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델은 최근에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라는 책을 내어 <정의란 무엇인가> 제5장에서 펼친 논의를 그대로 반복하고 있다. “15년간의 연구로 완성한 화제작”이라는 문구가 화려하게 책을 광고하고 있으나, 막상 읽어보면 15년간 연구한 것은 없고 오로지 사례만 긁어모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이 책에서 샌델의 논증은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조금도 발전하지 않았다. 그 논증의 내용은 “X를 돈으로 거래하는 것은 잘못이다. 왜냐하면 원래 돈으로 거래하여서는 안되는 관행과 가치이기에, 그 거래는 타락과 부패, 비하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이 논증은 결국 “돈으로 원래 거래해서는 안되는 것을 거래해서는 안된다. 거래한다면 타락, 부패, 비하다”라는 노골적인 동어반복과 마찬가지다.

 

  논증의 핵심은 "왜 돈으로 거래해서는 안되는가"라는 질문에, 결론을 끌어다 쓰지 않는 실질적인 도덕적 이유를 제시해서 진지하게 답하는 것이다. 그러나 샌델은 대부분의 경우 결론을 그대로 논거로 사용하며, 그것을 숨기기 위해 ‘부패’니 ‘비하’니 ‘타락’이니 하는 수사로 포장한다. 오죽하면 추천사를 쓴 사람이 “마이클 샌델 교수는 답은 가르쳐주지 않으면서 우리로 하여금 깊게 생각하게 만드는 각별한 재주를 갖고 있다”고 하였겠는가. 샌델 교수의 논증이 만족스러웠다면 “깊이 공감하고 납득하게 되는 훌륭한 답을 가르쳐 주고 있다”고 추천사를 써야 하지 않겠는가.

 

  샌델의 이론은 어떤 관행과 관계, 사태가 덕의 측면에서 바람직하다고 평가한 후, 그렇게 사태가 객관적으로 존재해야 한다고 규범을 도출한다. 예를 들어 성애라면 “친밀감”을 나누는 것이 본질적이다. 동성애는 “친밀감”을 포함하기 때문에 본질을 포함한다. 따라서 허용된다. 만약에 동성애가 친밀감을 포함하지 않는다면? 금지해도 될 것이다. 예를 들어 만나서 5분만에 오럴섹스를 하고 헤어지는 만남이 있다면 그것은 샌델이 정한 본질적 형태로부터 이탈한 것이므로 악덕이고 공동체에 의해 금지되어야 한다.

 

  성행위는 또한 친밀감과 사랑의 발로여야 하므로 돈으로 거래하는 대상이 아니다.(결론의 제시) 따라서 그것을 거래하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아도 비하이고 타락이다.(결론을 고정시키고 거기서 이탈하면 비하고 타락이라고 포장) 따라서 매춘은 금지되어야 한다.(동어반복)

 

  이러한 논증은 특정 사태에 도덕적 지위를 부여한다. 개인은 그 사태를 고정시키며 유지하고 증진하기 위한 도구, 미덕을 담는 그릇이 된다. 샌델은 시장에서 무언가를 돈으로 거래하면서 생길 수 있는 문제점들을 모두 이 도식에 끼워맞춘다. 그래서 한 개인의 윤리적 고려사항과, 정치공동체가 법으로 규제해야 할 사항을 전혀 구별하지 않는다.

 

  샌델이 비판하고 있는 새로운 관행의 목록에는 “상품권”으로 선물을 주는 행위도 포함되어 있다. “선물에 대하여 감사의 마음이 흐려지고 선물이 나타내는 가치는 사라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물론 상품권을 주는 것은 포장된 물건을 주는 것보다는 돈을 주는 것에 더 가까운 행위다. 그리고 우리는 친구에게 진정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표시하려면 상품권을 주는 것을 삼가고 친구가 좋아하는 말을 선물을 애써 골라야 하겠다고 마음먹을 수 있다. 그러나 상품권 주는 것을 공동체가 법으로 금지할 수는 없다. 선물은 정성을 다해 애써 골라야 한다는 본질이 무슨 법적 지위를 가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거기서 이탈했다고 해서 누군가의 권리가 침해된 것은 아니다.

