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초반에 큰 충격을 받은 사건이 있었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데, 책의 내용은 “AIDS는 없다”는 것이었다. 즉 바이러스로 감염되는 에이즈라는 병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에이즈는 제약회사들의 음모일 뿐이고 과학적으로 전혀 증명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이러한 주장을 진지하게 제기하고 있는 네티즌들이 한 둘이 아니었고, 모여서 모임도 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 의학적인 내용, 바이러스학에 관한 내용을 필자가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데 있었다. 이 주장의 양편 모두의 의견을 진정으로 음미할 능력이 내게는 없다. 그런데 의혹을 제기하는 쪽에서도 아주 소수이기는 하지만 과학자가 있었다. 그들은 그들과 반대되는 주장을 하는 과학자들이 모두 음모의 일원이라고 주장한다. 과연 이럴 경우 우리는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가?

“의혹을 팝니다.”라는 책은 이 질문에 답을 던져준다. 이 책의 부제는 “담배 산업에서 지구 온난화까지 기업의 용병이 된 과학자들”이다. 그런데 사실 이 책은 기업의 용병이 된 과학자들의 개인적인 윤리 문제를 다룬 책이 전혀 아니다. 이 책은 “한 사회, 또는 전체 지구인들의 운명에 관련된 중대한 문제에 대한 과학적 지식이 어떻게 쉽게 왜곡되고 유통되며 정치에 큰 영향을 미치는가”에 관한 책이다. 즉, 지식 커뮤니케이션과 민주주의에 관한 책이다.

다음과 같은 주장을 들어보라.

① 흡연과 암 발병 사이의 연관성이 입증되지 않았다.

② 스타워스는 위험하지 않고 좋은 것이다.

③ 산성비는 화산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고, 오존 홀도 그렇다.

④ 환경보호청은 과학을 조작하여 간접흡연의 해악을 부풀렸다.

⑤ 지구 온난화는 없다. 설사 있어도 자연적 변화에 불과하다.

⑥ DDT는 좋은 것이며 말라리아 퇴치의 유일한 효과적인 무기인데, 레이첼 카슨이라는 자가 엉터리 주장으로 금지시켜서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말라리아로 죽었다.

분명히 미국보다 덜하기는 하겠지만, 이 중 몇 가지 쟁점은 한국의 독자들에게도 몇 가지 사항은 마치 “논쟁의 여지”가 있고, 이런 주장을 하는 쪽도 어느 정도 과학적 근거를 갖고 있는 문제라는 인상을 줄 것이다.

프레드 싱어와 프레드 사이츠를 비롯한 한 줌의 과학자들은 우파 싱크 탱크 및 민간 기업과 세력을 규합하여 현대의 수많은 쟁점에 관한 과학적 증거에 이의를 제기했다. 그리고 기업과 우파들로부터 지원을 받은 그들이 한 짓은 상당한 효과가 있었다.

모든 사례마다 그들은 과학적 합의의 존재를 부정했다.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면 별 영향을 끼치지 못했겠지만, 사람들은 관심을 기울였다. 이 점이 중요하다! 이들은 백악관에서, 언론에서 진지하게 취급되고 다루어졌다. “『뉴욕 타임스』,『워싱턴 포스트』,『뉴스위크』 등을 비롯한 수많은 미디어는 시종일관 이런 주장이 마치 과학 논쟁의 ‘한족 편’인 것처럼 보도해주었다. 그러면 블로거에서부터 미국 상원 의원까지, 심지어 미국 대통령과 부통령까지 마치 첩첩산중에서 메아리가 울려 퍼지듯이 이런 주장을 거듭해서 되풀이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언론인들과 대중은 이것이 현직 과학 연구자들이 과학의 장에서 벌이는 과학 논쟁이 아니라 담배에서부터 시작된 거대한 양상의 일부인 허위 정보라는 사실을 결코 이해하지 못했다.”(32)

담배산업을 위해 발언한 “클라인과 클라인과 프루지너는 이름을 날리는 과학자들이었고, 따라서 혹자는 그들도 말할 권리가 있는 게 아닌가, 라고 물을지도 모른다. 훗날 사이츠와 그의 동료들은 종종 이런 주장을 펼쳤다. 자기들도 평등한 발언 기회를 누릴 자격이 있으며, 공정 보도 원칙에 따라 주류 언론에서 자신들의 견해를 밝힐 시간과 공간을 요구할 능력이야말로 자신들이 기울인 노력으로 영향력을 발휘하는 데 필수적이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평등한 발언 기회를 누릴 자격이 있었을까?”(77)

