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델은 시장 거래가 침투하는 모든 문제를 공직자가 뇌물로 부패하는 사태와 동일시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동일시는 엄청나게 과감한 혼동이다. 돈으로 무언가를 샀을 때 발생하는 것들은 “권리의 문제”, “애초에 설정된 목적을 달성하게 하지 못하는 악영향”, “효과 없음과 부작용”과 같이 서로 다른 세 가지의 문제다.

 

  첫째, 권리의 문제. 공직자가 뇌물을 먹고 어떤 사람에게만 특혜를 처리하는 식으로 공무를 처리한다고 해보자. 이것은 부패이며, 그 공직자는 타락한 인간이다. 이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러한 행위가 금지되고 처벌받아야 하는 이유는, 단지 어떤 이데아에서 이탈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렇다면 공직자에게 뇌물을 주는 행위를, 친구끼리 선물을 상품권으로 주는 행위와 특별히 달리 취급할 수 없다. 그토록 달리 취급하는 이유는 ‘시민들은 국가에 의해 공정하게 대우받을’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언급해야 제대로 설명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권리를 침해하거나, 침해시킬 위험을 발생시키는 행위이기 때문에 뇌물이 잘못된 것이다. 그냥 원래 본질적으로 부패인 것이 아니다.

 

  길동이가 전도유망한 벤쳐사업을 한다고 해보자. A와 B가 모두 동업을 하고 싶어하는데 A가 투자금을 훨씬 더 많이 제의했다. 길동이는 A와 B를 돈에 상관없이 공정하게 대우할 의무가 없다. A와 B는 돈에 상관없이 길동이로부터 벤쳐사업과 관련하여 공정하게 대우받을 권리가 없다. 그러므로 길동이가 돈 많은 A를 택한다고 해서 부패나 타락이 되는 것이 아니다. 직관적으로 보고 본질을 파악해서 공직자의 경우는 부패이고 길동이 벤쳐사업은 부패가 아니라는 식으로 판단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단지 판단의 정당화를 생략했을 뿐이다. 뭔가 모종의 신비스러운 다른 판단 방식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부를 최대로 만들자”라는, 그 자체로는 도덕적 가치가 없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공정성을 훼손하는 경우. 예를 들어 의사의 진료를 받거나 변호사의 법률 상담을 받는 대기줄에서 맨 앞으로 갈 수 있는 ‘새치기권’을 파는 경우다. 이 경우 돈을 가장 낼 능력이 많은 사람에게 우선순위를 주므로 부는 최대화되지만 돈이 적은 사람들을 그만큼 덜 평등하게 대우하는 셈이 된다. 이 사례에 속하는 경우는, 대기해서 기다리고 있는 대상이 사회적으로 보편적인 필요에 관한 것이냐에 따라 권리가 있는 경우와 없는 경우가 달라진다. 100개 한정 섹시 피규어를 판매하는 경우, 돈을 더 내면 대기줄을 뛰어넘을 수 있게 하는 것은 판매자의 개인 윤리의 문제는 될 수 있어도 권리 침해의 문제는 되지 못한다. 피규어에 대하여 사람들은 보편적인 권리를 갖지 않으며, 새치기권의 판매는 사실 피규어 값 자체를 올리는 것과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반면에 의사의 진료를 받기 위해 기다리거나, 대학의 입학대기자 명단에 사람들이 올라와 있을 경우, 새치기권의 판매는 정치가 보호해야 하는 평등을 침해한 일이 된다.

 

 

  둘째로, 애초에 그 활동이 목적하는 바를 달성하지 못하게 하는 문제. 이른바 “기능 훼손”의 문제다. 예를 들어 베스트셀러 가판대의 자리를 돈으로 살 수 있다고 해보자. 베스트셀러란 실제로 많이 팔린 책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런데 그 자리를 돈으로 산다면, 베스트셀러가 아닌 것이 그 자리에 들어간다. 따라서 그 베스트셀러 목록을 믿는 독자들에게 일종의 사기를 치는 셈이며, 베스트셀러 가판대의 신뢰성을 해치게 된다. 노벨상을 돈으로 주고 사거나, 사설운동경기에 예선경기를 거치지 않고 돈을 내서 참여하는 것, 기부금을 내고 대학에 입학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러한 기능 훼손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 결과이기 때문에, 대놓고 일어나지 않고 은폐된 형태로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이런 경우 돈 거래를 하는 당사자들 외의 많은 사람들이 영향을 받게 되며, 이익과 기대를 침해당하게 된다. 이 경우 사람들을 명시적으로든 묵시적으로든 속인 행위가 있거나, 원래 목적했던 업무를 방해하게 된다면 불법적인 행위가 될 수 있다.

 

  셋째로, 국제 탄소배출권 거래나, 혈액 판매제도처럼 실제로 효과는 없으면서 부작용만 발생시키는 경우. 이 경우는 국가가 가장 효과적인 제도를 실시하는 이유에 관한 문제다. 효과가 있으면 하고, 효과가 없고 부작용만 심하면 하지 않으면 된다.

 

  이 세 가지 이유에 속하지 않는 미덕의 문제들은 대체로, 그것은 상품권을 선물로 주거나 다이어트를 하고 현금을 받는 것처럼 개인 윤리의 문제에 속한다. 그래서 형벌이나 사회제도로 강제할 수 있는 사항에 속하지 않는다. 샌델은 이 모든 경우를 그냥 “덕스러운 상태는 X다. X로부터 이탈하는 것은 타락이다. 따라서 이탈은 금지되어야 한다”의 도식 하나로 우겨넣으려고 한다.

 

  그렇게 해야만 개인의 독립성을 부인하는 자신의 이론과 일관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개인의 독립성, 자기 결정의 원칙을 부인할 수 없는 한, 이것과 관련된 개인의 권리를 언급하지 아니하고는 함부로 형사처벌을 도구로 어떤 특정 상태에서 이탈해서는 안된다고 위협할 수는 없는 것이다.

Posted by 시민교육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BLOG main image
대안민주주의와 사회윤리학 담론 형성을 위해 노력하는 '시민교육센터-배움의 연대망’ 홈페이지 입니다. 이곳에서는 열린 강의 형태의 시민교육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트위터 아이디: civiledulee, 이메일: civiledulee@gmail.com (이한) by 시민교육
전체 글 보기 (931)
공지사항 (20)
강의자료 (88)
학습자료 (335)
기고 (481)
  • 게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