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묘지 소송>, 김경숙, 문학동네, 2012.


이 책은 조선의 묘지 소송을 다룬다. 이를 당시에는 '산송'이라고 한다. 이 책은 16-19C의  산송을 다루고 있다. 시작부터 과격하다. 분묘를 두고 할배 두 사람이 다투다가 둘 다 엉덩이를 흠씬 두들겨 맞고 유배를 가다가 한 할배가 결국 유배가는 길에 사망하고 마는 이야기. 이 책에는 이런 치열하고 목숨을 건 산송 이야기가 가득하다.


왜 이런 격렬하고 지난한 산송이 발생하게 되었는가?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은 것으로 보인다. 


(1) 성리학 이념이 주된 지도 이념인 시대에는, 조상의 묘를 잘 쓰고 섬기는 것이 중요하다. (사대부라면 누구에게나) 그것도 인생과 목숨을 내걸 정도로 중요하다. 


(2) 국토는 좁고 분묘지로 쓸 수 있는 산림은 많지 않다. 


(3) 산림은 누군가의 소유주이지만, 분묘지를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이 곧 소유자는 당연히 아니다.


(4) 분묘지로 어느 정도의 땅을 쓸 수 있느냐, 즉 분산 규모에 관하여 두 개의 양립불가능한 규범이 동시에 존재했다. 하나는 '경국대전'이고 다른 하나는 숙종 때에 법적으로 공인된 '용호수호'의 규범이다. 이 두 규범이 모두 규범이 되었고, 둘은 필연적으로 충돌하게 되므로 산송은 발생 원인이 법 자체에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이것을 해결하도록 숙종이 1709년에 해결책을 내었지만(경국대전을 기준) 용호수호 역시 규범으로 박혀 있어서 이 기준으로 끝없이 산송이 계속 제기되었다. 한마디로 관의 판결 기준과는 상관없이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자신의 입장에 따라 강하게 활용하고자 하는 상충하는 규범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경국대전'의 보수규정이란 관직의 고하에 따라 몇 보까지 쓸 수 있다고 등급별로 정해놓은 것이다. 예를 들어 7품이하의 관직자와 생원, 진사 및 유음 자제의 분묘 규모를 40보로 제한했으면 40보를 넘는 것은 광점, 즉 지나치게 혼자 많이 차지하는 것이다. 반면에 용호수호 즉 좌청룡 우백호를 수호 기준으로 삼았기 땜누에 용호 안의 지역은 40보가 넘어도 광점이 아니다. 특히 용호는 지세의 흐름에 근거한 매우 주관적인 거리 개념으로,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수호 범위가 자의적으로 천차만별로 달라졌다)


(5) 일단 투장(즉, 남의 분산에 권원 없이 장사지내는 것)하면 금장자(원래 그 분산의 소유자)도 마음대로 파내지 못한다.


(6) 산송의 판결은 투장한 사람에게 묘를 이장하라는 것이었지만, 이장하지 않고 버티면 그만이었다. 왜냐하면 본인이 스스로 이장하지 않으면 마음대로 파내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마음대로 파내면 사형)


(7) 관이 직접 굴거하는 관굴은 매우 드물게만 실시되었다.


(8) 당시의 판결 체계는 체계적인 1심-2심-3심으로 확정판결이 나는 것이 아니라, 판결이 나고 나서도 다시 같은 사건으로 더 높은 관리에게 소송을 제기할 수 있고 그렇게 해서 막 뒤집기도 하는 체계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왕에게 상소하는 것이다. 즉, 판결기관의 조직도가 제대로 정립이 안되어 있었고 기판력의 개념이 확립되어 있지 않았다.


(9) 목숨을 걸만큼 중요한 산송을 둘러싼 엄형이 잦자, 그것을 결국 완화시키기 위해 사면이 남발되었는데, 이 또한 다시 산송을 더 격화시키는 원인이 되었다.


이러한 사태를 한마디로 '총체적 난국'이라 할 수 있겠다.


여기에는 우선 수인의 딜레마가 보인다. 물리적으로 모든 사대부들의 묘지를 좋은 땅에 다 수용하기에 불가능한 국토 면적의 한계 때문에, 분묘와 관련한 성리학적 지도이념은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따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사대부들은 지도이념을 변경하기보다는 보편적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자신의 가문에는 꼭 관철되어야 한다고 고집하기만 하였다.


둘째로는 실체법적으로나 절차법적으로나, 분쟁의 장기화와 반복을 유도하는 요소가 많이 있었다는 것이다.


예전의 일이라 우습게 보이지만, 한국사회에서 이와 같은 총체적 난국 비슷한 것이 있다. 바로 출세의 문제다. 출세하지 아니하고서는 자존감을 갖고 살아가기가 힘겨운 이 사회에서 사람들의 모든 총력은 출세에 놓이게 된다. 그러나 모두가 출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이 틀 자체를 바꾸려고 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가족만은 출세해야 한다는 관철하는데 모든 사회적 개인적 노력이 집중되고 있다. 그러나 억울함을 산발적으로 제기할 뿐, 난국상태와 교착상태를 근본적으로 바꾸려는 노력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야유가 쏟아진다. (국공립대 통합네트워크 등등) 우리 모두는 산송에 갇힌 21세기 인간들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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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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