칼라브레시 등이 겪는 개념적 혼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입니다. 파이의 크기와 기계적 평등분배 자체는 독립적으로 가치를 가지지 않습니다.

이 에세이의 전반부는 이 점을 논증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두번째는 '반사실적 동의'가 정치철학에서 하는 역할에 관한 것입니다.

드워킨은 포스너가 특정 시점을 골라서 자의적으로 불확실성을 조정한 다음, 부 극대화 원리가 '모든 사람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주장을 하는 것을 혹독하게 비난합니다. 포스너는 동의와 공정성, 동의와 이익을 개념적으로 전혀 구별하지 못하고, 그래서 엉터리로 정당화 이론을 구성했다는 것이지요. 포스너에 대한 비판은 '계약이론'에 대한 올바른 이해에도 도움을 줍니다.
  반사실적, 가상적으로 '동의'가 있었다는 것은 그 자체로는 아무런 정당화의 힘을 갖지 않습니다. 이 점은 드워킨이 <Reading Rawls>나 <Taking Rights Seriously>에서 롤즈의 원초적 입장을 논의하면서도 반복적으로 지적했던 바이지요. 롤즈의 정의론이 이 현실에서 공정성의 대표 주자로 논증의 힘을 갖는 것은, 롤즈가 구성한 여건에서 그 사람들이 '동의'했다는 점 때문이 아니라, 롤즈가 '구성한 바로 그 여건'이 공정한 선택의 여건이기 때문이고, 이것은 결국 어떤 결론이 공정하다는 추론의 중간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포스너는 이 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현실 세계에서 어떤 특정 시점 단면을 잘라서 그 시점의 무지 하에서 대부분의 사람(만장일치가 아니라)이 동의"했을" 것이라는 점을 공정성의 정당화 논거로 삼고 있어서 비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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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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