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의 작동방식과 진화에 대한 탁월한 이야기 

이책 저책을 통해 알고는 있었지만 간명하게 꿰고 있지는 못했던 지식들을 꿰어주면서도, 술술 재미있고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듯이 보인다. 옮긴이에 따르면 이 책은 로버트 하일브로너가 1962년 단독 저서로 출간한 이후 40년이 넘는 개정과 추가를 12판을 거듭하면서 했고, 그 결과 현재 이 책에 최초 1판의 모습은 절반 정도 밖에 남아 있지 않다고 한다. 원래 하일브로너가 이야기꾼이기도 하지만 아마 그렇게 개정과 추가하면서 문장도 훨씬 더 재미있게 변했으리라 본다. 더군다나 옮긴이 말대로, 19세기 중반 산업 자본주의의 탄생까지만을 다룬 레오 휴버맨의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와 같은 책과는 달리, 이 책은 1990년대까지 역사적 성격이 크게 변모한 자본주의까지 충실하게 다루고 있다.

이 책은 경제사책이다. 그래서 아담 스미스, 리카도, 밀, 마셜, 케인즈 하는 식으로 내려가는 경제학사보다 그 내용이 역사의 전개와 훨씬 풍부하게 얽혀 있다. 그런데 그런 관련성은 단지 이 책이 경제사책이기 때문이 아니라, 저자의 저술이 기반하고 있는 몇 가지 명제에서 비롯되고 있다.
첫째는 인간의 경제현상을 호모 에코노미쿠스와 같은 이익 극대화 인간관에서 출발하는 몇 가지 공리로 모두 예측하고 설명하는 것은 사이비 과학에 지나지 않고, 경제의 이해는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요인 등의 영향을 고려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대학에서 접하는 미시경제학 책은 효용 극대화 인간으로부터 시작해서 마치 인류사의 모든 경제가 그런 인간에 의해 운용되어 왔고, 현대 자본주의와 비슷한 모습을 가지지 않는 시대는 단지 경제 이외의 외부적 요인 때문에 억압되었다가 해방된 듯이 다룬다. 그리고 자본주의를 다룰 때에도 마치 19세기 자본주의, 20세기 중반 자본주의, 그리고 21세기 자본주의를 완전히 동일한 것으로 설명한다. 이것은 비단 신고전파 경제학만 그런 것이 아니라, 마르크스주의 경제학도 그렇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20세기 황금 시대 미국 자본주의와 21세기의 양극화 미국 자본주의는 단지 복지 재정의 적고 많음으로 설명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모델로는 자본주의‘들’ 사이의 질적 차이를 설명해내지 못한다. 자본주의를 구성하는 제도들도 시간지평이 다르면 달라질 수 밖에 없고, 자본주의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진화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자본주의 내에서의 진화를 훌륭하게 다룰 수 있었다고 보인다.
둘째로, 경제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에 ‘시장’만이 존재한다는 협소한 가정을 벗어나, 여기에는 전통, 명령, 시장 세가지 방식이 있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역사의 각 단계마다 이 세가지 방식이 어떤 비중을 가지고 작동했느냐를 일관되게 설명해낸다. 그 결과, 사회, 정치, 문화적 요인을 고려해야 한다는 언명이 단지 수사나 공염불에 그치지 않고 설명의 논리 자체로 짜여 있다.
시장 이전의 경제, 시장 사회의 출현, 산업화 시대를 다룬 부분은 이야기 역사 같이 느껴져 재미가 있지만, 아무래도 관심 있게 읽은 부분은 6장 이후 부분이었다.
