욘 엘스터의 흥미진진한 책 <신포도 Sour Grape>의 III부 3장의 번역 글입니다.

이 글은 공리주의의 아킬레스건인 '적응적 선호'adaptive preference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적응적 선호의 대표 주자는 역시 뭐니뭐니 해도 신포도 입니다.

근래에 나온 작품들 중에 '신포도'라는 주제를 여러가지 방식으로 변주하며 잘 드러내고 있는 책은 최규석 작가의 만화 <습지생태보고서>입니다.

그 책에 실려 있는 여러 일화들 중 다음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좁은 방에서 함께 자취하는 대학생들과 사슴(녹용이)이 뒷산에 등산을 하는데, 뭔가 안온한 분위기의 작은 공터를 산 중턱에서 발견합니다. 이 공터에는 큰 바위가 있어서 그 밑에 음료수를 놔두면 시원하고, 걸터앉기 좋은 바위 쪽에 앉으면 산의 풍경이 다 보입니다. 이 작은 공터를 자취생 중 하나가 '별장'이라 부르며 큰 바위는 냉장고, 걸터앉는 바위는 테라스라고 하자, 녹용이가 폭발한다. 진심으로 하는 소리냐고! 인생하면 진짜 멋진 별장! 수영장! 파티! 미인아니냐고. 정말로 이것으로 만족하냐,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라고 하자, 자취생은 가슴에 손을 얹고 '응, 만족해'라고 답합니다. (그러나 손바닥이 가슴에 닿지는 않습니다)

이 일화를 염두에 두면서 이 글에 실린 추상적인 논지들을 구체화하면서 읽으면 머리에 잘 들어오시리라 생각됩니다. 

적응적 선호 현상으로 인해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것은 공리주의입니다. 모든 것을 '선호'의 '충족'과 연결짓는 공리주의는 적응적 선호 문제 때문에 '자유'에 관련된 정치철학적 문제들을 제대로 다룰 수 없는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염두에 둘 것은, 단일한 양(quantity)적 개념으로 자유를 다루다 보면, 적정한 자유를 보장하는 정치질서를 구성하는 논리를 세우기 힘들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벌린의 자유 개념이 갖는 난점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결국, 실존적 가능태인 자유(freedom)는 권리로서의 자유(liberty)와 구별되어야 하며, 진정한 정치적 쟁점은 권리로서의 자유(liberty)의 경계와 관련되는 것이며, 이 liberty의 정당화는 다른 정치적 가치에 기대지 않고서 홀로 양적으로 적고 많음을 따져서 해결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자유(freedom) 문제가 결코 간단하지 않다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는 탁월한 글이므로 꼭 프린트해서 일독할 가치가 있습니다.

Posted by 시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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