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워킨을통해살펴본자유의경계에녹아든평등_.hwp

 

(2016. 3. 수정)

 

 

드워킨의 <자유주의적 평등> 제3장은 이미 시민교육센터에서 강의를 했던 내용이고 mp3 파일로 올려져 있습니다. 여기서는 복습하는 의미에서 잘 정리된 글을 올리겠습니다.

아래는 보충설명입니다.

 

자유는 평등과 차원이 다른 개념이며, 따라서 '평등한 자유'라는 말이 성립가능합니다.

 

(1) A는 B를 비판할 수 있는데, B는 A를 비판할 수 없다면 표현의 자유가 불평등하게 주어져 있는 것이죠.

(2) A와 B 모두 서로를 비판할 수 있다면 표현의 자유가 평등하게 주어져 있는 것입니다.

(3) A와 B 모두 서로를 비판할 수 없다면 평등하기는 하지만 자유는 없습니다.

 

따라서 '평등과 자유가 충돌한다'는 것은 본질적인 개념상, 심층적으로 충돌한다는 뜻이 될 수 없습니다. 충돌한다면 '평등한 자유'라는 말은 성립불가능할테니까요.

 

그렇지만 우리가 '평등과 자유가 충돌한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대략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것이 그와는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특정한 재화나 기회의 평등을 추구하는 정책이, 다른 자유와 충돌할 현실적 가능성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교육에서 상급학교로 진학하는 실질적 기회의 평등을 위하여, 과외의 자유를 제한할 것이냐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이런 문제를 다룰 때, 단순히 한 쪽에는 '진학기회의 실질적 평등'을 놓고 다른 한 쪽에는 '교육의 자유'를 놓고 저울질을 하는 것은 올바른 해결방법이 아닙니다. 그것은 아무 논증 없이 결론으로 달려가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유와 평등이 맺고 있는 구조적 관계를 더욱 명료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 구조적 관계의 바탕 위에서 정합적으로 문제를 풀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관계를 자세히 살펴보면 기본적 자유의 경계는 그 설정 자체가 평등의 원리에 단단히 뿌리박고 있습니다. 즉, (2)와 (3)의 사태를 정치철학적으로 비판할 수 있는 논변은 평등 논변이거나 평등 논변과 밀접한 논변을 포함할 수 밖에 없습니다.

 

드워킨은 진정한 자원 평등은 적절한 자유권이라는 기준선 체계가 없이는 그 의미를 잃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자유권은, 공동체 구성원들 사이의 평등한 관계를 표현하는 한 측면인 것입니다.

 

이로부터 도출되는 결론:

(1) "어떤 자유권의 배분이 타당한가의 검사 중 하나는, 그 자유권이 '각 사람의 삶의 기획 추구가 진정한 기회비용을 반영하고 있는가'이다"

(2) 현실 사회에서 어떤 특정한 영역의 평등 추구가 자유와 충돌하는 경우, 해결방법은 "희생의 원칙"이다. 즉, 자원평등 사회에서 당연히 누릴 수 있는 자유가 그 정책으로 인해 희생되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다.

 

일전에 저는 <투표하지 않을 기본적 자유는 있는가>라는 글을 통해서, 정치철학적 판단이나 헌법판단에서, '자유'는 자기조정적 기제를 포함하도록 추상수준을 올려야 한다고 한 바 있습니다. 여기에 대하여 '자기조정적 기제'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설명하자면,

 

여기서 자기조정적 기제란 바로 '자신의 행위가 산출한 비용을 자신이 감수하게끔 반영하게끔 하는 기제'입니다.

 

일전에 기고한 "생산성"에 관한 글에서, "사단장의 오류"를 이야기한 적 있습니다. 사단장이 부대에 테니스코트를 생기게(?) 해서 만족을 얻었는데, 자기 자신은 입술을 움직이는 비용만 치르면서 대단한 걸 해냈다고 생각하는 오류 말입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사단장의 만족을 위해 사병들이 휴가 반납과 노역의 비용을 치렀습니다. 이 경우 사단장은 자신의 기획 추구가 수반하는 비용을 자신의 삶에 반영하지 못한 것입니다. 결국 이 사례에서 사단장과 사병 사이에 자유 체계가 왜곡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반면에 길동이라는 필자는 야박하게 비판하는 스타일로 글을 쓰고, 춘향이라는 필자는 점잖게 비판하는 스타일로 글을 씁니다. 이 경우, 길동과 춘향은 각자의 글의 스타일에 따라서 독자들 및 비판의 대상이 된 사람들의 반응을 얻게 되고, 그에 상응하는 효과를 얻게 됩니다. (그 효과는 각기 장단점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길동과 춘향은 자신의 기회비용을 자신의 삶에 반영하게 된 것입니다. 만일 길동이 자신이 야박하게 글을 써서 생기는 불편함과 반작용이, 그 글로 인해 얻게 되는 선명함이나 선동의 효과를 넘어선다고 생각하면 글 쓰는 스타일을 바꾸게(조정하게) 될 것입니다.

 

독점과 과점, 외부효과가 없으며 평등한 자원을 가지고 거래하는 '시장'교환 기제는 대표적인 자기조정적 기제입니다. 그러나 시장교환 기제가 독점, 과정, 외부효과, 권력화효과 등을 발생시킬 때에는 현실의 시장이 곧바로 자기조정적 기제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주체가 '선택'을 할 수 있고, 그 선택의 결과로 나오는 비용과 혜택이 선택을 한 사람에게 타당하게 귀속하는 체제를 자기조정적 기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점을 염두에 두면 그와 같이 타당하게 귀속하지 않을 때 교정하는 올바른 방식에 대한 추론의 토대를 얻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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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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