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즈의 차등 원칙은, 평등한 상태에서 이탈하여 그것이 모든 이들의 이익이 되는 한도까지 불평등을 허용한다.

 

이것은 두 부분으로 구성요건을 나눌 수 있다.

(1) 나눌 몫이 예전상태보다 더 커진다.

(2) 그리고 그 몫을 모두에게 (적절한 방식으로) 나누기 때문에, 모든 이들이 그 이전보다 더 이득을 보게 된다.

 

그리고 (2)를 검사하는 방법이 바로 최소수혜자의 지위의 변동(A상태보다 B상태에서 더 나아졌는가)를 보는 것이다.

 

물론 이 구성요건은 시간적인 선후로 나눈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몫을 나누는 방식이 변경됨에 따라 나눌 몫이 더 커지는 효과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차등 원칙을 어떤 분배적 선택을 하건 상관없이 고정된 하늘에서 떨어진 만나를 나누는 모종의 게임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차등 원칙은 그 자체가 협동적 과업의 과실이 분배 방식에 의해 변동됨을 예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모든 불평등은 (1), (2)의 요건과 결부되어야만 증가될 수 있다.

 

(2)와의 결부는 많은 문헌들의 탐구대상이 되어왔으므로, 이 글에서는 (1)의 부분을 현실적으로 심사하는 방법을 다루도록 하겠다.

 

심사 기준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생산성이 증가하였는가?"이다.

 

생산성이란 무엇인가? 임의의 투입된 자원에 비해 산출되는 과실이 얼마나 많은가에 관한 척도다. 예를 들어 둘 다 동일한 품질의 연필을 생산하는데, 동일한 자본, 노동, 토지를 투입했을 때 A라는 같은 시간에 100개의 연필을, B라는 회사는 80개의 연필을 생산한다면 A가 생산성이 높다.

 

그런데 차등 원칙 충족 심사를 위하여는 생산성 개념이 정교화될 필요가 있다. 즉, 현재 경제통계상으로는 생산성 증가로 잡히는 경우라도 실제로는 생산성 증가가 아닌 경우를 가려내야 한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산출물을 증가시키기 위해 투입된 비용을 모든 이들의 관점에서 다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투명자원처럼 다루면 안된다는 것이다!

 

가장 단순한 모델로 투입되는 자본과 토지의 비용은 완전히 고정되어 있고, 사장은 지휘만 하고 사원1명이 노동하는 회사를 생각해보자.

 

(1) 임금만 깎는 경우- 사원의 임금을 반으로 깎은 다음 종전과 동일하게 노동하게 하면, 노동비용 대비 산출효율성이 2배가 된다. 그러나 전체로 보면 투입된 노동은 동일하며 산출된 생산물도 동일하다. 그러므로 생산성 향상은 없다. 사장 입장에서야 마술과 같은 일이 생긴 것처럼 느낄 수 있겠지만 그건 자기 착각이다.

 

(2) 노동만 두 배로 늘리는 경우 - 만일 이 때 산출물이 더 늘어난다 할지라도 생산성 증가는 없다. 왜냐하면 생산성은 오로지 노동 증가에 기인한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자본이나 토지가 추가로 투입되지 않고, 노동만이 두배로 투입되고 산출물이 2배가 되었는데도, 증가된 산출물이 모두 노동자의 몫이 되지 않는다면 '착취'가 발생한 것이다.

 

(3) 포괄임금제를 실시해서 노동을 두 배로 올리는 경우 - 이 때도 (2)의 경우와 다른 점은 변하지 않고, 오로지 노동자에게 가는 몫이 반으로 줄었다는 것만이 문제된다. 이 때에는 오히려 생산성 하락을 겪을 여지가 많다. 왜냐하면 추가로 돈도 안받고 사장이 마음대로 일 시키면 노동의욕이 떨어져서 같은 시간 동안 일을 같은 효율로 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맨날 야근하는 직장은 시간당 생산성이 낮다.)

