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산점제, 할당제에 관한 한국 사회의 논의는, 암묵적으로 깔려 있는 검토되지 아니한 '규범적 주장'을 전제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어떤 집단에 가해지고 있는 부정의의 시정은, 다른 집단에 가해지고 있는 다른 종류의 부정의 시정이 동시에 이루어지지 않는 한, 허용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이것을 '부정의 교정 제안에 대한 동시이행항변'이라고 부르자.

 

'항변'이란 상대방의 권리 청구를 저지시키는 원인을 진술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채권자가 내 돈 갚아라~ 하고 소를 제기했을 때, 채무자가 "어제 이미 갚았잖아"하는 경우 채권이 변제로 소멸되었다는 사유를 항변하는 것이다. '동시이행'이라는 것은 매매(한 쪽은 돈 내고 한 쪽은 물건 주고)와 같은 쌍무적(두 쪽이 서로를 향하는 의무를 갖고 있는) 관계에서, "네가 너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한, 나도 나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임대차계약을 해놓고 임차보증금을 주지 않은 상태에서 임차목적물인도 청구(방 내놓아라)하면, "네 돈을 주지 않는 한 방 못 내놓겠다"라는 동시이행 항변을 할 수 있다. 그런데 부정의 교정의 경우에 과연 이런 동시이행 항변 할 수 있느냐가 문제된다.

 

동시이행항변을 전제하는 단적인 예는, 인터넷상에서 무한지옥의 해묵은 논쟁을 창출하는 출산 vs 군대의 프레임이다. 실제로 출산에 관련된 부정의(A)와 군대에 관련된 부정의(B)는 교정의 논의가 연결되어야 할 아무런 이유도 없다. 어떤 두 종류 이상의 부정의에 관련된 피해 집단이 대체로 상호배타적(belongs to categories which is largely mutually exclusive-여기서 largley가 들어가는 이유는 남성의 경우에도 장애나 질병으로 군복무를 하지 못하는 경우들이 있고 여성의 경우에도 군복무를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으로 범주화된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그 자체로는 두 부정의에 대한 교정의 논의가 연결도어야 할 어떤 이유도 제시해주지 못한다.  

 

두 부정의에 관한 교정 논의가 연결되는 경우는 '원리 적용의 평등 원칙'을 통해서다.

 

i) 이를테면 A지역 절도 피해자와 B지역 절도 피해자 양자 모두에 대해서 국가가 형사피해자보상을 해주지 않다가(t), 그 이후 A지역 절도피해자에 대해서는 형사보상을 해주면서 B지역 절도 피해자에 대하여는 보상을 해주지 않는다(t1)고 하여보자. 이 경우 B지역의 사람들은 이와 같은 차별이 자의적임을 이유로, 그 적용을 평등하게 하여달라고 주장할 수 있다. 이 경우, 그 항변은 부정의 교정 자체를 문제삼는 것이라기보다는 그 교정의 원칙이 일관되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부정의 교정 논의가 평등 원칙을 통해서 연결되는 것은 '모두의 처지를 상향하는 상태'를 지향한다.

  물론, 그러한 보상제도가 도입되기 이전이라면, 그 보상 비용이 전국적인 과세에 의해 충당되는 경우, 그러한 불평등한 제도는 애초에 도입되지 않아야 한다고 B지역 사람들은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실제로는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야 한다. 첫째로는 '평등한 형사보상제도가 도입되는 것이 바람직한가'(즉, 형사피해자는 운이 좋지 않았던 것을 개인이 오로지 감수하고 이전대로 하는 것이 더 나은가 아닌가의 문제), 둘째로는 '만일 여하한 형사보상제도가 도입된다고 한다면, 그것은 모든 지역의 주민에게 평등하게 적용되어야 하며, 일단 불평등에 기반한 제도가 도입되고 나면 고치는 것이 더 힘들므로, 지금은 그 형태의 제도 도입에 반대한 뒤, 형사보상제도의 일괄적 도입에 대해 논의하자'는 것이다. 결국, 어떠한 경우에도 부정의 교정 논의가 부정의 개선을 저지하는 방향으로는 작동하지 않게 된다.

