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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비례성 원칙의 최후 단계, 즉 가장 좁은 의미에서의 '형량'에서 우리가 무엇에 기대야 할지, 그 기초 구조를 밝히고 있는 논문입니다.

 

스캔론은, '비싼 취향의 문제'(expensive taste)를 다루면서, 긴절성에 대한 객관적 규준 이론이 더 설득력이 있을 것이라고 시사하고 있습니다.

 

비싼 취향의 문제, 또는 비싼 기호의 문제는 무엇인가?

예를 들어 어떤 소녀가 부잣집에 태어나서 물떼새 알에 대한 미감을 고도로 발전시켜왔습니다. 그것은 그녀가 성인이었을 때 했던 선택이 아니라, 부유한 그녀의 아버지가 어릴때부터 그런 환경을 제공해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녀는 물떼새알의 사소한 맛의 차이, 조리법의 차이도 간파하며, 항상 밥을 먹고 나서는 물때새알을 음미했습니다. 그런데 아부지가 쫄딱 망해서 이제는 물떼새 알을 더이상 맛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소녀는 비참한 심경을 경험합니다. 평범한 햄버거를 먹는 앞으로의 삶은 비극으로 느껴질 뿐입니다. 그녀의 물떼새알에 대한 미식가적 취향은 너무도 정교하고 그녀의 정체성과 결부되어 있어, 그녀가 이를 먹지 못하는 것은 마치 피아니스트 보고 어느날 평생 피아노를 치지 못하게 되었다고 통고받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공동체는 이 소녀에게, 다른 모든 조건이 동일한 다른 소녀보다 더 많은 자원의 몫을 할당해야 할까요?

 

이에 대한 대답은 통상 아니오(No)이지만, 혹자(G.A. Cohen)은 '예'라고 답하는 것이 맞다고 합니다. 그래서 스캔론은 아니오라고 답하게 되는 그 이유를 좀 더 면밀히 살펴보자고 합니다. (드워킨의 <자유주의적 평등>을 보아도 비싼 기호의 문제는 직관적 반론의 근거로서만 들먹여질 뿐, 애초에 그 직관이 왜 타당한지의 논거는 정교하게 개진되고 있지 않습니다)

 

이에 대하여 스캔론은 '자발성 논변', 즉, 취향이란 자발적으로 선택한 것이라는 반론의 실제 의미를 탐색합니다. 그래서 그 반론의 핵심이 실제로, 그 취향을 '선택해서 가졌다'는 점에 그 취향의 권리주장력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간파해냅니다. 실제로는 자발성 논변은, 그와 같은 취향에서 발생하는 필요가, 다른 사람의 평등한 몫을 변경시키게 하는 호소력을 지니는 객관적인 중심성, 긴절성을 갖는 범주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는 "긴절성에 대한 객관적 이론"을 전제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물론 긴절성에 대한 객관적 이론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동등한 조건에서 할당받은 자원"을 가지고 무엇을 하느냐를 결정할 자유를 침해할 근거를 제시해주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같은 소득으로 A는 종교의례를 수행하고 B는 식도락을 즐긴다고 해서 B의 자원을 A에게 투여하여야 하는 결론은 따라나오지 않습니다.)

 

사실 긴절성에 대한 객관적 이론은, 사람들의 삶의 경계를 함부로 이리저리 바꾸는 이론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헌법의 비례성 논증에서 핵심이 되는 다음 두 가지 문제를 다루고 있다고 봅니다.

 i) 일응(prima facie) 동등한 조건에서 추가적인 자원 할당에 대한 권리주장(claims)이 어떤 경우에 정당화되는가? 그리고 추가적인 자원 할당은 어디까지 요구되는가? (예를 들어 장애인은 장애를 갖지 않은 사람은 받지 않을, 어떤 추가적인 공동체의 지원을 필요로 하게 되는가?)

 ii) 만일 공정한 계약론적 관점을 취하고 나서, 모든 정합성 논변이 다 소진되고 난 뒤에도, 여전히 두 개의 충돌하는 이득을 결정해야 한다면-대표적인 경우가 안전의 정도와 자유의 정도의 상호맞교환 관계(trade-off)-, 이 균형지점을 잡는 기초는 무엇인가?

 

저는 긴절성 비교가 비례성 심사의 지나치게 앞단계에 위치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다른 정합성 논증이 소진되고 난 뒤에 그것이 등장할 경우에 호소되어야 하는 규준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 단계에서도 판단자의 자의가 아니라, 계약론적 틀 내에서 합당하게 결정할 방법의 단초가 있음을 스캔론은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직 이 논문의 함의를 다 파악하지 못하였으므로, 구체적인 사례를 뽑아서 두고두고 반복해서 읽으면서, 이것을 생각해볼 만합니다.

 

저는 알렉시가 <기본권 이론>에서 든 하나의 사례를 함께 고려해서 스캔론의 이야기를 읽으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그 사례는 바로,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된 범죄를 저지른 죄수들이 이제 징역형을 다 살고 출소하게 된 바로 그 시점에, 방송에서 반복하여 그들의 범죄를 거론하며 다시 그 범죄를 재조명한 것입니다. 이 경우 시민들의 어떤 범죄에 대한 알게 되어 생기는 이익과 징역형을 산 범죄자들의 재사회화에 대한 이익이 충돌하게 됩니다. 이 사례에서 바로 그 이익 간 형량, 긴절성에 대한 비교에 들어가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저는 공리주의 프레임을 먼저 벗어던진 후, 앞선 단계의 모든 분석을 모두 진행한 후에야, 즉 앞선 정합성 논변이 모두 소진된 후에야, 이익의 긴절성에 대한 비교가 등장한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다수 시민의 알 권리 vs 소수 범죄자의 재사회화 이익 이런 식의 대칭 구도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일종의 무지의 장막 속에서 표현된 공정한 관점 내의 계약주체가 이익을 숙고하는 형태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쉽사리 어떤 이익(A) 다른 이익(B)보다 우월하다는 자신의 판단이 곧 사회의 상식(common sense), 합의를 얻고 있다고 확인 한 후, 그 다음 곧바로 A이익이 B보다 우선하게 만드는 제도적 강제를 정당화하는, 정말 초광속 성급 경로의 논변을 택합니다. 이것은 사실 논변이라 보기 어려우며, 대표성 추론과 같은 어림짐작의 자유연상적 사고(휴리스틱)을 논변으로 포장한 것에 불과합니다.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의 많은 규범적인 일들이 그렇게 결정되고 있습니다.

 

이에 관한 학문적 분석은 아마도 발전하겠지만, 과연 그것이 이 사회의 정치 문화를 바꿀지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Posted by 시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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