 

(4) 노동시간을 그대로 두고 노동강도를 2배 올리는 경우 - 이 경우도 생산성 증가는 없다. 왜냐하면 노동측의 건강의 악화, 스트레스의 증가, 퇴근 후 필요 휴시식시간의 증가 덕분에 산출이 증가한 것이기 때문이다! 자본의 입장에서만 보면 아무런 새로운 비용 투입이 없으므로 마치 생산성 증가같이 착각되나, 그건 사실 (3)의 경우와 동일하다. (3)의 경우에도 일하는 시간이 늘어난 것은 노동자의 사정이고, 사장은 아무 비용을 추가로 부담하지 않기 때문이다.

 

(5) 사원을 반으로 줄이면서 남은 사원들에게 2배의 일을 시키는 경우 - 역시 생산성 증가가 없다. 이 경우에서 사람들은 혼란을 겪는다. 그러나 이 경우 남은 사원들은 (4)의 비용을 부담한다. 또한 해고된 사원들이 신속하게 재취업하지 못할 경우 그 사람들의 생계 고통의 형태로 전가되거나, 실업급여 형태로 사회 전체에 전가된다. 또한 그들이 숙련된 기술을 아예 쓰지 못하고 단순한 형태의 노동을 다른 곳에서 해야 되어 생기는 비용도 있다. 사회 전체로 보면 생산성 하락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생산성 증가는 어떤 조건을 만족시켜야 하는가?

(1) 어떤 기간 전체를 평균했을 때, 동일한 자본, 토지 및 동일한 노동시간에 대하여

(2) 스트레스 증가나 건강의 악화, 필요 휴식시간의 유의미한 증가 없이

(3) 다른 생산방식을 도입함으로써

(4) 산출물이 증가해야 한다.

 

그와 같은 경우의 예로

(1) 새로운 더 나은 기술을 쓰는 장비를 도입하여 산출물당 필요 노동력이나 노동시간이 감소하였을 경우

(2) 생산설비의 위치를 바꾸어 생산연계에 필요한 이동시간을 줄이는 경우

(3) 보관이 꼭 필요한 것을 제외한 서류들을 폐기함으로써 보관비용을 줄이는 경우

(4) 노동자들의 지식이 늘어나 시행착오가 줄어드는 경우

(5) 이전에 사용하지 않던 정보와 지식을 활용하여 더 빨리 해답에 다가가는 경우

(6) 분업과 전문화를 추가로 하여 같은 노력과 주의를 기울이고도 같은 시간에 더 많은 생산을 하는 경우

등을 들 수 있다.

 

위와 같은 생산성 증가 조건을 만족시키지 않는 경우에는 항상 은폐된 비용 증가가 있게 되며, 그것은 생산성 증가가 아니다. 회계상으로 어떻게 처리되건 간에.

 

따라서 만일 노동과 관련된 제도를 바꿀 때 그것이 생산성 증가에 이바지한다고 하기 위해서는 위 조건을 만족시켜야 하지, 자본의 입장에서 본 이윤 증가나 비용 감소를 기준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하나의 큰 착각이다.

 

오히려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갈파하였듯이, 한 나라의 경제활동의 궁극적 목표, 그래서 경제운영이 제대로 되고 있는가를 가늠할 수 있는가는 결국 그 나라의 국민들이 더 풍요롭게 지낼 수 있는가이다. 따라서 생산성이라 할 때, 노동생산성을 특히 주의깊게 보는 것은 합리적이다. 노동생산성은 투입(분자)을 노동으로 산출(분모)을 부가가치로 둔 개념이다. 즉 교역 없는 상호 고립국으로 가정된 A국가와 B국가가 동일한 산출물을 생산한다고 하여도(이를테면 빵10만개), 이를 생산키 위하여 A국가 국민들은 하루 5시간을 일하고 B국가 국민들은 하루 10시간을 일해야 한다면, A국가 국민들이 더 풍요롭다. 그들은 B국가 국민들이 누리지 못하는 여가라는 선을 누리기 때문이다. 아마 A국가는 저축을 많이 하여 노동을 절약케 해주는 자본설비투자를 많이 하거나, 교육을 많이 하여 기술혁신으로 더 나은 생산방법을 취할 수 있게 하였는지 모른다.