그러나 대답은 No다. 이견에 대해 평등한 발언 기회를 주는 것은 정치적 장에서 비슷한 비중을 가진 정치세력에 대해서는 말이 되지만, 과학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과학은 단순한 의견의 장이 아니라, 증거의 장이다. “과학적 연구(실험, 경험, 관찰)을 통해 검증될 수 있고 실제로 검증된 주장의 장인 것이다. 이런 연구는 또한 동료 과학자들로 이루어진 배심원단의 비판적 검토를 거쳐야 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은 주장(또는 이런 과정을 거쳤지만 입증에 실패한 주장)은 과학이 아니며, 따라서 과학 논쟁에서 평등한 발언 기회를 누릴 자격이 없다.”(77)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줌도 되지 않는 과학자들이 근거 없는 의혹을 제기한 결과, 어떻게 되었는가? “1990년대에 이르면 대다수 미국인들은 흡연이 전반적으로 유해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30퍼센트는 이런 유해성을 구체적인 질병과 연결시키지 못했다. 많은 의사들조차 담배의 유해성을 완전히 알지 못하며, 여론 조사 응답자의 거의 4분의 1은 흡연이 유해하다는 사실에 여전히 의문을 표시한다.”(79)

그렇다면 의혹을 제기하지 말란 말인가? 그런 말이 아니다. 과학은 절대 지식의 총합체가 아니라 비판 활동 그 자체다. 그러므로 “의심은 과학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른바 호기심이나 건전한 회의론의 형태로 의심은 과학을 채찍질한다. 그러나 의심 때문에 과학이 그릇된 설명에 취약해지기도 한다. 불확실성을 원래의 맥락에서 끄집어내서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는 인상을 만들어내기가 쉽기 때문이다. 담배 업계의 핵심적인 통찰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과학의 정상적인 불확실성을 활용해서 실제 과학 지식의 지위를 손상시킬 수 있음을 간파한 것이다. 1969년에 담배 업계의 어느 중역이 끼적거린 악명 높은 메모에는 이런 말이 있었다. “의심이 우리의 상품이다. 일반 대중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일군의 사실’과 경쟁하는 가장 좋은 수단이기 때문이다.”(80)

지구 온난화에 관한 장은 이 책의 가장 큰 분량을 차지하고 있으며, 흥미진진하므로 자세히 소개하지는 않겠다. 사실 “지구 온난화”로 검색해보면, 한국에서도 지구 온난화를 부정하는 이야기를 진지하게 취급하는 블로거들이 꽤 나온다. 그들은 태양 흑점이 원인이라는 이 의혹을 파는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신주단지처럼 받아들인다. 그러나 “온난화가 태양에 의해 야기된다면, 대기 전체의 온도가 올라가야 한다. 하지만 만약 온난화가 온실가스에 의한 것이라면, 대기에 미치는 효과는 서로 상이하고 구별”된다. 이런 초보적인 오류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줄기차게 되풀이하면서, 과학적 동료 평가와 합의를 거치지 않은 주장을 그대로 실어주는 친기업적 매체를 이용하여 마치 “과학적으로 한참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인상을 대중에게 주었다.

딱히 친기업적 의도를 매체가 가지고 있지 않을 때에도 엉터리 “균형 보도”의 논리 때문에 극소수의 의혹 제기자들의 주장이 마치 대등한 과학자들의 주장처럼 보도된다. 이는 마치 진화생물확과 창세기신화를 동등하게 대우해주는 것과 마찬가지다. 저자는 말한다. “현재 진행 중인 과학 논쟁에는 여러 편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일단 어떤 과학 쟁점이 종결되면, 하나의 ‘편’만이 있을 뿐이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지, 대륙이 움직이는지, DNA에 유전 정보가 담겨 있는지 등의 쟁점에서 ‘균형’을 맞춘다고 생각해보라.” 사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과학 지식에 관하여 보도하는 언론인의 자격을 대폭 높이고 그들의 전문적 직업 평판 시장을 제대로 마련할 필요가 있다. 매체가 위와 같은 쟁점에서 과학이 아닌 것을 걸러내지 못한다면, 즉 단순히 “육하 원칙에 따라 ~카더라를 받아적는” 받아쓰기맨들이 언론인들이 양쪽 편을 ‘모두’ 소개한다면, 말도 안되는 지식들이 통로를 얻게 되고, 인터넷에서 2차, 3차, 4차로 복사되어 그 문제를 검색하면 허위 정보만이 가득하게 되는 일도 종종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 책에 대한 언론매체의 서평 하나는 이 책의 결론이 지나치게 치우쳐져 있으며, 프레드 싱어의 책은 좋은 책이며, 4개의 쟁점은 여전히 논의가 진행중인 사안이라는 주장을 싣고 있다. 할 말이 없다.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7228130&cloc=olink|article|default

제 7장 DDT의 유해성에 관한 논쟁은 특별히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당시 과학적 합의에 따라 이미 규제가 시행된지 오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중에 역사를 다시 써서 DDT 유해성이 없다는 주장이 만연하게 된 것이다. (<회의적 환경주의자>를 쓴 롬보르가 대표격).

