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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T. M. Scanlon의 논문 "Content Regulation Reconsidered"의 요약번역문입니다.

 

"형식에 기초한 표현 규제(A)는 공익을 위해 허용할 수 있지만, 내용 때문에 시행되는 규제(B)는 명확히 표현 자유 침해다"라는 이념이 있습니다.

 

이 이념은 두 가지 원천에서 나오는 것 같다고 스캔론은 말합니다.

 

"첫째, 권리에 관한 우리의 사고는 몇몇 가장 중요한(leading) 사례에 의해 강하게 영향받으며, 받아들일 수 없는 표현 규제의 몇몇 명확한 사례들은 내용 기반 규제를 포함한다."

(예를 들어 X교의 교리 설파는 인정하면서 Y교의 교리 설파는 무슨 헛된 소리냐하면서 막는 것이죠.)

그러나 "이 사례들로부터 일반화할 때는 고도의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스캔론은 말합니다.

 

"둘째, 경쟁하는 이익들을 복잡하게 형량하는(messy balancing) 다른 판단들과 대조적으로, 내용에 기초하여 표현 행위를 구별하는 일을 포함하는 형태의 규제가 정당성이 없다는 결론은 명료한 울림이 있다. 이것은 선명한 구별을 좋아하는, 가치 판단의 크고 분명한 요소들을 포함하지 않는 판단을 선호하는 판사들 뿐만 아니라 이론가들에게 그와 같은 이념이 호소력이 있게 해준다."

"그러나 이 명료성은 환상일지도 모른다"고 스캔론은 말합니다.

 

결국 스캔론의 결론은 이 글 말미에서 지적하였듯이, "내용 기반 규제 중 허용가능한 형태와 허용불가능한 형태를 구별하는 일은 우리로 하여금 표현의 상이한 범주의 가치들의 비중을 잴 것을 요구하며, 이 형량 요소는 무시되어서는 아니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결론을 내기까지 스캔론이 수행한 작업이 더 중요합니다. 그 형량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하는지, 그 추론 방식을 제시해주기 때문입니다.

 

먼저 스캔론은 자신의 다른 논문에서 밝혔던 밀의 원리(Millian Pinciples)에서 출발하여, 그것을 수정합니다. 스캔론 자신이 정식화한 밀의 원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원칙: 다음과 같은 해악은 표현 규제의 정당화 근거가 될 수 없다

 

(a) 특정한 개인들이 그러한 표현 행위의 결과로 거짓 신념을 갖게 되는 것으로 구성되는 그 개인들에 대한 해악 (b) 그 표현행위의 결과로서 수행된 행위의 해로운 결과이며, 여기서 표현과 그에 이은 해로운 행위간의 연결관계가 단지 그 표현 행위가 행위자로 하여금 그 행위가 수행할 가치가 있다고 믿도록 한 것일 때(또는 그렇게 믿게 되는 그들의 경향성을 증가시킨 것일 때).

 

(이것을 사례로 들어보면 (a) 어떤 사람이 창조설이 과학적 사실이라며 책을 내고 강연을 하는 바람에 그것을 사람들이 믿게 된다는 이유로 금지할 수 없다는 겁니다. (b)는 어떤 사람이 전쟁에 반대하는 평화주의 신념을 설파하여, 그 결과로 일군의 사람들이 징병을 거부하게 되었다고 하여 이 평화주의 신념 설파를 금지할 수 없다는 겁니다)

 

이 원칙은 일종의 측면 제약 공식입니다. 최소한 저런 근거는 빼야 한다는 겁니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스캔론의 기존의 이론의 전체 조망은, i) 참여자의 이익 ii) 청중의 이익 iii) 그리고 이 가치들을 향유할 기회는 분배 정의의 일반적 기준과, 정치참여에 대한 특수한 권리가 만족되도록 배분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포함합니다.

 

이 글에서 스캔론은 위 밀의 원리에서 수정을 가합니다. 즉, 표현 형태의 범주에 따라 상이하게 가치를 부여하고 형량하는 일을 피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기존의 밀의 원리 정식화에 대한 그의 평가를 들어볼까요?

 

