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에서 "투표장에 가지 않는 방식으로 투표를 하지 아니할 기본적 자유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설명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근거로, 원기옥을 모아야 행성이 유지되는 가상의 외계인 행성에서 원기옥 모으는 날 소풍을 갈 기본적 자유는 존재하지 않음을 지적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와 같은 소풍의 향유는 오로지 오로지 같은 공동체의 다른 구성원들은 원기옥을 모으고 있어야 성립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그날 소풍을 가는 자는 다른 사람들은 의무를 다하고 있다는 사태에 편승하여 무임승차하는 것이며 기본적 자유를 정당하게 향유하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어떤 영역의 실존적 가능태가 기본적 자유에 속하느냐 아니냐를 알아보는 방법은 "모두가 보편적으로 그러한 자유를 누린다고 하여도 자유의 조건이 계속 유지될 수 있는가?"하는 심사라고 하였습니다. (보편적 향유 가능성의 심사 기준, 줄여서 UT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설명을 하자, 몇몇 분이 "그리 되면, 아이를 낳지 않을 자유도 인정되지 않고, 서울에서 살 자유도 인정되지 아니하며, 공무원을 지망할 자유도 인정되지 않는다"라는 의문을 제기하였습니다.

 

그 분들의 의문은 다음과 같은 사고 전개를 따른 것으로 보입니다.

(1) 결혼을 안하고 아이를 낳지 않을 자유가 있는가?

(2) 보편적 향유 가능성의 심사 기준에 따라 생각해보자. 즉, UT로 검사해보자.

(3) 모두가 결혼을 하지 않아 애를 낳지 않는다면, 사회는 유지될 수 없다.

(4) 따라서 UT를 통과하지 못한다.

(5) 따라서는 아이를 낳지 않을 자유는 기본적 자유가 아니다.

 

이와 유사하게

(1) 서울에서 살 자유가 있는가?

(2) UT로 검토하자

(3) 모두가 서울에서 산다면 서울이 미어터지고 국가는 공동화된다.

(4) 따라서 UT를 통과하지 못한다.

(5) 따라서 서울에 살 자유는 기본적 자유가 아니다.

 

또한

(1) 공무원을 지망할 자유가 있는가?

(2) UT로 검토하자

(3) 모두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공무원이 되고자 한다면, 아무도 생산활동에 종사하지 않고 실업자만 늘어나므로 안된다.

(4) 따라서 UT를 통과하지 못한다.

(5) 따라서 공무원을 짐아할 자유는 기본적 자유가 아니다.

 

이것은 이상합니다.

이상하다고 해서 다음 두 결론으로 튀면 안됩니다.

 

(1) "보편적 향유 가능성 심사가 틀린 심사다"라는 결론으로 비약.

(2) "어차피 기본적 자유라는 건 공익으로 제한될 수 있으니, 아이가 적어진다 싶으면 여성에게 강제 임신을 시키고, 강제 이주 시키고, 강제로 공무원 시험 못 치게 하고 다 이건 국가의 권한 범위 내에 있는 것이다. 그런 상황이 안와서 그렇지 그런게 필요한 상황이 오면 그렇게 하면 된다."는 결론으로 비약.

 

이 두 비약 모두 큰 위험을 갖고 있습니다. 즉, 정당하게 제약될 수 있는 행동의 가능 범위와, 다른 권리와의 정합성의 논거가 아니면 제약될 수 없는 특별한 행동 범위를 전혀 구분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1), (2)의 가능성 이외의 가능성을 갖고 있습니다. 바로, 위와 같은 세 사례에서 의문을 제기한 분들이 보편적 향유 가능성 심사를 잘못 적용하였다는 것입니다.

 

위 논리 전개의 잘못된 점은 각 논증의 제1단계에 숨겨져 있습니다. 즉, 살펴보는 자유의 추상수준을 제대로 통제하지 않은 것입니다.