 

  물론 샌델은 그와 정반대로 생각한다. 추천자의 평과는 달리, 샌델이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는 오래전부터 자신의 정치철학의 캐치프레이즈로 “국가가 바로 이런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는 것을 내세웠다. 이런 문제를 국가가 다루지 않는다면 그것은 껍데기 공동체다. 권리를 내세우며 껍데기 공동체를 주장하는 자들은 의무론적 자유주의자다. 즉 좋음에 의해서 옳음이 규정된다는 것을 모르는 무식한 자들이다. 그러므로 국가는 이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 정치의 본질이 이런 ‘좋음’을 공통적으로 규정하고 관철시키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가가 쓸 수 있는 수단은 두 가지다. 과세나 과태료로 금전적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방안과 형벌로 처벌하는 것. 그런데 덕이 걸린 문제에 금전적 인센티브를 결부시키는 것은 타락이다. 따라서 형벌로 처벌하는 방안만 남는다. 그러므로 샌델의 논의는 필연적으로 상품권을 선물로 주는 사람은 벌금을 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물론, 친구 결혼식에 가서 축의금을 내는 사람은 아예 현금을 사용했으므로 징역을 살아야 할 것이고, 추석이나 설날에 부모님에게 선물을 현금으로 주는 사람은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를 비하한 죄까지 더해 콩밥을 훨씬 길게 먹어야 할 것이다.

 

  건강을 위해 금연하거나 다이어트를 하면 현금을 주는 인센티브 제도도 비판의 화살을 피하지 못한다. 그런데 이 비판의 이유가 이상하다. 현금 인센티브가 잘못된 이유는 그것이 뇌물이고 “뇌물이 사람을 교묘하게 조종하기 때문이다. 뇌물은 수령인을 설득하는 절차를 생략하고 내재적 이유를 외재적 이유로 대체한다.” 그러나 이런 일갈은 우습다. “내 삶을 최선으로 잘 살아야겠다”는 책임을 다한다는 내재적 이유를, 형벌로 조종해서 “처벌을 피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해야지”라는 외재적인 이유로 바꾸는 것은 샌델이 늘 주창하는 해결책이 낳는 귀결이기 때문이다. 설득을 생략하고 돈으로 조종하는 것은 안되지만, 설득을 생략하고 형사처벌로 조종하는 것은 괜찮단 말인가.

 

 

  샌델은 국내의 탄소배출권 거래에 대해서는 한 발 물러선다. 원래 그는 국내건 국외건 가리지 않고 탄소배출권 거래제도가 환경오염 시키는 자들의 도덕적 책임을 없앤다고 맹비난을 퍼부었다. 그 결과 자신이 다녔던 대학교의 경제학과 교수로부터 샌델에게 “경제학을 가르친 교수가 누구인지는 공개하지 않는 것이 어떻겠냐”는 부탁을 받았다. 우리는 그 교수에게 매우 강력한 측은지심을 느끼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샌델이 사실 뭔가를 제대로 깨달은 것 같지는 않다. 그는 탄소상쇄 정책과 같이 대기오염에 영향을 덜 미치는 개인의 행위에 금전적 인센티브를 주는 것도 여전히 비난한다. 물론 자신이 지구의 환경을 위해 <정의란 무엇인가>의 판매부수에 상한선을 두고 그 상한선을 어기면 처벌받는 방안은 여전히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책의 판매가격에 환경세를 포함시키는 방안? 그것은 바로 그가 그토록 비난하는 금전적 해결책, 즉 도덕적 오명의 약화요, 타락이다.

 

 

  무언가를 돈으로 거래할 때 생기는 문제는 “어떤 사태가 이데아로 고정되어 있고, 그 이데아에서 이탈하면 안된다”는 도식으로 해결해서는 제대로 해명할 수 없다. 왜냐하면 고정시킬 이데아를 어떤 관점을 취해서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결론이 휙휙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휙휙 달라지는 예는 얼마든지 들 수 있다. 마이클 샌델 본인이 하는 일의 본질은 무엇인가? 공화국의 기본이 되는 공공 철학을 연구하고, 만들고, 널리 알리고, 세상을 더 좋게 바꾸는 일이다. 만일 돈으로 그러한 일이 거래된다면 그것은 가르침의 내용, 연구, 지혜와 지식 전파의 본질을 타락시키게 된다. 그런데 샌델은 자신의 연구 결과를 대중적으로 정리해서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글을 쓰고 그것을 돈을 받고 팔아먹는다. 타락도 이런 심각한 타락이 없다. 따라서 <정의란 무엇인가>의 판매는 당장 금지시켜야 한다.