 

ii) 위 i)의 경우는 부정의의 종류(형사피해자가 공공의 안전의 부족으로 불운하게 자신의 지배영역dominion을 침해당했는데 그 복구를 사회가 조력하지 않았다)가 도덕적으로 자의적인 이유에 의해 구분되지 않고서는 동일 종류의 범주에 속한다고 밖에 볼 수 없는 경우다. 부정의의 종류가 다른 경우는 어떠한가?

  예를 들어 A는 지역 차별을 겪고 있고, B는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을 겪고 있다. 그런데 논의의 전개를 위하여(for the sake of argument) A의 출신 지역에는 소수 성적 지향자들이 통계적으로 매우 적다고 해보자. (대체적인 범주 배타성 조건 성립) 이번에 국회는 지역차별금지법을 통과시켰다. 이 경우 B는 자신이 겪고 있는 범주의 부정의를 동시에 교정하지 앟았다는 이유로, 이 차별금지법을 저지할 수 있는 규범적으로 정당한 권리주장(claims)을 갖는다고 봐야 할 것인가?

 

  이것은 롤즈의 <정의론>에는 등장하지 않는 비이상적 사회 이론(non-ideal theroy)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원초적 입장이나 스캔론의 계약론적 논법에 의해 보편적인 관점에서 결정하 수 있는 문제다. 예를 들어 롤즈의 원초적 입장 당사자들은, 자신들이 어떤 질서정연한 사회를 구축하였을 때, 외부의 충격이나 아니면 어떤 알 수 없는 내생적인 변화에 의해 그 질서정연성(well-orderedness)가 일시적으로 훼손될 수 있다는 지식을 갖고 있고, 그 지식에 기초하여 '부정의 교정'의 원칙을 미리 세워둔다고 상상해보자. 또한 사회의 정치적 과정의 있을 수 밖에 없는 비효율성과 지연의 문제, 예산제약의 문제 때문에 이렇게 발생한 부정의가 한번에 모조리 동시에 교정될 수 없다는 사회에 관한 사실도 알고 있다고 하여보자.

  이 경우 '내가 겪는 주된 부정의가 모조리 교정되지 않는 한 나는 이와 어떠한 본질적 연관성도 없는 타인의 부정의 교정을 저지할 비토권을 갖는다'라는 부가 원칙(proviso)로 도입할 것인가?

  원초적 입장의 당사자들은 합리적 존재이므로(rational being) 그러한 부가 원칙을 거부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 부가 원칙이 도입되는 순간, 완벽한 질서정연성에서 한꺼번에 완전히 해결할 수 없는, 두 개 이상의 종류의 부정의가 동시에 발생하여 이탈한 사회는, 다시는 그 질서정연성을 복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는 부정의를 교착상태(impasse, deadlock)에 의해 항구화시키는 어리석은 원칙이다. 이 원칙에 의거한 권리주장을 받아들이게 되면, 누구의 부정의가 더 심하냐를 계량하려고 하게 되고, 자신의 고통은 과장하고 타인의 고통은 폄하하려는 자연스러운 인간의 경향성 때문에 어떠한 개선도 효과적으로 저지될 것이다.

  계약론적 관점에서, 질서정연성에서 이탈한 부정의의 교정은, 그 부정의 교정이 가속화되도록 하는 원칙을 선호할 충분한 이유가 있으며, 부정의 교정을 억제하고 저지할 원칙을 배제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예를 들어 장애인 복지 제도를 개선하여 그들이 이동권을 충분히 누리도록 하는 변화를, 비장애인 미숙련 노동계급의 실직 어려움이 개선되지 아니하였다는 이유로 거부하거나, 변호사 선발 제도의 변화를 전관예우관행이 개선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거부하거나, 여성의 과학기술 교육에서의 암묵적 차별을 남성의 간호사나 유치원 교사가 되는 교육에서의 암묵적 차별을 개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거부한다면 이로써 개선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제, 군가산점제와 주부가산점제를 살펴보자. 군인과 주부의 삶은 그 고유한 어려움들이 있고, 각각 개선되어야 할 사정들이 있다. 그러나 그 개선은 그 어려움 자체를 정면 돌파, 직접 처리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 그 부정의는 그대로 두고 다른 분야에서 새로운 부정의를 창출함으로써 이루어져서는 아니된다.