 

00의 자유라는 것은 하나의 범주이며, 그 범주의 추상수준은 그 용어를 어떤 맥락에서 사용하고 있는가 하는 목적에 맞추어 통제되어야 합니다. (추상수준 통제 필요성 논제)

 

만약에 우리가 추상수준을 전혀 통제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원리상 정합적인 판단도, 보편적인 관점의 도입도 불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X라는 종교를 비판하는 문건을 어떤 사람이 배포합니다. 그 사람의 배포로 인해 X종교를 믿는 일부 사람들이 화가 납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조잡하게 만든 전단지를 막 배포하려고 할 때 손을 막 잡아서 못움직이게 합니다. 그 사람이 몰래 뿌리려고 하니까 그 사람 집 앞에 가서 기다려서 그 사람 나올 때 미행합니다. 전단지 뿌리려고 하면 손 잡아서 막습니다.

 

이 때 법적 질문은 "X는 그 종교를 비판하는 그 문건을 몇월몇일몇시에 뿌릴 자유가 있는가?" vs "종교인들은 화나는 문건의 배포를 몇월몇일몇시에 저지할 자유가 있는가?"로 잡아서는 사고를 전개할 수 없습니다. 그처럼 매우 세밀하게 구체화된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표현의 자유와 행동의 자유에 관한 기존의 법리를 전혀 적용할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그 사람이 종교를 비판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에도, 종교의 자유에 의해서도 허용되는 것이다."라고 말하니까 다른 사람이 "표현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에는 구체적으로 그런 내용이 담긴 바로 그 문건을 그 구체적인 일시에 배포할 자유를 명시하고 있지 않다"고 고집을 피우며 버틴다면 올바르게 논증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추상수준은 추상적인 기본권에 포섭하는 맥락에서 통제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추상수준은 어떻게 통제되어야 하는가? 결과적으로 합헌 판단을 위한 비례원칙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자유 범주의 추상수준을 다음과 같은 원리에 따라 통제해야 합니다. 

 

(1) 그 범주는 시민의 공적 관점에서 공유되지 않은 특수한 포괄적인 종교, 형이상학, 가치관 중 하나만을 담도록 정해져서는 안된다. (예를 들어 종교의 자유이지, 기독교의 자유 또는 무신론의 자유가 아니다!)

  근거 : 모든 시민들은 자유로운 존재로서 동등하며, 특정한 관점을 취하지 아니하였다는 이유로 차별적인 자유만을 할당받아서는 아니기 때문이다. (공적 이성의 논거)

 

(2) 그 활동과 관련하여 자기조정적 기제가 작동한다면, 또는 물리적 생물학적으로 충분히 안정적인 양립가능성이 있다면 그와 같은 자기조정성과 안정적 양립가능성을 담을 수 있는 수준으로 통제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출산에 관한 자유, 결혼에 관한 자유, 성적 지향을 결정할 자유, 거주이전의 자유이지, 출산하지 아니할 자유, 결혼하지 아니할 자유, 서울에 살 자유가 아니다)

  근거: 보편적 향유가능성은, 현실의 자기조정적 기제가 작동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으므로, 자기조정적 기제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매우 특수한 가정을 도입하여 그 심사의 여건을 왜곡시키면 안된다.

 

 위 (2)의 원칙을 좀 더 상세히 설명해보겠습니다.

 서울에 살 자유를 가지고 바로 심사에 들어가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서울'이라는 것은 거주이전의 자유를 행사하여 특정한 구체적인 살 장소를 정했을 때 비로소 등장하는 구체적 개념이며, 따라서 그 구체적 행사가 놓여진 조건을 보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구체적 자유 행사가 놓여진 조건이란 무엇인가? 그건 거주 이전에 따른 장단점이 있어서 그 장단점때문에 사람들은 행위를 조정하게끔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서울에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리면 꽤액 해서 숨막혀서 죽는 것이 아니라, 거주비용이 올라가고, 공기가 탁해지고 하는 단점이 점진적으로 작용합니다. 그래서 그 단점이 장점을 능가한다고 할 때 개별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은 각자 자신에게 합리적인 결정을 합니다.