"자율성에 대한 이 호소가 갖는 문제점은, 그것은 표현의 내용 기반 제한이 중요한 사안들에 대하여 우리 스스로 결정할(make up our won minds about important matters) 우리의 능력에 대한 위협의 상이한 정도를 감안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정부는 표현이 법률과 정부에 대한 존중을 훼손하리라는 근거에서, 또는 그 표현이 결혼 제도 및 가족 제도를 의문시한다는 이유에서 표현을 제한할 아무런 권한이 없다. 그러한 권한은 우리의 “자율성”을 위협한다. 즉 우리 스스로 (163) 공적 토론을 통하여 중요한 질문들에 대하여 결정할 능력을 제한한다. 이와는 달리, 거짓 광고나 사적 시민을 명예훼손하거나 사생활을 침해하는 표현에 대한 제재는 그러한 위협을 가하지 않는다. 밀의 원리는 후자의 종류의 내용 기반 제제한을 허용한다. 왜냐하면 그러한 제한들이 막고자 하는 해악은 그것이 [정당화의 근거 집합에서] 배제하고자 하는 유형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해악들은 단순히 거짓된 신념의 비효용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고, 다른 이들이 취하게 되는 해로운 행위를 말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 규제들(restrictions)과 내용 규제의 허용가능하지 않은 형태 사이의 진정한 차이는, 밀의 원리 논변에서는 무시되었던 요소에 놓여 있다. 그것은, 상이한 주제에 관한 자유로운 공공 토론에 결부된 상이한 가치, 그리고 정부가 이 토론의 내용을 규제하는 권위를 갖게 해주는 것에 수반되는 위험의 상이한 정도라는 요소 말이다."

 

그래서 "이 모든 것의 교훈은, 우리는 내용 기반 규제라는 이념을, 그들의 내용이나 적어도 그들의 주제에 기반하여 표현의 상이한 형태를 구별하여 그 표현 형태들의 상대적 가치에 관한 판단을 내리지 아니하고서는 허용불가능한 것으로 해석할 수 없다는 것이다."

 

"Q: 이제 거짓 광고를 처벌하는 법령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가?"의 문제를 살펴볼까요? 이건 내용 기반 규제로 보입니다. 밀의 원리에 의하면 거짓 광고는 처벌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좀 이상합니다. 이 점은 어떻게 설명이 가능할까요?

 

스캔론의 답입니다. “상업적 표현(commercial speech) 일반이 참여자와 청중 모두의 정당성 있고 중요한 이익에 봉사한다는 점을 부인한다면 잘못일 것이다. 그러나 사기를 칠 기회를 갖는 참여자의 이익은 아무런 가치를 갖지 않으며, “잘못”을 구성하는 규준이 충분히 명확하고 큰 정치적 논쟁의 사안과 결부되어 있지 않은 경우에는, 거짓된 광고를 기소할 수 있는 권한은 참여자 및 청중의 다른 가치에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다."

 

즉, 내용기반 규제라 할지라도, 표현의 자유의 가치를 이루는 축들, i) 참여자에게 갖는 가치 ii) 청중에게 갖는 가치 iii) 구경꾼에게 갖는 가치, 그리고 가치들의 향유할 기회에 대한 공정한 분배와 정치참여에 대한 특수한 권리의 만족을 통해서 세밀하게 평가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이에, 더하여, 내용 기반 규제 중에서 단순히 정치적 권력을 가진 사람이나 통치 기구가 공공 토론에서 지배적이기를 바라는 발언자를 유리하게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규제도 평가할 수 있게 됩니다. 이 때에도 위협되는 발언자와 청중의 이익은 동일합니다. 그러나 위협의 동기의 성격 때문에, 관점 차별에 대한 우리의 저항감은 참여자의 가치 보호 및 공정성의 가치 보호에 더 강조점을 두게 된다고 스캔론은 말합니다.

 

스캔론은 결국, "특정한 그 구체적인 표현이 갖는 가치 vs 공익"이라는 저울을 가늠해보고 자신의 결론을 내는 무식한 방법을 추천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저울은 더 정합적이고 체계적인 원칙의 적용으로 대체되어야 하는데, 그 원칙을 세울 때 일정한 표현 범주별로 가치를 달리 결부시키는 저울을 활용하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스캔론이 각 범주 내의 구체적인 표현 행위 사이에 차별을 두는 것은 논쟁의 여지가 매우 많으며 표현의 자유의 핵심 이념과 상치되는 것임을 각주에서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표현의 자유는, 그 사안에서 문제가 된 그 표현의 가치를 구체적으로 바로 그 수준에서 평가하고자 합니다. 이것은 범주의 추상 수준 통제가 제대로 되지 않은 것입니다. 표현의 자유를 진정으로 적용하는 것의 핵심은 구체적인 행위 하나하나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그 행위들을 추상적 범주를 묶어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공통으로 평가할 수 있는 판단에 기초지우는 것입니다.

 

이런 판단의 구조를 무시하는 자들은 결국 '공감과 반감의 원리'라는 형량도 뭣도 아닌 직관을 들이대고 있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것은 바로 "내가 우웩 하는 반응이 나오면 금지하고 내가 저 정도는 괜찮네 하는 생각이 들면 허용한다"는 무식한 판단법이며, 형량balancing 이라는 말을 쓰고 있기는 하지만 그 말의 의미를 제대로 음미하지도 못하는 자들이 자신들의 나태함을 부끄러워할 줄도 모르는 작태인 것입니다.


 

 

 

 

 

 

 

 

 

 

Posted by 시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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