 

군가산점제는 공무담임권의 평등, 주부가산점제는 노동기회의 평등, 일반적행동자유권 및 아동교육에 있어서의 평등을 일그러뜨리는 것이다. (이 두 경우는 어떤 특질을 가진 인구의 상당수를 그 분야에 유입시키는 것이 부정의를 교정하는 효과적인 일시적 방편이 되는 적극적 평등 실현조치affirmative action의 요건을 성립시키지 않는다. 남성은 예로부터 공직을 많이 담당하였으며 정책이 남성편향적인 이유를 제공하였으며, 주부의 행동자유권은 스스로를 부양하지 아니하면서 아동교육에 더 많이 시간을 쓸 수 있다는 접합적 선택지를 행사할 수 있는 경제적 여건을 갖추고 있다.) 제로섬 게임적인 불평등 요소를 도입하는 것은 부정의의 개선이 아니라, 부정의의 추가 창출이다.

 

  원초적 입장의 당사자들은 부정의에 대한 해결로서 '부정의 추가 창출'의 방책의 실시를 저지할 교정 원칙을 택할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질서정연함에서 이탈하였을 경우, 부정의 추가 창출의 방책은 그 이탈을 더 멀리, 더 가속화시키는 지렛대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A집단은 B집단에 비해 X라는 분야에서 불리하다. 그러므로 A집단은 K분야에서 불평등한 특전을 갖는다. 이제, B집단은 종전에 Y 분야에서 불리했는데, 이제 K분야 불평등까지 겹쳐서 불리해지게 되었다. 이를 보상하기 위하여 L분야에서 불평등한 특전을 갖는다. 이런 식으로 계속되면 제로섬게임적인 특전들은 덕지덕지 쌓여서 추가되게 된다.

  A지역의 사람들이 B지역 사람들에 비해, 정보처리기사가가 되는데 차별을 겪고 있다고 해보자. 그래서 국가가 이번에는 A지역 사람들이 훨씬 인구에 불비례해서 공인중개사가 되는데 특전을 갖도록 가산점을 준다고 해보자. 이런 해결책이 무슨 타당한 정당화 근거가 있는가? 전혀 규범적으로 연결점이 없는 것을 억지로 연결시킨 것이고, 이러한 연결의 숨겨진 끈은 바로 '부정의 교정에 대한 동시 이행 항변권'과 '부정의 교정의 방책으로서 추가 부정의 창출 주장권'이라는 정당화될 수 없는 권리주장(claims)을 전제하는 것이다.

 

  출산에 관련된 어려움은, 출산으로 인해 태어나는 어린이가 자신의 의식주와 교육에 관하여 새로운 시민으로서 응당 갖는 최소한의 평등한 권리를 갖지 못하고 오로지 부모의 재력에 의해서 삶이 결정된다는 것에 많은 것이 걸려 있다. 이로부터 여성의 경력 단절이나 경력 추구에서의 불펴등 등이 생겨난다. 이는, 머릿수당 무조건적 기본소득에 대한 시민적 권리의 보장(그러면 아이가 태어나면 그 아이는 매달 자신의 의식주에관한 기본비용을 받게 된다), 육아친화적인 노동규제(특히 사업장에 그 비용을 일방부과하는 방식 때문에 여성이 노동시장에서 오히려 불리한 위치에 처하지 않도록 하는 비용부담의 사회화가 이루어지는 방식), 근로시간 제한의 실효적 집행과 육아의 사회화를 추구함으로써 개선되어야 한다. 남성만이 국방의 의무를 지는 상태를 영구화시키는 것은 이 부정의의 교정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군대와 관려된 부정의는, 군대에서 인권이 열악하다는 것, 군역의 의무를 오로지 남성만이 지는 것, 그리고 위기상황에서 국가의 공동방위에만 필요한 개인 자유 제한이 그러한 전시 동원에 필요한 군사교육기간을 훨씬 넘어서까지 평시에 부과되고 있다는 점(여기에 대하여는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에서 공동 방위의 의무에 관하여 논한 본문과 각주를 참조. <콜버그의 호프집>에서 논한 전면적 모병제 논의는 여기서 약간 수정되어 8-12개월 국민개병제로 변형되었다)이다. 이 중 어느 것도 여성이 공무담임기회와 노동시장에서 차별받고 있는 것을 저지함에 의해 개선되지 않는다.

 

  공무담임에 가산점을 준다고 하면, 공무원이 아닌 절대 다수의 군필자들에게는 아무런 보상도 가지 않는다. 주부에게 가산점을 준다고 하면 점점 더 늘어나는 또한 1인 부양체계의 여유가 없는 가족과 그 구성원들에게는 오히려 과세, 재화분배, 노동시장기회구조상 역진이 발생한다.