 

 "간호사가 될 자유"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가 간호사가 되면, 농부도 없고 트럭 운전사도 없고 다 없어서 간호사들끼리 모여 쫄쫄 굶어죽어야 하는가? 이런 식의 생각은 어이없는 것입니다. 합헌성 심사의 추상수준을 자기조정적 기제를 포함시키지 못하는 수준에서 함부로 놔뒀기 때문입니다. 간호사가 된 사람이 많다면 간호사 노동시장의 공급이 많아지므로 가격이 낮아집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신규 진입을 하지 않게 되고 다른 직업을 알아보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모두가 간호사가 되면 어쩌지?'라는 걱정을 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자기조정적 기제를 작동시키지 못하게 하는 어떤 힘이 있어 그 힘을 제거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그 힘을 이유로 추상수준을 자의적으로 낮춰버릴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국가가 할 일은 그 힘을 제거하는 것이 우선순위입니다.

 

예를 들어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으면 장점도 있고(배우자와 늘 함께 하고 아이가 커서 보는게 기쁘고 사회적 압력을 덜 받는다), 단점도 있습니다(독신자로 누리는 사생활이 사라진다). 그 장점과 단점은 결혼제도를 둘러싼 여건의 변화에 따라 이쪽으로 갔다가 저쪽으로 갔다가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여건이 한 쪽 방향으로만 작용하도록 하는 어떤 부당한 힘이 있다면 국가는 그 부당한 힘을 제거하는 데 공권력을 사용해야지, 그 부당한 힘은 그대로 두고(예를 들어 출산을 하게 되면 여성이 사실상 직업경력을 포기해야 하는 민간 노동시장의 위법 실태) "결혼하지 아니할 자유는 없다"라느니 "출산하지 아니할 자유는 없다"라느니 하면서 강제로 납치해서 성교를 하게 만든다거나 아니면 미자녀 부부나 미혼자에게 세금을 엄청 올린다느니 하는 것은 모두 자유권을 위배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부당한 힘이 없다면, 출산율이 줄어드는 것은 모두 개인들이 온당한 자유를 행사한 결과로 초래된 것이며, 그 결과를 직접 교정할 권한은 국가에 주어져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개개인을 벗어난 '사회'라는 것이 개인의 권리를 압도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만일 인류의 모든 사람들이 불임이 되고 한 명의 남성과 한 명의 여성만이 여전히 가임이라는 것이 확인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한 명의 남성과 여성에게 강제 성교와 강제 임신을 지시할 권력은 다른 어느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인류의 지속성이 어떠한 내재적 가치를 갖는가라는 특수한 가치관에 관계된 것이지 누군가의 권리와 관계된 것이 아닙니다.

 

동성애의 자유는 어떤가요? "모두가 동성애를 하면 세상이 어찌 되겠나?" 그러나 그러한 질문은 기이한 것입니다. 동성애의 경우에는 자기조정적 기제는 발견된 바 없으나, 안정적 양립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인류의 역사 이전 시대부터 계속해서 존재해 온 공동체 구성원들의 일부의 성적 지향이며, 그러한 성적 지향을 포괄하고도 사회는 계속 안정적으로 존재해왔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위 출산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사회 자체가 지속할 권리 같은 것은 없기 때문에, 이 경우 자유를 제한할 근거 자체가 성립하지 아니합니다.

 

따라서 이제 "특전사를 하지 아니할 자유"가 없다고 해서는 안됩니다. 특전사는 국방에서 꼭 필요합니다. 그렇다고 아무나 뽑아서 특전사를 강제로 십몇년 시킬 수는 없습니다. 특전사를 하는 것이 영광되고 훌륭한 일이며 보람있고 적성에 맞는다고 생각하는 안정적인 그룹이 있고, 또한 지원자가 모자라면 복무 조건을 차츰상향시킴으로써 지원자를 채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안정적 양립가능성과 자기조정적 기제가 모두 작용하는 경우)

 