 

임금을 법으로 깎아 보다 더 많은 시간 일하게 하여 산출물을 늘이는 것은 노동생산성의 면에서 명백히 부정적이다. 노동자는 휴식이 필요하며 한계생산체감을 겪는다. 그 비용의 증가는 시간단위당 산출물양의 하락으로 나타나거나(야근과 주말근로로 피곤하여) 그것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노동자의 건강 악화 등의 비용 증가로 나타난다.

 

근로기준법상 휴일은 주휴일 하나이다. 유급휴일은 모든 사용자가 유급으로 일주일에 하루는 노동자에게 쉬게 해주도록 한 휴일이다. 이 휴일은 통상 노동일의 가치보다 여가로서 그 가치가 훨씬 크다. 휴일가산수당은 그러한 유급휴일에 일하는 경우 그 시간 값을 제대로 쳐주도록 정해두고 있는 것이다. 만약 휴일가산수당을 없앤다면, 이것은 휴일의 노동을 평일의 노동과 같은 비용으로 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가산수당의 제거로 생산성 증가는 전혀 없다. 오히려 여가와 노동 간의 자원배분의 왜곡이 일어나며, 그에 따라 생산성의 하락이 일어난다.

 

지난 정부의 경제개혁의 주된 윤곽 중 하나는 이런 회계상의 눈속임을 통해서 경제의 체질을 개선시킨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이런 식의 주장에 따르면 모든 국민을 기업의 노예로 만들어서 0의 임금을 주면서 일을 시킨다면 경제의 체질이 엄청나게 개선되는 결과가 될 것이다.

 

생산성 증가는 저축-자본투자 증가, 교육, 기술혁신 등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지 노동압착이나 노동강제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이와 같은 "생산성"의 개념을 정교화하고 엄격히 보는 것은, 분배 제도의 변화에서 합의를 이끌어내는 기초 작업이 된다.

 

그리고 이와 같은 '생산성'은 결국 생산에 활용되는 지식의 '변화'와 주되게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생산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충분한 휴식과 통찰, 공부의 시간을 주어 그러한 능력을 생산과정의 변화로 연결시킬 때 생산성 증가가 일어날 개연성이 커지게 되는 것이지, 분명히 존재하는 비용을 기업 또는 국민경제의 회계지표에서 보이지 않게 한다고 해서 커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가 될 뿐이다. 

 

2012. 1. 3. 이한.

Posted by 시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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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1.06 11:41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비밀댓글입니다
    • 2013.01.06 16:47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다만, 드신 두 번째 예에 관하여는, 정의론의 입장에서는 "소비자의 쇼핑경험이 질적 하락했으니 근거로 생산성 향상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는 없을 듯합니다. 왜냐하면 소비자는 선택을 할 수 있고, 선택의 범위를 늘리는 것은 보통 소비자 잉여의 증가와 연동되기 때문입니다. 소비자가 추가의 비용을 투입하여 쇼핑경험의 질적 상승을 꾀하고자 한다면 그러한 소매점이 잘될 것입니다. 따라서 어떤 공정한 경쟁을 해치는 '독점'이나 '과점' 조건이 존재하지 않는 이상, 이 경우는 꼭 맞는 예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식당 A, B가 있는 A에서는 종업원이 직접 고기를 구워주고 B에서는 본인이 구워야 한다고 할 때, A보다 값이 싼 B를 선택한다고 해서 소비자잉여가 하락했다고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위에서 쓴 것은 노동-자본의 관계에서 주로 이야기하였는데, 소비자로 확장된 모델로 논의하는 것은 다음 글에서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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