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스바움의 이 글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어서 일독을 권할만 합니다.

 

Nussbaum_PerfectionistLiberalismandPoliticalLiberalism.pdf


Nussbaum_PerfectionsitLiberalismandPoliticalLiberalism.hwp

 

(1) 라즈/벌린의 완전주의적 자유주의와, 롤즈/라모어/누스바움의 정치적 자유주의를 아주 간명하게 비교한다.

 

(2) 특히 라즈/벌린의 완전주의적 자유주의가 합당한 시민들이 공유할 수 없는 전제에 기대고 있음을 설명한다. (예를 들어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모든 종교가 똑같이 구원에 이르며, 똑같이 가치있으며, 동시에 무신론도 똑같이 참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3) 롤즈/라모어의 정치적 자유주의는 그 논거로 '판단의 부담'을 들 수도 있고 '평등한 시민에 대한 존중'을 들 수도 있는데, 이 중 '평등한 시민에 대한 존중'이 가장 유망하고 핵심적인 근거다.

 

(4) 판단의 부담을 너무 강조하게 되면 인식론적 합당성을 포괄적 교설에 요구하게 되고, 이것은 사실 동등한 존중과 위배되는 측면이 있다.

 

(5) 그러므로 포괄적 교설의 합당성이라는 것은 윤리적 의미, 즉 협동적 과업에 기꺼이 참여하고 그러한 협동의 공정한 조건에 합의하려고 하며 또한 그 부담을 공정하게 지겠다는 태도를 의미하는 것으로 한정해야 한다. 인식론적 이론적 조건은 빼자.

 

누스바움이 이 글에서 위 (4), (5)의 논점에 대해서 이야기한 것을 보고, 롤즈의 <정치적 자유주의>(한글판에서는 73-77쪽)을 다시 읽어봤는데 과연 그렇게 읽힐 여지가 있는 이야기를 롤즈가 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롤즈가 말한 합당한 포괄적 교설의 요건을, 그 포괄적 교설의 내용 자체에 대한 요건이 아니라고 읽었었습니다. 저는 그 요건들은, 포괄적 교설이 정치적 사안에 대해서 그 교설 자체로 말하는 것이 타 시민들에게 경청받기 위한 조건이라고 보았습니다. 즉, 그러한 요건을 갖추지 아니하면 사실 그 포괄적 교설이 그 특정 정치적 사안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공적 가치를 사용한 공적 진술로 번역되지도 못할 것이라는.

 

어쨌거나 결론에 있어서는 누스바움과 동일합니다.

 

**

다음으로 라즈에 관하여 논하자면, 라즈의 자율성 중심의 포괄적 자유주의가 롤즈식의 자유주의와 현실정치에서 실현되었을 때 실익이 있는 부분은 무엇일까요?

 

저는 라즈가 "좋은 옵션은 더 많이 만들어주고, 나쁜 옵션은 제거한다"는 매우 불분명하게 설명된 부분의 실천이라고 생각합니다.

 

라즈는 "똑같이 가치있지만 다원적인 것"과 "나쁜 것" 사이에 구분을 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누구나 자신이 허용하는 것은 '다원적인 가치를 지닌 것'이라고 할 것이고 자신이 싫어하는 것은 '있어봤자 자율성에 일고의 도움도 되지 않는 나쁜 옵션'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수가 나름 좋은 것이라고 인정하는 것과 나쁜 것이라고 비난하는 것을 활용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라즈는 매우 뻔한 사례들, 즉 알콜중독으로 인생을 낭비한 사례(이것은 건강이라는 객관적인 선을 망쳐버린 사례입니다), 또는 쾌감을 느끼는 살인자의 사례(이것은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했으므로 좋고 나쁨을 따질 것 없이 그자체가 그른 것이어서 금지되어야 합니다)만 들 뿐이지, 훨씬 더 첨예한 쟁점이 되고 있는 사례들을 납득할 만한 기준을 들어 제시한 적이 없습니다.

 

만약 라즈가 롤즈/드워킨/라모어/누스바움 등 중립적 자유주의자와 실익이 나는 구체적인 예들을 제시하기 시작한다면, 그는 곧 더이상 자유주의자이기를 멈추고 일종의 공동체의 덕 운운하는 저 공동체주의자들과 한 패거리임이 드러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라즈의 이론은 자율성 그 자체가 목적이 된다는 납득할 수 없는 형이상학적인 전제를 담고 있는 데다가 (자율성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반성을 통해 좋은 것을 추구할 수 있기 때문에 좋은 것입니다), 모든 좋은 삶의 스타일이 그 가치가 똑같이 좋다는 동점이론(무신론:유신론 = 1:1로 동점으로 가치있다)를 우겨넣은 것이기 때문에 설득력이 없다는 점을 누스바움의 글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이론의 진정한 아킬레스건은 그것이 "좋은 옵션"과 "나쁜 옵션"을 구별할 수 있는, 자유주의적인 기준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고 봅니다.

 

 

Posted by 시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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