우선 6장. 고등학교에서 분명히 세계사를 배웠는데도 사람들과 이야기해보면 대공황에 대해 간명하게 이해하고 있는 분을 찾기가 힘들다. 애초에 ‘대’공황이 왜 왔는지를 이야기할 수 없는 사람이 태반이고, “생산은 많이 하는데 소비를 안하니까 대공황이 왔지”라는 논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과잉생산설이나 과소소비설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이 사람들이 과잉생산을 이야기할 때는 물품은 잔뜩 많이 생산해 놓았는데 사람들이 사지 않는 이미지를 그린다. 그런데 이런 부분 시장의 공급초과는 시장가격을 변화시켜 곧 청산된다는 시장의 일상적인 작동원리를 무시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이런 논리대로라면 100년 내내 ‘대공황’이 계속될 수 밖에 없다는 소리가 된다. 이렇게 대공황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런 종류의 책을 읽을 필요가 있다. 이 책에서는 자산 거품이 크게 형성되었다가 터진 것이 그 계기가 되어 공황이 발발했는데 그것이 ‘대’공황으로 연결된 고리를 설득력 있게 추측하고 있다. 농업 부문과 제조업 부문이라는 실물 부문이 매우 취약했고, 기술발전과 소득 분배의 악화로 그 부문들의 고용이나 임금소득이 취약했기 때문에, 총수요의 큰 부분이 자본 지출의 심리에 엄청나게 달려 있는 시기였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금융 자산 등이 붕괴하니 신뢰에 따라 크게 변하는 자본 투자 심리가 엄청 축소되었다는 것이다. 최근 금융 선진화니 뭐니 해서 고삐 없이 자산거품을 불려가고 소득 분배는 날로 악화되다가 터진 미국이나 아일랜드, 두바이가 심각한 금융 위기를 겪은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보이니 상당히 설득력이 있는 것 같다. 다만, 밀턴 프리드만이 <대공황>이라는 책에서 다루고 그 뒤 경제학자들에 의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진, 금융 자산의 붕괴와 뱅크런에 대한 미국 중앙은행의 어리석은 대응과 유동성의 급격한 축소에 대한 언급을 강조하지 않은 부분은 좀 많이 아쉽다. 최근 세계 금융 위기가 이 책에서 다루는 미국의 대공황 수준으로 발전하지 않은 것은 바로 유동성의 힘이 아니었겠는가. 어떤 사람은 이걸 두고 독을 주입해서 억지로 독을 살린다는 비유를 쓰는데, 이건 유동성의 역할에 대하여 잘못된 이해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하여튼 현대 경제정책가들은 그런 비유에 함몰되어 있지 않아서 죽을 고비는 넘겼는데, 그래도 요즘 미국 경제가 회복하는 것이 참 힘들다고 말이 많은데, 더 이상 소득분배를 악화시키는 ‘트리클 다운-부자가 잘되면 떡고물이 떨어지니 가난한 사람들아 참아라-정책’이 지속가능한 경제의 건전성을 담보해주지 않음을 이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7, 8, 9장은 한 세트로 읽히는데, 특히 8장은 유럽 자본주의와 한국 자본주의의 차이점을 잘 알 수 있다. 흔히 생각하듯이 공공 부문이 민간 부문에 기생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본주의 경제의 안정적 지속에 기여하며 민간 부문에서는 생산할 수 없는 중요한 생산물을 공급하는 존재로서의 역할을 알 수 있고(이런 저자의 현명한 이해는 15장에서도 반복되어 민간의 빚은 투자라고 찬양하고 정부의 재정지출은 마치 경제의 살을 까먹는 짓인양 오해하는 것에 대해 비판한다), 유럽 자본주의가 코포라티즘과 함께 공공부문의 이러한 역할을 시장경제에 통합시킴으로써 새로운 형태의 자본주의를 출현시켰음을 설명하고 있다.
10장은 황금시대의 몰락과 소득 분배 악화의 용의자를 찾는 부분이 눈에 띈다. 한국 사람들은 하도 뻔한 소리하는 정치인들 레토릭에 세뇌되어서 마치 스태그플레이션이 복지 지출 때문에 왔고 그래서 복지를 줄여야 한다는 식의 멍청한 교리를 암송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 문제는 저자도 자신있게 말하지 않고 여러가지 추정을 하는 복잡한 문제다. 이 문제의 복잡성을 이해하지 않고는 매우 단선적인 정책 편향을 가질 수 밖에 없다.
그 다음 12장과 13장이 세트로 읽을 수 있는데, 특히 왜 지구화, 세계화가 되어도 가난한 나라는 여전히 가난한가의 질문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루카스가 유명한 세미나에서 “이 문제를 한 번 생각하면 다른 문제에 관심을 두기 힘들다”고 할 정도로 절실한 질문이다.(아마 경제학자에게는 매우 흥미로운 질문일 것이다. 폴 로머와 같은 발전 경제학자는 이 주제에 일생을 보냈다.) 세계화를 해서 부자 나라들이 죽는 소리를 한다면 가난한 나라들이 이전보다 더 잘 살아야 할 것 아닌가? 그러나 더 잘 살게 된 나라는 인도나 중국 등 극소수에 불과하고 오히려 부는 점점 더 부자 나라에 집중되고 있다. IMF는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데 크게 실패했으며, 자유무역과 금융긴축, 규제철폐와 같은 신자유주의적 처방은 저성장의 악숙환에 처한 나라들의 기반을 더 깎아먹는 결과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한 더 자세한 이야기는 노벨 경제학상에 빛나는 스티글리츠의 <세계화와 그 불만>을 보면 더 충실하게 알 수 있지만, 이 책에서도 간명하게 정리하고 있는 부분이다.