 

  가산점제도는 적극적 평등 실현조치의 요건을 갖추는 경우에만, 일시적, 제한적으로 사용되어야 하며, 그것을 사회의 일상적인 기회 할당의 항구적인 기초로 삼을 수 없다. 그럴 경우 모든 사회구성원들은 자신의 정체성에 따라 이런저런 새로운 가산점들을 요구할 것이며, 국가가 법으로 정할 수 있는 기회구조는 덕지덕지 발칸화(balkanization-발칸화란, 발칸반도의 민족주의 분쟁처럼 서로의 정체성에 결부된 특권을 주창하여 사회적 기회구조를 나눠 차지하려 하며 그 몫에 대하여 끊임없이 분쟁이 생기는 것을 의미한다)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군역의 평등 부담에 관한 코멘트. 한국의 헌법은 국민이 국방의 의무를 지는 것을 규정하고 있고, 여성은 국민에 속한다. 또한 출산 자체는 영장이 나오는 일도 아니고 출산하지 않으면 처벌받는 일이 아니므로 이는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는 것에 해당되지 않는다. 일상적인 직장생활도 여기에 속하지 않는다. 여성이 국방의 의무를 지지 아니하는 부정의 교정에 대한 동시이행의 항변으로 여성이 현 사회에서 다른 부정의를 받고 있다는 것도 앞서 언급한 원리에 따라, 거론할 수 없다. 헌법재판소는 여성이 군역을 공동수행하는 것에서 완전히 면책되어 있는 것이 입법자의 재량이라고 하였는데 입법자는 그와 같은 심대한 의무를 완전히 면책시킬 재량이 없다. 군역은 전투수행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군대의 억지력 유지와 관련된 광범위한 업무들 모두를 포함한다. 군수생산에서부터 기계 정비 유지, 평화시의 보급 작업 등등 신체적 능력의 차이는 군역 자체를 면제시킬 근거가 되지 못한다. 특히 여성들은 전시에 군수물자 생산과 공급, 의료 업무 등에 종사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평시에 이를 대비하는 조직 설정과 교육이 불필요하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지 아니하다면 현재의 장기간의 군역기간을 점차 축소시키면서 그 축소로 인해 발생하는 모병의 비용을 군대를 가지 아니한 사람들에게 소득 수준에 비례하여 특별세로 걷어서 충당하는 방안-<콜버그의 호프집>에서 논한 방안-을 최소한 실시해야 한다. 동시이행항변 주장이나 부정의 추가 창출 주장이 나오는 것은, 이 부정의를 아예 존재하는 것으로 인정치도 아니하거나-헌법재판소는 군역이 희생도 뭣도 아니라고 하였다-, 개선의 여지가 전혀 없다-전투능력이 다르니까 군역의 완전한 불평등은 완전히 정당화된다-는 태도가 큰 원인이 되어 있다. 뻔히 존재하는 부정의를 부인하게 되면, 그 부정의의 피해집단은 자신들이 피해당사자가 아닌 다른 부정의의 개선에 무감하게 되고 오히려 새로운 부정의를 창출하여 자신들의 부정의에 대한 상징적 보상을 받으려는 심리가 생겨나기 마련이다. 군인권문제의 개선이나 봉급의 상승은 부정의 중에 불평등의 부정의는 전혀 해결하지 못한다. 국민들 중 서쪽 지역에 사는 사람은 2번 군대 가게 한 다음에, 봉급 올려주면 문제가 해결되었는가? 거꾸로 말하면, 사회심리학적으로, 군역의 평등한 부담은 여성이 고통받는 부정의가 한국사회에서 빠르게 해결될 수 있는 심리적 계기를 제공한다고 할 것이다. 규범적으로는 연관성이 없으나 어리석은 인간 성향상 그렇다는 것이다.)

 

위 글의 마지막 코멘트에 대한 보충 설명 http://www.civiledu.org/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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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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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9.13 18:39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군역 관련 토론에서 "여성은 국방의 의무는 지고 있으나 그 부분 집합인 병역의 의무는 지고 있지 않다"라고 주장하는 이를 봤는데, 이건 법적으로 무지한 발언인가요?
    • 이한
      2015.09.15 01:39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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