이제 처음의 의문의 출발점으로 돌아와서 보면, 투표의 경우에는 자기조정적 기제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매표가 허용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매표는 '민주주의가 공정하게 작동하기 위한 목적 자체'에 위반됩니다. 또한 투표율 하락의 추세와 경향, 그리고 투표율의 우연적 여건에 영향받기 쉬운 성격에 비추어 보고, 이론적으로 공공선택이론상 집합행동의 딜레마를 생각해보면 '안정적 양립가능성'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각 시민들은 스스로 숙고하여 자신의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투표에 관한 자유'는 '투표하지 아니할 자유'에 비해 특별히 자기조정적 기제를 더 담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추상수준을 '투표하지 아니할 자유'로 잡아도 심사 적용을 그르친 것이 아닙니다. (기권할 자유는 투표장에 가서 기권을 표기하면 되기 때문에 이러한 자유는 여전히 침해되지 않습니다)

 

의무투표제를 도입하는 것이 '현명한가?', '바람직한가?', '특히 형사처벌의 위협을 동원하는 것이 정당한가?'라는 질문은 별도의 질문입니다. 어떤 것이 기본적 자유가 아니라고 해서, 그 실존적 가능태의 영역을 무조건 축소시키거나 제거시키는 것이 바람직하거나 정당성이 자동적으로 있는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입니다. 특히 기본적 자유에 속하지 아니하는 자유도, 일반적 행동자유권의 잠정적 보호영역에는 속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것은 기본적 자유에 속하냐의 질문은 아닌 것입니다.

 

이 글은 위와 같은 명백한 경우에 관하여만 언급하였으나, 여기서 개진된 '추상수준 통제 이론'은 훨씬 더 까다롭고 미묘한 자유 제한의 합헌성 문제에 대해서도 일관되게 적용될 수 있습니다. 사실 그것은 모든 비례성 심사의 기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법현실을 보면 그런 추상수준 통제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원리의 적용에서 중구난방이 되는 것입니다. 그에 관해서는 다음 기회에 논하도록 하겠습니다.

Posted by 시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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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1.15 17:08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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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 정말 재밌게 읽었습니다. 아이구야 그랬었구나!
    • 이한
      2013.01.15 19:53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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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증의 진가는 그 논증을 알아보는 사람에게 드러나지요. 감사합니다!^^
  2. 눈너머
    2013.01.18 14:11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사람들 집에 가면 보이는
    고명하시다는 뉴스 인터뷰를 보다 보면 늘상 보이는
    그 허접한 <정의란 무엇인가>

    참 명쾌하게 논박하고 넘어서는 데
    왜 틀렸다는 사람들 사이에 유행이 안 되는지
    인테리어로도 같이 놓으면 참 좋을 텐데(정말 있어 보일텐데...)

    왜 사람들이 <틀렸다>를
    <정의란 무엇인가>에 의존하고 기생하는 책으로 오해하는지

    뭐가 되었든 내파시키는 글의 매력을 주셔서 또 한번 배우고 갑니다.
    • 이한
      2013.01.18 15:21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인테리어로 같이 놓으면 좋을텐데라는 의견은 눈너머님의 참으로 뛰어난 미적 감각을 보여주는 듯 합니다. 책과 글을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유행이 안되는 이유는 너무 늦어서 그런 듯 합니다. 규범판단을 근거지우는 일 자체에 대한 관심이 있는 사람이 워낙 적은데, 샌델 책이 유행하는 것을 기화로 그 관심을 불러일으켰어야 하는데, 너무 책을 늦게 내었죠. 이것을 '만시지탄'이라고합니다. 그래서 샌델 책은 유행만으로 지나가버렸고, 규범 판단의 근거지움에 대한 진정한 관심은 아직 우리 사회에서 생겨나지 않은 것 같습니다.
  3. 2013.01.20 21:27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내가 블로그로 책 홍보 열심히 하고 있다네^^ 만나는 사람들한테도 여럿 홍보했지~
    난 저 투표 않을 자유와 관련한 논쟁을 최근에 몇 사람하고 하기도 했는데, 내 블로그에 어떤 분이 올린 마지막 질문이 '출산 않을 자유'에 대한 지적이었어. 나름대로 답을 했다만, 설득력이 있었는지 모르겠군. 언제 한번 들러서 읽어봐주시길. 건승하시길!
    • 이한
      2013.01.21 11:45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네.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동의합니다.^^
  4. 최기준
    2013.01.27 11:21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글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안정적 양립가능성과 자기종적적 기제가 정확히 어떤 개념인지, 어렴풋합니다. 보충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ㅎㅎ..
  5. 이한
    2013.01.27 17:04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1. 자기조정적 기제에 대해서는 http://www.civiledu.org/491 를 참조하십시오. 게시된 글과 첨부된 파일글을 읽고, <자유주의적 평등> 제3강 mp3강의(http://www.civiledu.org/36)를 듣고 나서도 어렴풋하시면 다시 질문 주세요.