이 책에는 소수의 과학자들이 의혹을 제기하고, 매체가 그것을 비중있게 보호하고, 산업계가 공격에 나서고, 우파 정치인들이 이들의 입장을 과학의 입장인 것처럼 받아들이고, 국가 정책에 영향을 미치며, 대중들은 “과학적 논쟁이 진행되고 있다”는 식으로 인상을 받는 사태가 반복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저자는 말한다. 근대 과학은 “기관의 학문”이며, 엄밀한 동료 평가를 통한 협업 작업이라고. 그리고 우리는 모든 것에 대하여 모든 것을 알 수 없으며, 신뢰의 방법을 가져야 한다고.

과학자들이 과학적 방법에 의하여 가설을 세우고, 가설을 검증하고 반증하며, 일정한 합의에 도달한다면, 그 전문 분야의 과학자가 아닌 우리들은 그것을 믿는 것이 현명하다. 발생학적 오염에 의한 과학적 과정의 왜곡은 몇십년간 광범위하게 지속될 수 없으며, 오히려 발생학적 오염(그 동기와 근원이 어디인가)은 근겅벗는 의혹을 제기하는 과학자들에게 있다.

다른 한편, 민주주의에서 정책 시행을 토론할 때, 단지 정치가들의 호오 판단이나 대중의 인상에 의해 과학적 사실이라는 “전제”를 확정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지금의 대의민주주의는 그런 사태를 막을 마땅한 방법이 없다. 언론인들과 시민들이 “신뢰의 방법”과 “과학철학”에 대한 소양을 갖추는 것 이외는 말이다. 그러나 심의 민주주의 제도가 시행된다면, 이 부분에 대하여 몇가지 형식적 제한 조치를 갖춤으로써 개선을 꾀할 수 있을 것이다. 커뮤니케이션의 장이 어떻게 오염될 수 있으며, 그것이 민주주의를 어떻게 왜곡할 수 있는가에 관하여 풍부한 사례를 통해 통찰을 얻고 싶은 사람들에게, 그리고 AIDS는 없다와 같은 주장에서 판단의 마비를 느끼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끝>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시민교육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1. 홍인표
    2012.02.16 15:25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하우스 오브 넘버스'라는 다큐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재고해 볼 필요가 있겠군요.
  2. ㅇㅇ
    2017.05.04 01:21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민주주의학회 커리큘럼
    <http://www.civiledu.org/m/18> 에서는 비외른 롬보르의 <회의적 환경주의자>에 대해 일독을 권하셨는데 이에 대한 견해가 바뀌신 것인가요?
    • 2017.05.05 01:50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그 문제와 관련해서는 견해가 동일하지만(즉 주류 과학자들의 의견을 그때나 지금이나 받아들이지만), 그와 관련된 견해(즉 시민들이 여러 의견들을 마주하여 어떻게 지적 활동을 해야 하는가)는 변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시에도 그 책의 견해를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의견을 참고하기 위해 읽어볼 거리로 올린 것입니다.
      다만 당시에는 전문적인 과학적 문제를 시민이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가에 관해서 아직 지침이 저에게 정립되지 않은 시기였습니다.
      지금은 이 때와는 견해가 달라졌습니다. 문외한들은 적어도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이해의 노력을 경주하되,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전문적인 사항에 관해서는 과학 학문 공동체를 신뢰해야 한다는 지침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영역에서 그럴법한 의견'들'이 있다고 더 이상 생각하지 않습니다.


BLOG main image
대안민주주의와 사회윤리학 담론 형성을 위해 노력하는 '시민교육센터-배움의 연대망’ 홈페이지 입니다. 이곳에서는 열린 강의 형태의 시민교육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트위터 아이디: civiledulee, 이메일: civiledulee@gmail.com (이한) by 시민교육
전체 글 보기 (912)
공지사항 (19)
강의자료 (86)
학습자료 (292)
기고 (509)
  • 게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