14장부터는 매우 최근의 경제사와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1990년대 한때 닷컴 열풍이 한참 불면서 경제가 ‘신경제’라는 새로운 고원에 달해 경제순환 주기 없는 번영을 구가할 것이라는 말들을 많은 경제논평가들이 한 적이 있다. 경제학자들도 다수 거기 끼어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보면 많은 부분은 새로운 기술 발전이 있을 때 으레히 따르는 거품이었고, 정보 기술의 발전으로 초래된 생산성 증가는 그리 극적이지 않았다는 연구가 소개된다. 또한 지역에 따른 디지털 격차는 세계적인 부의 편중을 심화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고 한다. 15장에서는 앞으로 남은 이슈로 일자리 없는 성장 문제와 극심한 소득 양극화 문제 등을 다루고 있는데, 단정적으로 서술하지 않으면서도 겸손하게 분석의 방향을 제시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저자가 간략히 언급하는 것은 공공 지출이 경제 내의 안정적 부문으로 통합되는 것, 이해 당사자 만들기 등이다. 15장은 옮긴이가 언급했듯이 칼 폴라니와 가까워 보이는 설명이 눈에 띈다. 자본의 권력이 정부와 사회의 권위와 제한으로부터 이탈되어 날뛰는 것은 ‘본래’ 그러한 것이 아니다. 우리의 미래에 놓인 자본주의는 그 제도의 독특성에서 서로 많은 차이가 날 수 있으며, 그 폭넓은 가능성을 인식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출발점인 것이다.
저자인 하일브로너야 워낙 유명한 이야기꾼이지만, 그 이야기꾼의 재담을 맛깔나게 옮긴 역자 홍기빈의 솜씨는 감탄할만 하다. 예를 들어 도덕을 고려하지 않는 시장의 자율성에 대한 예로 광고를 언급한 부분을 보자. “다 큰 어른들이 돈 좀 벌어보겠다고 ‘실제의 보통 사람들’인 척하면서 본래 관심도 없을 물건들에 대해 아주 강한 확신을 갖는 양 꾸며내어 이런저런 소리를 떠들고 있단 말인가? 이러한 행태에 과연 도덕적 문제가 전혀 없을까?” 케이트&레오폴드라는 엑스맨의 울버린이 영국 신사로 나오는 로맨틱 코미디가 있는데, 관련해서 한 번 볼만한 영화다. 십자군 원정의 실체와 그것이 시장 사회 출현에 기여한 부분을 설명하는 3장의 문장들은 어떤가. “그런데 이들(베네치아인들)은 십자군을 마치 장터에 처음 나온 시골뜨기 촌놈을 가지고 놀듯 파렴치하게 벗겨먹었다. 그래서 십자군은 완전히 껍데기가 홀랑 벗겨질 정도로 갈취를 당해야 했고, 천신만고 끝에 성지 예루살람에 도착했지만 그 결과도 아주 애매한 것이었다”는 식의, 마치 김태권 작가의 십자군에 관한 만화를 보는 듯한 익살. 변변찮은 번역 능력을 지닌 사람으로서 부러운 생각이 든다.
이 책은 각 장마다 핵심개념과 핵심어 정리가 되어 있어 장의 내용을 잘 요약하고 있으며, 각 장마다 딸린 생각해 볼 문제들도 중요한 질문들이라 그야말로 (시험 준비생을 위한 경우를 제외한) 경제사 교과서로 손색이 없는 듯 하다.
아직 자본주의 경제에 대한 책들을 읽어보지 않은 독자들은, 이 책을 먼저 읽고 그 다음으로 『자본주의 이해하기: 경쟁, 명령, 변화의 3차원 경제학』, 새뮤얼 보울스 외, 최정규 외2인 옮김, 후마니타스로 더 진도를 나가는 것을 추천한다. 새뮤얼 보울스의 위 책은 좀 더 두껍고 내용이 많은데, 역시 경제사회학적 시각을 견지하면서도 엉뚱한 소리를 하지 않고 체계적인 접근을 하고 있다는 미덕이 돋보이는 책이다. 시민교육센터에서 기회가 된다면 추후 강의로 다룰 예정이다.

Posted by 시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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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신애
    2011.01.24 07:5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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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옷, 솔깃.
  2. 안녕하세요?
    2011.01.26 10:4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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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시 동일 저자의 세속의 철학자들은 어떠한지, 평을 해주실 수는 없나요? 본문의 책과 어떤 것을 먼저 읽는 것이 좋을까요?
  3. 이한
    2011.01.26 15:28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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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속의 철학자들도 좋습니다. 읽는 순서는 상관없습니다.
  4. 이한
    2011.12.06 00:59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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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98917
    신용평가사들은 구성의 오류를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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