    2. 안정적 양립가능성이란, 다수가 바라는 상태 X가 발생하기 위해서는 (사회의 재생산) A라는 사람들의 행동(이성애행위)이 필요하고 A-(동성애행위)는 이에 반대방향으로 작용하는데, A와 A-사이에 자기조정적 기제에 의한 변환이 일어나지 않더라도(이성애자가 동성애자로 변환하거나 그 역이 발생하지는 않습니다), 이미 역사적으로나 생물학적으로 A와 A-의 비율 자체는 안정적으로 성립되어 왔다면, 그에 관한 국가의 규제발동의 근거는 생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앞서 지적했듯이 이 문제에 대해서는 사회는 그 자체가 권리를 갖지 아니하므로, 사회의 지속적인 재생산 자체가 논거가 될 수 없다는 점이 우선으로 지적되어야 할 것입니다.)
  6. 이한
    2013.01.27 18:10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의무적 선거참여제도의 외국사례, 무임승차의 문제, 선거 자유의 의미, 비예속 상태로서의 자유 관련해서 중요 논점들을 다 짚고 있는 논문으로는, 최장현, "의무적 선거참여제도의 헌법적 정합성法學論叢 第32輯 第1號, 2012.4, 85-116 (32 pages) 이 있습니다. 기회가 되시는 분은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7. 2018.06.15 06:14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글이 반박의 형식으로 쓰여있고, 예시마다 결론이 없어서 어렵습니다 ㅠㅠ
    궁금한점이 있습니다.

    Q1. X종교 이야기
    추상적인 기본권이 존재한다면 몇날몇일에 무엇을 할 구체적인 자유는 그로부터 파생되어서 인정된다. 맞나요?
    -> 구체적 자유는 없지않냐? 라는 딴지가 부당하다는 뉘앙스상 구체적 자유가 있음을 전제하고 쓰신 것 같아서요.

    Q2. 보편적 향유가능성은 현실의 자기조정적 기제가 작동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 제가 이해하기에, 자기조정성이 있거나 양립가능성이 있는 경우에도 보편화 심사를 해도 되지만, 심사방법이 좀 달라지는거 맞나요? 즉, 모두에게 a할 자유를 주었다고 해서 모두가 a를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보편화심사를 통과할 수있다. 맞나요?
    ex) 동성애를 할 자유의 경우 모두에게 그 자유를 주어도 사회는 안정적일 것이므로 동성애를 할 자유는 기본적 자유이다.

    Q3. 투표문단은 정말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투표행위는 자기조정성과 양립가능성이 없다.
    -> 따라서 투표를 할 자유, 투표를 하지 않을 자유, 투표에 관한 자유는 제약없이 UT심사를 돌려보면 된다?
    -> 그 결과 투표를 할 자유는 기본적 자유가 되지만, 뒤에 두개는 정치체제가 무너지므로 자유가 인정되지 않는다?
    -> 사람은 투표에 관하여는 자유를 갖지 못한다? 선택의 여지가 없이 해야한다?
    이런 흐름인 건가요?

    Q4. 투표의 경우 양립가능성이 없다는 점에 대해서
    -> 집단행동이론으로 접근하는건 무임승차가 개인이 택할 합리적 선택임을 전제하는 건가요?
    -> 그렇다면 불투표에 대한 불이익이 없는데도 아직까지 대의민주주의가 유지되는 나라들은 어떻게 설명되나요?
    -> 제 생각에는 무임승차를 하고싶은 사람도 많지만, 반연
    정치적 표현욕구를 가지거나 혹은 정치적 위기감을 느껴서 자발적으로 투표하는 사람의 수도 만만찮게 많아서 대의민주주의가 유지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전사 예시의
    영광이나 명예처럼 심리적 이유로 양립가능성이 있는 것 같아서 질문드립니다!