 

  물론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돈이 그 연구결과를 좌지우지 않는 이상 그 결과를 책으로 만들어 돈으로 받고 팔아도 괜찮다고. 그게 원래 연구과 지식 전파의 본질이라고. 휙휙 달라진다. 그러나 또 달리 생각할 수도 있다. 책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팔려고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철학이 단순하게 왜곡될 위험이 있지 않느냐고 주장하며, 철학자는 오직 무료로 지식을 배포해야 한다고 그것이 본질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결국 문제는 이것이다. 어떤 활동의 본질을 이데아처럼 고정시키고, 거기서 이탈하면 타락이니, 덕을 증진하는 공화국을 그 이탈을 금지해야 한다는 논리는 지나치게 자의적인 결론으로 빠진다. 어떤 관행이나 활동을 얼마나 추상화해서 표현하느냐, 어떤 측면에서 표현하느냐, 어떤 덕과 결부시키느냐에 따라 그것을 돈으로 거래하는 일을 심각한 악덕으로 묘사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은 악덕으로 묘사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봉사”라는 일을 생각해보자. 봉사란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돕는 일이다. 이러한 일은 대가 없이 자발적으로 해야지, 돈이 인센티브가 되면 악덕이 될 것이다. 그런데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돕는 일을 목적으로 설립된 재단이 있다. 그리고 그 재단이 직원을 고용하였다. 당연히 그 직원이 하는 일은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는 일이다. 그리고 돈을 받는다. 봉사가 돈으로 오염되었다. 고정된 목적으로부터 이탈되었다. 그러므로 악덕이다. 뿐만 아니라 이 재단에 돈을 기부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직접 어려운 사람들을 돕지 않고 “돈”으로 대신 해결하려고 한다. 따라서 이 또한 악덕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시민의 덕을 증진시켜야 할 국가가 복지제도를 운영하는 것은 더 용서할 수 없다. 왜냐하면 내켜 하지 않는 사람들까지 억지로 비자발적으로 돈을 내게 한 다음, 돈을 주고 사람(공무원)을 시켜서 어려운 처지에 빠진 사람들을 돕기 때문이다.

  

  샌델은 시장 거래가 침투하는 모든 문제를 공직자가 뇌물로 부패하는 사태와 동일시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동일시는 엄청나게 과감한 혼동이다. 돈으로 무언가를 샀을 때 발생하는 것들은 “권리의 문제”, “애초에 설정된 목적을 달성하게 하지 못하는 악영향”, “효과 없음과 부작용”과 같이 서로 다른 세 가지의 문제다.

 

   이 세 가지 이유에 속하지 않는 미덕의 문제들은 대체로, 그것은 상품권을 선물로 주거나 다이어트를 하고 현금을 받는 것처럼 개인 윤리의 문제에 속한다. 그래서 형벌이나 사회제도로 강제할 수 있는 사항에 속하지 않는다. 샌델은 이 모든 경우를 그냥 “덕스러운 상태는 X다. X로부터 이탈하는 것은 타락이다. 따라서 이탈은 금지되어야 한다”의 도식 하나로 우겨넣으려고 한다. 그렇게 해야만 개인의 독립성을 부인하고 공동체적 자아를 주창하는 자신의 이론과 일관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개인의 독립성, 자기 결정의 원칙을 부인할 수 없는 한, 이것과 관련된 개인의 권리를 언급하지 아니하고는 함부로 형사처벌을 도구로 어떤 특정 상태에서 이탈해서는 안된다고 국가가 위협할 수는 없는 것이다.

 

2012. 5. 2. 이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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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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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aveman
    2012.06.15 22:09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하.. 이러한 글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깨어있는 분의 글을 읽으니 감격의

    눈물이 흐르네요... 감사합니다...
    • 이한
      2012.06.17 22:22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논증의 질을 알아보시는 분이 계시다니 저도 눈물이 흐릅니다. 감사합니다.
  2. 아르엔
    2012.06.30 11:09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이겁니다!
    제 주변에 샌델빠가 있는데, 좀 인용하겠습니다 ^^;
  3. 2012.11.12 00:53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감사합니다. 정의란 무엇인가 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잃고 뭔가 저의 생각과 잘 맞지 않아 찜찜했는데, 이 블로그에 있는 여러가지 글들이 저의 사고를 확장시켜 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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