    Q5. 개념 정리질문입니다!
    1) 보편화심사란 기본적자유의 존부를 판단하는 것이고 원칙적으로 어떠한 자유에 대해서도 적용되나, 심사의 방법에 있어서 자기조정성이 있는 행위의 경우 A할 자유를 모두가 갖는다고 해서 모두가 A를 하는 것은 아니므로, 이러한 경우에까지 모두가 A할 것이다. 그럼 문제된다. 따라서 A할 자유는 없다. 라고 결론을 내선 안된다.
    2) 추상수준이 높은 기본권은 모두가 거주이전의 자유를 가져도 문제되지 않으니 거주이점의 자유는 기본적 자유이다. 라는 식으로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있으나, 추상수준이 낮은, 즉 구체적인 행위의 경우 자기조정성이나 양립가능성이라는 전제들이 숨어있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구체적 자유들은 보편화심사보다는, 큰 개념의 기본적 자유가 인정되고 그로부터 당연히 파생된 것으로 접근하자.
    3) 구체적 자유라도 자기조정성과 양립가능성을 결여한 경우라면 모두가 a를 하면 문제된다/안된다 로 자유의 존부를 확정할 수 있다. 투표에 관한 자유 및 불투표의 자유는 둘 다 보편화심사를 통과하지 못한다.
    다 맞나요? ㅎㅎ

    덧) 우연한 기회에 접한 블로그인데 제대로 알고싶은 내용이 많습니다. 다음주에 방학하면 저자님 책을 같이 사서 공부해보려고요!
    • 2018.06.17 21:05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A1. 추상적 자유가 있다면 구체적 자유가 있습니다.

      A2. 언제나 자기조정기제를 포함시킨 다음 심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A3. 투표의 경우에는 자기조정기제가 없다는 지적입니다. 간호사 직역에 많은 사람이 몰리면 임금이 떨어지거나 간호사 자격을 따고도 실업상태에 있게 되므로, 사람들은 그러한 신호에 맞춰 자신의 행위를 각자 조정합니다. 반면에 투표의 경우에는 그런 조정기제가 없다는 것입니다.

      A4. 말씀하신 것은 규범적 검토가 아니라 경험적 검토입니다. 이 경험적 검토 역시 불투표 자유 제한에서 당연히 고려되어야 합니다. 한국의 경우 투표하지 않는 것에 대한 제재가 없음에도 충분한 수준의 투표율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투표에 대한 제한을 도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것입니다. 자기조정기제가 있는가는 행위의 객관적 구조에 의하여 판별하고, 실제로 지탱되기 어려운 경험적 결과가 있는가는 경험적 관찰에 의해 판별하면 됩니다.

      Q5의 2)의 정리는 잘못되었습니다. 추상수준은 기본권 제한의 논의 차원을 말하는 것이지, 기본권 종류마다 달리 결부되는 것이 아닙니다. 거주이전의 자유도 아주 추상적 수준에서 검토할 수도, 아주 구체적 수준에서도 검토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구체적 수준의 자유가 없다고 결론내릴 때에, 자기조정적 기제나 안정적 양립가능성 문제를 도외시하고서 그런 결론을 내리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3) 추상적 자유와 구체적 자유가 종류별로 나뉘는 것이 아닙니다. 불투표의 자유는 그 행위의 객관적 구조상 자기조정적 기제가 없어, 보편화가능성 심사는 통과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경험적 고려를 통하여 그것에 제재를 부과하는 것은 해당 여건에서 정당성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다른 부분은 대체로 잘 이해하신 것 같으나, 자유의 영역이나 종류에 구체적 자유와 추상적 자유가 따로 있다고 오해하신 것 같습니다.

      이 글에서 주요하게 논하고자 했던 것은 '보편화가능성 심사'를 시공간적 겹침이 발생하는 구체적 행위사건의 수준에서 수행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 내용을 포함하여, 자유 제한 심사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체계적으로 논의한 것을 보려면 <기본권 제한 심사의 법익 형량>을 꼭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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